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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송대 이후 관원과 의사 두 직업의 경쟁과 대승불교의 직업 가치관
2024년 4월 7일
요즘 뉴스를 보면 의사들의 주장과 대통령실의 정책이 달라 서로 승부를 걸고 다투는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해결보다는 오히려 누가 더 잘났는지를 겨루는 승부가 되었습니다. 서로 다툴수록 해결방안을 찾는 타협도 더 어렵게 보입니다. 의사의 직업 목적과 정치인의 직업 목적 모두 국민의 건강과 복지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타협이 쉽지 않는가 봅니다.
관원이 된다고 반드시 높은 관직에 오르기 어렵고 또 의사가 된다고 반드시 많은 사람을 고쳐주고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사회적 평가를 얻는 직업 가운데 높은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고쳐주고 큰돈을 버는 직업 가운데 의사가 그렇게 좋은 직업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옛날부터 부모님과 젊은이들이 관원과 의사 두 직업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진로 결정에 고민해왔습니다.
중국에서도 관원과 의사 두 가지 진로는 일찍부터 경쟁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 관원과 의사 두 직업 가운데 고르는 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겉모습을 보면 관원은 부유함과 높은 신분을 보장받고 의사가 되면 부유함을 얻습니다. 그렇지만 지원자의 속마음을 보면 관원보다는 의사가 되어 부유함을 얻겠다는 것이 일반적인 희망이었습니다. 송대 범중암의 이야기는 좋은 사례입니다.
범중암(范仲淹, 989-1052)의 생각과 행실은 성리학이 유행하던 송원명청 시기(宋元明淸, 960-1911)에 수많은 젊은 지식인과 관원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그는 57살(1046)에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사람들은 악양루에 올라가서 양자강과 호수가 넓게 펼쳐진 광경을 보고 걱정거리와 즐거움 모두 잊고 시원함을 느끼는데, 자신은 이렇게 넓은 광경을 보고 걱정거리와 즐거움을 잊는 시원함보다는 “항상 백성과 군주를 먼저 걱정하며 나의 즐거움은 맨 나중이다.(居廟堂之高則憂其民,處江湖之遠則憂其君。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송원명청 시기에 모든 젊은이와 관원들이 항상 떠올리고 생각하던 말이 되었습니다.
관원으로서 개인의 영달과 부귀를 희망하는 생각을 버리고 백성과 군주를 먼저 생각하는 관원이 되라는 뜻이며 후세 관원들의 거울이 되었습니다. 이런 뜻을 가진 사람을 맹자는 대장부(大丈夫), 『대학』에서는 대인(大人)이라고 말하며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菩薩)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유가의 대장부와 대인은 어느 정도의 행정지식을 배워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뜻이지만, 보살은 여러 방면의 지식과 매뉴얼을 전문가 수준까지 배우고 실행해본 뒤에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뜻입니다.
범중암은 22살부터 과거시험 공부에 전념하기 이전에 진로를 걱정하였습니다. 전해오는 이야기 하나를 되새겨볼 만한 합니다.
범중암이 26살 과거시험에 합격하기 이전에 영사(靈祠, 큰 산이나 개천에 지은 神祠)에 가서 진로를 점쳤다.
“앞으로 높은 관원이 되어 재상이라도 될 수 있을까요?” 점괘는 아니라고 나왔다.
“관원이 되지 못하면 좋은 의사(良醫)가 될 수 있을까요?” 점괘는 또 아니라고 나왔다.
어이가 없어 한숨을 쉬며 “저는 대장부(맹자가 말한 大丈夫)로서 많은 사람을 도와 잘살게 하는 것이 꿈입니다.”고 말하였다.
며칠 뒤에 어떤 사람(어머니 또는 계부 또는 선생님)이 “네가 대장부로서 높은 관원이 되어 재상이 되겠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좋은 의사는 기술(技術)에 지나지 않으며 신분이 낮아 남의 부림을 당하는데(卑)도 원하는가?”라고 물었다.
