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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님의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것은
해가 서쪽 아파트 벽에 비스듬히
걸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신장 기능이 거의 멈추었다고 했다.
의사의 말은 끝까지 다 말하지
않았으나, 나이가 들면 사람은 안다.
세상에는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다 말해지는 문장이 있다는 것을.
그런 말은 대개 조용하다.
조용해서 더 깊이 사람을 파고든다.
전화를 끊고 나는 한동안
베란다에 서 있었다.
늦가을이었다.
맞은편 동의 유리창마다 기운 햇빛이
얇게 걸려 있었고,
단지의 은행나무들은 거의 다 잎을
비운 채 가지 끝만 드러내고 있었다.
바람은 없었으나, 다 져서 땅에 눕기
시작한 잎들이 제 무게로 서로를
스치는 소리가 아주 미세하게 들렸다.
그 소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계절이 다음 계절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소리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우리 차례가 시작되는구나.
부모님을 다 떠나보낸 뒤에도
형제들은 오래 서로의 살아 있음
쪽을 바라보며 지냈다.
설날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부를 묻고, 제삿날이 가까워지면
누님의 손맛이 어떠했는지,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어느 방문 앞에서 먼저 들리곤 했는지
같은 이야기가 되살아났다.
부모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분들이 살던 집의 저녁빛은
아직도 형제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는 그 저녁빛의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나는 유리문을 열고 베란다로
한 걸음 더 나갔다.
난간은 햇빛을 받아 미지근했다.
손바닥을 대보니,
금방 사라질 열이 아니라 낮 동안
오래 데워진 물체만이 내는 묵직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손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사람의 생도 저런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해가 기울어도 돌은 한동안 따뜻하다.
빛은 물러가도 온기는 남는다.
그 생각은 그날 저녁 내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삶이 앞으로만
열린 길이라고 믿었다.
더 나은 강의를 해야 했고,
더 많은 학생을 길러내야 했고,
더 옳은 제도를 만들어야 했다.
무엇이든 막 시작되던 시절에는
시작하는 일이 곧 사랑하는 일인 줄
알았다.
애쓰는 만큼 오래 갈 것이라 믿었고,
많이 쥔 만큼 많이 남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질문은 조금씩 바뀌었다.
어떻게 더 멀리 갈 것인가에서
어떻게 잘 물러날 것인가로.
무엇을 더 이룰 것인가에서
무엇이 나 없이도
이어지게 할 것인가로.
돌이켜보면 나는 평생 사람을
독립시키는 일을 하며 살았다.
강의실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졸업한 뒤에도 그들이 어느 날
자기 발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때는 지식을 전한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와 보니 내가 끝내 전하려
했던 것은 지식보다 태도였다.
정답보다 질문하는 버릇,
성취보다 견디는 힘,
남보다 앞서는 법보다
자기 몫의 길을 오래 걷는 법.
합창단 총무를 맡았을 때도 비슷했다.
사람을 모으고,
회비를 정리하고,
악보를 관리하고,
공연 일정을 맞추었다.
합창단이 오래 지속되려면
누구 한 사람의 열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질서는 눈에 띄지 않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
물길이 낮은 데로 흐르듯,
공동체도 보이지 않는 손길이
조금씩 바닥을 고르게 다져 놓을 때
오래 버틴다.
은퇴하고 한동안은 불안했다.
혹시 합창단이 흐트러지지는 않을까.
내가 손보던 자리가 비어 공동체의
숨이 가빠지지는 않을까.
하지만 시간은 대개 사람보다
더 정확하다.
내가 없어진 뒤에도 합창단은
여전히 노래했다.
공연은 이어졌고,
신입 회원들이 들어왔고,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같은 곡의 다른 파트를 맡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운했으나,
차츰 그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남아서가 아니라,
내가 없어도 계속되는 것.
누군가의 손을 떠난 뒤에도
무너지지 않는 것.
사랑에는 그런 형태도 있었다.
반면 친목회 일은 조금 달랐다.
내가 총무를 맡던 시절 만든 다음카페와
연락 방식은 후임에게 거의 쓰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쉬웠다.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고,
편리하다고 믿었으므로.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았다.
강둑은 남아도 물은 늘 새롭다.
흐름이 이어지면 되는 것이지,
내 물결의 모양까지
남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자주
시골집 돌담을 떠올렸다.
