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방구 부채요, 또 하나는 접부채이다.
방구 부채란 부채살에 깁[紗]이나 비단 또는 종이를 붙여 만든 둥근 형의 부채로, 일명 둥근 부채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단선(團扇) 또는 원선(圓扇)이라고 한다.
방구 부채에는 오엽선(梧葉扇)·연엽선(蓮葉扇)·파초선(芭蕉扇)·태극선(太極扇)·아선(兒扇)·오색선(五色扇)·까치선·진주선(眞珠扇)·공작선(孔雀扇)·청선(靑扇)·홍선(紅扇)·백우선(白羽扇)·팔덕선(八德扇)·세미선(細尾扇)·미선(尾扇)·송선(松扇)·대원선(大圓扇) 등이 있다.
접부채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부채살에 종이를 붙여 만든 것이다. 접는 부채라고도 하는데, 한자로는 접선(摺扇) 또는 접첩선(摺疊扇)이라고 한다.
접부채에는 백선(白扇, 白貼扇)·칠선(漆扇)·유선(油扇)·복선(服扇)·승두선(僧頭扇)·어두선(魚頭扇)·사두선(蛇頭扇)·반죽선(班竹扇)·외각선(外角扇)·내각선(內角扇)·삼대선(三臺扇)·이대선(二臺扇)·단목선(丹木扇)·채각선(彩角扇)·곡두선(曲頭扇)·소각선(素角扇)·광변선(廣邊扇)·협변선(狹邊扇)·유환선(有環扇)·무환선(無環扇) 등이 있다.
또 합죽선(合竹扇)·단절선(短節扇)·화선(花扇)·윤선(輪扇)·오골선(吳骨扇)·표정선(杓庭扇)·무선(舞扇)·무당부채 등도 있다. 이와 같은 부채의 종류와 명칭은 방구 부채의 경우에는 부채살의 모양과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명칭이 붙은 것이고, 접부채의 경우에는 부채살의 수와 부채꼭지의 모양과 부속품 및 부채 바탕의 꾸밈에 따라 명칭이 붙여진 것이다.
접부채 중에는 부채살이 50살·40살·30살 되는 것이 있다. 무당부채 가운데에는 선면에 해와 달을 그린 일월선(日月扇)이 있고, 세 부처를 그린 삼불선(三佛扇)이 있으며, 네 선녀를 그린 사선(四仙)부채, 여덟 선녀를 그린 팔선녀(八仙女)부채도 있다.
방구 부채와 접부채 외에 우리나라 부채에는 별선(別扇)이라는 특별한 부채가 있다. 즉, 보통 부채보다 특별히 잘 만든 부채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은 전혀 볼 수 없고 문헌상에만 나타나는데, 고려시대의 송선도 별선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부드러운 솔가지를 엮어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에 한동안 유행되었던 윤선 또한 일반 부채와는 그 형태가 다른 특이한 부채로서, 댓살의 폭이 넓고 큰 것으로서 자루가 달려 있어, 펼치면 마치 우산같이 동그랗게 도는 부채이다. 조선시대의 별선은 지방에 따라, 수요자의 요청에 따라, 또는 특출한 창의력을 가진 선장(扇匠)에 따라 간혹 나오기는 하였다.
그러나 극히 소량인 데다가 일시적이었을 뿐, 계속 이어지지를 못하여 희귀한 물건이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접부채에는 50살의 부채와 같은 것은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그러한 부채도 귀한 것으로서 별선이라 하였다. 즉,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접선의 풀이에는 부채살이 많음으로써 귀한 것으로 친다 하고, 이것이 즉 ‘50살 별선’이라고 함을 보아 알 수 있다.
별선 중에서 문헌상에 그 명칭의 유래가 분명한 것 몇 가지를 들어보면, ① 오골선은 조선시대에 전라도 남원의 수령이었던 오재문(吳在文)이 만든 것이다. 부채살을 아래의 부골(附骨)에 붙여서 구부러뜨려 만든 것인데, 그 공작에 손을 많이 써야 하였다.
