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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시에 깃든 전통 서정성
-문병란『장난감 없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허 소 미(시인, 평론가)
지난 오월, 광주 천변 '드맹 아트홀'에서 ‘범대순(范大錞) 시인의 1주기 추모식 겸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문병란 교수는 고인을 회고하며
“원탁시 동인을 같이 만들었으며, 범대순 시인은 이름자에 ‘대(大)’가 붙어있는 만큼 포부나 시의
역량이 컸다.”고 활달한 어조로 추모사를 하던 모습을 지켜보았었다.
그러던 분이 몇 달 사이에, 타계하여, 국립 5·18 민주묘역에 안장된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빈자리로 더욱 크게 느껴지는 분이다.
시인의 시집과 논고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한 생애를 뜨겁고도 대차게 살다간 분이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다. 문병란 시인 하면 분단의 극복을 ‘원한’의 정서로 표출하여 ‘하여야만 한다.’는 당위조동사로 노래한「직녀에게」와 박찬호선수가 힘들 때 위안을 받았다는「희망가」등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문병란을 허형만은 “온몸으로 시대를 끌어안은 큰 시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뉴욕타임즈》는 “화염병 대신 시를 던진 한국의 저항시인”이라고 평하였다.
또 김종 시인은 문병란 시인에게는 자신의 생애를 지켜온 세 개의 무기가 있었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하나는 문학에의 역정과「독일 국민에 고함」에 견줄 수 있는 피히테적 교단 인생, 그
리고 한 시대의 중심에서 온몸으로 밀고 갔던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 등이라고 말하였다.
문병란 시인의 호는 서은(瑞隱)으로, 1935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서 2015년 9월 25일에 작고한 문인이다.
1956년 조선대학교에 입학하였고, 1961년 조선대학교 문리대 문학과 졸업하였으며, 1963년에「가로수」,
「밤의 호흡」,「꽃밭」등으로 김현승의 추천을 받아《현대문학》에 등단하였다.
저서로『문병란 시집』,『땅의 연가』, 시선집『장난감 없는 아이들』외 33권의 시집과
『저 미치게 푸른 하늘』,『명시감상노트(영미편)』등 16권의 산문집이 있다.
조선대학교 인문대 국어국문학부(1988복직)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0년 8월 에 정년퇴임하였다.
1974년 이후 자유실천문인협회에 가입하여, 반 유신 민중문학운동에 참여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와, 6월항쟁전사협 대표,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와 남북 민간 교류 협의회 고문 등 사회 운동가로서
면모를 보였으며, 다형문학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용아박용철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문단 활동도 활발하게 하였다. 수상한 경력을 보면 제2회 전남문학상(79년), 제2회 요산문학상(85년),
금호예술상(96년), 한림문학상(2001년), 제1회 박인환 시문학상(2007년) 기타 등등 다수 수상하였다.
그는 시를 무기로 민중과 고통을 함께한 사회운동가로 앙가지망(현실참여) 문학인이다.시인은 오늘날 민중시를 더한 감동과 쾌락을 주는 전통시로 보고, 전통은 변용 계승되어야 한다는 T.S 엘리어트의 전통론에 무게를 둔다. 우리 민족성에 恨이 전통의 정서로 자리 잡은 원인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계급의 횡포에 있다. 한의 정서에는 이별의 정한과 원한의 정서가 있다.
‘이별의 정한’(「진달래꽃」의 김소월)과「어저 내일이여」의 황진이)은 세월이 가거나 하면 잊어버리고 체념하고 만다. 그러나 다산의「애절양」과「아리랑」등의 시에서는 민중의 恨이 삭힌 분노와 저항 의지로 표출된다. 민중시의 구현이 때로 감춤을 통한 드러냄이 아니라, 직설적이라는, 지적에 시인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시적 태도를 표명한다.
‘현실참여 즉 민중문학(앙가지망 문학)이 반드시 아름다운 서정시의 진수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이 진실이기를 염원했다면, '시는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그 속성에서 진실하다'는 르네월렉의 시적 정의에 부합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시에 있어서 ‘진실’은 ‘아름다움’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그의 시관은 그의 시집에 주로 나타난다. 시인이 2015년 4월에 생애 마지막으로 발간한『장난감이 없는 아이들』은 시선집이다. 그의 시세계의 변화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회고의 눈빛도 느껴지는 시들도 있다.
