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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 말씀/ 누가복음 14:1-35 요절/ 누가복음 14:33 | 2022. 9. 4 | |
누가복음 제 26 강 |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누구나 기쁨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잔치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배제되고 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누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가 배우고 우리의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안식일에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누가복음을 살펴볼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초대한 동기는 순수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예수님과 함께 초대 받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감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 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잔치 집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을 피하려면 처신을 잘 해야만 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는 수종병 든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수종병은 심장이나 신장에 이상이 있어서 얼굴과 손발이 붓는 병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응급환자가 아니면 병자를 고쳐서는 안 된다는 규정도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 규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수종병으로 고통 하는 사람을 다른 날 고쳐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를 깨기 위해서 안식일에 그를 고쳐주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율법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의 법에 따른다면 그들은 “합당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잠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대답하든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셨습니다. ‘데려다가 고쳤다’는 것은 그를 다른 장소에 데려가 고쳤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그 식사 자리에서 안수하여 고쳐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그들에게 이르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안식일 법을 엄격하게 지킨다고 하면서도 안식일에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즉시 끌어내었습니다. 이는 안식일 법에 예외가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소와 같은 짐승을 살리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허용하면서 안식일에 병으로 고통 하는 사람을 고쳐주는 일은 금한다면 이는 모순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자기들의 잘못을 알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주요 손님으로 바리새인 지도자의 초대를 받아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때 초대받은 바리새인들이 서로 상석에 앉으려고 경쟁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초대 받은 사람들이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상석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U자 식탁에서 중앙의 자리가 가장 높은 자리이고 거기에서 가까울수록 높은 자리였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는 주요 손님이 앉고, 그 다음 자리를 누가 앉느냐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동료들끼리의 자리 경쟁은 치열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다툼하는 그들을 보시며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이 오면 그 자리를 내주고 끝자리에 앉아야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끝자리에 앉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청한 자가 와서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할 것이고, 그 때에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가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자기 분수를 모르고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자입니다. 그는 교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낮추십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자기를 들어내려고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높이시고 영광이 있게 하여 주십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지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자기를 낮추는 데 힘쓰는 겸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높은 자리는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자리인데도 역량이 안 되는 사람이 부모 찬스를 써서라도 그 자리에 앉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은 결국 부끄러움을 당하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높은 자리를 탐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고 높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고 높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참으로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몰락하게 된 원인은 교만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역사에 빛나는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겸손 때문이었습니다. 안요셉, 마리아 선교사님은 참으로 겸손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두 분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갔는데 저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저는 귀한 선교사님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이 너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합니다. 저에게는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벧전5:6). 제가 날마다 교만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허리를 동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2-14절은 초대한 주인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까?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데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식사 초대할 때 대부분 친구나 가족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게 되면 그 답례로 다시 초청해 올 것이기 때문에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을 초청해야 합니까?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을 초청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을 초청하게 되면 되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의인들이 부활한 후 그들의 초대에 대해 하나님 나라에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의인으로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 보면 부족한 자들이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의인으로 인정된 자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기에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의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보상 능력이 없는 부족한 사람들을 초청할 때 이 땅에서 그들이 갚아주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같은 신분을 가진 동료들을 초청했습니다. 유유상종이라고 그들은 끼리끼리 놀았고 죄인들과 밑바닥 인생들과는 식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엘리트주의를 깨고 사회적 약자들을 깊이 이해하고 식탁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당연히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자기를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가 얼마나 교만한 자인가 깨닫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니 구원 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어떤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이스라엘 상류사회에서의 초청방식은 잔치 준비가 되기 전 미리 초청장을 보내고 잔치 준비가 되면 다시 초청장을 보내었습니다. 첫 번째 초청에 예스라고 하고서 두 번째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초대한 사람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D데이가 되어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주인은 종을 보내어 말했습니다.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풍성한 음식과 시와 춤과 트로트 노래와 밴드가 준비되었습니다. 만반의 준비가 끝났고 와서 즐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오겠다고 약속한 자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했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일과 인간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큰 잔치에 가지 못할 만큼 시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은 지켜야 하는 것이요, 약속을 깨는 것은 주인에 대한 모욕입니다.
초대한 사람들이 오지 않자 주인은 노하여 그 종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초대하는 것은 혁명적인 일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무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희망을 가질 수 없었고 그들 스스로도 희망을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 사회적 약자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종은 잔치의 격이 떨어지니 우리끼리 잔치하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여 시내의 거리와 골목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스스로 오기 어려운 사람들을 겸손과 눈물로 데려왔습니다. 그런데도 빈 자리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종에게 말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주인은 잔치를 어찌하든지 성대하게 치르고자 했습니다. 주인은 한 사람이라도 더 초청하여 은혜를 베풀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처음 청함 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오지 않음으로 주인과의 관계가 깨지고 은혜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은 잔치에 응함으로서 주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고 종은 선지자들과 제자들이며,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은 교만한 유대인들이고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함을 아는 이방인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잔치는 교만한 자들은 누리지 못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누립니다. 우리는 자격 없는 이방인이요 비참한 죄인이었습니다. 자기 일과 인간관계를 복음보다 더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눅12:31)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5-35절은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합니다. 여기서 미워한다는 것은 덜 사랑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가족이나 자기 목숨보다 덜 사랑한다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십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는 우리의 마음이 가고 사랑이 가는 대상입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본능적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이런 것들을 미워해야 된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가족관계를 끊고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참 제자는 세상 그 무엇보다도 부모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보다도 심지어는 자기 목숨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사랑의 질서를 분명하게 세워야 합니다. 기쁨 JOY는 첫째 JESUS, 둘째 OTHERS, 셋째 YOU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나를 사랑할 때 기쁨이 충만합니다. 사랑의 질서가 분명한 사람만이 참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자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여 낭만적으로 제자의 길을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핍박과 손해가 따르게 되자 앗 뜨거 하면서 도중하차 했습니다. 참 제자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따릅니다. 뜨거운 사막 길도 가고, 외로운 길도 가고, 위험한 길도 갑니다. 해외선교사로 가라 하면 모든 것을 놓고 갑니다. 직장을 내려놓으라 하면 내려놓고 다시 일하라고 하면 다시 시작합니다. 참 제자는 나의 생각과 나의 감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의 뜻과 계획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 십자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십자가가 무엇인지 깨닫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참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망대 건축과 전쟁 비유를 통해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미리 헤아려 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망대를 세우는 데 드는 비용을 미리 계산해보지 않고 망대를 세우고자 하는 자는 그 기초만 놓고 능히 이루지 못하여 비웃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전쟁을 하고자 하는 왕이 있다면 당연히 적군과 아군의 규모를 알고 전쟁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무모한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결국 패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려주신 후에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참 제자는 물질욕, 소유욕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제자의 대가가 무엇인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이 끊기고 핍박과 미움을 받을 때 회의와 불신에 빠지고 제자의 길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또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불이익을 당할 때 힘을 잃고 비틀거리게 됩니다. 또한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무시 받을 때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제자의 길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무엇을 잃게 되는지 알고 마음의 각오를 굳게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잃은 것만을 생각한다면 마음이 힘들어 제자의 길을 갈 수 없을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지 또한 무엇을 얻게 될 것인지, 장차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가치 있는 것인지도 알아야 합니다. 영육 간에 잃은 것과 얻은 것의 손익계산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제자의 길을 확신 있게 갈 수 있을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제자가 되라고 하시고 제자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제자도의 대가를 알고 또한 그 상급도 알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 제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 잔치는 겸손한 사람이 누리게 됩니다.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예수님을 위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의 모든 소유보다 예수님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