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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론강단-416 혼인잔치의 비유(마태복음22장1-14절)
성경말씀은 마태복음 22장 1절에서 14절까지 봉독합니다.
[마태복음 22장]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 무언이어늘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님의 사역 3년 기간중에 거의 마지막 한 주간에 남긴 교훈들이 굉장히 소중한 그런 교훈들인데, 그것은 천국에 관한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오늘 이 본문도 조금 쉽지 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비유를 말할 때는 원관념이 있고 원관념이 납득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시는데, 그 비유도 우리에게 익숙하냐 하면 비유도 우리에게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그러면 어렵기가 3중으로 어려운 거죠.
보통 비유로 하면 우리에게 익숙해야 되는데, 비유로 한 것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으면 조금 난해한 일이 생긴다는 거죠.
원관념은 천국이고 비유관념은 왕의 혼인잔치인데, 혼인잔치 풍속이 우리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설명이 필요하고,
그래서 비유관념에 나오는 사실 파악을 조금 해야, 어느 정도 원 목적대로 원 관념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런 얘기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우리 민족의 결혼은 일가친척을 중심으로 하고, 옛날에는 잔치를 한번 하면 잔치가 힘이 들어요. 잔치 한번 치루기가..
그런데 지금 보니까 옛날 잔치에 비해서 많이 간소해진 거예요.
저는 장가갈 때 마당에서 했거든요.
결혼 예식장 이런 게 아니고, 시골 마당에서 했는데, 그러면 장가가는 날 그 날 하루 첫날 밤을 지내고 그 이튿날 처가집에서 하루종일 얻어맞고 사흘날에 돌아오거든요.
그러니까 사흘 잔치는 하는 거예요.
사흘 잔치를 하니까 사흘 동안에 온 동민들이 다 오고 온 집안 사람이 다 오고 일가친척 다 오고 하니까 손님 수가 엄청나고 도대체 얼마나 올지 몰라.
그래서 세계에서 잔치하기 제일 어려운 나라가 한국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대충 잡아가지고 잔치를 하는 건데, 제가 이렇게 보니까 참 난감하겠어요.
도대체 얼마나 올런지..
평소에 인심을 얻고 부지런히 열심히 다른 사람 잔치에 다니던 사람은 좀 많이 올 수 있어요.
그런데 평소 잔치도 잘 안가고 인심도 못 얻고 하면, 적게 올 수 있어요.
그러니까 종잡을 수 없는 거야.
그런데 저쪽 세계, 성경이 말하는 히브리 세계나 중동은 전혀 다릅니다.
유럽과 이스라엘은 비슷한 데가 있어요.
결혼 잔치에는 초대받은 사람 외에는 못 가요.
초대를 정확하게 해가지고 초대 했던 사람이 오겠다고 약속을 한 그 사람들만을 위해서 음식도 준비하고, 심지어 그 잔치하는데 혼인예식에는 아무 옷이나 입고 작업복 입고 못 가는 거야.
우리는 논에서 일하다가 점심이나 먹고 오자. 젠장..
그래서 작업복 바람으로 마당에서 앉아서 이렇게 하니까 마당잔치를 하니까 아무 큰 흉이 안 되는데,
저쪽에서는 예식을 굉장히 격조있게 하기 때문에 예복을 개인이 가질 수 없어서 왕의 혼인잔치 같으면 왕이 초대한 사람에게 예식에서 입어야 할 옷을 미리 보내가지고 그것을 입고 거기에서 갈아입든지 이렇게 해서 딱 지정된 의복 외에는 못 입습니다.
그런 배경을 우리가 알고 있어야 이 사실 파악을 해야 이 비유를 이해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혼인잔치 손님이 두가지인데, 혼인잔치에 오라 했는데, 오기 싫어해가지고 잔치에 소외된 사람이 있고, 끄트머리에 가면 오기는 왔는데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난 사람, 두 가지가 있어요. 여기 보니까..
그래서 간단하게 하면 오기 싫은 사람들에게,
4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이렇게 할 때 이게 참 굉장히 어려운 얘긴데, 이런 정도 되었다면 그 왕에게 반역이죠.
일반 서민도 아니고 왕이 어떤 사람들을 혼인잔치에 불렀는데, 왕이 보낸 사자를 능욕하고 죽이기까지 할 정도로 아예 왕의 혼인잔치에 거들떠 보지도 아니했다.
