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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器世間의 自在
或於東方入正定하야 而於西方從定出하고
或於西方入正定하야 而於東方從定出하며
或於餘方入正定하야 而於餘方從定出하니
如是入出徧十方이 是名菩薩三昧力이니라
(167) 或於東方入正定하야
혹(或)은 동방(東方)에서 바른 선정, 정정(正定)입니다. 바른 선정에 들어서
而於西方從定出하고
혹은 서방(西方)에서 종정출(從定出) 선정으로부터 나오고
그렇죠. 우리가 동방에 한 곳에 딱 집착해있으면 그 아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죠.
或於西方入正定하야 而於東方從定出하며
혹(或)은 서방(西方)에서 바른 선정에 들어서 동방(東方)에서 또 선정에서 나오고
그렇다고 또 나오면 돌아다닐건 아니고 적당히 인연 따라서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인연 따라서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이렇게 작용하고 이렇게 오고 가야 되지. 쓸데없이 돌아다녀도 그렇고 그렇습니다. 너무 지나치게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죠.
(168) 或於餘方入正定하야 而於餘方從定出하니
혹(或)은 다른 지방에서 바른 선정에 들어가서 다른 지방에서 선정으로부터 나오니
如是入出徧十方이
이와 같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시방(十方)에 두루한 것이
是名菩薩三昧力이니라
이것이 보살(菩薩)의 삼매(三昧)의 힘이더라.
제대로 된 보살은 이렇게 산다구요. 이렇게. 이게 참 잘 음미해 보면은, 잘 음미해 보면은 정말 균형을 잘 잡아주는 말입니다. 삶을 아주 균형을 잘 잡아주는 말이여. 균형을 잘 잡아가지고 어디 치우치지 않게 하는 그런 말입니다.
진정한 보살은 이렇게 산다는 거여. 이제 밑에도 또 그런 식입니다.
다. 智正覺世間의 自在
盡於東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數量이어든
悉現其前普親近하야 住於三昧寂不動하고
而於西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皆現從於三昧力하야 廣修無量諸供養하며
盡於西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量數이어든
悉現其前普親近하야 住於三昧寂不動하고
而於東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皆現從於三昧起하야 廣修無量諸供養하니
如是十方諸世界에 菩薩悉入無有餘하야
或現三昧寂不動하고 或現恭敬供養佛이니라
智正覺世間의 自在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은 지혜 지(智)자, 바른 깨달음이니까 성인의 세계 뭐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169) 盡於東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數量이어든
모든 동방(東方)의, 동방의 모든 국토(國土)의, 동쪽으로 동쪽으로 해도 여래(如來)가 무수량(無數量)이야.
悉現其前普親近하야
다 그 앞에 나타나서 전부다 친견해.
住於三昧寂不動하고
삼매(三昧)에 머물러서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하고
(170) 而於西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서방(西方)의 모든 세계(世界)의 일체제불여래소(一切諸佛如來所)에
皆現從於三昧力하야
다 삼매(三昧)의 힘으로 쫓아서, 나타내는 삼매의 힘으로 쫓아서
廣修無量諸供養하며
한량없는 모든 공양(供養)을 널리 닦으며
이게 가는 곳마다 처처(處處)에 배려하고 처처에 베풀고 처처에 섬기고 나누고 하는 그런 것이 공양이죠. 광수무량제공양(廣修無量諸供養) 가는 곳마다 배려해 주고 남을 먼저 생각해 주고, 남을 먼저 생각하고 무량제공양(無量諸供養)을 광수(廣修)해.
(171) 盡於西方諸國土의 所有如來無量數이어든
시방모든 국토(國土)에, 저기는 이제 동방에서 그랬고 또 서방(西方) 제세계(諸世界) 여래소(如來所)에서 공양을 올리고, 또 여기는 서방 모든 국토에서 여래가 또 무수량(無數量)이라.
