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변압기』(북인 2010)
전건호
조선시대였다던가? 어느 화가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유독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아비가 심하게 꾸지람하며 다시는 붓을 들지 못하게 혼을 내자 마루에 걸터앉아 뚝뚝 눈물을 흘리며 울더란다.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볼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이 방울방울 마루에 떨어지자, 어깨 들썩이는 와중에 손톱으로 눈물방울을 튀기는데 그게 새가 되고 나무가 되고 수묵산수가 되더란다.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비가 장탄식을 하며 아들 등을 두드려 주었다던가? 그래 너는 천상 환쟁이가 될 팔자인가 보다. 그래 이제부터 그림을 그려도 좋다. 이 이야기를 더듬어 회고하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 것과 시를 쓰는 게 무슨 차이가 있던가?
1. 꽃점을 치다
인생은 필연과 우연, 그리고 필연도 우연도 아닌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신의 영역에 발 담그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마치 무병(巫病)처럼 찾아온다. 마흔 중반에 찾아온 시(詩)가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시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오면서 나의 길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농투서니 삼대독자의 장남으로 태어나 일가친척 하나 없어 객지 바람 한번 못 쐬어보고 면소재지에 있는 상고에 진학하면서 나의 꿈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실업계과목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그때부터 나 자신을 합리화하지 못하고 반항기에 접어들었고, 학교 도서관 먼지 쌓인 책 속에 파묻혔다. 각종 문학 서적과 동서양의 철학서적을 탐독하며 암울한 질풍노도기의 시동을 걸었다.
염세주의를 거쳐 불가와 도가에 심취하면서 3학년에 접어들던 중 주위 벗들이 하나 둘 취업을 나가자 그제서야 퍼뜩 정신이 들어 부랴부랴 대학진학준비를 하게 되었던 것, 회색빛 현실이 싫어 대학 4년 동안 아둔한 머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고시공부에 매진했던 것이니, 그때 떠돌던 전국의 고시원과 산사의 지대방마다 내가 몰아쉰 한숨으로 얼마나 많은 창호지가 들떴던가?
누렇게 뜬 얼굴로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이라며 법서와 씨름하는 중에도 동료들은 하나 둘 합격의 길로 나아가 지금은 유명 정치인과 고급관료들이 되어 사회의 기둥으로 활약하고 있다. 그 누구보다 촉망받으며 기대를 한 몸에 받았건만, 거듭되는 실패에 육신은 절망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기만 했다. 마지막 23회 행시를 끝으로 고시를 포기하고 직장인의 길로 접어들어서도 나의 길은 순탄치가 못했다. 혈연, 지연, 학연 하나 없이 허우적거리다 보니, 병약했던 몸으로 어느 날 제기동 네거리에서 꽃점을 치다 주저앉고야 말았다.
가끔 접동새 우는 봄밤 혼자 몽정하다 잠 못 이룬다는 거라 그 통에 매화꽃은 비처럼 내리고 밤꽃향기에 화개골 여자들만 얼굴 붉히는 거라 꽃 한번 잘못 꺾은 죄로 하얗게 핀 찔레 넝쿨에 갇혀 마흔 해 지내고 있는 거라
―「꽃점을 치다」 부분
숙명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할까? 절벽 같은 나날의 연속에 서른 좀 넘어 선도(仙道)에 입문해 유불선을 넘나드는 호흡을 관하기 시작했다. 호흡이 멈추면 눈앞 신기루 같은 생의 질곡도 다 한바탕 꿈이 아니던가. 명상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면서 인도와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부단한 집착은 멈추어지지가 않았던 것이니, 누구보다도 더 출세하고, 돈도 벌고 싶었던 것이니, 인간이라면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허나 다가오는 현실은 항상 나를 주변인으로 맴돌게 했으니, 문득 홀로 누우면 전화할 곳 하나 없는 낯선 별의 수형자였던 것, 최선을 다해 직장 생활에 매진을 하고 길 아니면 가지 않는 무소처럼 살아왔음에도 어느 초겨울 모함을 받아 남쪽 바닷가 도시로 유폐된 것 아니던가?
2. 전생 이야기
어느 날 유독 영(靈)이 밝은 선가(仙家)의 벗에게 전화가 왔다. 방금 전 그대의 전생을 뜻하지 않게 보게 되었노라고, 솔깃하게 귀 기울인 나의 전생은 이러하다.
