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해외여행
최 화 웅
아내에게 휴식이 필요했다. 내가 만성신부전증을 앓기 시작하면서 전담간병인이 된 아내는 하루 세끼와 투약를 비롯한 건강관리를 도맡았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이 넘었다. 6년 전부터 투석치료가 시작된 뒤로는 자동차 운전으로 병원을 오가며 환자의 예후(豫後)를 살핀다. 때로는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벗어나고 싶은 일탈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아내가 돌봐주지 않으면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고 살아가기 힘들다. 아내는 나에게 모든 바깥 음식을 불량식품이라고 단정하고 삼가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사는 아내가 고생스럽고 측은한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항상 2%가 모자란다.
아내는 아침마다 손수 종균을 배양한 요거트와 건과류, 흐르는 물에 2시간 이상 담가 칼륨을 충분히 뺀 야채샐러드를 아침상에 올린다. 모든 병이 그렇겠지만 콩팥 기능을 잃은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는 음식을 가려 먹는 식습(食習)의 간병에 가족들이 매달린다. 일주일에 세 차례 투석치료 때문에 과식을 금하며 건체중을 유지하는 나날 속에 1박 이상의 여행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영화를 함께 보거나 콘서트와 연극 뮤지컬 공연을 관람한다. 그런 아내가 올해 고희를 맞았다. 어느 날 아내에게 “뭘 젤 하고 싶냐?”고 물었다. 대답이 혼자서라도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했다. 지난 봄 학회 참석차 귀국한 아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이 올가을 다시 학회에 올 때는 일주일 정도 휴가를 내서 아버지를 돌보는 동안 어머니의 해외여행을 시켜드리기로 했다.
지난 시월 말 호주 퍼스 대학의 교수로 있는 아들이 귀국했다. 서울, 천안의 학회와 연구지도를 끝내고 부산 집으로 와 어머니의 간병을 대신했다. 아내는 시월의 마지막 날 ‘베트남 다낭, 후에, 호이안’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들이 여행경비를 대고 사위와 딸 그리고 내가 잡비를 보탰다. 아내의 해외여행은 거의 40년 만이다. 나와 함께 한 유럽여행과 아이들의 유학시절 몇 차례 미국을 다녀온 뒤로는 성지순례와 합창연주여행을 다녀왔다. 좋은 비행기를 타고 안전하게 여유 있는 여행을 하라고 권했으나 마다하고 동남아로 떠났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했다. 그만큼 일상이 갑갑하고 답답했던가 보다. 요거트와 샐러드를 비롯한 먹거리를 1회분씩 저장해두고 옛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아들의 돌봄과 딸의 관심 속에 아내는 십일월 4일 아침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흘 동안 다낭에서는 마블마운틴과 바나산 국립공원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울창한 밀림을 즐겼다. 시내 관광에서 다낭대성당과 까오다이 사원, 영은사를 비롯한 손짜 반도를 둘러보고 후에에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에성과 왕릉, 베트남에서 유명하다는 건축물 티엔무 사원을 비롯한 호이안 관광에서 역사박물관과 관운장, 턴키의 집을 둘러보며 현지 고산지대에서 생산한 커피를 즐기며 유람선을 타고 연등 야경을 즐기는 휴식을 가졌다고 한다. 우기에 든 현지 날씨는 한낮이면 스콜이 내려 순간 피로를 씻어주기도 했다고 만족했다.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원점회귀(原點回歸)의 여행보다 나그네 되어 정처 없이 떠도는 방랑이 여행의 참맛이 아닐까?
학창시절 무전여행이 새삼 그립다. 인생에 있어서 길을 떠나는 만큼 큰 변화는 없다. 나에게 있어서 아내는 집이고 엄마고 고향이다. 여행은 곧 깨달음의 수행이다. 원점회귀에서 원점(原點)은 시작이 되는 집이고 회귀(回歸)는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일정 기간 다른 고장을 두루 돌아다니거나 유람을 목적으로 객지를 찾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하고 돌아보며 기도하게 된다. 여행은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성스러운 기회다. 해외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온 아내의 배낭을 받아 메고 나그네 되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오, 사무치는 여행의 역마살이여!
첫댓글 따듯하네요..^^ 건강 잘 회복하시길 기도 합니다.
"여행은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성찰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성스러운 기회다... "
고맙습니다.^^*
그래요 집안에 아프신 분이계시니 자매님께서 수고가많으시네요 형제님께는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해주시길 자매님껜 영육간에 건강주시옵길 기도 드리게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리움님은 늘 함께 해주시는 자매님이 있어 행복한 것 같습니다... 따뜻한 글 보았습니다!!!
그동안 자매님이 많이 힘드셨을텐데, 귀한 시간을 보내고 오셨겠네요.
그 마음을 읽어 주고 함께해주는 가족들이 참 좋아보입니다.
사랑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 속에서 훈훈함이 느껴져 좋았습니다.. 건강 잘 돌보며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로의 배려로 훈훈 함이 느껴집니다
여행은 곧 깨달음의 수행이며 스스로 성찰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성서러운 기회라고 하신 말씀을 통해 나를 뒤돌아 보게합니다
건강 잘 돌보셔서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 주시면 감사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엘리사벳 형수님 축하드립니다.
국장님 어려운 결정을 하셨네요.
멋있으십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