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통증 / 최길하
동구 밖 느티나문 속이 텅 비어있다
한 집 건너 한 집씩 홀로 살던 할머니도
철 지나 다시 가보면 문이 잠겨 있었다.
올해는 감나무가 유난히 풍년이라던
안골집도 등만 환히 허공에 걸려있다
'툭' 하고 감 지는 소리 가슴으로 받는다. 온 통증.
<시조 공부하기>
1
시조는 품격과 가락이다.
시조가 시와 차이가 있다면 나는 품격과 가락이라고 생각한다.
3장 6구 43자 내외가 율격인데 무슨 가락을 또 말합니까?
율격은 약속한 글자수로 구성되는 박자의 방식일 뿐이다.
율격이란 한시(漢詩)의 패턴에서 온 것이다.
왜 한시는 글자수를 5자 7자를 꼭 맞추라고 했을까?
왜 한시는 '운'이라고 마지막 글자는 음성학적 '소리'까지 맞추라고 했을까?
왜 이 조건(글자수와 마지막 글자의 소리)을 충족해야만 "시라고 인정할께" 했을까?
그 이유는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이다.
소리글자인 한글과 180도 다른 것이다.
한시나 경전도 다 몸을 일렁일렁 좌우로 흔들며 반은 노래처럼 낭송했다.
내용(서사)은 마음애서 우러나는 뜻과 공명되는데
입 밖으로 내는 소리는 돌뿌리처럼 자꾸 발에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이론(서사)과 현실(가락)이 한 몸이 되지 않고 트집을 부리는 것이다.
접속사 또한 음운으로 말과 말을 접속해주지 못한다.
서사와 가락이 마음에도 실고 몸에도 실어야 거슬리지 않는데
서사는 "촌구석에 못살아 하고, 가락은 나는 도시엔 하루도 숨막혀 못살겠어" 하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연구한 것이 한시의 음운학(소리)인 4성 7음과 '운(韻)'이다.
마음의 언어인 뜻글자지만 몸의 언어인 소리와 병행해야 삑사리가 안나고 화음을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시는 음악과 줄기세포가 같으니까 최소한 시 만이라도
5언 시에서는 1/5. 7언율에서는 1/7 한 행에 1자는 소리의 패턴 '운'을 맞추자 한 것이다.
그러니 시를 우리가 "운문"이라고 통상적으로 쓰는데 사실 운문은 한시에 적용되는 것이다.
우리글은 자체가 소리글자 그것도 아주 인체생리학적인 음운어기 때문에
시를 '운문'이라고 하는 것은 현살적으로 맞는 개념이 아니다.
한시의 개념이 습관화 됐기 때문이고, 그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시 동시 시조를 운문이라 한다.
간판이나 제목이 주제가 되면 내용도 그에 따라간다.
"설럴탕집"을 걸어놓고는 국수사리를 한 젓가락 준다고 국수집이라고 할 수 있나?
시의 내용과 구성은 은유와 내재율이라야 깊은 맛이 생기는데
운문이라 세뇌가 되니 시가 자꾸 외경에 치우치게 된다.
자 그럼
시조 3장 6구 43자 질서의 틀(體)속을 어떻게 운영해야 깊은 시가 될까?
시조 3장 6구 43자 질서의 틀(體)속에 소리(운율)와 서사(내용)를 태워야 한다.
리듬 속 내재율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이다.
만물의 이치를 현대과학은 떨림의 밀도가 높아지며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물질이란 과학적으로 말해 실체가 없다는 정의다.
그럼 내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은 뭐냐?
떨림(에너지=기=주파수)의 밀도가 잠시 상호관계에 의해 높아진 것이다.
떨림의 밀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풀어 얘기하면 모니터의 화소라고 말 할 수 있다.
1Cm2 안에 몇 개의 픽셀조각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 퍼즐이 맞춰졌느냐 하는 것이다.
픽셀 공간을 시간에 넣으면 동영상이 되는데
1초에 이미지 사진을 몇 번 움직이면 화질이 선명하냐는 것이다.
말이 달리는 사진을 1초에 1번(주파수) 떨게하면 그냥 서있는 정물이 되고
5-10번 떨게 하면 말인지 개인지 모르고
40번 이상 떨게하면 달리는 말처럼 보인다. tv 화질이 된다.
그러니까 물질은
물질 이전에 떨림 진동의 주파수 밀도가 높아지면서 색과 소리의 에너지(기) 현상인 형태가 구성되고
시각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고밀도 에너지가 물질로 피어나는 것이다.
물질은 에너지가 주파수를 일으켜 가스라이팅 되는 것이 삼라만상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학의 프랑크상수 파동방정식과 불교의 공, 연기, 색즉시공이 같은 말인데
한쪽은 영어로 말하고, 한쪽은 산트크리스트와 한자언어를 섞어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물질관인데 한쪽은 현대과학의 정점에서 수학으로 확인이 되어
디지털 혁명을 일으키며 AI 양자장시대를 열어가고 있고
직관으로 본 <공, 연기, 색즉시공, 무상, 수(數)의 지칭, 관음(觀音) 화엄, 법화....>등은
양자장 개념과 모두 일치하는데 허무맹랑한 미친소리(?)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3천년 전에 설파했는데 지금까지 그렇다.
오히려 과학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어 그 거 우리의 주장입니다. 싸이언스입니다. 그걸 3천 년 전에 했다고요?"
바로 이해하고 깜짝놀란다.
원자의 구성요소인 전자 양성자들이 상호관계로 떨림 진동을 일으키면 기체는 고밀도 고압으로 뭉쳐 고체가 된다.
