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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공장 ㅡ이기인(1967∼ )
공장 밖으로 심부름을 나온 달빛
심부름을 나온 바람,
심부름을 나온 소녀가 슈퍼에서 쪼글쪼글한 귤을 한 봉지 산다
슈퍼 주인 할아버지가 자기 방식으로 귤을 센다
늘어진 전깃줄에서 나온 백열등이 귤을 또 센다
초코파이가 들어와 부풀어 오른 비닐봉투 배가 불룩하다
‘이게 모두 얼마예요’ 그래서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
‘이게 모두 얼마예요’와 ‘이게 모두 다 얼마예요’라는
말을 들은 귤과 초코파이의 몸이 욱신욱신 속이 상해서 비닐봉투에 들어 있다
자정이 넘어서 귤을 벗기고 있는 소녀와 소녀를 벗기고 있는 기계소리가 아프다
‘오늘밤이 지나면 얼마를 줄 거예요?’
귤을 벗긴 이의 손톱은 달을 파먹은 것처럼 노랗게 물이 들었다
무심한 달빛이 공장 지붕을 아프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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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귤껍질에 싸인 우화처럼 읽히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그 안에는 공장에서 심부름 나온 소녀의 피곤한 노동이 스멀거리고 있다. 공장에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소녀이지만 그 역시 엄연히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감성을 지닌 존재임을 시인은 환기시키고 있다. 오늘의 노동 강자여, 그대 이름은 진정 소녀인가. 레닌이 부르짖었던 노동 강자는 오늘에 이르러 사회적 약자다. 귤껍질을 벗기는 손톱에 든 노란 즙은 이 땅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애환에 다름 아니다. 눈여겨볼 부분은 그럼에도 시인은 이들 약자의 슬픔을 눅눅함 없이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거창한 담론을 부르짖지 않고도, 박노해 식의 격정 없이도 시가 차분한 정적 속에서 뇌리에 쏙 들어오는 것 자체가 언어적 마술이다.ㅡ정철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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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 ㅡ이기인(1967~ )
졸린 눈으로 한숨을 쉬는 시래기가 벽에 걸려 있다
그의 영혼은 일을 하러 나갔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의 등뼈는 집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직도 벽에 걸쳐놓은 굵은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작은 입술로 뼈마디를 주무르며 바스락거린다
온몸의 근육이 파도 물줄기처럼 번져 그의 삶을 거들고 있다
좁다란 어깨에 푸른 노동의 시간이 사이좋게 누워 있다
그의 어깨를 붙잡아서 깨우고 싶은 바람이 오늘은 외치듯이 온다
한시름을 놓은 주름살이 우두커니 허름한 살림을 본다
지친 날개를 한 묶음 껴안은 가슴이 파닥거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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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걸린 시래기 한 묶음이 있다. 서슬 푸르던 청춘을 뙤약볕에 내어주고 졸음과 한숨으로 바래져가는 노년이 있다. 영혼은 일터에 묻었고 등뼈는 고단함과 맞바꾸었다. 시래기는 온몸이 거칠고 “굵은 손”이다. 온몸이 바스락거리는 “뼈마디”다. 그의 온몸은 “파도 물줄기”처럼 흔들린다. 그렇구나. 온힘을 다해 말라가는 것도 “푸른 노동의 시간”이었구나. 저 주름살들, 시름에 겨워서가 아니라 시름을 놓아서 생긴 것이었구나.
