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서: 레위 19:1-2, 15-18
시편 1
2독서: 1데살 2:1-8
복음: 마태 22:34-46
너희는 그리스도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오늘의 복음 본문은 그동안 몇 주일에 걸쳐 우리가 들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로 대표되는 사회의 기득권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마무리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사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님의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에 대항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는 적대자들의 날 선 질문들에 예수님이 지혜롭게 대답하실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을 마치 추임새처럼 의도적으로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일 본문이었던 카이사르에게 바치는 세금 문제를 제기했을 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라."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한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겁니다. 마태오복음 22장 22절입니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경탄하면서 예수를 떠나갔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바로 앞부분에서도 부활에 대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공격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라고 응답하시자 이에 놀라는 군중들의 반응을 33절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이 말씀을 들은 군중은 예수의 가르침에 탄복하여 마지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말씀 후에는 그 클라이맥스로 사람들의 반응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 46절입니다.
"그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모든 사람의 입을 막아버리는 예수님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가르침. 이 가르침을 위해 마태오복음사가는 이제까지 점층법적인 문학 구성 기법을 사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온 것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 사두가이파 사람, 율법교사 등등 모든 기라성 같은 적대자들과 논쟁을 벌이시면서 마치 결정타처럼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하신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중원의 결투처럼 모든 것을 평정하신 마지막 결정타는 무엇?)
오늘의 말씀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부분은 각각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먼저 첫 질문은 계명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은 무엇인가입니다. 그 당시 율법 준수에 철저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십계명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계명들을 지켰는데, 그 계명의 수가 자그마치 613개나 되었습니다. 지켜야 할 계명이 너무 많으면 지엽적인 문제에 가려 그 본질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마치 테스트하듯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많은 계명을 딱 두 가지로 요약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하느님사랑에서 중요한 요소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예배와 찬양과 기도, 그리고 봉사를 포함한 모든 행위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겉모양이 아니라 속마음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나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형식적인 사랑, 마음이 담기지 않은 행위는 하느님이 기뻐하시지도 않고 또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시간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과연 여러분의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이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우리 성공회 전례는 매 주일 똑같은 기도문을 반복합니다. 그런데 그 기도문에 마음을 싣지 못하고 그저 입으로만 반복하게 되면 그 기도는 전혀 하느님께 바쳐지지 못하고, 그저 땅에 떨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난번 전례교육을 통해 다뤘듯이 매 주일 감사성찬례를 시작할 때 드리는 개회기도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과 소원을 다 아시며, 은밀한 것이라도 모르시는 바 없사오니, 성령의 감화하심으로 우리 마음의 온갖 생각을 정결케 하시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공경하여 찬송케 하소서."
이 기도문은 하느님께 예배를 봉헌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정심기도'입니다. 그런데 사제가 이 기도문을 바칠 때, 여러분이 이 기도문에 집중하여 마음을 담지 못하면, 이 기도문은 그저 공염불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전혀 정결하게 되지 못하고, 그 이후에 드려지는 모든 예배는 그저 형식적이고 습관적인 행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예배를 통해 여러분이 하느님으로부터 무언가를 응답받기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를 드리고 또 기도를 드려도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하고,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온 마음으로 온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은 하느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할 때 주님과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할 때도 주님은 '나의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이웃사랑에도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우리는 이웃과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나와 분리된 이웃을 마치 내 몸처럼 사랑할 때 우리는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정한 마음이 담긴 사랑을 통해 우리는 위로는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그리스도를 통해 발견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말씀 후반부에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신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앞부분의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질문은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드렸던 질문이고, 뒷부분의 그리스도에 관한 질문은 예수님이 바리사이파사람들에게 던진 것입니다. 주님은 이 질문을 통해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모든 논쟁과 모든 역사의 마지막 결론임을 알려주십니다.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 당시 하느님을 열심히 섬긴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던지신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신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 즉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 가운데 나타날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 특히 로마인들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리스도상의 원형은 구약의 모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처럼 자신들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구출해 내어 하느님의 땅으로 인도해줄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메시아는 분명히 다윗의 자손 가운데 나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런 생각은 지극히 이스라엘이란 민족의 테두리 안에서 혈육을 중심으로 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에서 주님은 전혀 다른 그리스도를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그리스도는 인간의 혈육이나 민족적인 테두리를 초월한 더 근원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윗왕도 성령의 감화를 통해 그리스도라는 존재의 비밀을 느꼈다는 것을 시편을 인용하시면서 언급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그리스도로 오신 자신의 비밀을 더 이상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단지 그리스도는 당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는 그 이상의 존재임을 암시적으로만 말씀하실 뿐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에페소서에서 그리스도라는 존재가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 세워놓으신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열쇠라고 이해합니다. 그 계획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을 하나로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에페소서 1장 9절과 10절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께서 이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선택하셔서 교회공동체로 부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에페소서 1장에 계속되는 말씀들입니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11절)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에페 1:22-23)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끔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존재 안에 숨겨진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미하는 역사상에 한 번 있었던 인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매번 감사성찬례 때마다 행하는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를 임하기 전에 이런 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의 빵과 구원의 잔을 받는 모든 이에게 성령을 내리시어 하늘의 축복을 나누게 하시고, 자신의 몸과 영혼을 하느님께 드리어 합당한 산 제물이 되며,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하소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기 위한 우리의 염원은 성찬의 예식 가운데 몇 번이나 반복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한 빵을 나누며 한 몸을 이룹니다."
그리고 영성체 후 기도 때도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주께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보혈을 신령한 양식으로 우리에게 먹이심으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되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매번 드리는 감사성찬례는 우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예배를 통해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는 이 시간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는 모든 교우들, 이웃들과 함께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면서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언젠가는 그리스도로서 우뚝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사도 바울로는 다시 에페소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페소서 2장 6절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리셔서 하늘에서도 한자리에 앉게 하여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직접 삶으로 보여주신 하느님사랑과 이웃사랑을 통해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거듭날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이 나라, 그리고 이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이 이 순간 우리의 예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총이 우리 모두에게 이루어지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