悉現其前普親近하야
서방에서 있는 한량없는 부처님, 여래를 널리 그 앞에서 친근(親近)해서
住於三昧寂不動하고
삼매(三昧)에 머물러서 고요히 움직이지 아니하고
(172) 而於東方諸世界의 一切諸佛如來所에
동방(東方) 모든 세계(世界) 일체제불여래소(一切諸佛如來所)에서
皆現從於三昧起하야 廣修無量諸供養하니
다 삼매(三昧)로부터 일어남을 나타내서, 모두 뜻이 같습니다. 한량없는 모든 공양(供養)들을 널리 닦으니
(173) 如是十方諸世界에 菩薩悉入無有餘하야
이와 같은 시방(十方) 모든 세계(世界)에서 보살(菩薩)이 다 들어가서 남김없이 다 들어가서
或現三昧寂不動하고
혹(或)은 삼매(三昧)를 나타내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或現恭敬供養佛이니라
혹(或)은 부처님께 공경(恭敬)하고 공양(供養)하나니라.
라. 根境의 自在
於眼根中入正定하고 於色塵中從定出하야
示現色性不思議하니 一切天人莫能知니라
於色塵中入正定하고 於眼起定心不亂하야
說眼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於耳根中入正定하고 於聲塵中從定出하야
分別一切語言音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於聲塵中入正定하고 於耳起定心不亂하야
說耳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於鼻根中入正定하고 於香塵中從定出하야
普得一切上妙香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於香塵中入正定하고 於鼻起定心不亂하야
說鼻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於舌根中入正定하고 於味塵中從定出하야
普得一切諸上味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於味塵中入正定하고 於舌起定心不亂하야
說舌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於身根中入正定하고 於觸塵中從定出하야
善能分別一切觸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於觸塵中入正定하고 於身起定心不亂하야
說身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於意根中入正定하고 於法塵中從定出하야
分別一切諸法相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於法塵中入正定하고 從意起定心不亂하야
說意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根境의 自在
그다음에 또 근경(根境)의 자재(自在)라. 이건 이제 중생세간의 자재다 자유자재함. 그 삼매에 든다. 깨어있는 초롱초롱하게 성성적적하게 깨어있는 상태 그렇게 되면은 삶이 전부 자유자재하다.
(174) 於眼根中入正定하고
안근(眼根) 눈, 눈이죠. 눈에, 눈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於色塵中從定出하야
색진(色塵) 눈이 보는 대상은 뭐죠? 물질입니다. 그게 색진(色塵)이에요. 모든 물질, 그게 색진인데, 거기서 선정으로부터 나온다. 눈으로 들어서, 눈의 경계에서 선정에서 나와서
示現色性不思議하니
물질의 성품이 불가사의함을 나타내보이니
그렇죠. 물질 다 거쳐 왔으니까. 눈을 통해서 눈의 대상이 물질의 세계를 거쳐 왔으니까. 색성(色性)이 불가사의함을 나타내 보이니
一切天人莫能知이니라
일체(一切) 천신이나 사람들은 능(能)히 알지 못한다. 보살의 경지가 돼야 이 알 수 있다 이런 뜻이죠.
(175) 於色塵中入正定하고
색진(色塵) 가운데 물질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於眼起定心不亂하야
눈으로부터, 이건 이제 반대야. 앞에서는 눈으로 들어가서 색으로부터 나오고, 여기는 색으로부터 들어가서 눈으로부터 나오는 거죠. 눈에서부터 선정이 일어나서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며
說眼無生無有起라
눈은 생(生)도 없고 일어남도, 그렇게 하지마는 눈에는 생도 없고 일어남도 없음이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성품이 공(空)하고 적멸(寂滅)해서 짓는 바가 없음을 설(說)하나니라. 설(說)자, 저 앞에 있는 설자. 성품은 공적해서 적멸하야, 공하고 적멸하야 무소작(無所作)이니라. 짓는 바가 없느니라.
(176) 於耳根中入正定하고
그다음에 이근중(耳根中)에 바른 선정에 들고
於聲塵中從定出하야
성진(聲塵) 소리죠. 소리 가운데서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分別一切語言音하니
일체(一切) 말소리를 다 분별(分別)해. 분별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모든 천신과 세상 사람들이 능(能)히 알지 못한다. 보살의 세계다 이런 말입니다. 보살의 세계.