삶이란 그렇게 최선을 다해 늙어가는 것, 거기에 무슨 시급이 있고 무슨 정년이 있으랴. 오늘도 노인정에 나와 앉은 할머니 할아버지들, 온몸으로 파닥거린다. 파닥거리며 말라간다.ㅡㅡ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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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 ㅡㅡ이기인
저녁에 동그란 상처를 가진 이들이 모여들었다
누군가 라면상자에서 꺼낸 서류철을 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한다
송곳으로 뚫어서 묶어놓은 명단의 이름은 긴 밭고랑처럼 길고 순하다
송곳 하나 후빌 땅이 없어서 마음에 구멍을 하나씩 만들고 죽은 사람들이다
이제 이들은 죽어서 검은 표지의 송곳 구멍을 하나씩 갖게 되었다
나는 오늘 송곳 끝에 매달린 빛을 보다 붉은 핏자국을 하나 떨어뜨렸다
저녁 하늘에 뚫어놓은 수많은 구멍의 빛을 보다 책상 위의 핏자국을 하나 지운다
구멍이 많은 하늘이 빛을 흘리고 있다
----------------------------------------------- 살면서 땅 한 평 자신의 이름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평생 임대와 월세, 전세로 전전하면서 이 생을 마무리하는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송곳’은 세상에 대한 상처이자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시를 읽다 보면 송곳에서 연상되는 동그란 구멍을 여러 이미지로 연결시키는 깊이 있는 흐름이 인상적입니다. 서류철에서 마지막 행 저녁놀까지 송곳이 놓여 있는 자리를 좇다 보면 어느새 순한 사람들의 상처가 붉게 각인됩니다.ㅡ윤성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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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밤 ㅡ김성규
‘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너무나 많은 내용과 방법을 동원해 설명해야 하는 질문이지만 동시에 어떤 말로도 풀 수 없는 화두이기도 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의 가슴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그것을 꺼내 세상에 내보일 때, 언어를 통해 입술에서 발음될 때,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해답은 공중에서 사라져 버린다. 마치 햇볕에 타버린 필름처럼 형상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적막과 암흑만 남는 것이다. 어쩌면 시는 말할 수 없는 그 암흑과 적막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시는 스스로를 증명해 보인다. 위대한 시는 그것이 ‘아름다운가’ 혹은 ‘정당한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읽는 순간 독자를 사로잡는다. 기유빅은 「노래」라는 시를 통해 그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티티새가 노래할 때/ 세계와 순간이/ 그들의 궤도를 그린다.” 시에 관한 수많은 해석과 설명이 있겠지만 아름다운 시는 그런 논의들을 모두 무화시킨다.
낯선 저수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지난 해 물에 빠져 죽었다는 그녀/ 어릴 적 고모네 가며 함께 걸었던 누이/ 그러고 두세 번 보았을까/ 시집 가 아이 둘 낳았다는 풍문/ 신랑과 별거해 호프집 한다는 풍문/ 어느 날 가게 문 닫고 나가 감감무소식이라는 풍문/ 그리고 며칠 뒤/ 단골 총각과 함께 저수지 위로 떠울랐다는 풍문을/ 신문 귀퉁이에서 읽었다/ 고모는 우세스럽다며 입을 다물었지만/ 풍문에 쫓겨 수몰되었을 누이의 로맨스를/ 나는 알 것도 같다/ 풍문이 밝히지 못한 단말마의 흐느낌을/ 누구든 생의 끝 진실은 풍문이 되고 말 것이지만/ 누이의 늦은 사랑은 아무래도 풍문이 아닐 것 같다/ 그게 옳다면 바보처럼 죽지만 말고/ 뭐라고 말 좀 해보라며/ 목이 멘 저수지 수면이 자꾸만 자꾸만/ 가슴을 쥐어뜯는다/ 나는 너무 늦게 이 저수지에 왔고/ 누이는 너무 늦게 사랑을 알았을 뿐
- 「풍문」전문
최영철의 시집 『찔러본다』는 일상의 순간을 소박한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풍문」이라는 시도 우리가 흔히 들어 온 이야기를 언어로 옮겨 놓은 듯하다. 지난한 삶을 헤쳐 오며 늙어 가던 누이가 사랑을 알았을 때 그 누이는 처음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타인과 함께 스스로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런 누이가 죽자 주변 사람들은 그 감정을 저수지의 물로 수장하듯 너절한 풍문으로 덮어 버린다. 우리의 삶에서 진실이 훼손되는 순간은 비단 누이의 사랑이 추문으로 전락하는 상황에만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감정이든 아니면 고통과 외로움의 감정이든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은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풍문에 불과한 ‘감정의 소모’로 점철된 일상이다.
누이는 진실이 저속한 소문으로 변하는 순간 죽음을 택한다. 죽음을 통해 자신만의 진실을 강물 속에 수장시키고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음으로써 진실의 부패를 막은 것이다. 어쩌면 누이에게는 그것이야말로 편견과 악의로 가득한 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진실을 오롯이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가슴을 쥐어뜯는” 저수지 앞에서 화자는 이런 어긋난 인생의 한 단면을 쓸쓸하게 돌아본다.