실은 돌 나무 유리 쇠도 고체가 아니라 99.99% 속이 텅 빈 기체다. 빠르게 진동하는 전자구름이다.
이렇게 떨림(에너지)이 물질로 현상화되는 과정에서 서로서로 간섭(울림) 얽힘이 일어난다. 공명 공진이다.
이것이 자연의 하모니다. 자연의 교향악이다. 교향악의 "향(響)"자가 서로 받아 울린다는 뜻의 자형이다.
과학의 언어로 "공명" "공진"이다.
이 공명 공진 싸이클로 정렬하는 것이 가락이다.
가수들이 가슴으로 곡해석을 잘 하여 그 감정을 표현하는 음색이 가락이다.
화가의 색채감각과 시각적 조형감각도 이와 같다.
문학에서는 문체다.
각 나라(음악 미술 문학)의 언어로 같은 뜻을 다르게 말하고 있을 뿐이다.
마이크로세계다 아주 셈세한 진동부분이다.
관음=소리가 물질로 나타나는 아주 미시세계=그래서 소리를 본다라고 형이상학을 형상학으로 말함.
그래서 관세음보살이 이런저런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기도 하고, 짐승의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기도 한다고
우리 전래동화 같이 설명도 하고 있다. 왜? 우리가 말하는 은유법으로 해야만 그 뜻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유를 직유로 해석하려하니 첨단과학이 허무맹랑한 미신이 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면
3장 6구 율격은 비유하자면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 물상의 질서다.
이 물질 율격을 만든 보이지 않는 반물질 반에너지 관음사상이 가락이다.
관음은 초저음파에서 초고주파를 다 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양자장의 진동이다.
우리 눈으론 특정한 좁은 주파수의 진동만 물질로 보인다. 관음을 내세운 관음주파수는 무한 주파수 광역대다.
3장 6구 자수를 맞추었다고 해서
완벽하게 주파수 가락이 정렬되지는 않는다.
3장 6구 리듬에 떨림과 울림을 태워가야 한다.
그게 음색인 가락이고 내용인 서사다
FM 940 싸이클을 맞추면 정교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데 938 944쯤 대충 언저리에 맞추면 잡소리가 반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듣는 사람의 뇌는 신경이 곤두선다.
적외선의 낮은 주파수로 내려가면 아예 소리가 구성 되지도 않는다.
그림도 화소가 낮으면 소인지 염소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치다.
우리가 운문이라고 하는 개념 속에는 이런 주파수의 음향원리가 숨어있다.
그걸 인문학적으로 "운문"이라고만 하고 정량분석적으로 속 설명을 이어놓지 못하니
관념이 되어 믿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곧 양자장=관음의 정보그물이 어떤 속도로, 어떤 광역으로, 어떤 연산으로 우리 생활에 접속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엘빈토풀러의 <제 3의 물결>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세상은 그렇게 펼쳐졌으며
앞으로 양자혁명은 10년 안에 특화된 부분만 연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풀어주고 행동하는 고도의 인간처럼
행동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2
품격을 높이려면 메타포(은유)를 넓고 멀리서 빌려다 쓰면 좋다.
그러면 그윽(넓고 깊게)하게 격이 살아난다.
이 작품은 2연 6장이 모두 은근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빈 집이 늘어가는 고향과, 동구 밖 느티나무의 텅 빈 속이 은유로 대칭을 이룬다.
한 철씩 지나서 가보면 어른들이 소리없이 사라지고 없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이를 문이 잠겼다. 빈집이 늘었다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이번 길엔 안골집이 그랬다.
할머니가 올해는 유난히 감이 많이 달렸다고 지난 여름 말했다.
"올해는 유난히 감이 많이 달렸다" 할머니도 뭔가 앞날을 느끼고
"내가 오래 못살거 같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말한 것이고
나는 그 말을 독자에게 공명을 일으키게 던져준 것이다..
아니나 달을까? 허공에 등이 환히 걸렸다. 조등이다.
감나무는 가지가 휘드러져 유난히 더 붉다.
먼길 가는데 감나무가 불을 밝혀 배웅을 하는 것이다.
나무도 한 집에 오래 살다보면 이렇게 서로 마음이 통한다.
할머니의 사주관상 파동을 공명하고 나무도 등을 준비 한 것이다.
양자역학의 '관찰자효과'고 법상의 연기 인드라 그물이다.
마지막 종장은 점프 도약이다.
'툭' 하고 감 지는 소리,. 소리의 그늘이 빈 집과 가슴에 증폭되며 '출렁' 그물을 흔든다.
아!, '통증'이 왔다. 마지막을 '통증'이라는 은유로 맺었다. 제목이다.
첫댓글 3장6구 43자 틀 속에 소리(운율)와 서사(내용)를 태워야한다. 뜻을 이해 못하는건 아닌데 막상 쓰려고하면 막막해 지곤 합니다. '툭' 하고 감 지는 소리의 여운이 깊습니다. 귀한 강의 고맙습니다.
일단 말(낱말)이 쎈말 보다 순해야 좋습니다. 조선 이전 중세의 우리말은 리듬이 있고 억양이 다 순했는데
서양이나 일본 책들이 들어오며 번역을 하다 보니 리듬 운율은 파괴되고 언어는 격음화 되었습니다. 번역은
아주 고수가 아니면 뜻이나 억지로 맞추기에 급급하지 뉘앙스 운율로 번역을 못합니다. 점점 그러다 보니 운율은
사라지고 말은 소주가 쏘주가 되듯이 억양이 격음화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옛말을 쓸 수는 없고 음독 낭독을 하면서 음율을 찾아야 합니다.
내용 서사는 직접 표현보다 은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