이것은 반역과 마찬가지죠.
저쪽 사람들 그 지방 사람들에게 있어서 혼인잔치라든지 어떤 잔치에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면, ‘당신의 기쁨은 곧 나의 기쁨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 가족처럼 이렇게 기쁨도 같이 하는데, 당신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다 하는 것이고,
우리는 잔치에 가는 이유가 우리는 일가친척이거나 아니면 상부상조 했으니까 준 게 있으니까 받을게 있는 거죠.
그 쪽에는 우리와 좀 달라요.
그래서 당신의 기쁨이 곧 나의 기쁨이다 할 때, 당신의 기쁨이 나의 기쁨 아니야. 당신이 잘 되는 것 나는 딱 못봐. 이러면 완전히 원수죠.
그래서 선전포고나 아니면 원수로 여긴다..
당신이 기뻐할 일에 내가 가서 기뻐할 일이 뭐냐?
혼인잔치를 굉장히 무시하는 것을 넘어서서 반역에 가까운 그런 자세를 취했다는 거예요.
이것을 한편 조금 더하면 이게 어쩌면 유대인에 해당돼요.
무슨 말인지 이해됩니까?
출애굽기 19장부터 시작해가지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서 결국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유대인들을 먼저 초대했는데, 1천년 동안 말라기까지 계속 종들을 보내고 종들을 보내고 해도 끝내 이것들이 반역하고 유대인들이 오히려 잔치상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냥 사거리 길로 나가서 사람을 닥치는 대로 불러오라 한 것은 아예 이방인들이죠.
원래 계획된 손님들이 아니고..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것은 AD70년에 로마장군 티투스를 보내가지고 예루살렘을 다 불싸질러 버렸거든요.
그리고,
8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혼인잔치는 천국이죠. 천국..
..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엔드마가무’ 하는 이 말은 ‘예복’이예요. 두루뭉실하게 생긴 예복인데, 이것은 혼례식 복장입니다.
정확하게 직역하면 ‘혼례식 복장’이라고 결혼식에만 입어야 되는 특별한 의상이 있는 거예요.
반드시 그것을 지급받아서 잔치에 그 예복을 입는 것은 그만큼 왕의 잔치를 존중하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이 아예 예복도 안 입고 제멋대로 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데, 그것은 바로 그 왕의 잔치를 모독하는, 우롱하고 모독하는 ‘너 잔치 해봐야 내 평소 생활 수준밖에 안 된다.’
아주 굉장히 혐오스럽게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되어서 그냥 바로 수족을 묶어서 바깥 어두운데 내어 던지라..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무례한 거죠.
우리 같으면 옷 좀 잘못 입었다 해가지고 그렇게 하면 심하지 않느냐 하는데, 그 나라에서는 왕의 잔치 성격 전체를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원관념일 때, 비유컨데 이렇고, 원관념일 때 이것은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겠느냐 할 때, 사실은 우리 이방인들 전혀 구약시대 유대인처럼 오랜 시간 율법이라든지 이런 것을 교육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이방인들을 불러오다보니까 제멋대로 살던 사람이 많은 거야.
12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 무언이어늘
그래서 성경 전체에 가서 맨 마지막때 천국에서 우리가 입어야 할 옷이 뭐냐하면, 고운 세마포 옷이라 하고 요한계시록에 가야 그런 옷 이야기가 나와요.
그것은 고운 세마포 옷이란 것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는 거예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천국에 들어갈 아무 옳은 행실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모독하는 거예요. 내 행위를 가지고 내 옷을 만드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사람이 평소에 비단옷 입었다 이것은 하나도 기억 안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느냐 하면 것을 가지고 그 행실의 옷을 입혀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무슨 유명 메이커 옷을 입었느냐 그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생의 삶이 생활이 어떤 생활을 입고 살았느냐?
이것을 가지고 기억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옷은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아무 행함도 없는 믿습니다. 믿습니다. 이래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의 행실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옷을 입되, 옥중서신에 보면 예수그리스도에 합하여 세례를 받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 그러니까 꼭 옷 입었다 하는 것, 여러분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것은 피부는 얼굴밖에 안 보이는 것이고,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의 생활 이런 것을 보게 될텐데, 무엇으로 보여야 되느냐 하면, 예수님으로 옷 입은 사람은 예수님처럼 보여야 돼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저 사람들은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이다. 나라는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예수님부터 먼저 보여야 돼요. 그렇죠?
