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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아들을 賭博으로 날려버린 사나이
숭산(崇山) 밑에는 지금도 유명한 무술의 고장 중의 하나인 등봉현(登峰縣)이 있다.
이곳에서 소림사가 있는 소실봉으로도 갈 수 있고
정천보가 있는 태실봉으로도 갈 수 있다.
이곳 등봉현은 그 이름 만큼은 크지 않는 고을이었다.
주민이래야 고작 삼사 천에 불과한...
한데 느닷없이 이 등봉현에 무수한 이방인이 모여들며 발칵 뒤집히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객점은 일찌기 만원(滿員)이 되고, 기루마저 손님들로 가득차 있었다.
오늘 등천마세의 주인인 무적검이 이곳을 지나는 것이다.
그리고 등천마세의 고수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신분을 숨기고 포진해있기도 하다.
또한 정천보의 고수들이 무적검을 지키기 위해 집결하여
곳곳에서 등천마세의 고수들과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정천보에서는 정예고수 일천명을 동원하여 그를 호송하고 있다고 한다
. 이곳에 있는 고수들은 단지 외적을 방비하기 위함이었다.
등봉현의 여러 객점 중의 한 객점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에 의해 통채로 세를 주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천에 싸인 길죽한 물건을 등에 지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사방을 방비하고 있었다.
그 객점의 가장 별채에는 이십여 사람이 모여 숙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무림의 최강세력 백인장의 사람들이었다.
백인장의 요인들은 모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주인 도왕 소선풍과 그의 두 부인, 그리고 일곱 명의 원로도객과 좌우봉공이 있었다.
거기다,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과 검왕자 이수군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얼굴에 서릿발을 드리우고 있는 수척한 주소아와 한천이기,
그리고 취풍녀와 사씨자매, 사마귀가 배석하고 있었다.
이극송이 창노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네는 삼수가 도망칠까봐 그렇게 겁이 나는가?
일초가 비참하게 끌려가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빙장어른! 일초가 정천보에 들어가고 난 후에 손을 쓰도 늦지 않습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모습을 드러내면 다시는 삼수를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소선풍이 간곡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내가 죽고난 후에 삼수나 찾아다니게.
나는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일초를 구하고 말겠네.}
{삼수는 그 동안 모든 무림의 혈겁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해 왔습니다.
이번에 뿌리를 뽑지 못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칠지 모릅니다.}
이때 주소아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제가 당돌하게 한마디 올리고자 합니다.
고모부! 고모부께서는 호정수신(護正修身)하는 백인장의 장주이시고
무림의 대협이시니 혈육의 정보다 정의를 표방하시는 것이 당연하십니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구나.}
{그러나, 고모부! 저는 무림의 대협도 아니고 정의를 숭상해온 협객도 아닙니다.
저에게 오직 중요한 것은 그 뿐입니다.
저 또한 검왕 할아버지처럼 혼자서라도 그를 구할 것입니다.}
{애야, 네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일에는 대소가 있고 무리에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이니
우리는 자중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조예진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고모! 지금 그는 오늘 괴물로 변해서 모습을 나타낼 지
내일 괴물이 돼서 우릴 죽이려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예요.
그를 한시라도 빨리 구해야 해요. 정천보로 들어가면 이미 늦을지 몰라요!엉엉...}
주소아는 마침내 울고 말았다.
그때,
{장주님, 소장주님의 친구분이라면서 찾아온 소협들이 계십니다.}
밖에서 도객 중의 한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선풍이 얼굴을 찌푸렸다. 백인장의 종적이 드러난 듯 해서 기분이 언찮았던 것이다.
{이리로 모두 모시고 오도록 하시오.}
백인장주는 백인장의 도객들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그들을 항상 예로써 대해야 하는 것이
백인장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 중의 하나인 것이다.
소선풍은 모두라는 말을 강하게 발음했다.
일이 중요한 만큼 수상한 자이면 죽이거나 억류하리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얼마 후 문밖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림말학(武林末學) 백소중이 대협을 뵙고자 왔습니다.
{들어오시오.}
주소아와 한천이기 등이 백소중이라는 말을 듣고 맞이하기위해 일제히 일어섰다.
백소중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데, 문을 들어선 사람은 어리고 키가 작은 백소중이 아니고 훤칠한 미남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뒤를 백소중이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었다.
주소아와 한천이기의 표정이 환히 밝아지며 모든 근심이 가시는 듯 했다.
그리고 소선풍과 조예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절을 했다.