범중암이 대답하길 “아! 어찌 그런 까닭만 있겠습니까? 점치는 사람들도 보는 『도덕경』에 ‘사람을 구제하려면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든 사람을 구제하여야만 구제를 잘하는 것이고, 물건들을 활용하려면 하나도 남김없이 물건마다 모든 기능을 활용하여야만 활용을 잘하는 것이다.(常善救人,故無棄人;常善救物,故無棄物)’고 말하였습니다. 더구나 대장부로서 공부하는 목적은 훌륭한 군주를 만나 신임을 받아 올바를 정치를 펼치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남녀가 혜택을 받지 못하면 나 자신이 잘못하여 저들을 구렁텅이에 빠뜨렸다고 생각하여야 합니다. 잘사는 사람이나 못사는 사람 모두에게 혜택을 주려면 당연히 재상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재상이 될 수 없다면 사람들을 도와 잘살도록 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을 실행하려면 좋은 의사보다 좋은 직업이 없습니다. 좋은 의사가 되면 군주와 부모님의 질병을 고쳐드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난한 빈민의 질병도 구제할 수 있고 또 나 자신의 질병도 고쳐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습니다. 재상이 아닌 직업 가운데 잘사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직업은 좋은 의사 말고는 없습니다.”고 말하였습니다.
宋、吳曾,『能改齋漫錄』,卷十三,記事二,「文正公願爲良醫」:
范文正公微時,嘗詣靈祠求禱,曰:“他時得位相乎?”不許。
復禱之曰:“不然,願爲良醫。”亦不許。
既而嘆曰:“夫不能利澤生民,非大丈夫平生之志。”
他日,有人謂公曰:“大丈夫之志於相,理則當然。良醫之技,君何願焉?無乃失於卑耶?”
公曰:“嗟乎,豈爲是哉?佔人有云:‘常善救人,故無棄人;常善救物,故無棄物。’且大丈夫之於學也,固欲遇神聖之君,得行其道。思天下匹夫匹婦有不被其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能及小大生民者,固惟相爲然。既不可得矣,夫能行救人利物之心者,莫如良醫。果能爲良醫也,上以療君親之疾,下以救貧民之厄,中以保身長年。在下而能及小大生民者,舍夫良醫,則未之有也。”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남송시기(1127-1279) 오증(吳曾)이 소흥(紹興) 32년(1162)에 편집한 『능개재만록(能改齋漫錄)』에서 북송시기 전이(錢易,約968-1026,字希白)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관원의 높은 신분(貴)과 경제적 부유함(富)을 비교하는 직업 선택의 가치관을 나타냈습니다. 북송시기 전이(錢易)는 범중암(989-1052)과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오증의 부귀 가치관을 보면,
사마천 『사기』의 사마계주(司馬季主) 열전에서 사마계주는 “부유함(富)가 가장 좋고 높은 관원(貴)이 다음이다.(富爲上,貴次之)”라는 속담을 인용하였다. 또 『주역』 「계사전」에서도 “부유하거나 높은 관원이 되어야만 사람들의 높은 존중을 받는다.(崇高莫大乎富貴)”고 기록하였다. 내(오증)가 전이(錢易)의 기록을 보았는데, “왕령(王令)이란 사람이 귀신이 된 호원춘(胡元春)을 만났고 호원춘에게 자신의 관직 지위(祿)와 수명(壽)을 알려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호원춘은 웃으면서 ‘당신은 이 세상에서 지은 착한 업보(陰功)가 많고 장수(天爵)합니다. 그런데 관원으로서 얼마나 높이 승진(人爵)할 것인지는 하찮은 것이기에 물어볼 것도 없고 『상서』 「홍범」에서도 관직의 지위와 봉록(祿)은 오복(五福) 안에 넣지 않았습니다.’고 대답하였다. 전이(錢易)는 귀신 호원춘의 말뜻과 「홍법」 오복의 뜻을 이해할 수 없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나(오증)는 사마계주, 「계사전」, 귀신 호원춘의 이야기를 보고 높은 관원의 신분(貴)이 부유함(富)보다 못하다는 것(貴在富下)을 분명히 알았다.