우리가 자라던 집은 남도 끝자락
작은 읍에 있었다.
마당을 두른 돌담은 높지 않았고,
틈마다 쑥과 제비꽃이 났다.
장마철이면 돌담 아래쪽이
먼저 젖었고,
한여름 해를 오래 받은 날이면
저녁까지 돌에서 미지근한 열이
올라왔다.
어머니는 해 지고도 돌담 곁에 앉아
마늘을 까거나 콩을 골랐고,
큰누님은 그 옆에서 다 헤진
고무신을 기워 신겼다.
나는 마루 끝에 엎드려 숙제를
하는 척하며 누님의 손을 자주
훔쳐보았다.
누님의 손은 늘 무언가를
살리고 있었다.
떨어진 단추를 달고,
찢어진 소매를 꿰매고,
부러진 빗자루 끝을 동여매고,
아픈 동생의 이마를 짚었다.
누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무엇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위의 허술한 곳을
오래 살펴보는 사람.
한 해 겨울,
아버지가 몹시 앓으셨을 때였다.
방 안은 늘 약 냄새와 젖은 수건 냄새가
섞여 있었고, 아궁이 불은 자주 꺼졌다.
그때 큰누님은 날마다 저녁이 되면
마당으로 나가 돌담을 한 번씩
손으로 짚고 들어왔다.
왜 그러느냐고 내가 묻자,
누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낮 볕 먹은 돌은 밤까지 따뜻하제.”
그러고는 아버지 발밑에 따뜻하게
데운 돌을 헝겊에 싸 넣어 드렸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누님은 그때 이미 자기 몫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한낮의 빛을 제 몸에 받아 두었다가,
밤이 온 사람에게 조용히 내어주는 일.
누님이 평생 한 일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었다.
그 기억이 이날,
늦가을 베란다 난간의 미지근한
감촉과 함께 문득 되살아났다.
다음 날 병원으로 가는 길에
나는 일부러 시외버스를 탔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창밖으로
추수가 끝난 들판이 오래 이어졌다.
볏짚을 말아 세운 둥근 단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고,
물 빠진 논바닥은 군청색 하늘을
얕게 비추고 있었다.
산자락의 감나무에는 잎보다 감이
더 붉게 남아 있었다.
저무는 계절은 언제나 남겨진 것들이
더 눈에 띈다.
다 떠나고도 가지 끝에
끝내 붙어 있는 것들,
다 비우고도 마지막까지
제 빛을 놓지 않는 것들.
병원 창문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유리에는 먼지가 없었고,
복도는 조용했으며,
사람들은 낮은 소리로만 걸었다.
생의 끝에 가까운 곳일수록 사람들은
더 작은 소리로 움직인다.
마치 크면 깨질 무엇이 그곳에
놓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큰누님은 생각보다 더 작아져 있었다.
이불 위에 놓인 두 손은 어린아이
손처럼 가벼워 보였고,
눈가의 살은 얇은 종이처럼
말라 있었다.
그러나 내가 들어서자 누님은
금세 나를 알아보았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의 정신은
몸보다 늦게 닳는지도 모른다.
혹은 사랑이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는 것이
바로 이름과 얼굴인지도 몰랐다.
“왔나.”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내 가슴을 쳤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누님 앞에서
늘 어린 동생이 되었다.
교수였던 시간도, 사회적 역할도,
명예도 그 앞에서는 다 겉옷처럼
벗겨졌다.
누님은 나를 세상에서 마지막까지
‘동생’으로 기억할 사람 같았다.
그 생각이 두려웠다.
나는 침대 곁에 앉아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가웠다.
그러나 아주 차갑지는 않았다.
손등 어딘가에 아직 낮의 잔열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
“어떠셔?”
누님은 대답 대신 창 쪽을 한 번 보았다.
창밖에는 병원 뒤뜰의 단풍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는데,
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몇 장만 남아 있었다.
그 잎들이 마치 마지막 말을 아끼는
사람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누님이 입술을 적시며 말했다.
“이제 니들이 서로 잘 봐야제.”
나는 얼른 다른 말을 찾고 싶었으나
찾지 못했다.
그 말은 부탁이라기보다
이미 시작된 사실처럼 들렸다.
이제 니들이.
그 짧은 말 안에는 부모님이 떠난 뒤
형제들끼리 밥상머리에서 나누던 눈빛,
명절 전날 장을 보던 누님의 걸음,
어머니 산소 앞에서 함께 서 있던
오래된 등이 다 들어 있었다.
