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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산공소 어제 아침 내 깐에는 꽤 서둘렀다 싶었는데, 찬 물병 한 개를 집어 들고 얼른 버스에 오르니, 부지런하신 선후배님들과 49회 친구 둘이 5분전에 도착한 나를 반가이 맞아 주었습니다. 밤잠을 설친 탓에 묵주기도를 마치고는 틈틈이 잠을 청하느라 아름다운 동해안의 경치를 감상할 기회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다 왔다!”라는 소리에 차창 밖을 보니 새 교황님의 모습과 경가회 호산 천주교회 방문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실린 두개의 현수막이 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가끔 경가회 홈에서만 보아온 작고 아담한 성당과 성모상 그리고 벽화 등이 바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마냥 후덕해 보이는 45회 이경희 선배님께서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환한 미소로 우리 모두를 맞아 성당 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니 새하얀 벽에 또 한번 눈에 익은 14처가 보이고, 소박한 제대며 장궤틀 등에서는 방금 나무와 페인트의 향이 베어날 만큼 모두 새것임을 한 눈으로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한꺼번에 130명의 신자들이 들이닥칠 것을 예상하여 제대 위까지 의자를 마련해 놓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를 맞으려 애쓰신 흔적들이 여기저기에서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검게 탄 얼굴에 작고 단단해 보이는 체구를 지닌 젊은 사제와 노 부제님께서 경가회 회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대에 오르셨습니다. 한상우(바오로) 신부님께서는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방문을 기다릴 때처럼 오늘을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고대하고 있었는지 모른다며 진정 온몸으로 우리들을 반기시면서 미사를 시작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강론이 시작되자 사제는 시심으로 가득하여 김춘수 시인의 “꽃”을 또박또박 큰소리로 낭송하면서, 자신에게 꽃으로 다가온 누님 또는 어머니가 되시는 경가회원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호산에서 태어나 바로 이 공소에서 사제의 꿈을 키워 지난해 12월 서품을 받은 호사공소의 첫 번째 사제입니다. 지금은 안 계시지만 알코홀 중독이셨던 아버님 때문에 언제나 낮은 자존감과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상처를 치유하여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시고 사제로 만들어 주신 하느님이 계시기에, 저는 저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의 “향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읊으시고는 또 한번 “크~”하고 감격에 겨워하시며 참사랑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아픔은 치유되지만 상처 자국은 남아있어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 가끔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고 그러던가요?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 보이시면서 까지, 치유해 주시는 하느님,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마음을 다해 전해주신 젊은 사제가 서정주 시인의 “국화꽃 옆에서”로 강론을 마치셨을 때, 우리는 모두 다같이 “크~”하고 소리 내며 큰 박수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 야고보 부제님께서는 카나다에서 이곳 호산에 오시게 된 연유와, 오늘이 있기까지 힘들었고 또 보람된 일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면서 경가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하시기도 했습니다. 하느님만이 알고계신 호산공소의 청사진이 언젠가는 그 모습을 드러내어 우리가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날이 올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미사를 진행하던 후배가 안경순 선배님(45회)께 “향수”를 노래로 불러주시기를 청하자, 사양치 않으시고는 특유의 바이브레이션과 고운 음성으로 열창해 주시어, 호산공소를 빛나게 하시는 사제님과 부제님, 그리고 이경희 선배님과 우리 모두를 기쁘게 해 주셨습니다. 산나물 비빔밥과 된장으로 끓인 미역국도 일품이고, 열무김치와 상추쌈 고추장 등을 연상 더 가져다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서, 삼척의 특산 건어물과 말린 고사리, 산나물 등을 사들고는 서둘러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분당에 살다가 아토피 질환을 가진 아들 때문에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이곳으로 이사하여, 남편은 이제 어부가 되고 말았다는 삼척 본당 자매님 한분이 동승하여 삼척에서의 볼거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일출보다는 서서히 진행되는 월출이 장관이라는 말에 한 번 더 와보고 싶어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습니다. 올 때 느끼지 못했던 동해안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신 부제님과 이경희 선배님께서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울러 선교의 열정을 몸소 실천하고 계신 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준비하고 애써주신 오덕주 회장님과 임원님들의 노고에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
첫댓글 변혜경 선배님의 "호산공소"에 대한 답글을 뒤늦게 보고는, 제가 올려야할 줄 알았으면 메모라도 좀 해 둘걸 하면서, 어찌어찌 그냥 어설프게 어제의 일을 엮어 올리고 보니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냥 너그럽게 보아 주세요
메모 안 하셨는데도 어찌 이렇게 감동이 살아나게 잘 쓰셨는지요! 늘 백종혜님과 유병숙님이 피정에 모습을 보이시면 안심이 됩니다.또 완벽한 묘사로 감동을 살려줄 글을 올려주시겠구나 하구요.한신부님의 감격어린 열열한 강론이 일품이었고 수도자 같이 엄숙한 풍모의 부제님의 wit와 유머 섞인 선교계획도 감격이었습
준비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부탁받고 글을 써 준 종혜에게 감사! 어설프게 엮었다지만 감격이 되살아나도록 잘 써 주었으니 안심하세요.
백종혜님. 이게 어설프면 정말 잘 쓴것은 어떨까요? 부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경운회 게시판에 보면 박유정씨가 경가회에 경운회보 원고를 요청하던데요. 선배님 이 글을 보내면 어떨까요? 사진은 김태숙 선배님 사진으로 보내고. 그 날의 분위기 너무 생생해서 좋습니다.
백 선배님, 메모도 없이 감동을 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호 후배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45회 홈피에 이종엽 선배님의 작품이 있습니다. 꼭 다들 보셔요!!! 그런데 비아님, 안 자고 뭐해요? 올빼미예요?
나는 아직도 호산공소 방문의 여운을 정리 못하고 있습니다. 우선 올려주신 글에 감사드립니다.
헬레나, 그대의 가슴 우리는 글솜씨는 익히알고 있었지만 또 한번 그날의 일들이 주마등같이 지나갑니다. 늘 애 많이 쓰는것 알고 있어요. 이종엽의 작품 사진들은 이미 경가회 계시판에도 올라와있습니다.
선후배님들. 음미할수록 모든것이 감격스럽습니다. 이런것이 우리에게는 큰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어요. 한동안 이 감동을 안고 기쁘게 살겠습니다. 이 흥분이 갈아 앉으려면 한동안 갈거에요. 후기를 쓰려는데 이번 주일이 군인들 마지막 주일이라 송별회를 해야해서 또 바쁘게 쫓아 다니고 있어요. 샬롬
종혜야 ,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아름다운 정서적인 스케치로 보는이들을 기쁘게 해주었네. 내가 부탁했을 때는 못한다고 잡아 떼더니만...슬관절통으로 참가 신청을 하고도 취소했는데 즐거운 동행에 불참해서 손실감이 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