宋、吳曾,『能改齋漫錄』,卷十,「貴在富下」︰
「司馬季主傳」(『史記』,日者列傳,司馬季主)云︰“傳曰︰‘富爲上,貴次之。’”「繫辭」云︰“崇高莫大乎富貴。”貴在富之下。予(吳曾)嘗記錢希白(錢易,約968-1026,字希白)著書,“有人王令,遇鬼胡元春,令詢向去祿壽,胡笑曰︰‘陰功與天爵俱高,人爵末事也。『尙書』五福,不言祿。’”此乃深旨,非老夫(錢易)所能知也。”予乃知貴在富下者以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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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중암의 간략한 일생 :
범중암이 2살 때(990년) 아버지(范墉)는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 사씨(謝氏)가 장례를 치룬 뒤에 주씨(朱氏)에게 개가하였습니다. 범중암의 할아버지(范贊時)와 아버지 모두 높은 관원을 지냈으나 비교적 청렴하여 많은 재산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개가하였다고 말합니다. 어머니가 산동(山東)에 사는 주씨(朱氏, 朱文翰)에게 개가하였기에 범중암의 성씨(姓氏)도 주씨(朱氏)가 되었으나 나중에 범씨(范氏)를 회복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범중암에게 상인(商人)이 되라고 권하여 1개월 정도 해본 뒤에 상인이 이윤에만 치중하는 것을 보고 상인 진로를 포기하고 공부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계부가 예천사(醴泉寺)에 보내 공부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범중암은 날마다 죽 한 그릇을 끓여 식힌 뒤에 네 조각으로 나누고 소금과 야채를 넣고 아침에 두 조각을 먹고 저녁에 두 조각을 먹으면서 어렵게 공부하였다고 합니다.
범중암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상인(商人)이 되라고 말한 뜻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대대로 높은 관원을 지낸 집안에 시집왔으나 살면서 부족함을 겪다가 남편이 죽자 자립할 수 없어 개가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말한 것 같습니다. 상인의 원래 뜻은 큰 자본을 갖고 원거리 교역에 종사하는 부상(富商)이며 각국의 정치와 각지의 생산 소비에 관한 각가지 정보를 장악하고 교역하여 막대한 이윤(利潤)을 얻었습니다. 후세에는 큰 자본을 갖고 구리 광산이나 철광산을 개발하여 구리와 철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개인 사업가(私商)이며 또 국가 전매사업(鹽, 鐵)에도 관여하는 관상(官商)도 있습니다. 또는 옷감 짜는 직기(織機)를 많이 차려놓고 생산하는 수공업 공장의 경영자이었습니다. 상인은 12년 주기(목성 주기)의 경기변동을 이해하고 곡물과 옷감의 생산량과 소비량을 계산하고 지역마다 수요와 공급에 관한 정보를 갖고 교역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큰 자본을 가진 사업가이며 공장 경영자이며 대량 유통업자이었습니다. 물론 상인 자제들의 정치 참여를 법률로 금지하였기에 과거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범중암이 지방행정관이 되어 큰 토목사업을 일으키고 중앙행정을 개혁할 때 실행한 경제정책을 보면 화폐 유통량을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조장하거나 재난 시기의 불경기 상태에서 토목사업을 벌여 노동력과 화폐를 시장에 유입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경제정책은 일반 관원들은 꿈도 꾸지 못한 경제정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종이 범중암을 불러들여 경력 신정을 맡겼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상업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범중암은 22살(1011)에 하남 상구(河南 商丘)에 가서 경학을 공부하였고 26살(1015)에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지방관을 지내면서 좋은 치적을 남겼습니다. 38살(1027)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하남 영릉현(寧陵縣)에서 삼년상을 지내는데 추천을 받아 응천서원(應天書院) 교무를 맡았습니다. 이때부터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고 행정개혁을 연구하였습니다. 51살(1040)에는 서하(西夏)와 전쟁에서 한기(韓琦, 1008-1075)와 함께 현지에서 농사를 지어 곡물을 군납하는 방법(屯田久守)을 실행하여 변방지역을 안전하게 지켰습니다.
범중암(989-1052) 54살(1043) 9월에 인종(仁宗)이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임명하여 한기(韓琦, 1008-1075)、부필(富弼, 1004-1083)、구양수(歐陽修, 1007-1072) 등과 함께 행정을 개혁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범중암은 56살(1045) 정월에 참지정사에서 파면당하고 섬서 지방에 군정을 담당하였습니다. 이것이 1년 반 동안 실행한 경력(慶曆) 연간의 신정(新政)이라고 부릅니다. 이때부터 개혁파와 보수파 당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경력 신정은 신종과 왕안석(1021-1086)이 희녕(熙寧)과 원풍(元豐) 연간(1069-1085)에 변법을 실행한 선례가 되었습니다.