전생의 이야기는 약 오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나는 찢어지게 가난한 소작농의 열 번째 아들로 태어났더란다. 하도 못살아 대갓집 문간방에 빌붙어 사는데, 그 와중에 태어난 나를 먹여 살릴 젖도 나오지 않더란다. 하여 눈물을 머금고 갓난애를 윗목에 사흘을 밀어두고 숨이 끊어지기만 기다리는데 숨이 멎지를 않는 거라. 결국 어쩔 수없이 나를 거두어 시래기 삶은 국물을 먹여 키우는데, 딴에는 제법 영특해 주인집 대감이 유독 총애를 했더란 얘기다. 무릎에 앉혀놓고 동네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데 어깨 너머로 사서와 제자백가를 훑더란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이 관직을 받아 경상도 남쪽 바닷가로 내려가면서 우리 일가를 데리고 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감 집은 서울로 돌아가 버리고 우리 가족만 남쪽 바닷가에 떨어지게 되더란다. 그런데 가난이 얼마나 골수에 사무쳤던지 지독한 노랑이가 되어 천석꾼이 되고 아내를 얻었단다. 그러나 아내에게 마저 너무 지독하고 모질어 한 맺힌 그녀는 지금도 구천을 떠돌며 다시는 윤회의 길로 내려오질 않고 있단다. 나 또한 벌어놓은 돈 써보지도 못하고 마흔에 숨을 거두는데 죽어서도 한이 맺혀 두꺼비가 되고 뱀이 되는 축생의 몸으로 집 근처를 수백 년 맴돌다 금생에서야 인간의 몸을 받았다는 거라. 그리고 내가 어설픈 글이라도 쓰게 된 건 그때 무릎에 걸터앉아 주마간산 훑던 글에 대한 습(習)이 남아 시인이 되었다는 거였다. 나는 되물었다. 그러면 내 전생을 이야기해주는 그대와 나는 어떤 관계였는가?
그녀는 지난 생 양반집 후실로 가마를 타고가다 목멱산 근처 오솔길에서 잠시 쉬게 되던 중 답답한 맘에 눈앞의 가리개를 들어 올렸는데, 순간 패랭이를 덮어쓴 장사치인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게 인연의 전부라 했다. 순간 눈 한번 마주친 인연으로 금생의 도반이 되었다는 거였다.
담쟁이와 눈 마주쳤다/창문 틈을 비집고 들이닥칠 기세다/금이 간 벽 통째로 감아 돌며 올라와/창문 들여다보며 손짓을 한다//(중략/아, 내가 이 집에 눕기 전부터/네 영혼의 집이었구나
―「영혼의 집」 부분
세상에 운명 아닌 게 있던가? 출세간 한번 이루겠노라 별짓을 다해도 첩첩 산중이 길을 막고 소용돌이치는 파도에 휩쓸리기 일수였다. 어느 날 남쪽 바닷가 외진 방에 누워 설움을 곱씹던 중 운명처럼 시가 내게로 왔다. 정말 미친 듯 시를 썼다. 문학성이 있고 없고는 둘째 문제고 한풀이를 하듯 응어리를 풀어냈다, 하룻밤에도 몇 편씩 써 내려가다 보면 새벽이 왔다. 시를 쓰다보면 응어리가 풀리는 듯 했다. 외롭기만 하던 내 삶의 모퉁이에도 하나 둘 새가 날아와 울어주기 시작했다. 벚꽃 펑펑 터지는 진해바다 질펀한 해신굿을 보며 나를 짓누르는 영가들을 위한 천도제가 시를 쓰는 것임을 서걱거리는 갈대들이 속삭여주었다.
3. 목(木)왕자의 넋두리
천간지지를 풀어놓고 보면 내 사주에는 유독 목(木)이 많다. 큰 재물이나 벼슬보다는 역마살이 생의 기저에 깔려있음에도 내가 전기회사에 입사를 해서도 참으로 파란만장한 형충파해에 휘말렸다. 많이 아팠고 많이 좌절도 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도도 한번 못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 캄캄한 밤하늘 어떤 별자리가 나를 내려보다 탄식의 우성우를 뚝뚝 떨어뜨릴지 모를 일이다. 허나 유약하기만 한 내가 오늘 이때까지 격랑을 거슬러 오게 됨 또한 신의 은총과 부모님의 은혜 아닌가? 이런 나를 거두어준 직장 또한 내가 경배해야할 도량 아니던가? 홀로 시를 쓰는 밤이면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비틀거리는 내 발자국이 눈 속에 모두 묻힌 밤 한 권의 시집을 놓고 영혼의 스승이신 미라레빠에게 오체투지한다
늦게나마 찾아온 시마(詩魔)에 행복하다. 부디 이번 시집으로 나를 짓누르던 지독한 업장에 날개가 돋아 꽃으로 피어나길 빈다.
전건호
충북 영동 출생. 2006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변압기』.
―『시에』2011년 봄호
첫댓글 첫 시집을 얻었으니, 또 한 생을 얻으셨지요. 시의 길이 환합니다.
선생님 따라 "꽃점을 치"는 봄날입니다.
씨앗은 썩어 싹이 나고 열메를 맺는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날개가 돋아나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