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27회 / 이명자)
가게는
아침출근 하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들어서는 나를 본 아버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렸다. 나도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한 일을 내가 어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런 바로 이렇다니까. 금지옥엽
하나뿐인 자식이란 것이 도대체. 좋아 난 오늘부터 어머니를 찾아야 해 아버지가 필시 어머니를 못살게
굴었는지 누가 알아, 하면서 눈을 뜨자마자 어머니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자식 된 도리가 아니겠는 가. 발등에 벼락이 떨어지더라도 말이지. 그러나 어디서 어떻게? 장장 일주일씩이나 가게 문도 잠그고, 꼭꼭 숨어버린 어머니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아서 아버지도 못 찾아내는데. 실종신고는 하셨어요? 물어봤지만
아버지의 대답대신 내게 내민 종이쪼가리에..... 나를 찾을 헛수고는 하지 마세요. 묘한 뜻이 담긴 어머니의 친필이었다. 나는 읽어보고 또 읽어보고 했지만..... 뭔 말을 아버지에게 물어보아야 하지? “더
자지 왜 아침 일찍 부터 나왔느냐.”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그 말속에 아버지의 피곤이 묻어왔다. “가게는
제가 볼게요. 아버지는 들어가서 쉬세요.” “그럴
수 있겠니?” 아버지는 ‘네’ 라고 대답하는 내가 무안할 정도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시선으로 인해 내 몸이 비비꼬이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버지가
내 말에 감명을 받은 듯, 한 인상이라고 느껴져서 나는 자못 좋은 기분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그런 거나 챙기고 있으니 딱한 인간이여 라고? 내가 알바 아니다. 아버지의 감명이 내게도 감명이었으니까. 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뭐 그리 복잡한 것도 아닌데 말이지. 중요한 것은 하루 빨리 어머니가
집에 돌아와 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게 주의사항도 주지 않고 가게를 나가버렸다. 일 년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아마 나를 믿어서였겠지. 아버지만큼 키도 컸고 뒤에서 안았을 뿐이지만 아버지를 안아 일으켰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버지 대신 일하겠다고
솔선수범하니 말이지.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를 돕고 싶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아버지의 몰골이 저리 되었을까, 처음으로 아버지 쪽에 서서 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여간 가여운 게 아니었다. 철들어라
재민. 나 자신을 향하여 내가 말했다. 아무렴 철들어야 해. 어머니를 한시바삐 찾아 모셔 와야 해. 그런데 어머니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말이지. 이 세상에서
친구하나 없이 그럼 어머니는 외로운 한 마리 기러기였단 말인가. 눈물이 눈앞을 가리고도 남을 만한 일이었다. 어머니의 세상 속이 오로지 아버지와 나뿐이었다면 말이지.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어머니가 알면 기절초풍할 나 같은 마약장이도 좋은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그만 머리를
썩이지 말자고, 나는 열심히 일만 했다. 아침 겸 점심은
군것질로 때웠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밤이 오려면 아직도
멀었고 아침에 나간 아버지로 부터는 소식도 없고........
밤 열시가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나는 피곤에 절었고 불안해졌고 배도 고 팠고 영 죽을 지경이었다. 다행이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락거려서
시간은 멈추지 않고 지나갔다. 열 한 시가 다되어서야 아버지가 나타났다. 어머니를 찾는 일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포기할
게 따로 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두 사람만이 지니고 있을 그 어떤 것을 그리 쉽게 포기할 수 있는가
말이지.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발각되어 언젠가 내게 살며시 미소를 던지던 그때처럼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나는 내다보았다. 그런데. “내가
이년만 버티면 되겠지? 너는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된다. 알아듣겠니?” 아니
이렇게도 이상한 말을- 아버지가 내게 했다. 피곤한 기색이
아버지의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데도 방에 들어가 쉴 생각도 하지 않고 다 늦은 오밤중에 말이지. 죽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내가
한 가지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이 있다. 나는 캐나다인이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특기를
가지고 있다. 보라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라, 한국어를 그곳에서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말이지. 그러고
보니 자랑할게 너무 많다. 아버지는 나를 위하여 온종일 가게에서 일만 했고 어머니는 나를 위하여 내가
태어나자마자 부터 한국어를 가르쳤고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너무나 신나는 이야기다. 어머니가 가르치는 한국말은 재미있었고 어디서 구해 왔는지 한국어로 된 동화책을 아버지가 집에 가져왔을 때 즐거워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나는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국말밖에 할 줄 몰랐다. 모두가 다른 나라의 말을 쓰고 있는 줄 알았다. 내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고 어찌나 혼란스럽던지 그때부터 나는 아마 시무룩한
성격을 만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집은 달랐다. 내
집에 오면 어머니하고 모든 것이 통했다. 나는 콩쥐와 팥쥐도 알고 흥부와 놀부도 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도 기억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는 오누이의 어머니를 잡아먹을 때의 호랑이를 아주 무서운 얼굴을 만들어 가지고 목소리는 호랑이처럼 어흥, 어흥
했고 열 손가락을 모두 우그려 뜨려 허공을 할퀴면서 나를 무서움에 떨게 했다. 그 장면은 잊혀 지지도
않는다. 어머니는 그 동화를 열 번도 넘게 내게 읽어주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똑같은 동화책이었는데도 어머니가 읽어 줄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글
읽는 목소리가 매번 달랐기 때문이었을까.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꼭 바람소리처럼 내게
들렸고 달빛이 휘영청 밝은 밤에는 은은하고 고요한 목소리였고,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내게 아주 특별한
선생님이었다. 캐나다에서
태어난 한국인 이세 들 중 나만큼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학생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 한국어를 누구보다도 더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하여 앞으로 전진, 전진하자. 내일이라도 나타나 어쩌면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겠다고 할지도 모를 나의 어머니를 위하여.