소선풍은 깊이 허리를 숙일 뿐이지만 조예진은 땅에 머리가 닿는 큰 절을 했다.
검왕 이극송은 사위와 사위의 둘째 부인이 일제히 청년에게 절을 하자 어리둥절했다.
백인장주의 신분이 아무에게나 허리를 굽힐 수 있는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니 주소아와 한천이기도 절을 하고 있었다.
미남 청년은 주하운이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도깨비 장난 같은 일을 당해서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절을 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절한 후에 인사말 만 했다.
조예진이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신선께서 어인 일로 이 누추한 곳에...}
{너도 힘든 일을 많이 겪는구나. 그동안 그 곱던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주하운의 눈가에 물기가 어려있었다.
{모든 것이 제가 불민한 탓입니다.}
소선풍이 머리를 조아렸다.
청년은 아주 당연한 듯이 절을 받고 여러 사람들이 절을 했건만
그들의 표정은 모두 숙연했다.
무림에서 천하제일은 물론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고금제일인이라는 칭호까지 들었던 대종사에 대한 당연한 예우요 존경의 표시였다.
{내 이미 모든 이야기를 다들어서 알고있다.
선풍이 너는 아무 염려하지 말고 네 뜻대로 하도록 해라.}
{신선께서 분부하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소선풍과 조예진의 얼굴에 기쁨이 가득찼다.
이미 모든 일은 다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주하운은 다시 주소아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너도 아무걱정 하지 말아라. 편안한 마음으로 어른들의 말씀에 따르도록 하여라.}
{네!}
대답하는 주소아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부탁이 있는 게로구나. 말해보아라.}
너른 별채 안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단지 주하운의 잔잔한 음성과 그 음성에 답하는 다른 음성만이 존재할 뿐...
주소아는 손을 들어 사옥상을 가리켰다.
주하운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오너라!}
그의 음성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며 흘려나왔다.
백치가 되어있는 사옥상은 그 음성에 끌리듯이 일어서면서 주하운을 향해 갔다.
{너는 큰 일을 겪고 영(靈)이 아직 껍질 속에 갖혀 있구나.
천하에 너같은 기재(奇才)는 셋을 넘지 못하겠구나!}
주하운의 손이 그녀의 머리를 스다듬었다.
그러자 그녀는 스르륵 주저앉으며 잠이 들고 말았다.
그녀의 몸은 부드럽게 허공으로 날아서 사은상의 품으로 가버렸다.
{깨어나면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게다.}
사은상이 머리를 숙여 감사했다.
주하운이 조예진을 바라보았다.
{이제 한가지 일 만하면 여기서의 일은 다 보는 것 같구나!}
조예진이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신선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시던 달게 받겠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벌할 수 있겠느냐? 일어나도록 해라!}
조예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소중아! 인사올리도록 해라.}
{백소중이 인사드립니다.}
조예진은 마주 답례했다.
그가 새로이 혈기문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정중했다.
{너희들은 자주 보았으면 좋겠구나.}
주하운이 한천이기를 보면서 말했다.
{이보다 더한 광영(光榮)이 없겠습니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크게 기쁘하며 머리를 숙였다.
그들이 머리를 들었을 때
주하운은 백소중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가 허공으로 아득히 사라지고 있었다.
이극송이 소선풍에게 물었다.
{그가 정말 신선인가? 세상에 정말 신선이 있는가?}
{방금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소선풍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물음으로 대답했다.
별채의 분위기는 조금 전과는 아주 달라져 있었다.
지금은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것 같았다.
주하운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대체 그가 누군데 자네가 그토록 존경하는가?
내가 보기엔 황제도 그런 존경을 받지 못할걸세.}
{더이상 그분에 대한 말씀은 거론하지 말아주십시오. 혹시 실수라도 할까 두렵습니다.
우리로서는 감히 그분을 앞에서고 뒤에서고 부르지도 못합니다.}
소선풍은 말하고는 입을 다물고 다시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극송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의문이었는데
주소아와 한천이기를 바라보아도 그들의 입조차 굳게 다물려 있다.
모르는 사람들은 의문을 가지고 아는 사람들은 걱정을 버린채
마시고 노는 사이에 소일초를 실은 호송마차는 아무탈 없이
등봉현을 통과해서 태실봉 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일천 명의 정천보 고수들에 둘려싸여서...
* * *
숭산 태실봉을 향하여 달리는 마차는 지나가는 땅마다 깊은 바퀴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겉모양은 보통 마차와 같았지만
그 속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하나의 작은 철옥(鐵獄)이다.