이 시집「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향토에 밀착된 우렁차고도 뜨거운 가슴의 폭을 지녔으되, (…) 산골 개울물의 서늘함 같은 맑은 서정도 지니고 있었다.’는 『땅의 연가』창작과비평사 출판사 단평을 인용하면서, 민중시 범주 내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뚜렷한 그런 작품이길 염원하였다고 시의 성격을 밝혔다. 이는 대지적 사랑으로 뜨거운 가슴을 지닌 현실 참여시뿐만 아니라. 때로 나르시스처럼 자신을 들여다보는 서정시도 쓴 시인이라는 사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을 실존적 존재로서의 고독의「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종착역에서」의 시편들과, 앙가지망(현실 참여)의「계란으로 바위를 치던 시절」,「여담」의 시편들 그리고 문학의 기능을 보여주는「희망가」의 시편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겠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고독
죽음에 이르는 존재로서 한계를 가진 인간은 ‘마음씀(마음이 쓰이는 곳)’을 지향하여 장래로 나아가며(기투) 살아간다. 장래로 나아가면서 과거에 의미가 생기고 자기를 기투하는 행위는 죽음까지 이어진다.
시인은 죽음으로서 끝나는 생명의 유한성이 가져다 주는 불안과 존재로서의 절대 고독을 느낀다.
그래서 김현승은 “나는 내게서 끝나는/ 아름다운 영원을/ 내 주름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더 나아갈 수도 없는 나의 손 끝에서/ 드디어 입을 다문다- 나의 시와 함께(「절대고독」5연)” 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 존재론적 고독 속에서도 시인은 ‘사람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다만 죽을 뿐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말로 자신의 삶을 다시 곧추세우는 모습을 보이는 다음의 시가 있다.
여기 한 송이 꽃은
열흘 붉은 짧은 목숨이지만
그는 필 때보다
질 때가 더 아름답다
피는 꽃에 기약턴 마음
지는 꽃에 눈물 맺는 열매
맹세보다 사랑은 더욱 길다
오래 오래 피려 하지 마라라
붉게 붉게 타려 하지 마라라
…… 중략 ……
사랑이여, 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
빛깔은 시들고 향기는 썩는다
머물다 가는 시간 앞에
오늘 고희를 위한 메모를 쓴다
인간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다만 죽을 뿐이다 -헤밍웨이,
이 아침 초대받지 않는 손님
세월이 옆문으로 와서 노크를 한다
-「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 1,2,3,6,7연
이 시의 부제 ‘고희를 위한 메모’는『민들레 타령』이라는 시집에서는 제목으로 되어 있다.
이 시 “오래 오래 피려 하지 마라라/ 붉게 붉게 타려 하지 마라라//(3연)” 을 보면 자신에 대한 다짐으로 읽힌다. 자칫 노욕(老慾)이 되어 자신과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칠지 모르니 ‘마라라’
하는 말을 시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가치관과 삶의 태도를 유비하는 빛깔과 향기는 죽고, 눈물이라는 사랑의 결과물인 정신적 자식, 예술만 남는다는 걸 깨닫는다. 세월이 옆문으로 와서 노크를 하지만 고희를 맞은 화자에게서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삶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고희를 맞이하여 다짐한 마음은 다른 시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들여다보자.
나이가 는다는 것은
인생의 빛이 쌓인다는 것.
아내에게
자식에게
그보다 그 옛날 부모에게
덤으로 쌓인 빛 바리바리 지고서
빚진 죄인 나는 종착역에서 서성거린다.
…… 중략 ……
신과 대결했던 어제의 희망도
나의 마지막 밑천인 육체도
이제는 시들은 풀잎, 희망은 저만치
등을 돌려 떠나버렸는데
여인아, 너는 내 술잔에
무슨 빛깔의 눈물을 채우려느냐.
기적마저 그친 종착역에서
시효가 지난 어젯날의 차표를 들고
막차가 떠난 플랫홈에서
나는 나 홀로 전별의 손길을 흔든다.