그렇다면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들이 자신의 진실을 너절한 풍문으로 떨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사내가 수레를 끌고 언덕바지를 오른다 사내의 비틀린 몸은 땀방울을 쥐어짜고 있다
수박이 실린 수레 뒤에서 배가 불룩해진 여자가 끄응끙 수레를 따른다 한쪽 손으로는 무거운 배를 안고, 한쪽 손으로는 수레를 밀면서
지난봄 사내의 넝쿨 끝엔 딸기와 외가 열렸었다 상하기 시작한 딸기를 자주 헐값에 팔아넘겨야 했었다
소아마비 뒤틀리는 사내의 몸속 굽이치는 무늬가 길을 휘감고 오른다 만삭이 된 수박 수레바퀴를 돌린다
-「스프링」부분
손택수의 시집 『나무의 수사학』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레를 끌고 가는 부부가 등장하는 시 「스프링」에서 사내는 ‘비틀린 몸’으로 땀방울을 쥐어짜며 언덕을 오른다. 그는 가난과 장애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죄는 '가난'이며, 시 속의 사내는 수레를 끌고 날마다 언덕을 올라야 하는 ‘삶’이라는 형벌에 처해 있는 것이다.
장애를 지닌 사내와 만삭의 아내가 운명에 저항하는 방식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시에는 담담하게 수레를 언덕으로 밀어올리는 부부의 행위만 그려져 있을 뿐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손택수의 다른 시들에 나타나는 인물들처럼 그들은 운명에 저항하기보다 수동적인 모습으로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견딤의 행위가 과연 운명에 저항하는 것일까.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 보자. 가난하고 병든 이들이 가혹한 현실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일까. 실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디는 행위뿐일 것이다. 견딤의 행위만이 다가오는 파고에 저항하는 그들만의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물론 그 견딤의 행위는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다. “수레바퀴”처럼 끝없이 돌고 도는 윤회의 순간처럼 손택수의 시들은 많은 부분 우리 삶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체념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러한 체념적 행위가 오히려 강렬한 생의 의지를 발휘하는 역설적인 순간을 이 시는 보여준다. 시 속의 사내는 힘겨운 노동을 감내하며 자신의 몸속에 “굽이치는 무늬”를 만들어 낸다. 견딤의 행위를 통해 생으로 인한 고통과 체념을 생에 대한 강렬한 의지, 즉 “굽이치는 무늬”로 바꾸어 내고 있는 것이다. 수축되는 순간 이완의 힘으로 뒤바뀌는 스프링의 속성처럼, 체념의 순간에 “뒤틀리는 사내의 몸속 굽이치는 무늬가 길을 휘감고 오르”는 이 전도현상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묵직한 감동이 내면을 울린다.
아버지의 혁명은 아버지의 구식 혁명으로 끝나버리고/ 한 코 한 코 풀어지면서 새로운 혁명을 끌어내야 한다고 털옷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장롱 속에서 나왔죠// 낡은 털실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혁명가를 계속 불렀지요/ 그 옆에서 소녀의 꽃무늬 혁명은 계속 줄기를 뻗어갔지요 // 풀어진 아버지의 혁명은 새 혁명의 넝쿨로 이어졌죠/ 소녀의 꽃무늬 혁명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겨울도 이젠 춥지 않을 거라 믿었죠
-「소녀의 꽃무늬 혁명」부분
이기인의 시는 고단한 현실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대상을 관찰하듯 이야기하는 화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의 시에서 대상과 시적 화자는 쉽게 동화되지 않는다. 대상과 주체 간의 이런 거리는 세계의 모순과 쉽게 타협하지 않고 대결하려는 그의 시적 경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첫 번째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이후, 소녀들의 비극적 세계는 어떻게 바뀌어 가고 있을까. 두 번째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에는 시인 자신의 ‘곤궁과 고뇌’를 투영하는 시 세계와 지난 시집의 연장선에서 ‘아버지의 혁명’을 ‘소녀의 꽃무늬 혁명’으로 바꾸려는 의지의 시 세계가 서로 균형을 이루며 병행되고 있다. 시인은 어린아이, 노인과 같은 약한 존재들에 대해 따듯한 시선을 던지는 와중에도 “조용한 노인의 잠을 파먹기 위해 아악 입을 벌리고”(「공가」) 있는 굴삭기를 잊지 않고 곳곳에 배치시킨다. 현실의 모순을 때로는 선명한 이미지로, 또 때로는 유머러스한 어투로 그려내면서 그는 자본주의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동맥이 끊어질 듯 아프게 지저귀다 날아가는 새들”(「빗자루 이력서」)의 모습으로 형상화한다. 이기인의 시가 보여주는 뛰어난 성찰과 언어 조형술은 그동안 노동시가 쉽게 메우지 못했던 내용과 형식의 틈을 적절히 채워 준다. 한국 시의 한 영역을 묵묵히 개척해 나가는 이런 시도가 성공할 때 “부득부득 삶을 졸업하지 않았다고 우기면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깊은 비린내”(「파래가 나온 식당」)라고 할 이기인 시 특유의 냄새는 현실 세계의 비루한 풍경을 경유해 우리의 몸과 정신에 효과적으로 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시가 세상을 바꾸고 자신을 바꾸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정치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진정한 세계와 자아의 각성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이기인의 시가 말하듯 “새 혁명의 넝쿨”로 이어진 “소녀의 꽃무늬 혁명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겨울도 이젠 춥지 않을” 것이다.