말을 타거나 경신술을 펼치며 마차의 사방에서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이 달려가는데,
마차 안에서는 폐인이 되다 시피한 청년이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 위쪽에는 험악하게 패여 두개골이 드러나 보이는 심한 상처를 입고 있으며,
갈라져 있는 옷 사이로 시뻘겋게 갈라져 아물지도 않은 긴 상처가 보였다.
바로 소일초였다.
혈군자의 장환술을 격파하지 못하여 두 사람으로 부터 깊은 상처를 입고 황녹천에게 잡혔던 그...
벌써 이틀동안을 마차에서 보냈건만 그의 상처는 조금도 차도가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일 먼저 걱정이 되는 것은 격전 중에 잊어 버렸을 백인장의 신물
청옥소도와 사부인 검마의 사리(舍利)를 원천기 등이 찾아 주었을까하는 것이었다.
둘다 그에게 소중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하나는 가문의 상징이고 하나는 자신을 주켜주던 스승의 진체사리이다.
그것들이 가치없이 버려지거나 남의 손에 들어간다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더우기 청옥소도에는 백인장의 최고 절학인 마도구식이 숨어있기까지 하는 것이니
무림에 나돌면 능히 혈겁을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위험을 느끼고 다급히 깨어나지도 않은 사옥상을 땅에 뭍은 것도 마음에 걸렸다.
숨은 쉴 수 있도록 해 놨으니까 질식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원천기 등이 돌아오기 전에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온다면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닐 그녀가 어떻게 할 지 짐작 할 수가 없었다.
또한 자기를 생포한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 역시 그의 의문 중 하나였다.
황녹천이 어떻게 해서 탕마사십사객과 함께
혈군자나 마금석같은 고수들을 데리고 자기를 공격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은상의 말로는 삼수가 구대문파를 장악하는데 황녹천의 도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수 많은 의문들, 어느 하나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는 의문들과 더불어
그의 생각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장환술을 어떻게 대처하는 가 하는 것이었다.
절세의 무공 일초검공도 상대가 어디 있는 지는 최소한 알아야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숨도 쉬지 않고 심장의 박동도 들리지 않으며
전혀 기척도 없이 보이지도 않는 중에 공격해 들어오는 것은 진짜 유령과 싸우는 짓이다.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흔적도 없이 도륙당했을 지도 모르지!)
{일초야 일초야! 그 걸 어떻게 깨뜨린단 말이냐?
사부께서 가르쳐 주실 때 배워 놀 것이지 이제 와서 그때를 후회한단 말이냐...휴!}
무학이 아주 깊은 경지에 이른 대 고수들은 장환술에도 대부분이 일가견이 있다.
장환술도 역시 무학의 한 분야이기에 연구하는 것이었다.
-장환술(障幻術)!
환상을 만들어 내고 나약한 정신과 완고한 정신 등 모두 정신적인 틈을 파고들어가,
눈과 귀를 막음은 물론 심한 경우 수족을 묶어버리기도 하는 정신의 무공이었다.
환술이라고도 하는 것은 흔혹되지 않으면 되지만
그만한 수양을 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무공과 결합되어 펼쳐지는 장환술은 아주 무서울 수도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장환술을 깨뜨릴 능력이 없는 자라면...
{무공이 강하면 뭘하나! 장환술은 깨뜨릴 방법이 없는데,
제길... 반쯤 죽었을때 사부를 찾아서 다시 배워갖고 오는 건데...}
남만의 검마동에서 사부와 함께 있을 때 였다.
검마는 비록 일초검공 하나로만 이름을 떨쳤지만 다른 무공에 대한 이해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장환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깨뜨리기는 물론 펼칠 수도 있었다.
소일초에게 그가 말했었다.
{장환술을 깨뜨리자면 펼치는 사람에 응해서도 안되고 거부해서도 안된다
. 시전자는 그것을 노리는 것이다.}
검마는 그에게 장환술과 깨뜨리는 방법을 가르키고자 했으나
고집불통 소일초는 잡술(雜術)이라며 배우려 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장환술은 강력한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기에
변덕이 심한 그가 배우려면 얼마나 혼이나야 할 지 알 수 없었기에
이 핑게 저 핑게로 건너 뛴 것이었다.
검마는 그당시 한숨을 쉬었다.
{배울 때 배워 놓지 않으면 언제가 후회할 때가 오는 법이거늘...}
{검은 천하병기의 으뜸이고 도에 이르기 가장 정통적인 방법이라 하셨죠?
