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너그러움은 하나님의 자비와 그분에 대한 믿음의 강력한 증거이다. 본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의 너그러움을 강조한다. 가난하고 빈핍한 자들에게 대한 배려와 너그러움이 강조되고 있다.
“너그러움의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정신은 십자가 위에서 계시 되었다.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 후에는 자신까지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된 구주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한 마음을 가지라고 호소한다. 그곳에서 실증된 원칙은 “주라! 주라!”는 것이다. 실제적인 자선과 선한 행실로 나타나는 이런 주는 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의 참된 열매이다. 세상 사람의 원칙은 “취하라! 취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행복을 얻는 줄로 기대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 열매는 비극과 죽음이다.”(3 보감, 402)
기도와 예배는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그리스도인의 책무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에게 나타내는 자비와 선행이다.
(마5:23, 개정)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마5:24, 개정)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서 "먼저 가서"라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다. 결코 우리 그리스도인이 무정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매정하고 매몰차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위하여는 하늘에 그들의 거처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신24:20, 개정)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신24:21, 개정)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여기에 “주고 또 주라”와 “취하고 또 취하라”는 두 가지 삶의 태도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인가? 너그러움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몰인정의 삶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의 정신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하늘에서 우리가 있어야 할 곳도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를 이끌어가는 정신 곧 우리의 성품이 결국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어 구원을 얻은 자들은 그분의 정신으로 물들 것이다. 십자가의 정신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주고 또 주는 너그러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열매이며 증거인 셈이다. 자기의 주머니를 절대 풀지 않고 냉정하고 몰인정한 사람들은 아무리 “주여, 주여”를 외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허상이요 위선에 불과한 거짓 신앙이다. 참 신앙은 자비와 동정이라는 삶의 열매로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 아버지! 그리스도의 정신이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드러나도록 하늘의 정신으로 채우시고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고 예수님의 십자가 정신이 우리의 정신이 되고 주님의 뜻이 우리의 뜻이 되어서 아버지의 정신으로 물들어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