“누님, 그런 말씀 마시고…”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누님은
아주 약하게 웃었다.
젊을 때의 누님은
잘 웃는 사람이 아니었다.
웃을 일이 있어도 먼저 남을 웃기고
자기만 늦게 웃는 쪽이었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에 보이는 웃음은,
대개 슬픔보다 더 깊은 체념을
지나온 뒤의 것이다.
“사람은 다 가는 기다.”
누님이 말했다.
“근데 가도 다 없어지는 건 아니제.”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겨울 저녁 돌담을 짚던
누님의 손이 떠올랐다.
해는 졌지만 돌은 따뜻하다고,
낮 볕 먹은 것이 밤까지 남는다고
말하던 목소리.
그때는 그것이 그저 시골살이의
요령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누님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남기는 것은
얼굴도 이름도 아니라,
한때 제 안에 머물던
볕의 일부라는 것을.
병실에서 나올 때 누님이 불렀다.
“얘.”
나는 돌아섰다.
“니는 너무 앞에만 서지 말고,
뒤에서도 좀 서라.”
나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하지만 복도를 걸어 나오는 동안,
그 문장은 복도 창에 부딪히는
늦은 햇빛처럼 내 안에서 자꾸만
각도를 바꾸었다.
너무 앞에만 서지 말고.
뒤에서도 좀 서라.
젊은 날의 나는 늘 앞에 서려 했다.
가르치는 자리,
조직하는 자리,
책임지는 자리.
누군가를 위해서라고 믿었지만,
어쩌면 그중 얼마간은
내가 여전히 필요한 사람이고 싶다는
욕망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뒤에 선다는 것은
다른 뜻이었다.
앞장서서 끌기보다,
넘어질 때 받쳐 주는 자리.
말하기보다 기다리는 자리.
붙들기보다 믿어 주는 자리.
그날 저녁 병원을 나올 때,
뒤뜰의 단풍잎 하나가 바람도 없는데
홀로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보았다.
잎은 떨어졌지만,
나무는 흔들리지 않았다.
큰누님은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은 예상보다
소란스럽지 않았다.
노년의 죽음에는 젊은 죽음과
다른 침묵이 있다.
억울함보다 수긍이 먼저 오고,
통곡보다 긴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러나 수긍한다고 해서
슬픔이 적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한 사람에게
의지해 온 사람들이 그 부재를
조용히 받아들일 때,
슬픔은 더 낮고 더 깊게
가라앉는다.
상복을 입은 조카들의 얼굴에서
나는 어릴 적 누님의 눈매를 보았다.
누님은 사라졌는데,
누님이 사라지지 않은 자리가 있었다.
말투, 손짓,
남을 먼저 챙기는 습관,
다투다가도 끝내 국 한 그릇
더 떠 놓는 마음 같은 것들.
사람은 죽고도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재산 목록이나 이력서의
문장으로는 적히지 않는다.
대신 누군가의 몸짓 속에 숨어 있다가 문득 나타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안다.
사랑이란 곁에 오래 머무는
능력이 아니라,
떠난 뒤에도 다른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 작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발인을 마치고 선산에 오를 때,
산길 가장자리의 억새들이 하얗게
기울어 있었다.
바람이 불면 억새는 한꺼번에
같은 방향으로 눕다가도,
바람이 지나가면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일어났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공동체도
저렇다고 생각했다.
한 번의 바람에 함께 흔들리지만,
다시 제 몸을 세우는 일은
각자의 몫인 것.
누님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가족이
너무 오래 눕지 않도록 버티어 준
한 줄기 강둑 같은 사람이었다.
봉분 앞에 흙이 덮이고
마지막 국화가 놓였을 때,
햇빛이 잠시 구름 사이로 나왔다.
겨울 문턱의 볕은 짧고 얇았으나,
그날따라 이상하게 따뜻했다.
나는 무심코 산비탈의 돌 하나를
손으로 짚었다.
돌은 양지쪽만 미지근했다.
그 감촉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한순간 거의 울 뻔했다.
낮 볕 먹은 돌은 밤까지 따뜻하제.
누님의 목소리가 그 돌을 통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장례를 치르고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한동안 자주 베란다에 섰다.
하루는 눈이 왔다.