예수 믿는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사람, 예수님 계명을 지키는 사람, 예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 예수님 닮아서 사는 사람,
처음에는 닮는 게 잘 안되니까 흉내를 내다가 나중에 속속들이 닮아가요.
예수님 몸이니까 우리가..
예수님이 머리이고 우리는 몸이니까 우리의 몸이 머리되신 예수님 뜻대로 몸이 움직여야 예수님 몸에 붙은 거지..
머리 되신 예수님 뜻대로 안 움직이고 제 멋대로 놀면 그것은 예복을 입지 않은 거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합하여 세례받았다는 것은, 얼마나 예수님을 존경하고,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흠모하면 예수님 안에 세례를 받아서, 세례는 연합되는 거죠.
연합되어서 내 뜻이 다 없어져버리고 예수님 뜻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그 뜻대로 움직이고 살아가는 상태가 되면 예수로 옷 입었다는 거예요.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받은 사람은 예수님으로 옷 입었다.
그러면 당연히 선하고 착하고 옳은 행실이 세마포 의복으로 나타나야 돼요.
그래서 우리의 삶이 예수님을 닮아서 사는 삶의 의복이 없다면 나중에 천국 가기는 갔는데, 결국은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 잔치를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게까지 여기 이 문제가 굉장히 비중있는 문제인데, 교회에서 심도있게 다루거나 우리 성도들의 옳은 행실에 대해서 별로 강조하는 것을 제가 못 들었어요.
그냥 어물쩍 넘어가요.
그래서 지금 복음서 예수님의 교훈의 막바지에 왔는데, 여러분 아주 중요한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해야 돼요.
결론적 교훈을 잘 들어야 돼요.
13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출발은 그냥 아무나 사거리 길에서 닥치는 대로 죄인이나 불러오너라.
불러오는데, 불러왔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청함을 입은 사람은 많지만, 정말 의복까지 다 해가지고 택함을 입은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우리가 천국에 가서 보면 굉장히 소수가 와 있다는 것을 볼 겁니다. 의외로..
의외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천국에 와 있을 수 있어요.
전혀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 뿐이지,
여러분 구약성경을 통틀어서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하면 약 2천년이 되는데, 그 2천년 역사에, ‘아 이분들 같으면 천국 갔겠다. 정말..’그리 싶을 정도의 사람이 몇 사람 안 돼요.
구약시대 2천년 동안에 이스라엘 역사에 통틀어서 ‘야 그래 이 사람 같으면 당연히 천국에 있겠지’ 하는 사람이 몇 사람 안 된다니까..
예수님 오셔서 약 30년 정도 조금 일하다가 64년부터 311년까지 250년 정도 대 박해시대에 제대로 교회 교육이 안된 채 이렇게 지나갔다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가지고 기독교 자유가 선포되면서 올라왔는데, 올라오자 교리논쟁에 휘말려서 이것인가 저것인가 싸우다가,
싸움도 채 안 끝나서 로마카톨릭으로 가서, 그 카톨릭이 1천년을 썩어 버린 거예요.
중세암흑기 종교암흑기..
1천년 썩어빠질 때 거기 참 성도라는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오히려 그 때 신학적으로 제대로 안 되었기 때문에 싸움 자체도 옳지 않지만, 거기서 맞아죽은 사람 중에서 그래도 성경대로 바로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위그노파, 알비파, 왈도파 이렇게 하면서, 그런 사람들 중에 그래도 성경대로 바르게 살려고 했던 사람들이 순교하거나 내몰리고 했는데,
거기에서 몇 사람 나올런지 몰라도, 카톨릭 세계는 교황부터 썩어빠졌는데, 윗물이 맑아도 아랫물이 흐릴 수 있는데,
지리산은 참 맑은데 낙동강은 흐리잖아요.
그런데 위에부터 썩었는데 밑에는 오죽하겠어요?
그래서 1517년에 마르틴루터라든지 이런 분들이 일어나서 그 뒤에 칼빈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서 100년 정도 하다가 이미 유럽에 지성인들이 소위 말하면 지성인들은 카톨릭의 1천년 부패를 보고 다 이미 교회를 떠난 후였어요.
