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생 연분
어느 때와 느낌이 다르다. 삽상한 바람에 물색없이 나부껴도, 안될성싶고, 나풀나풀 주인의 기분을 부풀려 봐야 할 것도 같은 애매한 분위기를 어쩌나, 무릎 선을 얌전히 덮는 샤넬라인에 하늘거리는 레이스가 치장된 나는 지금 주인과 외출 중이다.
멀리 하늘로 시선을 던지거나 가로수에 눈을 맞추며 걷는 주인의 발길이 급하지 않다. 아니 처음엔 서둘러 지하철역으로 가던 참이었다. 달라지기 시작한 건 물빛으로 깊어 가는 하늘 아래 죽 늘어선 은행나무 가로수 앞에서다. 잠시 바람의 향을 느끼는가 싶더니 언제 가을이 아파트 동네까지 왔네. 혼잣말을 섞으며 쉬엄쉬엄 떼 놓는 걸음새가 목적지를 염두에 두고나 있는지, 가을에 태어났고 가을을 좋아하며 인생의 가을 길에 접어든 주인은 벌써 단풍 물이 드는가 보다. 덕분에 오늘 뜻밖의 낭만적인 나들이가 될 것도 같고….어찌해야 친애하는 주인과 보다 잘 어울릴지 살짝 조심스럽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천생 여자인 주인은 지극히 치마 스타일을 선호한다. 옷장엔 바지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곱고 섬세한 여성의 매력에 맞춤하기로는 단연 치마를 손꼽지 않으리. 민망하게 짧지도 부담스럽게 늘어뜨리지도 않는 길이에다 레이스가 한 줄쯤 장식된 치마라면, 가을 여자에게도 한층 맵시가 살아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나와 동행할라치면 발걸음도 조신해지는 그녀에게 품위를 더해 주고픈 치마의 마음도 혹 알고 있으려나.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우리 주인과의 인연이 보통 연줄인가. 주인도 숱한 세월과 계절의 파고를 넘어왔지만, 나 또한, 수차례의 공정을 통과했다. 오롯한 옷 하나가 만들어지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어느 디자이너가 자신의 마음속 바람과 생각을 디자인하였고, 원단을 고르고 옷본을 뜨고 마름질과 봉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여러 사람들의 분주한 손길이 있었다. 마침내 참한 모양새를 갖추어 매장에 진열되었던 때, 나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본 주인을 만난 날을 잊지 못한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상대에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솟는 법. 나를 선택해 준 주인을 우아하게 지켜 주겠노라고 거듭 속 다짐을 한다.
패션이 아무리 시류를 타고 변화하더라도 주인과 우리는 동반자다. 세상 길 내내 정 들여 갈 ‘절친’이다. 미니에서 샤넬라인으로, 롱스커트로, 길이와 폭이 늘어났다 줄었다. 할지언정 주인의 ‘치마 사랑’만은 변함없으니까. 흐르는 시간 따라 이제 다시 하나의 계절을 닫아야 하고 또 하나의 계절을 열어야 하는 나의 주인에게 응원해 주고 싶다. 자신의 잎들을 꽃처럼 물들이는 변화의 시간을 두려워 말고 건너가 보자고, 알뜰살뜰 위하는 사이엔 희비애락의 삶도 따스하게 데워진다고,
애틋한 반려
어렴풋이, 시간 저쪽에서 나부끼는 색색의 내 치마들이 보이네, 겨울이 채 가시기도 전에 치마를 입혀 달라고 어머니를 졸랐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고 있어, 설날이면 색동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는다는 기대로 얼마나 손꼽았는지. 잠든 내 머리맡에서 홀로 앉아 인두로 솔기를 꺾어 다려 가며 밤새워 손바느질해 주셨던 치마저고리, 그건 당신의 모든 걸 주어도 아
까워하지 않으며 이 세상에서 언제나 내 편으로 존재했던 한 분의 곡진한 정성과 사랑이었지.