아 이 밤에도 시지푸스는
그 형벌의 비탈길에서
잠깐 다리 쉬엄, 밤하늘의 별도 보며
향기로운 땀방울도 고요히 개이고 있을까.
-「종착역에서」1,2,5,6,7연
나이가 들면서 시인은 사회운동가로서 활동에 여념 없었던 시선을 자기 자신과 가정에 돌려 살피기도 한다. '아내와 자식, 그보다 부모에게, 덤으로 쌓인 죄- 시인은 마흔다섯에 자기를 낳은 어머니에게 죄의식 같은 게 있었다
- 바리바리 지고서(2연)인생의 종착역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힘없는 자에게는 한 없이 높아만 보이던 “신에게 대적했던 어제의 희망(5연 1행)”에서 ‘신’은 신이 죽은 시대(니체) 즉, 인간 중심의 시대에 인간이
만든 ‘제도’와 ‘권력’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炳蘭’인데, ‘兵亂’과 음이 같은 탓인지
항상 자기가 가는 곳마다 正과 不義사이에 마찰로 시끄러웠다고하면서, 시인은 자신을 시지프스에 빗댄다.
시지푸스가 절벽 위로 부단하게 바위를 올려야하는 형벌에서 잠시 비껴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가
(7연) 생각하고 있다.
앙가지망(현실참여)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한 개인의 존재는 그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그를 둘러싼 상황에 대하여 제약 속에 들어가 싸워야만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요지의 앙가지망, 즉 현실 참여를 이야기하였으며 실천에 옮겼다. 시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게 현실참여라고 본다. 시인의 시적 생애를 보면『정당성』이라는 시집에서부터 사회의 현실에 눈을 돌린다.
민중의 삶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 언어의 절제미와 함축미를 강조한 초기 시편 중「손」에서 이미 세계의 화약고로서 분단국가의 실정을 그리기도 했었지만 -농촌공동체 사회에서 급격한 산업사회를 맞아 이농 현상이 벌어지고, 농민들이 이주하여 도시 노동자가 되어야 했던 삶의 비애를 보여주는「씀바귀의 노래」,- 시인은 그 쓴물내 나는 삶의「쓴맛」이야말로 세상을 극복하는 의지의 힘임을 말하고 있다 - 광주민중항쟁과 그 여파로 빚어진 시위와 6월 항쟁 등이 있었던 80년대를 시인은「계란으로 바위를 치던 시절」로 회억한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서
우리는 자신만만하였다.
우둔과 성실은 이 시대의 신념
민주주의는 아직도 보약이었다.
자유, 인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날에도
바보 이반, 너는 붕어빵 속에서도
우리들의 첫사랑 희망을 속삭였다.
연탄 대신 공순이를 안고 잔 공식이도
얼음 위의 댓잎자리
사랑의 비유는 아직도 유효하다
끄떡도 않는 바위라고?
수양대군은 의기양양 했지만
노량진의 성삼문은
마지막 술잔 위에 단심가를 띄웠다
오늘도 바보가 던지는 계란탄 속에서
아직도 민주주의는 보약이다
자유, 자유, 그것은 지랄탄을 이기는
민주탄이다, 눈물탄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던 시절」전문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말은 흔히 상대가 되지 않는 일에 대항할 때 쓰는 말이다. 절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에도 지혜와 용기로 80년대를 헤쳐 왔다고 기억한다. 이 시를 해석하는데 ‘80년대를 추억하며’라는 부제가 많은 의미를 도출한다. 80년대는 박노해가『노동의 새벽』이라는 민중시(노동시)로 한국시단에 떠오른 민중문학의 시대이다.
문병란은 광주민중항쟁 배후 조종자로 수배를 받고 구치소에 갇혔다 나온 후에, 광주민중항쟁 알리기와, 광주민중항쟁 이후 이 지역에서 벌어지는 장례식, 추모식, 제사 등에 쓰이는 행사시 등에 전력했던 나날들과,10) 80년대의 작고 큰 대학생 시위나 광주민중항쟁 여파로 볼 수 있는 6월 항쟁 등등을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일로 비유하고 있다. 그 일에 민중들이 동원하는 무기로 ‘우둔’'과 ‘성실’ 밖에 없다.
