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우리 몸을 나누는 사랑이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 영화 ‘몬트리올 예수’에서 주인공이 죽으면서 장기를 여러 사람에게 나눠줌으로써 부활의 뜻을 되새겼던 것, 작고하신 아버님이 병환으로 입원했을 때 옆의 40대 남자 환자가 신장 투석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올 때마다 소름끼치게 울퉁불퉁해진 팔뚝에다가 거의 몸을 못가누고 질질 끌려오다시피 한 것, 재작년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형님의 마지막에 장기 기증을 하고 싶었지만 너무 까다로운 절차에 중도 포기하고 말았던 것, 작년 부활절 쯤 우리 교단 어느 목회자가 교우를 위해 기꺼이 신장 이식 수술을 하고 아주대 병원에 입원했다하여 찾아갔다가 가슴 뭉클했던 것, 요즘 가장 볼만한 방송 MBC의 느낌표 …!
어느 순간 이들이 내게로 모아져 들어왔다, 창밖의 봄 햇살처럼! 우리 교단에도 여러 목사님들이 생시에 장기를 기증하는 결단을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아직 한 번도 입원이나 수술을 안 해봐서 더 겁이 많은가보다. 외국에선 산 사람의 장기를 떼어주는 것보다는 뇌사자나 사후에 장기를 기증하는 운동이 더욱 확산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장기 기증이 대중운동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설립자 박진탁 목사님으로부터 기장의 모든 교회에 보내는 안내문이 왔다. 혹시라도 그 단체와 박목사님의 관계가 어색한(?) 것은 아닌가 하여 망설이다가 그렇지는 않고 밀접하게 협력하는 관계인 것을 확인하고 그 단체에서 팀장으로 수고하는 우리교단의 김종운 준목을 통해 박목사님을 주일 예배에 초청할 수 있었다. 박목사님은 멀리 서울에서 수원의 작은 교회까지 오셔서 사랑의 결단을 호소하셨다 (교회 홈 페이지에서 설교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올해는 방송의 영향도 있고, 또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결단할 수 있는 항목이 사후 각막 기증이라 이 단체에서는 올해를 각막 기증의 해로 선포하고 이에 집중하고 있나보다. 방송을 볼 때마다 궁금했는데, 우리나라는 각막 기증자가 많지 않아서 미국, 캐나다 등 외국에서 각막을 사오는 것이기에 진행자들이 꼭 공항으로 달려간단다. 사실 각막은 사후 6시간 안에만 채취하면 사용할 수 있다. 각막 이식으로 한쪽 눈만 볼 수 있어도 모두가 감동의 눈물바다를 이루는데, 그렇게 따지면 한 사람의 결단은 두 사람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랑이다. 그것도 살아서는 내가 실컷 쓰다가 이제 죽어서 더 이상 쓸모없게 되었을 때인데도 그렇다.
우리 교인들은 40명 정도가 신청서를 작성했다. 사후 각막 기증, 뇌사 후 장기 기증, 또는 사후 시신 기증까지 자기 결단에 따라 주님 사랑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몸의 질병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분들을 빼고는 교인들 대부분 참여한 것 같다. 이것은 한 번의 이벤트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널리 알려 지속적으로 펼쳐가야 할 운동일 것이다. 이젠 소중한 결단이 실제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당사자가 신청을 해도 유족들이 빨리 연락을 하지 않거나 반대하면 실현할 수 없다. 모두 각자의 결단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가족들을 충분히 납득시켜야 할 것이다.
며칠 후, 지속적인 운동을 위해 신청서 100부와 함께 초록색 등록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된 등록증을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리는 내 손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촉촉하다. 생명은 나눌수록 풍성해지는 것을 작게나마 체험하여 감사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