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예수님,
당신은 제 보물이오니
제가 당신 사랑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리며
살고 싶습니다.
오늘의 기도지향
병든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치유자이신 하느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이들과 함께 하시어 아픈 곳을 낫게 하시고, 그들을 돌보는 의료진들에게도 지혜와 사랑으로 함께 하소서.
오늘의 말씀
연중 제2주간 월요일 마르 2,18-22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오늘의 묵상
새 포도주 같은 힘
새벽에 일어나 미사 복사 봉사를 하기 위해 오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예쁘기 그지없습니다. 제의방에서 미사를 준비하면서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을 때면 예전과 다르게 많은 친구가 꿈이 없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조금 현실성이 없더라도 이루고 싶은 꿈 하나쯤은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던 예전에 비해, 요즘 친구들은 너무 현실에만 갇혀 있어서 그런지 그런 꿈조차 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초등학교 일제고사가 실시되면서 어른들의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평가하고 더욱더 아이들을 꿈 꿀 수 없는 현실로 내모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단식에 대해 질문을 받으시고는 당신한테서 새로운 계약이 실현되고 있음을 밝히십니다. 예수님한테서 시작되는 새로운 하느님의 법은 마치 새 포도주처럼 힘이 있습니다.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난 헌 가죽부대로는 계속 성장하며 발효되어 점점 부풀어 오르는 새 포도주의 역동성을 담을 수 없으므로, 그 힘을 담을 새 그릇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계약은 제자들과 함께 성장하고 익어갈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도 어른들의 낡은 기준이 아니라 그들을 잘 키우고 성장시킬 수 있는 예수님의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현실을 걱정하고 힘겨워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꿈을 꾸고 힘차게 성장할 수 있는 새 포도주 같은 힘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황지원 신부 (작은 형제회)]
영적독서
주님께 찬미 노래를 바치는 교회
성서에 수집되어 있는 시편은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이다. 교회는 초기부터 신자들의 신심을 기르는 데 시편을 사용하여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 이 시편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하느님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찬양했다." 더욱이 시편은 옛 법의 관습을 따라 거룩한 전례와 성무일도에서 주요한 부분을 담당해왔다.
성 바실리오는 시편을 "교회의 소리"라 하고 우리 선대 교황 우르바노 8세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옥좌 앞에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거룩한 찬미가의 메아리" 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성 아타나시오의 말에 의하면, 시편은 특히 자신의 주요 직분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에 있는 그런 사람들에게"어떻게 하느님을 찬미하고 무슨 말로 합당하게 찬미해야하는지" 가르쳐 준다. 따라서 성 아우구스띠노는 아름다운말로 이렇게 표현한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당신을 합당하게 찬양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고자 먼저 당신 스스로를 찬양하셨고, 이렇게 하심으로 사람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웠다."
시편은 또 우리 영혼 안에 모든 덕행을 얻고자 하는 열의를 불붙일 힘을 지니고 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하듯 '성경은 신구약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는 데 유익한 책' 이지만 시편집은 성경의 다른 모든 책들의 열매를 담고 있는 정원처럼 찬미가를 부르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의 열매와 다른 책들의 열매를 모두 보여준다." 고 아타나시오는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덧붙인다. "시편은 그것을 부르는 사람에게 거울과도 같아 그 안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정감을 볼 수 있으므로 그 정감의 생생한 표현이 된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여, 나는 당신 교회가 부르는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가슴 뭉클하여 당신을 노래하는 찬미가와 찬가의 아름다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나이다. 이 노랫소리는 내 귀에 흘러 들어가 진리가 내 마음을 축축히 적셔 주게 하고 내 신심의 정이 불타오르게 하여 눈물이 쏟아지게 했나이다. 이때 내 마음은 그 찬미 노래로 얼마나 행복에 넘쳤는지 모르나이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엄위와 그분의 전능하심과 표현할 수 없는 정의, 그분의 선과 자비 그리고 그분의 다른 무한한 속성을 그렇게도 숭고하게 전하는 시편의 많은 부분들을 들을 때 감동 받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 이와 마찬가지로 시편에 나오는 하느님에로부터 받은 축복에 대한 감사의 노래, 소망하는 은총에 대한 겸손하고 신뢰에 찬 기도, 그리고 죄를 뉘우치는 영혼의 외침에 감동 받지 않을 이 어디 있겠는가? 성 아우구스띠노의 말처럼, "모든 시편 속에서 노래하시고 애통하시며 희망에 부풀어 즐거워하시고 고뇌에 차 탄식하시는" 구속주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사랑에 불타오르지 않을 이 누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