2. 부유함이 권력보다 낫다는 부귀(富貴) 가치관 변화
중국에서는 공자 이래로 많은 젊은이가 유가의 경전과 수험 서적을 열심히 공부하려는 동기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높은 관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원이 되면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교육 문화적 지위와 자원을 한꺼번에 얻기에 합격이 부귀(富貴)를 보장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억력이 좋아 경전을 잘 외우고 작문을 잘하거나(賢) 일처리에 재능있고(能) 의지력이 강한(志)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극히 일부는 합격하고 대다수는 낙방하여 일생을 허비하였습니다. 그래서 합격률이 낮아 오죽하면 부귀는 재천(富貴在天)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몇십 년 동안 과거시험에 응시하여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송대에는 상공업이 발전하고 각가지 사회서비스 업종이 나타났는데 의사의 사회경제적 지위도 괜찮았습니다. 관원이 되지 못할 바에는 의사가 되는 것이 차선책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아들이 10대 중반이 되면 과거시험을 공부할 것인지 의사가 될 것인지 진로를 선택하고 관원 또는 의사 가운데 하나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당나라 말기와 오대시기에는 사회가 혼란하고 빈번한 쿠데타 때문에 왕조가 자주 바뀌었습니다. 관원들도 직무에 휘말려 감옥에 들어가거나 목숨을 잃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혼란하고 전쟁이 빈번한 시기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공부하더라도 관원이 되려고 하지 않고 정치 참여는커녕 회피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습니다. 출사(出仕) 회피 풍조는 북송시기(960-1127)에 널리 퍼졌고 특히 강남지역에서는 남송시기(1127-1279)에도 강하게 남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가정에서는 아들들에게 공부를 시키되 과거시험에는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중국에서는 상업이 발달한 뒤부터 부귀(富貴)를 비교하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부유함(富)과 높은 신분(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으냐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가난하고 신분이 낮은 젊은이들도 큰 부자가 되거나 높은 관원 또는 높은 장군이 되려고 꿈꾸었습니다. 한(漢)나라 고조 유방(劉邦)과 여후(呂后)부터 정치가 안정되고 문제(文帝)와 경제(景帝) 시기에는 상업이 발달하였습니다. 문제와 경제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처음 나타난 경제호황 시기였습니다. 국가와 개인 모두 생산 잉여물(곡물과 옷감 및 화폐)의 축적이 몇십 년간 소비 액수를 감당할 만큼 부유한 성세(盛世)를 이루었기에 문경지치(文景之治)라고 불렸습니다.
춘추전국시기에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속담을 반영하여 순서를 매긴 것이 『주역』의 내용입니다. 「계사전」에서는 “崇高莫大乎富貴(사람들의 높은 존중과 부러움을 받으려면 부유하거나 신분이 높은 부귀가 가장 좋다.)” 구절은 관원이 되거나 부자가 되려는 가치관을 반영하였습니다. 한나라 시기에도 많은 젊은이는 높은 관원이 되어 많은 봉급을 받기(尊官厚祿)를 꿈꾸었습니다.
한나라 초기에 길흉을 점치던 복서(卜筮) 직업도 발달하여 일부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을 갖고 하늘과 지구의 운행에 관한 천문학을 비롯하여 세상의 정치 사회적 변화를 연구하였습니다. 사마계주(司馬季主)도 그런 사람이었는데 존귀한 관원보다는 부유한 대상인(大商人, 사업가)이 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에서 “귀재부하(貴在富下)”를 주장하였습니다. 사마계주의 주장은 춘추전국시기의 부귀(富貴) 가치관에서 귀재부하 가치관으로 바뀐 것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한(漢)나라 문경(文景) 시기에도 법정 연이율(annual interest rate)이 20%이었고 100만 전(錢)을 빌려주면 연간 이자 20만 전을 받았습니다. 이 당시 전쟁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 커다란 전공을 세워 작위를 받으면 국가에서 대략 연간 20만 전을 받는데 국가에 각종 복무를 하여야 합니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당연히 목숨 위험과 복무가 없는 대상인(大商人)이 더 안전하였기에 봉작 없는 신분이라는 뜻에서 소봉(素封)이라고 부르고 부러워하였답니다.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오복(五福) 순서에 관한 말이 많으나 대체로 부유함(富)이 높은 신분(貴)보다 낫다고 꼽았습니다. 『상서』 「홍범」에서는 오래 살고(壽) 부유하고(富) 건강하고(康寧) 남들에게 비난받지 않고 좋은 소리를 듣고(攸好德) 수명을 다하고 잘 죽는 것(考终命)이 오복 순서였습니다. 한나라 시기에 환담(桓譚, 기원전 23년-기원후 56)은 오래 살고(壽) 부유하고(富) 존귀하고(貴) 편안하고(安樂) 자손 많고(子孫衆多)가 오복의 순서라고 말하였습니다. 높은 관원 신분(貴)은 사실상 부유함(富)을 지키는 정치적 안전 장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튼지 한나라 이후에는 귀재부하(貴在富下) 가치관이 더욱 강하였습니다.