우리가 늘 이제 깨달았다 생각하고 『화엄경』 보자. 깨어있는 마음 늘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것을 조금 우리가 가졌다라고 생각을 하면은 이게 영 거리가 먼 것도 아니에요.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 『화엄경』을 공부했으니까. 천신 보다도 세상 사람들보다도 훨씬 차원이 높으니까. 『화엄경』공부하면 뭐라고? 십지보살이다 그랬어요. 십지보살이다 그랬으니까 늘 조금 깨어있다고 생각하고, 아직 그 이 세상이 그렇게 황금 덩어리로는 안 보이지마는 그래도 세상은 참 좋다. 난 이대로 참 뭐 보잘것없지만 이대로 참 좋다. 산다는 일이 너무 좋다. 이쯤만 되도요 이게 이해됩니다. 그쯤만 돼도
근데 불만이 꽉 차 있고, 불평불만이 꽉 차 있고 뭣이 일일이 걸리고 일일이 잔소리할 건 TV 보다가 막 화 내고 잔소리하고 막 그냥 신문에 난 기사보고 화 내고 잔소리하고 그걸 또 딴 데 옮겨가지고 그 얘기 또 하면서 잔소리하고 화 내고 지는 거기 100분의 1도 못 따라가면서, 100분의 1도 못 따라가면서 하 뭐라고 뭐라고 그냥 욕을 해대고 잔소리하고, 그런 사람들이 이거 이해 못 해요.
그게 이제 세상 사람이고 천신이라. 그런 이들은 능히 알지 못한다 그랬어요.
(177) 於聲塵中入正定하고
성진(聲塵) 소리에서 바른 선정에 들고
於耳起定心不亂하야
또 귀에서 선정으로부터 일어나도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해.
說耳無生無有起라
그래서 귀는 생(生)도 없고 기멸(起滅)도 없음이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성품이 공적(空寂)해서 적멸하고 지은 바가 없음을 설(說)하나니라.
안이비설신의가 다 공적하다 말이야.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만이 아니고 그 차원하고는 아주 천양지차로, 안이비설신의가 자유자재하게 작용하는 것 그런 뜻입니다.
(178) 於鼻根中入正定하고
비근중(鼻根中)에서 바른 선정에 들고
於香塵中從定出하야
향진(香塵)은 이제 코의 상대죠. 향진 중에서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普得一切上妙香하니
널리 일체(一切) 가장 좋고 높은 향기를 얻으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이것은 모든 천신과 세상 사람들이 능(能)히 알지 못하나니라.
(179) 於香塵中入正定하고 於鼻起定心不亂하야
어향진중(於香塵中)에서 바른 선정에 들고 코에서 선정으로부터 일어나도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하야
說鼻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생(生)도 없고 일어남도 없음이라. 성품이 공(空)하야 적멸(寂滅)함을, 적멸해서 지은 바가 없음을 설(說)하나니라.
(180) 於舌根中入正定하고
그다음에 똑같습니다. 안이비설신의가 똑같아요. 설근(舌根)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於味塵中從定出하야
또 미(味) 맛 가운데서 바른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普得一切諸上味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널리 일체(一切) 상미(上味) 모든 맛을 얻으니 천신과 세상 사람들은 능(能)히 알지 못하나니라.
(181) 於味塵中入正定하고 於舌起定心不亂하야
맛 속에서 바른 선정에 들고 혀에서 선정으로 일어나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해.
그에 이제 주와 객이 원융무애(圓融無礙)한 거예요. 주관과 객관 그러니까 육근은 주관이고 육진, 육경은 객관이잖아요. 대상이잖아.
거울이 어떤 사물을 비치지 않는 거울이 있어요? 비치는 일과 거울은 하나야. 거울 한 번 가봐요. 아무리 옆에서 거울을 보고 내는 거울에 안 비칠 거다 하고 옆으로 가서 거울을 함 봐봐요. 거울에 비치지 않는 게 있는가? 무엇인가 비치고 있어. 거울은.
우리도 그래요. 우리 육근도, 안이비설신의도 똑같습니다. 항상 상대를 하고 있어요. 상대를 하고 있어.
생맹(生盲)은 아무것도 못 보는 거 같지? 캄캄한 걸 보고 있어. 캄캄한 걸 항상 대상이 있어요. 그게 하나야 사실은. 하나기 때문에 그 원융무애한 그런 그 경계를 여기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다음에 설근 중에서 선정에 들고 맛 가운데서 선정으로부터 나오고 널리 일체 상미의 맛을 얻어서 얻으니 모든 천인과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맛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혀로부터 선정으로부터 선정에서 일어나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해
說舌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설(舌)은 무생(無生)이면서 또한 일어남도 없음이라. 설(舌)의 성품이 공(空)하고 적멸(寂滅)해서 지은 바가 없음을 설(說)하나니라.
