카파는 자신이 원하는 사진의 한 장면 처럼 세상을 떠났다. 라이카 카메라를 목에 걸고 그가 보았던 모든 것을 단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한 인생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종군 사진작가'라는 평가가 그의 이니셜처럼 뇌리에 스친다. 제 1회 <로버트 카파 상>을 수상한 하워드 소슈렉은 훗날 카파의 사망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무엇보다 카파가 매력적인 것은 전설, 그러니까 그가 자신을 재창조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카파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미국의 소설가 존 스타인백은 “카파의 영향은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평생 카파의 일부를 지닌 채 살아갈 것이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라고 그를 추모하는 글을 썼다. 카파는 존 스타인백을 포함해서 20세기 전쟁의 시대를 같이 살았던 거장들, 스페인 내전시절에 만났던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카소, 마티스와 같은 멋진 남자들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잉그리드 버그만, 비비안 리와 같은 다수의 헐리우드 스타들과의 사랑, 윈스턴 처질 수상의 며느리인 파멜라 처칠과의 뜨거운 연애, 그의 첫 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원한 연인’ 게르다 타로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 편력은 잠시도 쉴 날이 없는 보헤미안의 삶이었다. 카파는 삶에도 여자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 라이카 카메라의 셔터를 한 손으로 누르면서 도박, 술, 여자, 담배를 항상 손에 쥐고 다녔다. 그의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에는 죽음이 쥐어져 있었다.(그는 육손으로 태어났다.) 여성편력과 도박 중독, 방랑벽은 그가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다”라고 말한 그 엄청난 충격에서 터져 나온 파편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