12세기 13세기에 르네상스때부터 지성인들이 교회를 등지고 옛날 고전으로 돌아가자. 아니면 인간으로 돌아가자. 성경이 아니고 고전으로, 신이 아니고 인간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인문주의가 유럽의 지성인들 세계를 쓸어버리고나니까 유럽에서 얼마나 바로 믿었겠어요?
그 때는 동양에는 아예 복음이 전파 안 되었으니까..
그러다가 1620년에 청교도들이 미국땅을 밟게 되는데, 소수 아니겠어요?
배 하나에 얼마나 타겠어요?
그래서 미국에 청교도 운동이 시작해서 그것도 청교도 운동이 1년도 채 안 되어서 프리메이슨들이 미국을 다 장악하면서부터 미국 사회는 부패하게 된 것이고, 오늘 제일 많이 썩어빠지고 제일 타락하고 제일 악한 것들이 미국에 있습니다.
미국에서 온갖 악한 꾸정물들이 온 세계를 미국에 다 버린 거예요.
겨우 교회 생명이 남은 것이 한국교회 하나 남은 것 같은데.. 한국교회..
미국, 일본교회가 세계 선교 하겠습니까? 중국 삼자교회가 하겠습니까? 지하교회는 지하에 있는데 지하교회가 하겠습니까?
거의 지구상에서 교회같은 교회는 없다시피하는데, 인류 역사는 종말로 치닫고 있으니까..
실제적으로 우리가 천국에 가서 보면 의외로 작은 숫자가 있을 거예요.
깜짝 놀랄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대충 믿어라 믿음으로 가는 거니까 천국 안 가겠나..
그런 식으로 살아서는 안 돼요.
설마 천당 가겠지.. 설마가 사람 잡는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정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서 착한 행실로 고운 세마포 옷을 입어서 천국 잔치에서 쫓겨나지 않는, 하나님의 아들의 혼인잔치에 합당한 사람들로 참여해야 될텐데,
여기 앞에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반역한 것이고, 뒤에 예복을 입지 않은 것은 모독하거나 우롱한 거예요.
혼인 잔치 자체를..
그래서 버림받은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15절 이야기는 우리가 많이 들은 얘기죠.
15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유대인들은 말을 잘한다고 했죠?
그들에게 당신들은 복 받았다는데, 도대체 무슨 복을 받았느냐? 하나님께..
하니까 말을 잘 한다고.. 말을 은사로 받았다. 말씀과 말,
그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 있고, 그들은 말을 잘해요. 히브리인들이..
그래서 지금도 국제문제 큰 사건의 국제 변호사들은 다 거의 유대인들이 맡았어요.
말을 잘 하니까.. 법을 잘 알고 말을 잘 하니까..
예수님을 딱 꼼짝못하게 해보겠다, 말로 올무에 걸리게 해 보겠다고 온 거죠.
16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여러분 제가 여기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 와서 아첨하는 것처럼 하는데, 다 참말입니다. 아첨하는데 다 참말이야. 맞죠?
..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맞는 말이죠?
아첨하는 말 치고 옳지 않은 말이 없다니까 보니까..
마음은 아주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데도 그 말은 다 맞아요.
아무리 예수님께 좋은 찬사를 붙여도 모자라..
그러니까 다 참이지..
17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18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1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실패했죠?
예수님의 지혜라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바치라’ 하면 ‘로마의 물 먹었다’ 할 것이고, ‘바치지 말라’ 하면 로마에 고발할거야. 지금..
그러니까 이런 것을 보통 진퇴양난이라고 해요.
진퇴양난 좌우병난..
그러니까 앞으로도 못가고 뒤로도 못가고 왼쪽으로도 오른쪽으로도 아무 데로 못 가게 했는데, 예수님은 위로 올라가는 수가 있어요.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못갈 때 예수님은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아주 간단하게 끝냈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 것인데, 하나님의 것은 뭡니까?
전부 가이사 것만 아는 것 같아.
가이사에게 할 일도 다 하고, 하나님께 할 의무도 다 해야 된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것은 사람이다. 사람..
로마가 치안을 담당하니까 세금은 로마에 바치지만, 사람의 영혼은 너희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렇게도 말합니다.
그 다음에 23절에는 사두개인들이 왔어. 골고루 오죠?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사두개인’이란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사둑가이’ 제사장 족속이예요.
사독의 자손들..
