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중학교 3학년 중에서 무작위로 뽑힌 한 학급을 마지막 한명이 남을 때까지 서로 죽이게 하는 신세기 교육개혁법, 통칭 BR법. 3일 이내에 자기 이외의 친구 모두를 죽이는 방법 외에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과연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BR에서 살아남은 나나하라 슈야와 나카가와 노리코가 그 섬을 탈출하고 3년. 세계는 테러의 시대로 들어선다. BR법을 시행한 국가에 대항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도가 파괴되고 계속되는 혼란에 국가는 나나하라 슈야를 테러리스트의 주모자로 단정짓고 국제지명수배를 내린다.
수도붕괴 1년 뒤. 반BR법조직 와일드세븐의 리더가 된 나나하라는 모든 어른을 상대로 선전포고를 하고, 이에 어른들은 나나하라를 말살하기 위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게임인 '신세기 테러대책특별법 - 통칭 BR2'를 가동시킨다.
전국의 불량학생과 문제아를 모아놓은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 B반의 학생 42명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스키학교로 향하던 중 군에 납치되어 군복을 강제로 입게 된 채 군의 거대한 텐트 속에 갇히는데 이들의 담임이었던 리키가 나타난다. 리키는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 이들이 이번 'BR2'에 참가하는 학급으로 선정되었다는 사실과 BR2의 룰을 설명한다.
*BR2의 룰
1. 외딴 섬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테러리스트 나나하라를 발견해 죽이면 승리
2. 제한시간 3일간
3. 2명이 한팀이 되어 치르는 페어 태그매치
이렇게 해서 테러리스트와 싸워야하는 전쟁에 학생들이 강제로 투입된다. 수도의 파괴로 가족을 잃고 나나하라에 대해 복수를 다짐하는 사람과 지원하여 BR2에 참가하는 학생도 있는 상황에서 참가를 거부한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사살되고, 죽은 아이와 같은 출석번호의 아이도 새로운 룰인 페어 태그매치에 따라 목걸이가 폭파하여 죽는다. 그리하여 남은 40명의 학생들은 6척의 자동조종 보트에 태워져 최전선인 전장으로 보내진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보트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서, 파도에 온몸이 젖어가면서 겨우 섬에 상륙하자마자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섬광탄과 박격포가 빗발처럼 쏟아지는 속에서 필사적으로 총알을 피하는 학생들. 하지만 전신에 총을 맞고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아이, 보트에 직격으로 맞은 폭탄 때문에 공중으로 산산히 부서지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나나하라를 죽이기 위해 공격해 오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자신들과 똑 같은 학생들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와일드세븐 조직은 BR국가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던 신념에 따라 필사적으로 공격한다. 격렬한 전투 끝에 살아남은 학생은 단 26명. 다시 어른들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게 된 나나하라와 학생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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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의 흥행을 넘어 280만명의 관객을 돌파한 최고의 시리즈 <배틀로얄 2>
제작 당시 많은 시민 단체의 반대 시위와 문부성 장관이 상영규제를 촉구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배틀로얄1>은 영화의 상영규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일 극장에 새벽부터 관객과 내외신 기자들 1,000여명이 몰려들어 지대한 관심을 입증했다.
전국 200여개가 넘는 극장에서 상영된 <배틀로얄1>은 개봉 당일 극장가를 평정하고 박스오피스 2주 연속 1위에 등극, 215만명을 동원하면서 31억엔이라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일본내에서의 좋은 반응에 이어 홍콩에서도 개봉되어 단 6일만에 364만 달러 (홍콩 달러 기준)의 흥행 수입을 올렸는가 하면 대만과 프랑스 등 총 22개국에서 개봉해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비디오, DVD가 해외에서 계속 팔리고 있다.
이런 전작의 성공에 힙입어 <배틀로얄2>는 지난해 5월 개최된 칸느 영화제 마켓에서 작품이 완성전인데도 불구하고 각국 배급관계자들의 큰 인기를 모았다. 더불어 영국, 독일,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일본영화에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그리스 등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도 배급 오퍼가 들어와 전 세계 30여개국 확대상영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2003년 7월 5일 개봉 된 <배틀로얄2>는 전국 261개관에서 상영되어 전작보다 250% 증가된 입장기록을 세우면서 흥행수입 40억엔, 280만명의 관객을 돌파했다.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과 더불어 해외의 평가도 아주 좋았다.
영국 BBC 텔레비전에서 이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방송을 제작했는가 하면, 토론토, 로테르담, 토리노 등 세계 영화제의 경쟁부문의 출품 요청이 쇄도하면서 마침내 베스니 국제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으며 또한 배틀로얄의 원작 소설은 100만부를 돌파했고, 배틀로얄 만화는 현재 9권까지 발행되어 누계 발행부수만 500만부를 돌파했다.
후카사쿠 감독 투혼의 연기지도 - 대규모 대형텐트 리허설
세로 20mⅩ가로 11m의 이 대형텐트에 시카노토리데 중학교 3학년B반의 학생들이 끌려온다. 거기에 나타난 교사 RIKI는 공포스럽게 '이젠 너희들이 전쟁을 해야 한다'고 선언.
