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향 수필 2022_11 경향잡지 p112-116
지옥은 매운 고추 먹는 곳
글_허연 바오로 시인이자 매일경제신문 문화선임기자로 일한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현대문학상, 시작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등을 받았다.
이제 여섯 살 된 늦둥이 딸아이 스텔라가 요즘 부쩍 천국과 지옥에 관심이 많다. 책에서도 접하고, 성당에서 어린이 주일학교 교리 시간에도 들었을 것이다. 사실 나와 아내도 종종 그런 표현을 쓴다.
“스텔라! 아빠가 엄마한테 짜증 내지 말라고 했지. 그러면 착한 아이가 아니야. 나중에 지옥에 안 가고 천국 가려면 엄마에게 친절해야 해.” 며칠 전 피아노 학원에 간 스텔라를 데리러 갔다.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스텔라가 천국과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또 꺼냈다. “아빠! 말썽 부리고 엄마 아빠 말 안 들으면 지옥에 가는 거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땅한 답변이 생각나지 않아서 성의 없이 답했다. “응, 그렇지....”
#스텔라와 지옥 : 스텔라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아빠! 지옥은 얼마나 무서워?” “음,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무서울 거야.” “지옥에서는 뭘 하는데?” “불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하고, 얼음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무거운 돌에 깔리기도 하고 그럴 거야.” “정말이야? 어휴, 끔찍해.” “그렇지! 그러니까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야 해.” 나는 대화가 여기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의 상상력은 한발 더 나아가고 있었다. "아빠, 작은 바람이 있는데, 하느님께 말씀드려서 지옥을 조금 덜 무섭게 할 수는 없을까? 그냥 매운 고추 먹었을 때 정도로만 힘들게 하면 안 될까?"
나는 스텔라 손을 잡고 길을 가다가 멈춰서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발칙하고 귀엽던지! 말썽 안 부리고 살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지옥은 너무 무서운 상황에서 떠올린 상상이 정말 귀엽고 깜찍했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어릴 때 스텔라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우리는 아이를 가르칠 때 흔히 '공포심'을 조장해서 교육 효과를 높이려고 시도한다. 그러한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가장 공포스러운 상황을 설명해 놓고 아이를 겁주기 일쑤다.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학습이 더딘 아이였다고 한다. 세 살 때까지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다섯 살이 되었을 때는 주의가 너무 산만해서 무엇인가를 가르치기가 너무 어려웠다고 한다. 학교에 입학해서는 거의 꼴찌를 하는 열등생이었다. 엉뚱한데다가 말썽을 하도 많이 부려서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아인슈타인을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통 부모 같으면 이런 아이에게 어떤 언행을 했을지 생각해 보자. "너 이렇게 하다가는 학교 못 다녀, 나중에 밥 굶는 사람 되려고 하니?" 등등 온갖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아이를 겁주고 자극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어머니는 달랐다. 성적이나 행동을 가지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장점을 찾아서 칭찬했다. 성적은 최악이지만 호기심이 많았던 아인슈타인에게 어머니는 늘 성실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답변이 모자라다 싶을 때에는 따로 확인해서 쪽지에 적어 아이 방에 붙여 놓았다. 그러고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너는 세상의 다른 아이들에게는 없는 큰 장점을 가졌단다. 세상은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기다릴 거야. 그 길을 찾으면 된단다. 너는 틀림없이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렴,"
#부모의 역할 : ‘행복은 부모가 만들어 줄 수 없지만, 불행은 부모가 만들어 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세상 사는 일은 늘 위험하고 변수가 많다. 부모가 아무리 행복의 길로 인도하려고 해도 뜻대로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아이가 불행한 기억을 갖지 않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아이가 역경을 딛고 행복한 지도를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은 모든 일에 서툴다. 그런 아이에게 ‘지옥’ 운운하면서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했으니 나는 참 한심한 아빠다. 어린아이는 성인의 뇌와 다른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는 다 성장할 때까지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인간은 더더군다나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서 발달이 늦다고 한다. 이처럼 전적으로 누군가에게 기대어 성장하는 인간에게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에게 집착할 수밖에 없고, 부모에게 갖는 집착은 아이 발달에 가장 중요한 감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돌봄'이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부모는 자식을 돌보아야 하는 존재다. 자식을 혼내거나 겁주는 존재가 아니라 보듬고 안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더 반성하자면, 아이에게 지옥 운운하면서 뭔가를 훈육하려고 하는 경우에 그 안에는 나의 욕망이 상당 부분 감추어져 있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이를 만들고자 무리한 방법을 쓴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다시 말해 줘야겠다. “무엇을 하든 지옥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천국만 생각하라.”고. 스텔라와 나누었던 지옥 이야기를 소재로 동시를 한 편 썼다. 글은 내가 썼지만 따지고 보면 여섯 살 스텔라가 쓴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년 초 발간 예정인 동시집에 이 시를 수록할 생각이다. 책이 나오면 초등학생이 되었을 스텔라와 깔깔대며 이 시를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지옥은 매운 고추 먹는 곳 : 친구들하고 다투고 선생님 말씀 안 들으면 지옥에 간대요. 지옥에 가면 불구덩이에 내던져지거나 무거운 돌에 깔리거나 얼음 감옥에 갇힌대요. 지옥에는 친구도 없고 맛있는 것도 없고 인형도 장난감도 없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못 믿겠어요 너무 무섭고 끔찍해요. 그런 데는 없을 것 같아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옥에 가면 매운 고추를 잔뜩 먹이는 만큼만 벌을 주지 않을까요.
*내가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 (아침공감편지 221231)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 당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다.
애플에서 나오면서 성공에 대한 중압감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그 시기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인 시간이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경험은 매우 쓴 약이었지만 어떤 면에서 환자였던 내게는 정말로 필요한 약이었다. -스티브 잡스
인생은 평화와 행복만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 고통과 노력이 필요하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참고 인내하면서 노력해 가는 것이 인생이다.
희망은 언제나 고통의 언덕 너머에서 기다린다. -맨스필드 엑셀런스 회장
진주는 조개의 상처 때문에 생긴다. 조개 안에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조개는 그것을 감싸기 위해 체액을 분비하는데,
그 체액이 쌓여 단단한 껍질을 이루어 진주가 된다.
진주는 상처의 고통을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결과다. -정호승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