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 5,1-6; 루카 11,37-41
+ 오소서, 성령님
오늘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입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출생지 이름을 따서 아빌라의 데레사 혹은 대 데레사 성녀라고도 부르는데요, 10월 1일에 기념한 소화 데레사 성녀가 19세기의 성인이시라면,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6세기의 성인이십니다. 두 성녀에게 358년이라는 시간 차가 있지만,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영적 어머니신데요, 예수의 데레사 성녀께서 개혁 가르멜 수도회의 창립자이셔서, 소화 데레사 성녀는 대 데레사 성녀의 영향을 깊이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1515년 스페인 아빌라에서 태어나신 데레사 성녀는 열아홉 살에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셨습니다. 당시 가르멜 수도회가 지나치게 개방되고 변질되어 초창기의 엄격한 모습을 잃었다고 판단한 데레사 성녀는, 깊이 있는 하느님 체험을 통해 확신을 얻고 수녀회의 개혁을 단행하셨습니다.
성녀께서 마흔다섯 살이시던 해부터 시작된 수도회의 개혁 결과,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 총 15개의 남자 수도원과 17개의 수녀원을 창립하였습니다. 성녀의 개혁은 지나치게 과격하다는 공격을 받으며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의 승인을 받으며 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무척 좋아해서, 해마다 10월 15일을 개인적으로 특별히 기념해왔는데요, 항상 중간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수업이 없어서 데레사 성녀를 기억하며 더 많이 기도하는 날로 삼았습니다.
만일 16세기에 노벨문학상이 있었더라면, 1577년은 ‘영혼의 성’을 쓰신 예수의 데레사 성녀께서 수상하셨을 것이고, 이듬해인 1578년은 ‘가르멜의 산길’을 쓰신 십자가의 성 요한께서 수상하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톨릭 영성의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두 저작을, 성령께서는 두 성인을 통해 연이어 쓰도록 섭리하셨고 감도하셨습니다.
성녀께서는 수도회 개혁과 창립이라는 막중한 일을 하시는 와중에도 자서전과 완덕의 길, 영혼의 성 등 수많은 저작들을 쓰셨는데, 이 책들은 아직도 전 세계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습니다. 1565년경 쓰신 완덕의 길에서 성녀께서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 탁월하게 해설해 주십니다.
16세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을 신대륙이라 부르며 탐험대를 보내고 대규모 식민지를 만들던 시기였는데요, 이 시기에 작성된 ‘영혼의 성’은, 우리의 시선을 외부로만 돌리지 말고, 자기 내면으로 돌려 하느님과의 일치에 이르도록 안내하는 영적 여정의 가이드 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녀께서는 1582년 9월, 길에서 병에 걸려 쓰러지셨고, 한 달 뒤인 10월 4일, 프란치스코 성인 축일에 선종하셨습니다. 그해,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율리우스력을 수정하기 위해 그레고리오력을 도입했는데요, 이렇게 달력이 바뀌느라 그해 율리우스력 10월 4일 다음 날이 그레고리오력 10월 15일이 되었습니다.
성녀께서는 “주님, 저는 성교회의 딸입니다.”를 여러 차례 반복하시면서 하느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가 놀라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주해하는 듯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수난으로 모든 장벽을, 그리고 유다인과 이방인의 장벽까지도 없애셨는데,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먼저 할례를 받고 유다인이 되라는 것은, 예수님의 수난을 헛되이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으니, 다시는 율법이라는 종살이의 멍에를 매지 말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를 얽어매고 주인 노릇을 하려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에 대한 집착,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그것입니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의 글을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어지럽히지 않게 하며
아무것도 너를 놀라지 않게 하라.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하느님은 변치 않으신다.
인내가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하느님을 가진 사람은
아무런 아쉬움 없고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도다.”
https://youtu.be/WQDdbf0sE_U?si=6D872hnWgscTKFKA
아무 것도 너를(원글: 예수의 성녀 데레사)
작사: 박 암브로시오 수녀님, 작곡: 김 호세아 수녀님.
루벤스, 예수의 성녀 데레사, 1615년 경.
출처: File:Peter Paul Rubens 138.jpg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