다윗 시대와 솔로몬 시대에 사독의 자손들은, 솔로몬 시대에 와서 아비아달이 반역에 가담했다가 쫓겨나고, 그 다음부터는 사독 가문 사람들이 의롭다 해가지고 사독이라는 말은 츠다카, 차디크 하는 의로운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제사장 가문을 잇게 되었는데, 다윗 시대 솔로몬 시대에는 사독 가문이 경건하다 해가지고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인데,
그런데 세월이 오래 가니까 타락한 거야.
솔로몬 시대부터 시작해가지고 예수님 시대까지 쭉 세월이 오래 가다보니까 타락하는 거예요.
아무리 세월이 가도 변절하지 않고 가야 되는데, 세월 좀 흘렀다고 타락하는 거야.
여러분 우리 사회도 보면 정치인들 중에 대부분 대학생때 굉장한 정의파였는데, 세월이 흘러가면 변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영원히 변치않는 진리를 붙들면 세월이 간다해서 변하면 안 돼요.
갈수록 점점 더 성실하고 더 거룩하고 해야지..
‘목사님 저도 젊을 때는 잘 믿었는데요..’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혜자가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젊어서는 뜨거웠는데요..’
지금 식었거나 썩었거나 그런 거죠. 그러면 안 돼.
세월이 가도 변함없이..
여러분 나중에 에베소서에 보면 바울이 그냥 싸구려로 축도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
변함없이..
살아가다가 사람이 변덕을 부리는 것을 보면 참 힘들어요. 변덕 부리는 것..
변절하지 않도록..
그래서,
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 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세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싸우지 않겠습니까?
이것도 아주 못된 거야.
그런 사실은 있지도 않아요.
어디 이런 끔찍한 일이 있겠어요?
있지도 않은 것을 순전히 말로 가지고 부활이 없다고 하는, 자기들 생각이 맞다고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끌고 들어가는 거야.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거기 줄을 그으세요. ‘오해하였도다.’ 헬라어로 ‘플라나오’라는 것은 ‘길을 벗어나다.’
영어로 번역하면 미스테이큰(mistaken)이죠.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31 죽은 자의 부활을 의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33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이건 저도 놀랐어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것이 아브라함도 살아있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을 상상도 안 했거든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하면 아브라함이 만약에 죽어서 영원히 없어져 버렸거나 죽은 아브라함이 영원히 살아있지 않거나 하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더 하면 노아의 하나님도 되겠죠.
노아도 살아있다는 거야.
하나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어.
그러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이렇게 하니까 깜짝놀래가지고 다시 더 이상 반문하지 못하고..
부활이 있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확정을 해버린 거죠.
부활때는 장가도 안 가고 시집도 안 가고 천사들과 같이 된다.
제가 원지교회를 개척할 때, 아주 고급 카펫을 짜는 공장이 원지에 있었는데, 그 공장 사장 부인이 교회에 나와요.
부인이 조금 약간 모자라는건지 악령 귀신이 들었는지 도대체 말이 어떤 질서가 없어요.
참 미신적인 소리를 자꾸 하고, 꼭 인디안 추장같은 말을 하니까..
그래서 그 부인이 그래도 카펫 공장 사장 부인이라는 거야.
사장 사모님이다 해가지고 전도할려고 갔죠.
사장에게 저녁에 갔더니 하여튼 음식이나 마시는 것도 아주 규모있게 잘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영접받는 것 보니까 사장님도 교회에 나가시겠구나..
그러면 사장이 교회에 나가면 개척교회 형편이 펴지겠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더니..
‘교회에 나오십시오.’ 했더니 교회에 갔으면 좋겠는데, 자기 부인이 천국 갈 모양인데, 천국가서 자기 부인 만날까 싶어서 도저히 못 가겠다는 거야.
요즈음 같으면 벌써 이혼하고 남았을텐데..
그 때만 해도 이혼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부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면서도 이혼한다는 생각은 안 하고 다만 천국은 안 간다는 거야.
거기가서 또 만나면 곤란하니까..
그 때만 해도 제가 이 말씀을 알았으면 ‘염려마시오. 천국가면 장가 안 갑니다.’ 그랬을 텐데, 지혜가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급이죠.
지금 그 사람은 어디가서 뭐하는지 모르지만 지금 원지에 안 살아요.
그러니까 우리 부인들 아직 남편이 안 믿는 분 없나요?
남편분이 아직 안 믿는 가정이 우리 교회는 별로 없어요. 다 나오죠.