3. 부귀(富貴) 가치관 변화와 대승불교 보살의 네 가지 바람(四弘誓願)
중국 사회에서 관원의 높은 신분(貴)보다는 부유함(富)이 더 낫다는 부귀(富貴) 가치관이 형성되었고 오랫동안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사회의 가치관에 크게 영향을 끼친 대승불교가 있으며 보살이 보리심을 갖는 네 가지 큰 소원입니다. 물론 도교에서도 네 가지 큰 소원을 강조합니다. 보살의 큰 바람은 일반인들의 직업 선택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중국에서 대승불교는 위진남북조 시기를 거쳐 수(隋)나라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중국 불교가 소승불교에서 대승불교로 바뀌면서 보살이 되려면 네 가지를 발원하고 선(禪) 바라밀을 닦으라고 가르쳤습니다. 보살이 남들을 돕겠다는 큰 자비심만으로는 중생을 구제하지 못하고 반드시 보리심(菩提心)을 가져야 합니다. 중생을 끝까지 구제하고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심리적 신체적 장애를 가진 중생이 올바른 진리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가르치겠다는 의지를 갖고 나 스스로 올바른 진리를 완전히 배우고 실행하여 높은 경지를 체험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요즘 말로 말하면 여러 방면에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실행하는 경력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살의 보리심은 최고 전문가이며 경력자가 되어 모든 사람을 구제하겠다는 의지이며 젊은이들의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뒤에 열 가지 잘못된 동기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동기와 의지를 갖고 직업을 선택하였는지를 되돌아보고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천태종을 일으킨 지자대사(智者大師, 538-597)는 금릉(金陵)에 머문 시기(569-575)에 와관사(瓦官寺)에서 『법화경』에 따라 고집멸도(苦集滅道) 사성제(四聖諦)를 닦는 대승불교의 선법(禪法)을 강연하였고 학생 법신(法愼)이 기록하여 30권이 되었으나 나중에 관정(灌頂, 561-632) 스님이 10권으로 편집한 것이 『선바라밀차제법문(釋禪波羅蜜次第法門)』입니다. 여기에 보살의 네 가지 바람을 잘 설명하였습니다.
보살이 가진 큰 바람은 물론 종교적인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대승불교가 유행한 중국과 한국 및 동아시아에서는 직업을 선택하는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재 사람들도 직업을 선택할 때마다 참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보살이 선(禪) 바라밀을 수행할 때는 잘못된 동기를 갖지 말고 올바른 동기를 가져야 한다.
수행자의 잘못된 동기에는 크게 열 가지가 있는데 참선 동기가 다르기에 틀린 결과를 얻고 올바른 선 바라밀에 들어가지 못한다.
첫째 틀린 마음은 나 혼자 풍부하게 잘살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못살고 고통받는 사람이 많은 지옥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둘째 틀린 마음은 거짓을 짓는 동기이다. 감탄할 만큼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참선하면 사람을 놀래키거나 교활한 귀신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셋째 틀린 마음은 많은 무리를 이끌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짐승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넷째 틀린 마음은 남을 질투하고 이기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착한 천신(天神)과 싸워 이기려는 악신(惡神) 아수라(阿修羅)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다섯째 틀린 마음은 나쁜 짓을 많이 하여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인간세계 사람의 각가지 겁나고 두려운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여섯째 틀린 마음은 착한 마음을 갖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욕계의 여섯 하늘(六慾界天 : 四天王天、忉利天、須焰摩天、兜率陀天、化樂天、他化自在天)에 태어나는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일곱째 틀린 마음은 커다란 세력을 얻으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내 욕심을 채우려고 착한 사람들을 흔들고 막고 그들의 목숨마저 빼앗는 악마(魔羅)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여덟째 틀린 마음은 아주 빠른 이해력을 얻으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불교가 아닌 다른 종교(外道)의 마음 모습이 많이 나타난다.