여고 시절의 하얀 블라우스에 받쳐 입은 까만 교복 치마도 다가오고 있네, 키 순서대로 번호를 가졌던 우리 반 순정한 소녀들이 아른거려, 제철 만난 매미들처럼 목청을 뽑는 웃음소리로 떠나갈 듯 했던 교실, 반짝이는 눈동자들, 그 속에서 이성에 대한 관심도 빛을 내기 시작했었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며 다시는 입을 수 없어 더욱 그리워지는 교복 치마는 생에 한 번, 초록의 시절이었어.
날마다 가슴속에 봄바람이 들락거리던 때에 유행했던 미니스커트는 꽃잎 나이만큼 산뜻했지. 무릎 위, 한 뼘 넘게 올라간 치마로, 버스를 타고 자리에 않으면 손수건이나 가방으로 무릎을 덮어야 하는 수고가 따랐지만, 당연히 괜찮았어. 경제적으론 어려웠어도 우울증이니 자살이니 하는 뉴스를 지금처럼 흔하게 들어 본 적도 없었네. 주어진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몰랐던 사람들이지만 한사코 희망적이었거든.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면 귓가를 스치던 소리가 “참 좋~을 때다.”였어. 그 의미를 알 겨를도 없이 후딱 지나 버린 꿈의 시간대였나 봐.
다소곳해 보이면서 세련미를 지닌 샤넬라인 치마는 지금도 내 곁에 있네. 몸가짐은 물론 무람없이 날뛰던 마음도 수그러들어 발걸음을 사뿐사뿐 내딛게 하지. 끝단에 레이스를 덧달아 입으면 세월이 나를 더 지나간 다음에도 입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끼는 마음이 더해져. 삶이 가끔 가슴을 쿡쿡 찔러 올 적엔 일부러라도 예쁜 레이스가 달린 샤넬라인 치마를 차려입고 나서지. 그러면 고단하고 시들한 일상이 슬그머니 한 발짝 물러서게 하는 기특한 나의 단짝이야.
샤방샤방 화사한 셔링 치마는 봄바람을 담았어. 잔잔하게 주름 잡힌 얇은 치맛자락이 걸을 때마다 바람결에 산들거리지. 설마하니 연한 풀잎 닮은 치마 하나로 이제 와 예전으로의 회귀를 꿈꿀까만, 작은 설렘이라도 이직은 마다하지 않으려고 해.
모두가 나와 더불어 살아온 살갑고 애틋한 반려이지. 치마 입기를 본능적으로 좋아했던 한 여자아이가 청춘기를 지나고 어쩌다 중년이 되고 속절없이 노년의 길에 섰지만, 색감 고운 치마엔 세월도 나이도 지워 버린 여자가 들어 있다. 이만하면 우린 숙명적 관계 아닌가.
하지만 가장 그리운 치마 중의 치마는 어머니의 긴 무명 치마지. 내 아픔을 품어 주고 모자람도 감싸 안은 넉넉함과 푸근함의 이름씨. 기억하는가. 어머니의 치마는 마냥 가냘픔이 아니라는 것. 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러운 힘을 품었다는 것, 애간장이 말라붙어도 지긋하게 가정을 가꾸고, 당신의 시절이 저문 즈음엔 또 다른 사랑을 보듬어 내는 절절한 생의 표상. 어머니의 치마가 눈물 나게 빛나는 이유이지.
한차례 가을바람이 나뭇잎을 흔드네. 가로수 은행잎들이 노랑나비 떼인 양 일제히 바람을 타고 있어. 사방 천지가 한들한들, 애연한 것들도, 찬란히 빛나는 이런 황홀경이라니! 그러기에 카뮈는 말했지.
“모든 잎들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다.”
이 두 번째 봄날에 사랑스러운 내 단짝과 뼈 없는 바람에라도 실려볼까. 세월도 내려놓고 왠지 모를 서러움도 지레 날아가 버리도록, 아무렴 우리는 천생연분, 애틋한 반려다. 바람인들 그냥 불어 왔을라고. 흔들리고 가슴 저려 가며 한 계절이 익는 거라네.
첫댓글 이제 치마를 입을 계절이 되었네요. 염 작가님 처럼 저 역시 치마를 좋아한답니다. 남녀 노소 가릴 것 없이 편리함을 추구하며 바지만 입으니 거리가 좀 삭막하기도 하답니다. 치마는 여성 미를 돋보이게 하지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