참 샤론교회 부인들이 워낙 착하니까.. 남편들이 다 나왔어요.
그렇죠? 착각인가..
제가 볼 때 잘은 모르는데 어떻든 샤론교회 부인들이 제가 다녀본 교회에서는 제일 착해요.
믿거나 말거나..
그래서 그런지 남편들이 다 나오거든..
그러니까 여러분 혹시 아직도 남편이 아직 안 나오는 분이 있으면 간단합니다.
그 교회에 나간다고 해서 이상한 소리 신비주의 비슷하게 미신적인 소리를 하면 남편이 안 나와요.
교회에 나가면 윤리적으로 반듯해야 돼요. 착해야 되고..
그것부터 보여야 되는데, 그런 것은 안 보이고 이상한 소리하고 아까 카펫트 공장 사장 부인처럼 인디안 추장같이 전혀 비합리적인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하고 그러면 나라도 안 나가요.
처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저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게 전도의 원리예요.
착한 행실과 옳은 윤리를 보고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지, 구원과 십자가의 도리 그런 것은 돼지에게 던지는 거야.
그런 거룩한 것을 개에게 먼저 던지면 전혀 안 통합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그런 소리 하면 안 됩니다.
어떤 남편 전도 못하는 것 보면 자기는 천사고 남편은 마귀라고..
마귀니까 교회에 안 나올려고 하겠죠..
그래서 남편들을 전도할려고 마음 먹을 때는 잘 해야 됩니다.
예수믿기 전보다 현저하게 잘 해야 됩니다.
그러면 남편들이 교회에 나가요.
제가 204회 성경강좌때에 ‘신학은 사랑학이다’ 하는 특강을 하면서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우리 부인들이 맨날 천날 무슨 노예처럼 그렇게 생각해가지고 1년에 한번이라도 자기 남편이 결혼기념일에 선물이나 뭐 안해주는가..
그렇게 바라고 있을 정도로 쩨쩨한 여자 같으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1년에 한번해서 됩니까? 1년 365일 매일 결혼기념일처럼 안고 뽀뽀하고 그래야죠.
1년 내내 사랑받으면서 특별히 하루만 받겠다 그것은 노예같은 사람들이야.
그래서 올해는 그렇게 하지 말고 거꾸로 하라고..
1년에 한번이라도 부인이 아내가 남편에게 편지를 다 쓰라..
‘내 일생일대에 가장 탁월한 선택은 당신을 만난 것이었다.’
그렇게 카드로 쓰고 선물을 준비하는데,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조금만 하지 말고 내나 남편돈이니까..
채장사 돈가지고 채 메운다고.. 내나 그 돈이 그 돈인데..
한번이라도 그렇게 해보라 했더니, 여자들이 전부 피식하고 김새하는데,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거야.
한 자매인데, 여자 목사야.
여자 목사님이 그것을 듣고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는 거야.
그래서 가서 그대로 했어.
시키는 대로 정말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26년 동안 한번도 결혼기념일을 입에 담지도 않았다는 거야. 26년 동안..
그러니까 부인이 얼마나 섭섭했겠어요?
그래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다..
그 여자 목사님이 듣는 귀가 있어가지고 가서 하여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선물을 정성을 다해서 준비하고 거기다가 쪽지를 써가지고 ‘내 일생일대에 가장 탁월한 선택은 당신을 만난 것이었다’ 했더니, 남편이 뿅 가버린 거야.
정신이 황홀해가지고 남편이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몰라요.
남편이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바로 그날로 가더니, 공무원인데 3박 4일 제주도 여행 티켓을 두개 딱 끊어 왔더래요..
오늘 갔어요. 오늘..
오늘 가서 오늘 저녁에 제주도 어느 교회에서 설교 부탁까지 받았다는 거야.
설교 할 때 설교 제목은 ‘신학은 사랑학이다.’ 그 강의하는 걸로..
그런데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부인이 자기가 그렇게 한번 표현을 했더니, 자기 마음이 자존심이나 무슨 섭섭한 것이나 별 온갖 어쭙잖은 생각으로 자기 마음이 꾹 눌려있었는데, 자기가 남편을 사랑한다는 표현을 했더니 자기 속에서 사랑의 감정이 확 피어나면서 자기가 완전히 자유해버린거야.
그 다음부터는 평생에 못해 보던 사랑한다는 말이 입에 줄줄 달리고, 남편도 상대적으로 어쩔줄 몰라하면서..