그럼 검술 하나로도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전 안 배울래요.}
소일초는 자신있게 말했었는데 사부의 말은 사실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마차는 정천보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그의 생각은 해답을 찾아서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해결책...
{상대방에 응하지도 말고 거역하지도 않으면 깨뜨릴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스스스!
순간 만년한철로 된 마차의 한쪽에 희미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가 도와줄까?}
소일초는 흠칫했다.
이 마차 안에 사람이 나타나다니...
창살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이는데 한 모퉁이에 단정히 앉아있는 미남청년,
그를 발견한 소일초는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것보다 더 기뻤다.
이리저리 터진 몸을 가누고 넙죽 절을 했다.
{여기서 나가겠느냐?}
{아닙니다.}
{몸을 완전히 상했구나. 죽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다.}
주하운이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 했다.
소일초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몸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저...내기 도박 딱 한 번 만 하면 안되겠습니까?}
소일초는 뼈가 드러난 머리를 긁으며 히죽 웃었다.
주하운도 어처구니없는 그의 태도에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견딜 만 하기는 한데 곤란한 점이 있는 모양이지!?}
{네!}
{아까 중얼거리던 것 말이냐?}
{네!}
소일초는 싱글벙글했다.
저승에 가서 사부를 모시오지 않아도 장환술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이 젊은 형씨가 모르면 천하의 누가 안단 말인가?
소일초가 처참한 모습으로 귀신처럼 웃는 모습을 주소아가 봤으면
평생 곁에 오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것도 내기로 결정하자. 나도 걸어야할 중대한 것이 하나 있으니 잘됐다.}
주하운은 소일초와 만나면 체면이고 뭐고 어디론지 반쯤은 달아나 버리고 그와함께 어울린다.
손녀 사위될 젊은이와 이런다는 것이 체통이 서는 일은 아니지만 누가 알라고?
{이번에는 어떤 방법으로 할까요?}
소일초는 자신만만하게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필승이라고 할 수 있지. 내가 방법을 정하지.}
{그럼 제가 원하는 것을 주셔야 합니다.}
{좋아. 내가 원하는 것은 이번에도 한가지 뿐이야.}
주하운도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듯 했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내가 장환술을 깨뜨리는 방법을 금방 가르쳐 줄 수 있으면 내가 이긴 것이고
일 각 이내에 가르쳐 주지 못하면 네가 이긴 것으로...}
{그...그럼...}
소일초는 아주 당황했다.
설마 그런 내기를 걸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른 내기에서 이긴 조건으로 장환술을 가르쳐 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벌써부터 자기의 넋두리를 다 듣고 있었는지 먼저 그걸 들고 나온 것이다.
장환술을 배우기는 하겠지만 주하운의 승리가 될테고 조건으로 무언가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 절실히 필요한 장환술을 깨는 비법을 귀를 막고 배우지 않을 도리도 없다.
소일초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고 만 것 같습니다. 조건을 말씀해주십시오.}
하하하하-!
주하운은 크게 웃었다.
이제야 전에 당했던 앙갚음을 톡톡히 하게된 것이다.
속아서 무공가르쳐 주고
거기다 열흘 동안 창산기슭에서 꼼짝도 하지않고 앉아 있었던 보복을 하는 것이다.
웃음소리가 컸지만 소일초도 걱정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가 있는 이상 그가 다 알아서 할 것이다.
웃음소리는 마차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다.
{내 조건은 간단해.
앞으로 소아가 낳는 아이들 중 두 번째의 사내 놈에게
반드시 주씨성을 붙쳐주고 나한테로 보낼 것!}
{그...그건 제 아버지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요?}
{선풍이 그 놈이 뭐라고 하면 내가 훔쳐가 버릴 테니 그렇게 알라고 해!}
{소아는 무공이 강해서 어쩌면 아기를 낳지 못할 지도 모르는 걸요! 작은 어머니처럼요.}
{그런 걱정 하지 않아도 돼. 앞으로 잘만 낳을 거야
. 만약 딴소리하면 또 직접 백인장으로 가서 훔쳐서라고 가버릴 거니까 좋게 들어.}
소일초는 낳기는 커녕 만들어 지지도 않은 둘째 아들 놈을 도박으로 날려버렸다.
주소아가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지 화를 낼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앞으로 마누라도 도박으로 날릴 놈이라고 하지는 않을까 모를 일이었다.
낳지도 않은 아들은 예약되 버렸고...
마차는 달려가는데 어떤 장환술이건 간단히 깨어버릴 수 있는 비법은 전수되고 있었다.
