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별미 맛보기
충남 천안에 병천순대, 경기 용인에 백암순대가 있다면 경북 예천에는 용궁순대가 있다. 두툼한 돼지 막창으로 만든 용궁순대는 얇고 부드러운 소창 순대와 달리 쫀득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이 특징이다.
예천의 명물, 회룡포와 용궁순대
흰 모래사장을 한 바퀴 감싸며 돌아가는 물길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 육지 속의 섬 ‘회룡포’로 유명한 경북 예천의 용궁면에는 한 가지 명물이 더 있다. 용궁시장 주변에 즐비한 순댓집들과 그곳에서 만드는 쫄깃하고 담백한 용궁순대가 그 주인공이다. 고층 건물 하나 없는 조용하고 한가로운 시골 동네이지만 주말이면 외지에서 온 차량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4,500원짜리 순댓국 한 그릇을 먹기 위해 30분, 1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예사라고 한다.
전 국민의 간식거리이자 대표적 서민음식인 순대는 언제, 어떻게 생겨난 음식일까? 설이 분분하지만 기원은 중국,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고려시대 때, 문헌에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한 것은 19세기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금은 분식집, 포장마차, 프랜차이즈 식당에 이르기까지 전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 되었지만, 본래 순대는 서민음식이 아니었다. 당면순대가 일반화하면서 대중적인 음식이 된 것이란다.
백암순대와 병천순대가 돼지 도축장이 있었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 주변에서 발달한 것처럼 예천의 용궁순대도 사람과 물류가 모이는 영남대로의 중간 지점이라는 지역 특성을 배경으로 탄생한 향토음식이다.
용궁순대와 다른 지역 순대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순대 피, 즉 껍질에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순대는 돼지의 소창 또는 대창으로 만든다. 소창이 더 일반적이고, 속초의 아바이순대처럼 대창을 사용하는 순대는 크기가 훨씬 크다. 그런데 용궁순대는 소창이나 대창이 아니라 막창을 쓴다. 주로 구워 먹는 그 막창이다. 이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처음 고안해낸 사람은 용궁면 한 식당의 2대 안주인으로 알려져 있다.
막창으로 순대를 만든다고?
그런데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용궁'이라는 지명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한 것일까? 용왕님이 사는 바다 속 그 '용궁'을 뜻하는 걸까? 고려 현종 9년(1018)에 용주군을 용궁군으로 고쳐 상주목에 편입시켰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지명은 거의 천 년 전부터 사용해온 것이고, 바다 속 그 '용궁'을 뜻하는 것도 맞다.
막창은 소창이나 대창과 달리 두툼하다. 그리고 막창구이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식감은 부드럽지 않고 질기다. 그런데 막창을 굽지 않고 쪄내면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질긴 식감이 싹 사라지는 대신 보드랍고 쫄깃함만 남는 것. 또 막창 자체에서 나오는 육즙이 아주 풍부하고, 순대 속에는 당면과 찹쌀, 갖은 채소와 선지를 넣어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새우젓에 찍어 먹고, 참깨소금에 찍어 먹고, 청양고추 다진 것도 살짝 올려 먹다 보면 둘이서 한 접시를 쉽게 비운다.
용궁시장 안 식당
뽀얀 국물에 다진 양념과 청양고추를 얼큰하게 풀어 후루룩 먹는 순댓국도 깊고 진한 맛이 끝내준다. 밥을 말아서 내는 순대국밥과 공깃밥을 따로 주는 따로국밥이 있다. 순대국밥이 4,500원이고 따로국밥은 5,000원 선이다. 단, 국밥에는 더 어울리는 식감을 위해 막창 순대가 아닌 소창 순대를 사용한다.
순대에 곁들이는 오징어불고기
용궁면 순댓집들의 차림표는 거의 동일하다. 순대와 순대국밥, 따로국밥, 오징어불고기가 주력 메뉴다. 그밖에 돼지불고기, 닭불고기, 닭발구이, 막창양념구이도 대개 어느 집에나 있다. 순대와 오징어불고기의 조합이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예천에서는 자연스럽다. 국밥을 주문하면서 곁들임 메뉴로 오징어불고기를 추가하거나 순대와 오징어불고기를 각각 한 접시씩 주문해 먹는 것이 보통이다.
오징어불고기는 한 식당의 1대 안주인이 50여 년 전 처음 선보인 것으로 전하는데, 지금은 어느 식당에서나 맛볼 수 있다. 오징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매운 양념에 한 번 휙 볶은 다음 석쇠에 옮겨 연탄불에 앞뒤로 재빨리 구워내는 방식도 같다.
오징어불고기
빨간 고춧가루 양념을 한 오징어를 직화로 구워냈으니 그 맛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통통하고 부드러운 오징어의 식감에 매콤한 양념과 불맛이 어우러져 오징어불고기 한 접시면 밥 한 공기가 뚝딱 없어진다. 한 공기 더 주문해서 남은 양념에 비벼 먹고 싶어지는 중독성 강한 맛이다.
순대에 국밥에 오징어불고기까지 먹고 나면 부른 배를 주체하기 힘들어질 터. 곧장 회룡포로 이동하지 말고 산책 삼아 용궁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다. 옛날 방식대로 참기름과 들기름을 짜는 제유소가 향수를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