그런데 아버지를 위하여 나는 죽어라고 공부하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는 죽어라고 나를 위해
황금을 버느라 일만하는데도 말이지.
이렇게 공평하지 못한 감정을 나는 왜 품고 있는 것일까? “왜
대답을 못해.” 나는 찔끔 놀랐다. 생각 속에 갇혀 있다가 아버지의 뜻에(죽어라고
공부를 해야 한다니.)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대답을 요구했다. 나는 당연히 대답을 못했다. 이틀
전에도 아버지는 술에 취해 있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아버지를 안아 일으킬 수 있었고 그래서 아버지가 가엽다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그 와중에도 ‘너는 죽어라고 공부만 해야 되.....알아
몰라.’ 라고 중얼중얼, 그런 아버지였다. 왜 알면 안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대답을 못해? 그거야 뭐 아버지의
술주정쯤으로 간주해버린 뒤끝이었으니까. 아버지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를 것이 뻔한데, 오늘도 나를 다그치다니 내 가슴이 벌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아주지도
않는, 질병처럼 말이지. ‘너 재수 더럽게 선천적으로 가슴이
벌렁거리는 질병을 물러 받았니?’ 라고 나에게 비웃음의 눈초리를 보낼 런지 모르겠지만 생각해 보시라
두려움에 몸을 떨어본 기억이 있다면 그 기억의 잔해가 몸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가 때를 놓칠세라 얼마나 재빠르게 얼굴을 내미는지, 말이다. 가슴이 벌렁 벌렁 질병처럼 벌렁거리는데 왜 대답을 못해? 라고 너도 당해봐 너라면 보나마나 세상이 끝나는 것처럼 오만가지 상판대기로 비관의 칼날을 너 자신에게(누구에게라도) 들이대고야 말테니까.
마약중독자가 감히 남을 비판하는 불한당이라고 손가락질해도 할 수 없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대답도 하지 못하고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앉아만 있었으니까. “지금
잠깐 생각해보니 너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걱정 말거라. 집안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한다. 그만 올라가 자거라.” 참으로
이상했다. 나는 아직 우리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는 데 보이지 않는
어머니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이 아버지는 나를 이미 설득이나 한 것처럼 그만 올라가 자라고 하니 말이지. 그러나
답답한 건 누가 더 답답할까. 아버지일까 나일까. 나는 이층
내 방으로 올라갔다. 잠을
청했다. 내일을 위하여 잠이라도 푹 자 두어야지 만일에 하나 상상도 못할 이런 저런 일이 생기면 나에게
불리하지 않도록 최대한 영리한 판단을 신속히 내릴 수 있도록, 나는 금방 잠이 들었다. 깊은 잠속인데도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바로 내 귓가에서 들리는 듯, 하여
소스라쳐 잠에서 깼다. 진짜로 고요한 밤에 눈을 뜬 나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방안은 어두웠지만, 소리 없이 날아다니는 먼지 한 점 없었을 테니까 말이지. 나는 살며시
일어나 앉아 귀를 기울였다. 분명했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다시 났다. 나는 살금살금 거리며 이층을 살피고 비어있는 아버지 방을 지나 소리 나지 않게 계단을 내려갔다. 웅얼거림은 아버지의 것이었다. 이번에는 아주 뚜렷이 들려왔다. 당신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내게. 나는 당신과 재민이만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세상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당신에게 부족함 없이 살게 해주고 싶었어. 뭐가 부족했던 거야
뭐가 그리 부족했었느냐고..... 당신이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내 가슴을 잘라 열어서 당신에게 보여줄테니..... 돌아와 줘. 돌아오는 거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나는 계단 마지막 둘째 칸에 내려선 채로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었다. 목소리에 담긴 아버지의
원망을 먼저 들었다. 목소리에 담긴 비애를 다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목소리에 담긴 아버지의 갈망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모든 것을 들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계단에 못 박혀 서있었다. 진심이 묻어나는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버지의 심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와서 그 자리를 떠나 아버지를 위로할지 등 돌려 내 방으로 돌아가 버릴지 엄두도 못 냈다는 말이다. 한참이나 그러고 서있었다. 아버지는 드디어 웅얼거림을 멈추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진짜로
고요한 밤이었다.
나는 이층 내방으로 소리 내지 않고 물러가 잠자리에 들었다. 잠은 오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했다. 머릿속은 방금 전에 들은 아버지의 웅얼거림이 갈 짓 자로 흘러 다니고 그래서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고, 어둠속에서 눈만 말똥말똥했다.
그런데 요상한 것은 신체였다. 백 시간도 넘게 말똥거린 것만 같던 내 눈은 어느새 감겨져
나는 잠속에 있었다. 이틀씩이나 잠도 잘못자고 먹은 것도 부실하고 나를 지배하지 못해 안달하는 마약증후군은
제발 한 모금이라도 빨게 해달라고 아우성치고 해보았자 도움 하나 되지 않는 어머니걱정을 했고 아버지의 충격을 보았고, 내 육체가 힘에 겨웠을 것이다. 깊게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