이번에 205회 강의할 때 앞에 나와서 간증을 했어요.
5분 정도.. 이렇게 얘기하면서 너무 너무 자기가 감사하다고..
그래서 마치고도 안 가고 미국에서 온 분들이 두어분 있어가지고 이번에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같이 나란히 앉아서 간증을 듣고는 이분들이 모처럼 와서 식사를 다 사버린 거야.
완전히 자기 가정이 새로운 가정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들을 귀 있는 분은 들으시기 바랍니다.
아멘이 아니고 ‘에멘’ 해가지고..
꼭 윽박질러 절 받는 것 같죠..
올해 가정의 달이 다 가기전에 남편들도 남편들이지만, 아내들도 한번 생각해봐요.
여러분이 끌려온 게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남편에게 ‘이놈 집구석에 끌려와가지고..’ 이렇게 하지 말고
‘내 일생일대에 가장 탁월한 선택은 당신을 만난 것이다.’
우리 한국에 교양인들도 그 말을 못해요.
서울에 압구정동 소망교회는 상당히 수준이 있잖아요.
거기는 서울대 이대 연고대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민다는데, 그 사람들도 교양이 되게 없는 거야.
그 얘기하니까 여자들이 하는 말이, ‘아이고 그렇게 했다가 남편 좋아하는 꼴을 어떻게 보라고..’
여러분 남편이 좋아하는 꼴을 못 보면 행복할 권리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는 먼저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다.
34절,
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35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율법사들도 시험해요.
36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어지간해서는 대답을 잘 안하시거든요.
꼭 이야기를 해가지고 ‘너희 생각은 어떠냐?’라고 물어서 그 사람 입으로 대답하게 그렇게 한 다음에 대답이 맞으면 ‘네 말이 옳도다. 그대로 행하라.’ 해가지고 돌려보내고 하는데,
이 때는 예수님께서 대답을 했어요.
대답을 했는데,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물어봅시다. 그러면 폐하는 거요? 안 폐하는 거요?
율법과 선지자가 말한 게 전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율법과 선자자의 대 강령’이 뭐냐하면,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이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것을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폐하는 거요? 안 폐하는 거요?
안 폐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더 완전케 할려고 왔다..
아직도 여전히 얼치기 같은 복음주의자들이 ‘신약시대에는 율법은 폐했다.’ 하는데,
율법 폐한 것은 모형으로 하던 것이 폐해진 거야.
제사법 같은 것..
동물의 피로 제사드리던 것은 완전한 실상인 예수님의 몸이 생축으로 드려지니까 제사법만 폐해진 것이지,
윤리와 도덕법,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그것을 어떻게 폐하겠어요? 그게 율법인데..
또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게 율법이고 선자자의 강령인데, 이것을 어떻게 폐하겠어요?
율법의 근본 정신은 전혀 폐할 수도 없고 폐할 이유도 없고 폐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경을 전혀 잘못 본 사람들이 폐한다고 ‘첫째 것을 폐하시고 둘째 것을 세우시려 함이라.’ 그것은 제사를 말합니다. 제사..
율법 폐지론자들은 처음부터 이단들이었는데,
제가 율법에 옛날에 우리가 음식은 율법이기 때문에 폐한줄로 알고 있지만, 그것은 폐할 이유도 없고 모형으로 먹은 게 아니고 진짜 먹었어요.
그 말만 듣고는 앞에도 안 보고 뒤에도 안 보고.. ‘노목사는 율법주의자다.’ 그런 뚱딴지 같은 소리해서 엉터리 해석이라고 토론이 벌어진다는 거야.
율법주의라는 말은 율법의 어떤 것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율법주의예요.
율법이 주어진 것은 구약시대 율법도 구원받게 할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구원받은 후에, 은총으로 구원받은 후에 구원받은 백성답게 사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거룩하게 사는 법칙으로 주어진 것이지,
지금도 그 때도 율법은 한번도 그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41절,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이제는 예수님께서 역공격 하시죠?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가라사대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시편 110편에 보면,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했더니 그만 전부 입에 탁 막혀가지고 내노라 하고 아는 척 하는 사람이 없어요.
46 한 말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조심할 것은 우리에게 얼치기 같은 어설프게 뭐 좀 안다고 하는 지식이 자기를 망하게 하는 수가 많아요.