{그 쌍둥이 처녀들 중 정신을 금제 당했던 아이도 네 여자냐?}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근래에는 무림에 기재들이 많이 나타나는 구나.
그 아이도 너와 소아, 그리고 소중이를 제외하고는 따를 사람이 없을 기재이더구나. 휴...}
{그 여자는 정신이 조금 모자라는...}
{어릴 때의 충격때문에 정신의 발육이 멈춰버렸었던 거야
. 고쳐줬으니 그 값은 나중에 쳐서 받겠다. }
그말을 듣고 소일초는 질겁을 했다.
{또 아이입니까?}
{아이는 됐어. 다른 걸 생각해 봐야지!.
소영감은 무슨 복이 많아서 후손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맺히고
나는 하나있는 손녀까지 빼앗겨 버려야 하나!
그 영감이 아직도 한번 진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있나!}
그는 소일초의 조부(祖父)인 도치(刀恥) 소호연(蘇昊硯)이 무척 부려운 듯 했다.
{나는 가마!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있더라. 네 물건들도 안전하게 회수한 모양이고...
물가에서 고깃덩어리까지 잔뜩 가져온 모양이더군!
에잇, 나는 그놈들이 보기 싫어서라도 이쯤에서 북경으로 가버려야겠다.}
주하운은 말을 마치자 마자 안개처럼 흩어지며 마차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말하는 그놈들은 두말하지 않아도 삼수(三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떠나는 주하운은 마음이 홀가분 했다.
뜻 밖에도 소일초가 심각한 상태가 아니어서 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았고
자신의 배덕한 제자들은 소선풍 등이 알아서 제거할 것이다.
손녀도 만났고 귀엽던 조예진도 다시 만났다.
이 천하제일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백소중과 함께 북경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백인장의 힘을 알기에 정천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 × ×
이 보다 앞선 시간,
백인장의 모든 고수들이 한 곳에 모아 놓고
원천기가 별채의 벽에다가 사람 키만큼 큰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의 키는 여섯 자가 될락 말락하고, 체형은 나와 거의 같소이다.
무게는 내가 아닌 여기 어느 분이 가장 잘 아실 것이고...}
킥킥킥!
여기저기서 주소아를 바라보며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이 발갛게 되어 원천기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모른 척하고 계속 말한다.
{눈은 장주님이신 소대협의 눈을 그래로 그리면 되겠고...볼은 심술기가 있으니까 아마...}
그는 더 말을 잇지는 않고 소일초의 생모인 이주용을 힐끗 본 후에 그대로 그렸다.
우하하하-!
이극송과 소선풍마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웃어버리자
백인장의 사람들 모두가 기회다 싶어 마음놓고 웃었다.
이주용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는데,
주소아는 그 모습까지 소일초가 화날 때의 모습같아 보였다.
(어이구 시원하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구나!)
남아있는 일곱 원로도객의 우두머리 동평선생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모든 원로도객들이 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계속해서 코는... 귀는... 턱은 하면서 원천기가 재미나게 이야기 하면서 그려나가자
어느새 소일초의 그 얼굴모습이 되어버렸다.
소선풍과 이주용이 있었기에 더욱 완전하게 그릴 수 있었다
. 부모를 닮지 않은 자식이 어디있어야 말이지!
원천기는 소일초의 변해버린 모습을 백인장의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이제 정천보에 들어가게 되면 마주치게 될테니까 몰라보고 살수를 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백인장의 사람들과 그 친구들은 느긋한 마음으로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승리는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었다.
그들이 병기를 점검하고 호기를 불태우고 있을 때 하늘에서 커다란 검은 새가 두마리 내려왔다.
그들은 비성성(飛猩猩)이었다.
현재 백인장의 사람들 치고 비성성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다.
몇 년을 백인장의 가라앉은 섬에서 보낼 때
그들의 가장 재미나는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비성성들의 소동을 보는 것이었다.
그 비성성들은 사람들의 생활을 흉내내려고 여러가지 짓을 하곤 했었는데
엉뚱하고 괴상하여 우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조예진이 비성성의 말을 대충 알아듣고 사람들에게 말해주었다.
{마차가 이십 리 정도 달려갔다고 합니다.
지금 쫓으면 그들의 방심을 틈타서 쉽게 정천보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동은 즉시 이루어지고...
일백 삼십 여 명에 달하는 고수들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백인도객(百刃刀客)!
백인장이 생긴 이래로 최초로 모든 백인도객이 한 곳으로 출동했다.