누구나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살 수 있다는 민주주의를 아직도 신봉하며, 우둔과 대응하는 3연 2행의 ‘바보 이반’은 톨스토이의 동화로 근면성실하게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상징한다. 그런 바보 이반 같은 인간상을 꿈꾸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붕어빵을 먹으면서도 ‘얼음 위의 댓잎자리’ 같은 어려움도 사랑 하나로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수양대군으로 유비되는 바위를 계란으로 치는 '성삼문'은 단심가를 부른다.
그러나 이 시는 결코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닌 것임을 마지막 연 '민주탄'과 '눈물탄''이라는 시어에서 알 수 있다. 김수영의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푸른 하늘을, 2연 7,8행)// ” 처럼 자유는 피로 지켜야 함을 이 시는 역설로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세월이 갈수록 아픈 기억도 조금은 느슨해지는 걸까.
커피를 들며
차茶 한잔만큼 한 그리움,
혀끝에 스미는 차향만큼 한 고독,
커피 잔의 여운을 읽는 쓸쓸한 중년中年이
저만큼 앉아 우울한 년대年代를 응시한다.
…… 중략 ……
나는 잘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도연명처럼 잘못 가다가
되돌아와야 할 지점에 서 있는 것인가?
정의, 양심, 자유, 그토록 뜨거웠던 열기 속에서
나의 청춘은 소파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고
인생은 적과 동지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
어떤 혁명 시인의 선언 앞에 옷깃을 여민다.
한 잔의 커피로 되질할 수 없는 인생人生
자살自殺이 미덕이 될 수 없는 나이에
네 명의 자식들의 학비를 잠깐 잊고
맥주 두어 병에 회춘하는
로맨스그레이의 주말을 생각해 본다.
존재는 시간이라고 말한 철학가의 말을
존재는 빵이다라고 고쳐야 한다던
열렬한 제자의 항의를 생각하며
나는 새삼
존재는 사랑이다라고 정정해 본다.
그토록 먼 길 돌아 지금은 다시
절벽으로 다가선 인생人生 앞에
지명知命의 고독을 안고 있는 나,
진실하고자 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을 흉내 내고 있을 때
1980년대가
저무는 비탈길에서 비를 맞고 있다.
진실
그것은 죽는 것인가? 싸우는 것인가?
내가 아직도 여담餘談을 하고 있는 동안에
진실은 송장 속 구더기로 썩고 있었다.
-「여담餘談」, 1.3,4,5,6,7연
사전적 정의로 여담(餘談)은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본 줄거리와 관계없이 흥미로 하는 딴 이야기’를 말한다. 그 본론은 ‘정의, 양심, 자유(3연 4행)’을 주제로 하는 ‘우울한 년대(1연 5행)’인 ‘1980년대(6연 6행)’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광주민중항쟁과 6월 항쟁은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와 언론의 자유와 국민 기본권 보장 등등을 내용으로 하는 87년 6.29 민주화 선언을 이뤄냈고. 그동안의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피로감에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져 동서 냉전의 거대담론도 없어지는 시대를 맞았다.
통일과 민주, 민족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거대담론에서 개인의 사소한 일 같은 미시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사태에 시인은 귀거래사의 도연명이 ‘쌀 닷 말의 봉급 때문에 향리에게 허리를 굽혀 절 할 수 없다’라고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간 것처럼, 지금껏 민중민족과 통일 등을 위해 살아온 길에서 되돌아와야 할 지점에 서 있지 않은가,(3연, 2,3행)로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여담은 여담이다.
시인이 ‘진실하고자 하는 한 방황한다.’는 괴테의 말을 흉내내고 있을 때(6연 4,5행), 진실은 송장 속 구더기로
썩고 있었다(7연, 4행)고 하며 자신을 채근한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 자주 통일, 민주, 민족 등의 거대담론은 여담(餘談)이 아니고 본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문학의 기능
시는 즐거우면서도 가르침을 준다는 호라티우스 말이 있지만 위안과 힘을 주는 시의 기능도 중요하다.