차라리 네가 소경되었다면 죄가 없을뻔 했는데,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도다..
극히 조심해야 될 것이,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쬐끔 쥐꼬리만큼 알면서 아는 척 해가지고 이것이 자기 지식 때문에..
여러분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이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면서, 아는 척 하고 까불다가 그 교만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별을 면하겠느냐?’ 이런 말을 들은 것 아녜요?
제대로 알아가야 돼요. 제대로..
완전하게 성경말씀이 기록된 원 목적대로 제대로 알아야지 어설프게 얼치기처럼,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고 그렇게 교만하게 하다가 정작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정반대편에 앉아서 끝까지 교만을 가지고 무지와 고집과 오해와 편견과 욕심과 이런 것들이 결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겸손이라는 게, 겸손한 척,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겸손한 것이 아니고 무식하고 게으른 것이고, 진정한 겸손은 끝없이 배우는 거예요.
열심히 공부하고 늘 귀를 기울이고 굳어지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또 듣고 또 듣고 이게 겸손이예요.
저는 지금도 안 굳어질려고 ‘내가 아는 게 다냐? 진짜 내가 바로 알고 있느냐?’
항상 지금도 또 검토하고 또 검토하고 열번이고 백번이고 이백번이고 다시 검토하고 이렇게 하는데 성경 채 열번도 안 읽어보고 제대로 배운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 하고 교만 떨고 ‘내가 목사입네, 신학을 했네, 내가 박사입네..’ 이런 소리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 오신 목사님 중에 시카고에서 이 소식을 듣고 일부러 오셨는데, 다른 것 빼고 아무 하는 것 없고, 나이가 우리보다는 몇살 아래인데, 목회를 하다가 자기 스스로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강좌 불법CD를 듣다가.. 믿을 만한 것은 불법CD밖에 없어요.
듣다가 만사를 제치고 와야 되겠다고 온 거예요.
한분은 아틀란타에서 오신 장로님인데, 비지니스 하는 장로님인데, 한 주일에 한번 설교듣는데, 또 한주 기다려야 되나 하고 감질나서 못 참아가지고..
구약을 인터넷으로 다 듣고 다 듣고 몇번을 들었는데, 신약은 언제 다 하겠나 해가지고 안 되겠다 해서 그냥 날아왔어요.
여기 와서 ‘저는 경비를 상당히 많이 들여서 왔습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배울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인데도 정말 배울려고 와서 제가 미국에 대해서 이런 저런 부정적인 얘기를 하는데, 100% 맞다는 거예요.
‘미국에 있는 사람보다 어떻게 더 잘압니까?’
원래 그런 거요.
미국에 빠진 사람은 미국을 잘 몰라요. 저는 미국에 안 빠졌으니까 아는 거죠.
그래서 이분이 ‘이제는 정말 내가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길이 보인다.’고 하면서 그렇게 기뻐하면서 갔어요.
그래서 내가, 참 귀한 분을 만났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심판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서 이 시대의 유대인들을 심판할 것이다. 그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그 먼길을 왔다는 거예요. 댓가를 지불하고..
솔로몬보다 더 큰 예수님이 와도 너희는 안 듣는 것 아니냐?
여러분 미국이라는 데에서 얼마나 긴시간 경비 들여가면서 진리를 듣고 싶어서 날아온 것 보세요.
이번에 나름대로 꽤 유명한 사람 많이 와서 목회자들만 40명 정도 와서 들으면서, 제가 갈수록 나이가 들어가니까 잔소리가 늘어가지고 이번에 온 사람 혼 났을 거야.
끝으로 갈수록 자기가 잘못된 것 잘못 배운 것 다 시인하면서..
이번에는 목사님들과 교역자들이 훨씬 더 달게 들었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지금 133명 중에 목사님 한분이 진심으로 변화된다면 제가 보람을 느끼고 일할 것 같다.
다른 분은 몰라도 그 한분은 정말 달게 듣고 돌아간 거예요.
우리가 어설프게 아는 채로 있다면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보다 못할 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배울 때는 제대로 배우고 하나님 말씀 66권을 한 권도 한 장도 한 절도 빼지 말고 잘 배워서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칭찬과 상급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심판대 앞에 갔으면 참 곤란하고 두려운 일을 당할텐데 미리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태를 통해서 배운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새기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부끄럽지 않은 종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칭찬과 상급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