아홉째 틀린 마음은 바라문교의 창조신 세계에 태어나려고 참선하면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마음 모습이 떠오른다.
열 번째 틀린 마음은 질병과 죽음의 고통을 벗어나 열반에 이르려는 동기이다. 이런 사람이 참선하면 성문승(聲聞乘)과 연각승(緣覺乘)의 마음 모습이 떠오른다.
이렇게 열 가지 동기는 착하거나 나쁘거나 서로 다르고 벗어나는 결과도 다르다. 그렇지만 큰 자비심을 갖고 올바르게 참선하지 못하기 때문에 틀린 마음이 나타나거나 떠올라서 결국에는 강하게 긍정하거나(有) 강하게 부정하는(無) 쪽에 빠지며 보살의 올바른 중도(中道)에 들어서지 못한다. 이런 열 가지 동기를 품고 아무리 오래 깊이 참선하더라도 끝내 선(禪) 바라밀이 떠오르지 않는다.
보살이 선 바라밀을 올바르게 수행하는 모습과 실행방법이 있다.
첫째, 보살이 올바르게 수행하는 마음의 모습은 무엇일까? 보리심(菩提心)이다.
보리심은 보살이 중도(中道)에 따라 불교에서 가르치는 실상(諸法實相)을 올바르게 깨닫고(正觀) 모든 중생을 불쌍하게 여겨서 커다란 자비심이 일으키고 나중에는 커다란 네 가지 바람(四弘誓願)이 마음에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첫째, 아직 고통(苦)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벗어나게 해주려는 바람이다. 끝없이 많은 중생을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겠다고 바라면서 참선하면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모습이 떠오르며 구도 의지가 강화된다.
둘째, 아직 고통(苦)이 생기고 벗어나는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잘 설명해주려는 바람이다. 그래서 중생의 무수하게 많은 크고 작은 번뇌들을 끊어주려고 바라면서 참선하면 이들이 번뇌를 끊는 모습이 떠오른다. 따라서 보살은 모든 번뇌를 끊는 온갖 방법을 모두 스스로 알겠다는 바람이다.
셋째, 불교의 올바른 정법(正法)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이르도록 돕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이들을 돕기 위하여 무수하게 많은 정법을 모두 스스로 알겠다는 바람이다.
넷째, 아직 열반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열반에 오르도록 돕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서 불교의 최고 가르침에 스스로 이르겠다는 바람이다.
이렇게 보살의 네 가지 큰바람은 사성제(四聖諦 : 苦集滅道)에 각기 배분하여 설명한 것이다.
隋、天台智者大師說,『釋禪波羅蜜次第法門』,卷第一之上︰
今明菩薩修禪波羅蜜,所爲有二,一者簡非,二者正明所爲。
第一、簡非者,有十種行人,發心修禪不同,多墮在邪僻,不入禪波羅蜜法門。
何等爲十?
一爲利養故,發心修禪,多屬發地獄心。
二邪僞心生,爲名聞稱嘆故,發心修禪,多屬發鬼神心。
三爲眷屬故,發心修禪,多屬發畜生心。
四爲嫉妒勝他故,發心修禪,多屬發修羅心。
五爲畏惡道苦報,息諸不善業故,發心修禪,多屬發人心。
六爲善心安樂故,發心修禪,多屬發六慾天心。
七爲得勢力自在故,發心修禪,多屬發魔羅心。
八爲得利智捷疾故,發心修禪,多屬發外道心。
九爲生梵天處故修禪,此屬發色無色界心。
十爲度老病死苦疾得涅槃故,發心修禪,此屬發二乘心。
就此十種行人,善惡雖殊,縛脫有異,既並無大悲正觀,發心邪僻,皆墮二邊,不趣中道。若住此心,修行禪定,終不得與禪波羅蜜法門相應。
第二、正明菩薩行人修禪波羅蜜大意,即爲二意。
一先明菩薩發心之相,二正明菩薩修禪所爲。
第一云何名菩薩發心之相?所謂發菩提心。
菩提心者,即是菩薩以中道正觀以諸法實相,憐憫一切,起大悲心,發四弘誓願。
四弘誓願者︰
一未度者令度,亦云眾生無邊誓願度。
二未解者令解,亦云煩惱無數誓願斷。
三未安者令安,亦云法門無盡誓願知。
四未得涅槃,令得涅槃,亦云無上佛道誓願成。
此之四法,即對四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