(182) 於身根中入正定하고 於觸塵中從定出하야
그다음에 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입니다. 그리고 촉진(觸塵) 촉감 가운데서 바른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善能分別一切觸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잘 능(能)히 일체촉(一切觸)을, 촉감을 분별(分別)하니 천신과 세상 사람들은 능(能)히 알지 못한다.
(183) 於觸塵中入正定하고 於身起定心不亂하야
촉진(觸塵)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또 몸으로부터 선정에서 일어나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해.
說身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그래서 몸은 무생(無生)이며 무유기(無有起)라. 그래 성품이 공(空)하고 적멸(寂滅)해서 짓는 바가 없음을 설(說)하나니라.
(184) 於意根中入正定하고 於法塵中從定出하야
의근(意根) 안이비설신의 의근 여섯 번째 의근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법진(法塵) 의근의 대상은 법(法)이니까 법진 가운데서 선정으로부터 나와서
分別一切諸法相하니 諸天世人莫能知니라
일체(一切) 모든 법상(法相)을 분별(分別)하니 천신과 세상 사람들은 능(能)히 알지 못한다. 보살의 경계다 이런 말이죠. 알지 못함이니라.
(185) 於法塵中入正定하고 從意起定心不亂하야
법진(法塵) 가운데서 바른 선정에 들고 뜻으로부터 선정에서 나와서 마음이 산란하지 아니함이라.
說意無生無有起라 性空寂滅無所作이니라
또 의식도 무생(無生)이며 무유기(無有起)라 일어남이 없음이라. 의식의 성품은 공(空)해 그리고 적멸(寂滅)해. 일어남이 그 짓는 바가 없어. 그것을 설(說)한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 이제 육근의 삼매의 작용. 깨어있는 입장에서 보면은 아까 거울 비유를 들었는데, 거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도 전부 이렇게 원융무애하게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뭐라고 할까? 요즘 뭐 4차 산업혁명 이야기할 때 으레히 그 물질 인터넷, 사물 인터넷 이야기를 하지요. 사물 하고 사물하고 저기끼리 연결 다하고 있어. 요즘은 또 로보트가 로보트를 생산해. 사람이 작용안해도 로보트가 로보트를 생산해. 그래가지고 군사를 많이 만들어가지고 그런 영화 봤죠? 그거 금방 현실화됩니다. 내일모레면 돼요. 그게. 실지로. 그거 금방 와있어요. 그거 벌써 오래된 영화입니다. 그게.
이 『화엄경』에서는요 2600년 전에 부처님의 깨달음 속에 이런 이치를 이미 다 밝혀놨어. 그게 사사무애(事事無礙)여. 사물 인터넷은 사사무애여. 그리고 인터넷이 3차 산업혁명 아닙니까? 그건 뭐요? 이사무애(理事無礙)야. 이(理)와 사(事)가, 공(空)과 유(有)가 무애라.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요건 이제 3차 산업혁명 인터넷 혁명이라.
그다음에 물질과 물질이 저희 마음대로 알아서 하는 것은 이게 4차 산업혁명인데, 전부 그 이야기뿐입니다. 요즘 세상은요. 전부 한 3, 4년 전부터 전부 그 이야기야.
그 이제 내가 그걸 공부하면서, 4차 산업혁명을 공부하면서 이 『화엄경』하고 연관시켜서 생각해 보니 너무 『화엄경』이치야. 기가 막힌 『화엄경』이치라고. 가상과 현실 항상 이야기하잖아. 가상과 현실. 가상과 현실이 왔다 갔다 하잖아. 인터넷에서 가장세계 가지고 뭐 그 속에서 거의 거기서 살잖아.
여러분들 핸드폰 가지고 하루종일 지내죠. 사람이 핸드폰 가지고 하루종일 지낸다. 이와 사가 무애야. 이사무애라 그래. 그걸 가지고. 공과, 공의 세계와 현실세계가 자유자재로 왕래하는 거죠.
요건 이제 다음 시간에 좀 더 이야기 이제 하겠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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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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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如是入出徧十方이 是名菩薩三昧力이니라
이와 같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十方에 두루한 것이 이것이 菩薩의 三昧의 힘이더라.
원융무애한 보살의 삶.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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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
_()()()_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