누가 이들을 대적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문파에서 이들의 힘을 당할 수 있단 말인가?
일천 명이 넘는 고수들에 둘러싸인 마차는 정천보에 점점 가까워지고
그들의 뒤에서는 무림최강의 문파 백인장의 주력이 뒤따르고 있었다.
× × ×
마차 안에서 소일초는 정천보가 가까워 옴에 따라서 몸을 정비하고 있었다.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다른 방법으로 정천보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자기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원래의 계획대로 정천보로 모여들고 있을 것이다.
주하운이 이미 그들을 만나본 듯 하지 않았던가?
사은상의 증언에 의하여 삼수가 정천보의 우두머리 임은 이미 밝혀졌으니
그들을 죽이는 일 만 남았다.
자기를 호송하고 있는 황녹천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 그는 무공으로 행세하는 자가 아닌
비밀과 음모로 살아가는 자이니까 무식하게 때려잡으면 될 것이다.
건방진 구파일방이야 삼수를 때려부순 후에 추궁해도 될 것이다.
소일초는 손으로 머리를 스다듬었다.
머릿가죽의 일부분이 찢어져 나가고 흰 두개골에 패여진 상처가 남아있었다
. 혈군자의 섭선에 당한 흔적이다.
손바닥으로 슬금슬금 문지르자 뼈가 아물고 머릿가죽이 다시 덮혀나왔다.
상처가 깊은 곳이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다
. 그의 몸속에는 백송균화의 힘이 있으므로 생명을 살리고 물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내상도 치료하고 외상도 치료했다.
만신창이 되었던 사옥상의 몸도 깨끗이 치료했는데 자기 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외상이 치료되고 나니 공력은 절로 되살아났고
마차의 문이 열리고 삼수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손에서 붉은 마황검이 일렁이다 사라졌다.
* * *
태실봉의 정천보로 올라가는 길은 넓고 고르게 잘 닦여져 있었다.
이곳은 정천보가 있는 곳에서 십리도 되지 않는 곳이다.
-하마령(下馬嶺),
정천보가 들어서기 전에는 길이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악(五嶽)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나온 황제라 할지라도 말에서 내려야 하는 고개였다.
길은 좋아도 고개를 없애지는 못했다.
-멈춰라!
사방에서 울리는 육합전성의 목소리,
바로 무적검을 잡아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중원제일의 신비인이자 녹림맹주인 황녹천이었다.
마차는 멈춰지고 황녹천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이곳 하마령에서 잠시 쉬어간다.
정천보가 눈앞이니 해지기 전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경계를 철저히 하면서 명령이 있을 때 까지 쉬도록...}
그제서야 사방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며 일천여 명의 고수들과 말들이 쉬기 시작했다.
끼리릭! 덜컹!
마차의 철문이 요란한 소음을 내면서 열렸다.
{무적검, 죽지는 않을 모양이군.}
황녹천이 마차 안으로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소일초는 등을 보이고 누워있었다.
{나를 조롱하기 위해서 들어왔나?}
{천만에,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할까 싶어서...}
황녹천은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많이 컸군, 황녹천. 내가 발톱빠진 사자같은가?}
{그런 말은 하지 마세. 자네와 이야기만 잘 되면 나는 자네 몸을 치료해 줄수도 있네.}
황녹천은 예의 그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천보에 들어가기만 가면 제일 먼저 죽여버리겠다.)
소일초는 속으로 다짐을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소림사의 대환단(大丸丹)이지,
이것 하나면 자네의 내상은 물론 외상도 어느정도 치료되겠지!}
황녹천은 작은 옥병에서 구슬만한 알약을 꺼내 보였다.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그의 말처럼 정말 대환단인 모양이었다.
(이 계집이 무슨 수작을 하자는 거야?)
소일초는 그 전에 주소아로 부터
황녹천이 여자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그를 계집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으면 자네는 정천보에 갈 것 없이 여기서 죽게 되겠지!}
황녹천의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호한 음성이었다.
{나에게 유리한 이야기라면 마다할 리가 없겠지!}
소일초가 말했다.
{좋아 무적검! 솔직히 다 말하겠다. 나는 지금 삼수의 밑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 조건이라면 더할 나위없이 좋지. 나 역시 삼수를 죽이고 싶으니까.}
황녹천이 조건을 제시한다.