이 부채는 서울의 권세 있는 귀인들에게 단오 때 선물로 보내는 것으로서 선장들로부터 무상으로 징수하는 것이므로, 선장들은 모두 그를 원망하였다. 이를 ‘오골선’이라 한 것은 오(吳)가놈의 뼈라는 원망의 뜻으로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② 표정선은 조선 말기에 외척으로서 세도가 있던 민태호(閔台鎬)가 고안한 것이다. 이는 접부채로서 민씨의 호로써 부채의 이름을 삼았다. 모양은 종전의 부채보다 조금 작으나 우아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이 부채는 전해오지 않고, 그 이름마저 아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③ 옥선은 조선시대 전라도 옥과현(玉果縣)의 선장 김희옥(金喜玉)이 만든 부채이다. 이 부채는 참으로 묘하고 아름다웠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이 한 자루를 얻으면 소중하게 여기기를 구슬같이 하여 ‘옥선’이라 하였다. 이 이야기는 조선 고종 때의 영의정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에 기록되어 있다.
④ 팔덕선은 『임하필기』에 황해도의 재령·신천 등지에서 풀잎으로써 엮어 만든 둥근 부채이다. 주로 농부들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팔덕이란 바람 맑은 덕, 습기를 제거하는 덕, 깔고 자는 덕, 값이 싼 덕, 짜기 쉬운 덕, 비를 피하는 덕, 햇볕을 가리는 덕, 독을 덮는 덕의 여덟 가지 덕을 말한 것이다.
팔덕선은 부들부채라고 하여 부들[香蒲]의 줄기를 결여 만든 방구부채인데, 황해도지방뿐 아니라 경기도·충청도 등지에서는 지금도 농민들 사이에는 많이 만들어 쓴다. 요즈음은 팔덕에 대한 해설도 시대가 진전함에 따라 그 용도가 넓어졌음인지 내용이 많이 달라졌다.
즉, 하나는 바람을 일으키고, 둘은 햇볕을 가리기도 하고, 셋은 야외에서 깔고 앉기도 하고, 넷은 야외작업 때에 음식을 담아 이고, 다섯은 비가 올 때는 잠시 머리를 가리기도 하고, 여섯은 물건을 놓을 때 받침으로도 사용한다는 등등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사선(紗扇)·포선(布扇)·피선(皮扇) 등 부채 선자가 든 물명이 있으니, 글자만 보아서는 부채의 이름 같으나 실상은 부채가 아닌 기물의 명칭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조선 말기까지 주로 양반들의 낯가리개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사선은 옛날 양반 계급들이 길을 갈 때나 또는 말을 탈 때에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는 혼인 때 신랑이 신부집에 말을 타고 갈 때, 사선을 휴대하여 그것으로써 얼굴을 가리고 가는 풍습이 있어서 사선을 일명 ‘낭선(郎扇)’이 라고도 하는 것이다. 이 사선은 두 막대기 사이에 깁을 댄 것이다. 포선은 일명 ‘상선(喪扇)’이라고도 하고 ‘복선(服扇)’이라고도 한다.
양반들의 장례 때 상복을 입는 이가 휴대하여 사용하였고, 또 상중에 있는 이가 상복을 입고 외출할 때에도 휴대하여 사용하였다. 이는 상중에 있는 몸으로 근신하고 남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서이다.
포선은 두 막대기 사이에 삼베를 이은 것이다. 피선은 일명 ‘모선(毛扇)’·‘난선(暖扇)’·‘초선(貂扇)’이라고도 하여, 얼굴도 가리고 방한용으로도 사용하였다.
그 만듦새는 양쪽 막대기를 누런 담비털로 싸서 대나무 마디의 모양으로 만드는데, 두 막대기 사이를 검은 비단 한 폭으로 잇는다. 간혹 수달피로 막대기를 싸기도 한다. 그것으로 손을 따뜻하게 하고 얼굴을 보호한다. 봄·가을에는 비단 한 폭으로 먼지를 막게 하고, 노루가죽으로 기둥을 싸기도 한다.
‘선(扇)’자가 든 물명에는 이 밖에도 의장구(儀裝具)로서 사용되는 것도 있다. 용선(龍扇)·미선(尾扇)·봉선(鳳扇)·작선(雀扇)·수자선(壽字扇)·수화선(繡花扇)·황단용단선(黃單龍團扇)·치미선(雉尾扇)·공작선(孔雀扇)·청화방선(靑花方扇)·연화작선(蓮花雀扇)·청선(靑扇) 등이 그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