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과 약병 사이
솔향 남상선/수필가
오래된 희귀한 물품을 골동품이라 한다. 물품만이 아니라 지나간 옛 일 중 희귀성이 있다는 골동품 추억도 있다. 예서제서 피어나는 꽃을 보니 고교 시절의 하숙방 책상 위의 꽃병이 생각났다. 그 때 주인집 아주머니는 남매를 둔 미망인이었다. 주인의 아들은 네 살 위의 형뻘 되는 건장힌 남자였고 딸은 아리따운 19살 처녀였다. 그때 쌀 4 말을 주고 하는 하숙이었으니 말로만 하숙이지 이득을 챙기려고 하숙을 친 것은 아니었으리라. 나와 친구 둘이 하숙생 전부였다. 인복이 있었던지 가슴이 따뜻한 분들이어서 한 가족처럼 지냈다.
내가 학교에서 귀가해 보면 책상 위의 꽃병엔 아름다운 꽃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철 따라 피는 형형색색의 꽃이 바뀌어 가며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다. 누구의 정성이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게다기 친구와 내가 집에 없을 때면 방이며 책상은 쓸고 닦이어 먼지 하나 없었고 무질서하게 널려 있던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땀방울의 주인공이 고맙고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든 게 주인집 아가씨의 손길로 이뤄진 것들이었다.
흔히들 ‘인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행불행을 저울질 해 볼 수 있는 요체는 그것이 아니다. 꽃병을 함께 했던 삶이 완숙기에 이르기까지가 어떠했느냐에 따라 행복의 여부를 판별해 준다 하겠다.
‘ 꽃병과 약병 사이! ’
이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 하겠다. 나도 역시‘꽃병과 약병 사이’에서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으면서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가며 살았다. 삶의 애증(愛憎) 속에서 의지의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고해의 한파에 시달려 절망도 비관도 하면서 때로는 제자들, 지인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살았다. 결혼해서 아들딸을 낳았을 때는 아비로서의 존재감과 기쁨으로 웃음을 감추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또 아들의 서울대 합격 소식을 듣고 아내하고 밥 먹다 같이 울면서 기뻐하며 좋아했었다. 잘했다고 상을 받고 표창을 받았을 때에도 좋아하고 기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인생살이 대부분이 나와 가족을 위한 삶 속에 기뻐하고 즐거워 한 것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내 가슴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돼 주기도 했다. 본 채 만 체 했더라면 궁지에서 허덕이고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손을 내밀어 가슴의 체온을 함께하는 시간이 있었기에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사는 걸 보았다. 희열과 행복감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그런 것이 진정한 삶의 보람이요 가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는 말씀에서 ‘복’은 바로 베푸는 자의 즐거움이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꽃병보다는 오히려 약병을 가까이 하는 삶이 되었다. 인생 소풍 길에서 많은 걸 깨달으며 살고 있다.
술 마실 때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친구는 많아도 위급할 때 도와주는 친구는 없다는 게 세상인심이 아닌가! 어렵고 힘들어 할 때 따뜻한 차 한 잔 나누며 우정과 마음을 담아 주는 사람이 진장한 친구다. 버거운 삶의 무게에 지쳐 있을 때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하는 이가 참 친구다.
인생의 동반자로 가장 큰 선물은 상대방에게 가슴 따뜻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인생은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어니고, 그렇다고 슬픔과 고통의 연속도 아니다. 비 내리고 바람 부는 날씨도 있지만 화창한 날씨에 꽃피는 봄날도 있는 것이다. 인생은 기쁨만도 슬픔만도 아닌 희비의 쌍곡선이라 했다 눈보라 맹추위에 떨고 있는 날도 있지만 해맑은 태양의 햇살 아래 기지개켜는 날도 있으리라. 솔로몬의 명언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했으니 한 때의 부귀영화도 고난의 시절도 또한 지나가리라.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사람도 세월의 흐름에 나이가 들어가고 결국은 약병을 줄 세웠다가 끝내는 낙엽 지듯 스러지고 마는 존재이다. 애증의 마음도 아름다움도 낙엽 지듯 사라지고 만다. 천하를 주름잡던 진시황도 나폴레옹도 왔다간 이름만 남기고 갔을 뿐 세월 속에 묻히고 말았다. 인생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 했으니 남의 얘기로만 돌려서는 아니 되겠다.
‘ 꽃병과 약병 사이! ’
아웅다웅 지지고 볶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낙엽처럼 되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 하겠다.
인생 칠팔십 줄이면 무엇인들 성하리? 기계라도 60년이 넘게 썼으면 부러지고 고장이 날 텐데 사람인들 온전하겠는가!
잠시 소풍 왔다 가는 인생 사랑하며 사는 인연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나폴레옹은 죽을 때에 남긴 말이 ‘내 생애에서 행복한 날은 6일밖에 없었다.’라 했다,
그런가 하면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던 헬렌 켈러는‘생애에서 행복하지 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헬렌 켈러는 평생을 감사하며 살았기에 불행을 느낄 찰나도 없었던 것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에,
“행복은 감사하는 사람의 것이다,”
라 했으니 감사하며 사는 생활이 행복의 척도라 하겠다.
‘ 꽃병과 약병 사이! ’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실고 있는가?
첫댓글 수많은 약병 사이를 오간다 해도
인생의 순리로 받아 들여야
겠지요.
사라져 가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인생은 결국 아름답게 사라지기 위한 과정인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아름답게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