시인이 시를 무기로 현실 참여를 한 것도 시대적 어둠을 밝혀 민중에게 위안과 살아갈 힘(희망)을 주는
일이었다고 본다.
시인은 “사랑하라 사랑하라/ 아직은 더욱 뜨겁게 포옹하라/(「바다가 내게」
마지막 연 1,2행)”의 시행을 통해 삶의 본질이 세계 내 현존재(「인연서설」
1연 2,3행)로서 뜨겁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진술하고 있다. 희망을 가지고 뜨겁게 살아가기 위하여 자기
마음을 다지는 시의 힘을 다음 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절망 속에서도/ 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
사막의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
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 보리는 뿌리를 뻗고
마늘은 빙점에서도/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
절망은 희망의 어머니/ 고통은 행복의 스승
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 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
꿈꾸는 자여,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마라/ 인생항로/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희망가」전문
그대로 읽어도 그냥 이해가 되는 시다. 쉬운 시가 명시라는 말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박찬호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읽고 활력을 얻은 시라고 해서 더욱 애송이 되는 것 같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는 성적 본능 뿐 아니라, 자기보전 본능이 있다(프로이트). 이 시에서 살기 위한 본능의
모습을 보이는 시행이 1,2,3연이다. 1,2,3연에서 도출해낸 삶의 의지를 기승전결의전부분인 4연에서
변형, 반복, 강조하였다. 결미 5연에서 시인은 꿈꾸는 자에게만 길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한정을 하여
‘꿈꾸는 자여’라는 호칭을 한다. 내일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곧 꿈꾸는 자이다. '어둠 속에서 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 긴 고행 길 멈추지 말아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생의 비의를 알려주듯
'인생항로는 파도는 높고 폭풍우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이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문병란의 시선집『장난감 없는 아이들』을 실존적 존재로서의 고독의「내게 길을 묻는 사랑이여」,「종착역에서」의 시편들과 앙가지망(현실참여)「계란으로 바위를 치던 시절」,「여담」시편들 그리고 문학의 기능을 말하는 「희망가」시편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시인의 시들은 ‘민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삶의 양식이 되고, 우리 민족의 고난을 헤쳐 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민중시 범주 내에서 민족적 정체성이 뚜렷한 시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나르시스처럼 자신을 들여다보는 서정시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병란은 허형만 시인의 평대로 ‘온몸으로 시대를 끌어안은 큰 시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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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허형만ㆍ김종,『문병란 시 연구』(시와사람사, 2002), 251쪽, 「문병란 문학의 생애적 민중예술적 메모」.
2) 문병란,『장난감 없는 아이들』, (인간과문학사,2015) 약력 참조.
3) 나의 삶 나의 詩(제13회), 다음 카페《서은문학연구소》에서 참조.
4) 허형만ㆍ김종, 『문병란 시 연구』(시와사람사, 2002), 371쪽, 「전통시에 대한 민중문학적 확산」
5) 옥편에서 怨之極이라고 풀이하고 있는‘恨’자에서 ‘원한’과 ‘정한’이라는 말을 추출해내어
「진달래꽃」의 김소월과「어저 내일이여」의 황진이를 필두로 대부분 이별의 정한이 그 기조를 이루고 있다. 이정서는 세월이 가면 잊어지거나 체념하고 만다고 한다.-문병란의「한국의 시문학에 나타난 한의 정서」
6) 다산 정약용의「애절양」-조선 순조 때, 삼정(전정(田政)·군정(軍政)·환정(還政) 문란으로, 강진 노전의 백성이 죽은 아버지와 낳은 지 사흘 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군포세로 소를 거둬가자. 다시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양기를 자른 이야기.
7) 나의 삶 나의 詩(제14회), 다음 카페《서은문학연구소》에서 참조.
8) 소광희,『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강의』(문예출판사, 2013). 205쪽, 「하이데거의 시간론에 대한 검토」
9) 나의 삶 나의 詩(제6회), 다음 카페 《서은문학연구소》참조
10) 10)허형만ㆍ김종, 『문병란 시 연구』(시와사람사, 2002), 484쪽, 「5.18 문학과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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