최영철, 손택수, 이기인의 최근 발행된 시집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감탄했고 동시에 나에게 묻게 되었다. “가장 나쁜 것은/ 무엇인가?// 노래할 수 없는 것인가/ 아니면 억지로 노래하는 것인가?” 「노래」 연작에서 기유빅이 말한 것처럼 시를 쓰고 읽을 때마다 나는 묻게 된다. 나의 시는 과연 감동이 있는가. 감동이 없다면 절실함만이라도 시 속에 묻어나는가. 이것이야말로 ‘시는 현실의 충실한 재현물이어야 하느냐’, 아니면 ‘시는 그 자체로 잘 짜인 독립된 구성물이어야 하느냐’라는 단순 이분법의 질문을 넘어서는, 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일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시인들이 나처럼 스스로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질문이 무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감동도 없고 절실함도 없는 시라면 내가 쓴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에 대한 두려운 물음 앞에 나는 겸허해진다. 시 속에 땀과 피가 묻어날 때 나는 비로소 나의 시로 인해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부딪혀 자신의 몸을 부스러뜨리며 소리를 내듯 아름다운 시들은 스스로를 부수며 태어난다.
《문장웹진》 201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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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깎는 사람 ㅡ이기인
사거리 한적한 귀퉁이에서 돌가루를 뒤집어쓴 돌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석재상 마당은 절이었다가 교회였다가 아프리카 들녘이었다가 수줍은 소녀가 사는 외딴 집으로 변한다
한 반의 아이들이 지키고 있는 돌 부스러기는 염주와 묵주와 털과 상아와 젖가슴이 되지 못하고 빛의 산란을 일으킨다
콜록콜록 돌 깎는 사람이 오래된 기침을 하면서 한반의 아이들에게 오래된 천식을 가르친다
오래 입은 옷이 해지는 것을 가르치고 그 옷을 기워 입는 것을 가르친다
작은 돌에서 더 조그맣게 떨어져 나온 돌을 오래오래 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아픈 몸을 끌고 가면서도 가끔은 되돌아보는 눈빛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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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귀퉁이에 잡다한 석상들이 서 있는 석재상 마당. 메마르고 쓸쓸한 풍경에 ‘돌부처와 돌예수와 돌사자와 돌코끼리와 돌소녀가 한 반의 아이들처럼 놀고’ 있다나 순식간 온기가 돈다.
‘돌’은 다루기 만만치 않은 혹독한 생의 은유
일생 돌을 깎으며 뿌옇게 날리는 돌가루를 마셔 ‘콜록콜록 오래된 기침을’ 하는 돌 깎는 사람.