첫눈은 아니었으나,
그해 들어 가장 조용한 눈이었다.
단지의 차 지붕들과 화단의 마른 가지
위에 얇게 쌓이던 눈을 보며
나는 문득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특별한 할 말은 없었다.
그냥 밥은 먹었는지,
무릎은 어떤지,
그 집 막내 손주는 학교에 잘 다니는지,
그런 사소한 것들을 묻고 싶었다.
큰누님이 평생 하던 질문들이었다.
그 질문들은 아무 사상도 없고
거창한 교훈도 없지만,
사람을 살아 있게 붙드는 힘은
대개 그런 사소함에 있었다.
나는 맨 먼저 둘째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친 뒤에는
여동생에게도 걸었다.
이야기는 길지 않았으나,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 한쪽이
조금씩 정돈되는 것이 느껴졌다.
앞에 서는 사람의 역할이 끝날 때,
뒤에서 받쳐 주는 사람의 역할이
시작되는지도 몰랐다.
나는 이제 무언가를 새로 만들기보다,
끊기지 않게 이어 주는 쪽의 일을
더 잘해야 할 나이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날 저녁,
책상에 앉아 오래 쓰지 않던 공책을
꺼냈다.
무엇을 적을까 생각하다가,
별다른 문장 대신 형제들의 이름을
차례대로 써 내려갔다.
그리고 그 이름 옆에 내가 기억하는
각자의 따뜻한 장면을 짧게 적었다.
누님의 김치 담그는 손,
형님의 기침,
막내의 웃음,
어머니의 마른 손등,
아버지의 해질녘 발소리.
적고 보니 그것은 기록이라기보다
불씨 같았다.
언젠가 내가 먼저 떠난 뒤에도
누군가가 이 공책을 펼치면,
한때 우리를 데우던 시간의 흔적이
아주 조금은 남아 있기를 바랐다.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낮 동안 햇빛을 받던 베란다 난간은
식어 갔지만,
내가 조금 전에 짚었던 자리에는
아직도 손의 감각이 남아 있는 듯했다.
삶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히 남을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도 않는 것.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온기가 다만 형태를 바꿀 뿐인 것.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베란다로 나갔다.
멀리 아파트 단지 사이로
저녁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어느 집에는 식구들이 막 저녁상을
차릴 것이고,
어느 집에는 아픈 노모가 누워
있을 것이며,
어느 집에는 갓 아이를 재운
젊은 부부가
낮은 목소리로 내일을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방 안에는
각자의 겨울이 있고,
각자의 어둠이 있고,
또 각자의 작은 불빛이 있다.
큰누님은 이제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없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누님은 우리가 형제에게 전화를
걸게 하는 망설임 속에 있었고,
밥 먹었느냐고 묻게 하는
말버릇 속에 있었고,
먼저 떠난 사람을 오래 미워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속에 있었다.
가장 추운 날,
누군가의 발밑에 조용히
따뜻한 돌 하나 놓아 주고 싶게 만드는
충동 속에도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사랑은 사람을 내 곁에 오래 붙잡아
두는 힘이 아니었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가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가게 하는 힘이었다.
가르침은 앞에서 오래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물러서서
그가 제 걸음으로
걷는 것을 믿어 주는 일이었다.
노년이란 영향력이 사라지는 시간이
아니라,
영향력의 모양이 바뀌는 계절이었다.
해가 지면 햇빛은 사라진다.
그러나 낮 동안 데워진
돌담의 온기는 한동안 남는다.
나는 그 문장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되뇌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소리 내어 큰누님의 이름을 불렀다.
아무 대답은 없었다.
대신 눈 내린 저녁의 적막 속에서,
어린 시절 우리 집 돌담 아래를 따라
이어지던 골목길의 희미한 빛이
오래전처럼
마음 한편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았으나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나는 난간 위에 손을 얹었다.
이미 식었을 줄 알았던 쇠에
아직 미세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슬픔은 조금도
줄지 않았는데,
슬픔의 결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잃었다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그 상실 한가운데서도 무엇인가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죽은 이를 계승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울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가는 버릇을 통해서.
오래 사랑받은 사람이
오래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방식으로.
멀리서 새 한 마리가 짧게 울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 서 있었다.
밤은 서서히 깊어졌고,
돌담의 온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남아 있었다.
The LORD is near
the brokenhearted;
he delivers those who
are discouraged.
- Psalms 3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