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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성도가 됩시다
새해에 행복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스튜어디스(stewardess)라는 직업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화려하고 좋은 직업 같으나, 사실은 매우 고달픈 직업입니다. 허구한 날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탑승객들이 편안하게 여행을 하도록 온갖 서비스를 베풀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스튜어디스가 받는 훈련 가운데 기본적인 것 3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항상 탑승객들에게 친절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에는 항상 웃음을 띠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웃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고, 그리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강한 스태미나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잘 자야 합니다. 항상 시차(時差)를 넘나들며 수면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틈만 나면 잠을 자야 합니다. 그러려면 불면증이나 노이로제 같은 질병을 극복해야 하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한 스튜어디스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항상 마음에 평안을 가지는 것”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스튜어디스들이 항상 마음에 평안을 지니고 있을 때 승객들의 불평도 수용할 수 있고,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단 스튜어디스만이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평안을 소유해야 건강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가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127:2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물질보다도, 권력보다도 잠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잠이 가장 큰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단잠은 몸과 마음이 평안할 때 오는 것입니다. 질병으로 온 몸이 쑤시고 아프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걱정거리가 쌓여 있거나, 분노로 마음이 가득 차게 되면 잠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잠을 잘 자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 줄 알아야 합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 침실 안에 있고, 침대 위에, 베개 위에 있습니다. 음식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그래서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의 평안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신비로운 평안이 따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평안’이 이렇게 중요한 행복의 요소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누구를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그들에게 ‘평안의 복을 빌어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눅10: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 지어다 하라.”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평안을 전하는 전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평안을 나누어주는 사명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 자신들이 먼저 평안을 소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소유하지도 않은 평안을 어떻게 나누어줄 수가 있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에 그리스도의 평안이 충만한 사람이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참으로 행복한 그리스도인은 참 평안을 알아야 하고, 참 평안을 소유해야 하고, 참 평안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행복한 사람들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신10: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하나님은 “너희 인생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일러주겠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말씀에 보면 이렇게도 말씀하신 곳이 있습니다.
신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이 말씀은 모세가 운명하기 직전에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남긴 유언과 같은 말씀으로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행복한 자라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행복자가 된 이유는 여호와의 구원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바로 최고의 행복자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받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원래 세상에서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마귀의 종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상만 바라보고 살던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큰 행복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한 인생들을 향하여 다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10:12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1.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1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여기 보면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렇습니다.
(1)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고,
(2) 그 모든 도를 행하고,
(3) 하나님을 사랑하고,
(4)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 가서는 다시 요약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3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으로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공기 빠진 타이어가 굴러갈 수 없고, 심장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 없는 인간은 절대로 행복한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생과 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구원과 심판이, 복과 저주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신32:39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 즉 행복과 불행의 문제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떠나서 우리 인간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다시 모세는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
“하늘도 하나님의 것이요, 하늘의 하늘도 하나님이 것이요, 땅도 하나님의 것이며, 땅 위의 만물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큰 행복자가 될 것입니다. 올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가장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요구하시는 두 번째 조건은 이렇습니다.
17-19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신원(伸寃)이라는 말은, “주일은 주님과 함께”라는 믿음의 기업을 경영하고 계신 박성철 장로님의 신원 에벤에셀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원한을 풀어준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 맺혀 있는 원한을 풀어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나그네 같이 고달프고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해서 식물과 의복을 주시고, 고난을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런 하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과 내가 행복해지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즉 “사랑을 베푸는 삶과 행복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갈 때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행복이 결코 물질의 넉넉함에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당하고 떳떳하게 물질을 모아서 그 물질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목적에 사용되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당하게 주어진 권력은 얼마라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권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 데 사용되고, 억울한 자들을 신원하는데 사용되는 권력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법을 지킬 때 행복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13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가령 대한민국 국민이 이 땅에서 자유롭게 활보하며 살려면 국법을 어기지 말고 잘 지켜야만 합니다. 법을 어기고, 죄를 짓고 쫓겨 다니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과 행복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곳과 같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람은 심령에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안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고,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법을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행복한 생을 살다간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고의 문명세계를 버리고 아프리카에서 미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도 이 사랑을 실천하며 살았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한결같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명으로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이 세상 현실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동시에 인간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즉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 사랑을 입체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참 행복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해서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려고 기도하고 헌신하고 후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참된 평안과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여러분을 행복자로 만들어 줄 뿐 아니라, 나와 이웃을 행복으로 채워나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어디를 가도 참 행복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올 한 해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서 하나님 안에서 참으로 가장 큰 행복을 누리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