그에게 풍부한 건 ‘한 반의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깎으며 생긴 돌 쪼가리뿐
일만 시키고 몰라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아가 된 석상이 더 늘지 않으면 좋으련만. 돌 깎는 사람은 돌을 깎는 순간에는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돌을 깎으리라. 부처를 깎을 때는 절이었다가 예수를 깎을 때는 교회였다가 사자나 코끼리를 깎을 때는 아프리카가 되는 석재상 마당, 그 넓고 깊은 세계. 열어 놓은 창으로 살랑살랑 순한 바람이 불어오고 라디오는 벌써 ‘4월의 사랑’을 노래한다. 자잘한 글 한 편을 쓰면서 몸을 뒤틀고 “돌에서 물을 짜내는 것 같네!” 비명을 지르는 내가 부끄러워지는 시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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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 위의 살림 ㅡ이기인 (1967~ )
검은 지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이 필 때
붉은 고무대야에 수돗물을 틀어놓고 찌든 이불을 치댈 때
흰 구름이 지붕을 덮고 나무를 덮고 마을을 덮고 지나갈 때
까칠까칠한 수염의 가장이 숫돌에 칼끝을 문지를 때
지붕으로 뛰어올라온 닭이 벌어진 꽃의 이름을 캐물을 때
기둥에 매달아놓은 옥수수 종자가 아장아장 아이에게 말을 걸 때
둥근 집의 살림은 댓돌 위의 신발처럼 늘어났다
------------------------------------------ 지붕은 세상의 모든 삶의 품목을 품는다. 지붕의 양식은 한 공동체의 마음의 양식이고 계급의 양식이다. 지붕을 만들 줄 알면서 이른바 건축이라는 것이 시작되었을 것이고, 나라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사랑도 비로소 따뜻해졌을 것이다. 지붕 아래 간직한 불, 그것이 우리네 살림살이의 큰 양식이다.
지붕의 표정을 살펴본다는 것은 그 살림의 높이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붕에 알 수 없는 꽃이 피었으니 퇴락한 집이다. 붉은 고무 대야에 이불을 담가놓고 치댈 때의 그 성가시고 거북하고 끝내 개운치 않은 힘겨운 빨래 행위, 그것이 이 지붕 아래 살림의 표정이다. 가장(家長)은 왜 칼을 갈고 있는 것일까? 먼 데서 손님이 온다는 뜻이리라. 닭은 무엇인가를 예감한 듯 지붕에 뛰어올라가 퇴락의 증표인 이름을 알 수 없는 꽃을 쪼아대고 있다. 새로운 기운이 감돈다. 지붕도 새롭게 바뀔 것만 같다. 장석남 (시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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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각의 바위 ㅡ이기인
땅을 덮은 바위의 귀는 온몸이다
쑥이 쑥쑥 나오다 바위와 만났다
둔각의 바위가 둔하게 웃어서
쑥이 쏘옥 자기 빛을 그 사이에서 키웠다
더 이상 바위를 밀지 않았다
바위 옷은 둔각으로 조용했다
쑥 빛은 예각으로 흔들리고
지평의 초록은 평면을 둥글게 감았다
둔각의 바위는 들 뜬 벌판을 누르고
정확하지 않은 구름의 그늘이 왔다
외투를 벗어 바위에 올려놓은 구름이었다
까닭 없이 아름답게 누운 그림자였다
---------------------------------------------- 3월입니다. 둥근 지구의 몸이 초록으로 감싸일 때입니다. 견고한 바위 곁에 쑥이 싹을 틔웠군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쑥의 생명이 커가도록 바위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신뢰를 보입니다. 용기와 힘을 주는, 흙의 어머니, 어머니인 바위는 다 알았다는 듯 조용한 미소뿐입니다. 물론 온몸은 귀가 되어 땅을 덮고 있군요. 내 모서리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 적은 어찌 없었겠어요. 나의 아름다운 멘토여! 난 사랑받는 멘티가 되겠어요. 영원한 나의 둔각의 바위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ㅡ김예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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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의 꽃무늬 혁명 ㅡ이기인
소녀는 꽃무늬 혁명을 떠야 한다고 했지요
왼편의 대바늘과 오른편의 대바늘 사이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붉은 실타래는 소녀의 혁명을 돕기도 했지요