나나하라 슈야를 죽이라는 명을 받게 된 42명의 학생들과 선생 RIKI가 나오는 장면이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바로 텐트에 끌려온 학생들의 연기를 보고 긴지 감독이 소리친다. 그때까지 쓰고 있던 확성기를 버리고 학생들이 있는 곳으로 간다. 텐트 안의 병사, 학생들을 둘러싼 철망과 그 높이, 그리고 텐트 자체의 넓이에 대한 리액션이 모자란다고 주의를 준다. 감독이 중시하는 것은 역시 42명 학생들의 '리액션'인 것이다.
텐트에 들어오는 교사RIKI. 그리고 학생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 RIKI에 대한 리액션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자 바로 '좀 더 선생을 조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라구. 보통 때 너희들 선생따윈 물로 보잖아?'하는 긴지 감독의 말 한마디로 그때까지 학생들을 긴장시키고 있던 분위기가 풀려간다. 감독의 희망에 보답하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감독과의 대화로 자신의 캐릭터를 소화하는 학생들. 주연들 뿐 아니라 모든 배우들을 총괄하는 후카사쿠 감독, 이것이 후카사쿠 긴지의 연출의 힘인 것이다.
후지와라 타츠야…"제 가슴속엔 언제나 후카사쿠 긴지감독님이 있습니다."
'무엇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인가. 이제부터는 마음 속의 후카사쿠 긴지와 싸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는 겐타씨의 이 말과 함께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뜻을 이어, 신생 후카사쿠 구미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약 1주일 만에 촬영이 재개되었다. 거대 텐트에는 항상 사람들이 넘쳤다. 각각이 깊은 슬픔을 넘어서서 '후카사쿠 겐타 감독'을 중심으로 현장을 움직여 나간다. 텐트 안의 촬영은 1주일동안 계속되었다. 모니터 앞에서 배우의 대사를 맞춰보고 자신도 입을 움직이는 겐타 감독. 그 모습을 보고 후카사쿠 긴지 감독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스탭은 없었을 것이다.
후쿠다 카즈미의 목걸이 폭파 장면에서는 특히 신경을 많이 써서 학생들에게 '다들 공포와 혼란이 패닉상태에 달아있잖아. 소릴 질러봐, 계속 삑삑거리는 목걸이, 끊임없이 지껄이는 RIKI, 총을 겨눈 병사들, 각각에 대한 리액션이 필요해. 결코 카즈미만 리액션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면 안된다구. 주의해봐' 하고 주문을 했다. 그 리액션에 대한 집착, '무엇을 계승해 나가야 할 것인가?'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여기 있었다.
전작에서도 직접 모든 액션을 해내고 주위의 스탭을 놀라게 했던 후지와라 타츠야.
이번에도 당연히 스탠트맨 없이 액션에 도전했다. 나나하라 슈야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다는 설정부터 전작을 넘어서는 멋진 액션을 해야만 했다. 그것을 위해서 크랭크인 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배우의 액션훈련에 참가했다. 총 겨누는 방법 등을 지도 받고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와일드 세븐의 아지트 촬영에서는 장렬한 총격전이 전개됐다. 영화뿐 만이 아니라 수많은 연극무대를 거쳐 온 후지와라. 이번에도 그의 연기가 빛난다. 때때로 현장에서는 본 촬영 전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지와라를 볼 수 있었다. 그 행동은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전수해 준 '아드레날린 증강법'으로 고개를 숙이고 20초 정도 숨을 멈추면 눈이 충혈되고 박진감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한다. 후지와라도 겐타 감독과 마찬가지로, '자기 속에 있는 후카사쿠 긴지'와 싸우며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영화사상 최초로 삽입된 베토벤의 '안녕, 피아노여'...
슬픈 멜로디로 깊은 인상을 남기다.
영화 전편에 걸쳐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는 것이 '안녕, 피아노여'라는 곡이다. 시오리의 방, 그리고 아지트 안의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도 흐르는 이 곡은 베토벤의 작품이다. 그 아름다운 선율은 이별을 아파하는 듯한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인상적인 곡이다. 그런데 이 곡은 단순히 감독이 선곡을 한 것이 아니다.
크랭크인 전에 시오리 방의 세트를 내려다보던 긴지 감독이 갑자기 시오리의 대역을 써서 리허설을 하자고 말했다. 그날 의상을 맞춰보고 있던 여자 불량학생 그룹 세 명을 그 자리로 불러와서 '피아노를 좀 쳐 보라'고 감독이 요구했다. '제가 칠 수 있는 곡으로 할게요'하고 시미즈 사에이가 친 곡이 바로 '안녕, 피아노여'였다.
결코 완벽한 연주가 아니었지만 긴지 감독은 매우 마음에 든 듯, '이렇게 가끔씩 틀리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는, 그 때 녹음한 것을 집에서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곡을 배경으로 '시오리의 방'에서는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아지트 안의 피아노가 있는 방'에서는 겐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후카사쿠 부자의 경쟁 씬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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