{네가 정천보를 장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그러면 너는 명실공히 정사무림을 일통한 무림의 제왕이 되겠지?}
{구미가 당기는군, 하지만 너는 무엇을 얻게 되지?}
{무림이 일통된다고 하더라도 정사가 뒤섞일 수는 없겠지,
필연적으로 분리해서 통치해야 할테고
그러면 최소한 두 명의 군왕(君王)이 필요하게 될 거라고 생각되지 않은가?}
{그래야겠지!}
{내가 원하는 것은 그 중의 한 군왕이다.}
황녹천은 의미심장하게 소일초의 등을 보고 웃었다.
소일초는 여전히 처음의 자세대로 말만 주고 받는다.
{왜 스스로 무림을 일통하고 제왕이 될 생각을 하지 않지?}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나에게는 머리만큼 무공이 따라주지 못해.
필연적으로 무공이 강한 자를 업고 있어야만 무림의 강자들을 상대할 수 있지.
네 무공과 내 머리가 결합하면 천년의 무림제국을 건설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황녹천의 야심은 정말 어이가 없을 정도로 컸다.
{대단한 야심가였군, 황녹천 너처럼 거대한 몽상을 가진 자를 난 만나본 적이 없다.
왜 그 야심을 삼수와 함께 하지 않나?}
소일초가 묻고 싶은 것을 물었다.
{처음엔 그럴 생각이었지. 아니 그 전에는 구파일방을 이용할 생각이었어.
구파일방의 수뇌들 중에서도 옛날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야심가들이 적지 않거든,
한데 그들 중에 진정 대단한 인물은 없었어.}
{...!}
{모두가 그렇고 그런 정도였지,
조금 났다는 것이 소림사의 도봉이나 선인일검자나 홍건개 정도였으니까.}
{녹림맹주인 네가 어떻게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
소일초에게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였다.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의 신비가 벗겨지는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구파일방의 세력이 위축된 만큼, 그들의 살림도 빈약했지. 그건 접근할 좋은 기회였다.
처음에 그들에게 신분을 밝히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금과 은을 보냈지!}
{...!}
{처음엔 적은 양이었으니까 별생각 없이 받더군, 그래서 점차 그 양을 늘려나갔지.
그들의 생활은 윤택해졌고 배에는 기름이 끼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이미 나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곤란하게 되었고...}
{...}
{나의 존재에 상당한 신경을 쓰기 시작했지,
그것은 곧 나의 영향력의 증대를 의미했고
나는 그들을 배경으로 녹림맹을 천하의 종주로 만들려고 했었지.}
그의 말에 소일초가 의문을 제기했다.
{구파일방이 그렇게 어리석지만은 않았을 텐데...}
황녹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삼성무림청과 우리 녹림맹의 싸움이후에 구파일방은 단교를 선언하고 나왔지.
자기들의 치부가 노출될까 싶어서 두려워한 것이었어. 그래서...}
{...?}
{화가 난 나는 그들과 지내면서 파악해 놓아던 것들을 토대로
그들을 삼수에게 팔아버릴 생각을 했다.
하늘이 나를 도와서인지 삼수는 옥녀봉의 결전에서 심한 타격을 받고
잠적할 장소를 물색하는 중이었지!}
소일초가 빈정거렸다.
{정말 하늘이 도왔군!}
황녹천은 그의 말에는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만 했다.
{삼수와 손을 잡고 구파일방의 우두머리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지.
지금의 인물들은 모두 가짜고 우리의 꼭두각시야.}
말을 하다 말고 황녹천은 한숨을 쉬었다.
{그때는 정말 기뻤지. 내 야망의 반은 달성된 듯 했으니까.
구파일방은 손아귀에 들었고, 삼수는 내 의견을 존중해 주었어. 한데...}
소일초는 침을 삼켰다. 이제 진짜 중요한 대목인 것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는 고문으로도 다 들을 수 없다.
하고싶어서 하는 거야 말로 진실이고 깊이있게 이야기되는 첫사랑의 추억담과 같은 것이다.
황녹천이 말을 이었다.
{삼수가 미쳐버렸어!}
황녹천의 말은 던져버리듯이 튀어나왔고, 소일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근래에는 무림의 고수가 미치는 것이 무슨 추세라도 되는가?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적이 언제라고 또 삼수마저 미쳤단 말인가?
{셋 모두 말인가?}
{그래, 그들은 마공에 미쳐서 괴상한 짓을 서슴지 않았어.
무림일통같은 목적은 희미해져 버리고 파괴와 살인에만 정신을 쏟는 거야.
끔찍한 마물들을 만들어 가면서...}
소일초는 황녹천의 말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삼수가 칠십이기재들의 한과 저주, 천지파멸의 뜻을 실행하려는 거야!)