아버지의 혁명은 아버지의 구식(舊式) 혁명으로 끝나버리고 한 코 한 코 풀어지면서 새로운 혁명을 끌어내야 한다고 털옷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장롱 속에서 나왔죠
낡은 털실은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 혁명가를 계속 불렀지요 그 옆에서 소녀의 꽃무늬 혁명은 계속 줄기를 뻗어나갔죠
풀어진 아버지의 혁명은 새 혁명의 넝쿨로 이어졌죠 소녀의 꽃무늬 혁명이 성공을 거둔다면 이 겨울도 이젠 춥지 않을 거라 믿었죠
붉은 실타래의 아우성이 무릎 위에 놓여 있다 차가운 책상 밑으로 또 기어들어갔죠 어두운 그곳에서 뭐해? 혁명을 꿈꾸는 실타래가 다시 뒹굴어 나오면서 실오라기 하나를 데리고 나왔죠
문득문득 소녀의 혁명이 모자라지 않나, 소 눈동자만해진 털실을 바라보며 불안했죠 어서어서 꽃무늬 혁명을 하나 떠서, 추위에 떠는 당신께 가야 한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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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라는 말을 꽁꽁 언 감옥에서 풀어주고 싶어요. 말의 혁명, 사랑의 혁명, 시선의 혁명을 쟁취하고 싶어요. 따스한 온기를 누릴 권리가 있는 삶에게 함부로 잊힌 권리장전을 낭랑한 목소리로 다시 읽어주고 싶어요. 일상의 모든 순간에 혁명의 열정과 발랄한 빛의 슬로건을 선물하고 싶어요. 정치혁명은 혁명의 시작일 뿐이거나 우리 삶을 이루는 삼각형의 한 꼭짓점 근처일 뿐, 두 개의 꼭짓점은 나와 당신에 의해 궁극적인 축배를 맞이할 거예요. 스스로를 구원하는 진짜 혁명에 대해 묻는, 그 모든 소소한 순간들에 대해 생각해요. 너무 큰 대의에 대해 당신이 열변을 토하시면 나는 추위에 떠는 당신에게 따뜻한 목도리를 짜 둘러주고 싶은 그저 자그마한 촛불 한 자루 같은 내 혁명에 대해 이야기해 줄게요. 이 소박한 아름다운 시를 받는 그대여, 사랑하는 이를 따뜻이 돌보고 싶은 그 마음이 실은 혁명의 시작이자 끝 아니겠어요. 이런 젠장,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오직 자기 잇속만 생각하는 자들이 대의니 쇄신이니 개혁이니 자꾸 떠들어대니 말들이 자꾸 타락하잖아요ㅡ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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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공장 ㅡ이기인
촛농을 삼켜버린 불빛,
일기의 맨 마지막 이야기는 너무 외롭다는 것이고
너무 외롭다는 것은 소녀의 얼굴에 박힌 주근깨처럼 너무 많았네
어디, 깨진 거울을 좀 보자
어제 본 해바라기도 주근깨가 많은 소녀를 닮았네
그 해바라기도 일기장만한 큰 잎사귀로 서서 온종일 울었네
인부들의 겉옷이 해바라기에 걸쳐 있는 동안
해바라기는 인부의 아이를 닮았네
밤새 고개를 숙인 해바라기 앞을 지나서
소녀들 눈 비비고 공장 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
해바라기는 얼굴을 들었네
공장 근처에서 서성거렸던 인부들아 날 좀 보렴, 보도블록은 다 깔았니,
가끔은 먼 친척처럼
잎사귀를 흔들었던 해바라기를 지나서 온 얼굴
밤늦게 일기 속으로도 들어오고
오늘 공장 가는 길에 새로 깐 보도블록 때문에
해바라기…… 죽었다고 쓰기도 하네
길바닥에 누운 해바라기의 주근깨를 오래 잊지 못하네
공장 가는 길목에 이제 누가 손 흔들어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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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깨우쳐주신 ㅡ이기인
엉덩이와 엉덩이가 붙어있는 2인용 의자를 만들고 싶어 뚝딱뚝딱 의자를 만들다, 惡. 손톱을 찧고 말았네요, 그러니까 그것은 그이가 갑자기 내 손목을 확 잡아채서 그런 거예요
억세게 살아온 쪽은 알고 있죠, 잡아당기는 쪽이 그래도 싫지 않으면 그쪽으로 끌려가는 거,
아프게 살아온 날짜를 잠시 셀 수 없게 된 새끼손가락은 보랏빛 구두를 신고 당신 쪽으로 호호 불어달라고 했죠
호호 아―픈 손가락을 입 속에 넣어주면 '아팠죠' 하고 빨아줄 것 같았던 당신의 혀는 지금 푸릇푸릇 누릇누릇 고목에 핀 새순 쪽만 쪽쪽 빨고 있네요, 이쪽도 좀 빨아주세요
생각해보니 오랜만에 싫지 않은 멍을 하나 얻었고요, 바깥출입을 하게 되었네요
그 아픈 손톱을 들여다보며 이제 그 새끼손가락이 한 약속들이 조금씩 흔들려서 곧 빠질 것 같은데 놓아줘야 하겠죠
여러 날 싫지 않았던 불면이 오고 가버리고 아픈 몸을 겨우겨우 깨우쳐주신 손톱이 빠져나가고 있어요
왜 갑자기 우리가 모르는 아주 먼 곳, 섭섭한 자리에 쌓였던 눈이 궁금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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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의 시간 ㅡ이기인