끔찍한 일이다.
그들이 무림일통 정도가 아닌 천지파멸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그 참상은 측량할 수 도 없을 것이다.
삼수...
그들은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은 후에
자기들의 무공과 결합하여 더욱 가공할 무공으로 만들어간 것이다.
게다가 마공의 사악괴이한 수법들에 눈을 뜨면서 점차 깊이 빠져들어가서
칠십이기재들이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원했던 그런 마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직 피와 파괴만을 추종하는 천지파멸의 도구가 되어버린 샘이다.
뜻밖의 장소에서 칠십이기재가 원하던 마교지존(魔敎至尊)들이 나온 것이었다.
이것은 칠십이기재는 물론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원천기가 옛날 같으면 제일 좋아할 일이겠군, 세명의 종자가 생겼으니...)
황녹천이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너에게 죽은 세 마물들, 탕마령주와 혈군자,
그리고 마금석들은 그들의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었지.
천하의 무적검인 너도 정신없이 혼이 났을 정도니까.}
{...!}
{지금 쯤은 그런 마물이 아마 백여 개는 만들어 졌을 걸?
그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만들 수 있게 됐거든.}
소일초는 입이 딱벌어질 정도로 경악했다.
그런 마물들이 백여 개라면 백인장의 고수들이 위험할 지도 모른다. 아니 위험할 것이다.
{얼마 후 세상은 그들 마물들로 인해서 피에 젖지 않은 곳이 없어질 거야.
천하에 사람이 남아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황녹천도 고개를 내저었다.
{두려운 일이야 두려운 일...}
소일초가 말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이라도 있는 건가? 너 역시 그 일에 동참하지 않았나.}
{그래, 하지만 내가 원한 것은 무림의 패권에 동참하겠다는 것이지
세상을 깨뜨리려는 것에 동참하려는 것이 아니었지!}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맞추었어. 그건 바로 마장탑의 칠십이기재들의 뜻인 천지파멸을 위한 일이야
. 그 뜻을 삼수가 이행하고 있는 것이지.}
황녹천이 소일초의 등을 보면서 말했다.
{너도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조금은...!}
{상관 없지. 아무튼 삼수를 제거해야겠어.
그리고 난 후에 그 마물들을 없애야 겠어.}
{어떻게?}
{처음엔 너를 나의 명령만을 따르는 마물로 만들어 그들을 차례로 죽일 생각이었지.
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직접 너와 거래하기로 한거야.}
소일초가 신중하게 물었다.
{삼수를 만나면 알아볼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은 신분을 감추는데 도가 튼 자들이지.
그래서 내가 만약의 경우에 그들을 알아보기 위해
내공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한옥패를 자철(磁鐵)로 만든 목걸이에 끼워서 선물했었지.}
{...!}
{그들은 그 목걸이를 한 시도 떼어놓는 적이 없지,
내공을 높여준다는 무림기보인데 어찌 몸에서 뗄 수 있겠나?}
소일초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걸로 삼수를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황녹천의 머리가 끄덕여졌다.
{물론, 금광을 찾는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자침(磁針: 나침반)만 있으면
그들이 근처에 오는 즉시 알 수 있지.}
소일초는 황녹천이란 인물이 정말 야망을 품을 만큼 대단한 두뇌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림에 그가 깔아놓은 복선이 얼마나 많을 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대충 할 말은 다한 것 같군, 이 대환단을 먹고 상처를 치료하게,
삼수만 자네가 제거해 주면 내가 마물들을 제거하고 정천보를 장악해 자네에게 바치겠어.
그럼, 자네는 무림의 제왕이 되고 나는 무림의 군왕이 되는 거지. 사실...}
{...}
{정천보 같은 반쪽의 주인이 되는 것 보다는
최초로 통일된 무림의 이인자가 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지!}
황녹천은 그의 등 뒤에 한자루의 단검과 대환단을 놓고는 나가버렸다.
출발이다--!
그의 명령에 따라서 마차와 함께 일천여 명의 사람들이 움직여갔다.
두두두두!
× × ×
마차가 다시 움직이자 소일초는 대환단을 품에 넣고 단검을 보았다.
단검의 끝은 다른 쇠를 붙쳐서 만든 것이었다
. 단검을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곤충의 촉수처럼 휘어지며 북쪽을 가리켰다.
교묘하게 만들어진 자침(磁針)인 것이다.
마차는 마침내 정천보의 문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계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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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즐감
감사 드립니다
이제 삼수만 잡으면 되겠는데??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