골판지 지붕 위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였을 때
그는 그의 집이 불에 타버리는 심정이었으므로 허공을 휘저었다
그는 한 줌 재를 손에 쥔 채로 상자 밖으로 꺼내져 나왔다
곧 그의 얼굴은 노숙자가 아니라 불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표정이었다
창틀이 뒤틀리고 별똥별이 수없이 지붕 위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한낮에 창문에 앉았던 나비는 날아가 버리고 하늘은 검은 먹빛이었다
슬픈 집의 네 모서리가 타다닥 타다닥 울다가 곧 녹아서 없어지는 것을
길바닥을 함께 뒹굴던 시선들이 방울방울 모여서 걱정하다 사라졌다
길을 잃은 그는 데인 사람처럼 꾸물꾸물 걸음을 데리고 주인 없는 처마를 찾아서 돌아다녔다
검은 나뭇가지에 앉은 달빛을 스쳐서 지나가기도 하였다
비가 멎고 젖은 골판지 지붕을 쓸어내던 청소부는
주저앉은 집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소주병의 울음소리를 하나 덩그러니 깨웠다
초췌한 얼굴로 모인 담배꽁초가 그 속에 갇혀서 쿨룩쿨룩,
상자의 시간을 쫓아다니는 그를 찾고 있었다
―《문학나무》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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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건 ㅡ이기인
헐은 옷소매를 움직이는 그녀에게로 눈시울이 붉은 바람이 온다
그녀 등 뒤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 송이 파꽃을 피워 올리는 시간이 흔들린다
울음을 데리고 온 새 한 마리 어둠이 오는 쪽을 기웃거린다 흙을 튀기며 날아간다
비 오는 날에 새로이 떨어진 돌멩이 밭 한가운데 박혀있다 홀로 상처를 꺼내어 본다
밭 가생이로 올라온 풀들이 촘촘히 우거진 느릅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울고 싶다
흰 수건을 오랫동안 머리에 쓰고 있던 그녀의 호미는 하던 일을 멈춘다
잔글씨들처럼 많은 가지와 잎사귀와 뿌리가 한 호흡을 멈추고서 그녀를 둘러본다
울리지 않는 종소리처럼 아직 걸어 나오지 않은 밭 모서리 그늘을 본다
흰 수건을 머리에 감은 그녀는 아름다운 저녁을 향하여 손을 흔든다
—《문학사상》2010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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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위로 떨어지는 사소한 편지 (외 2편)ㅡ 이기인
균형을 잃어버리고 있는 내가 당신의 어깨를 본다
내일은 소리 없이 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나는 초조를 잃어버리고 당신이 생각하는 대로 더 좋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첫눈이 쌓여서 가는 길이 환하고 넓어질 것 같다
소처럼 미안하게 걸어 다니는 일이 이어지지만 끝까지 정든 집으로 몸을 끌고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닮아가는 구두 짝을 우스꽝스럽게 벗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늦게 지붕을 걸어 다니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가만히 껴안아 줄 수 있을 것 같다
벽에 걸어놓은 옷에서 흘러내리는 주름 같은 말을 알아듣고
벗어놓은 양말에 뭉쳐진 검정 언어를 잘 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매트리스에서 튀어나오지 않은 삐걱삐걱 고백을 오늘밤에는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요구하지 않았지만 당신의 어깨는 초라한 편지를 쓰는 불빛을 걱정하다가
아득한 절벽에 놓인 방의 열쇠를 나에게 주었다
자기 중심을 잃어버린 별들이 옥상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뒤척이는 불빛이 나비처럼 긴 밤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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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피어 있는 바닥
스러진 자의 잠이 바닥에서 그를 부둥켜안고 있다
스러진 날이 있어서 스러진 사람이 있어서
그 바닥으로 떨어진 잠을 더 곤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 바닥에 자세하게 갇혀 있는 이의 바닥을 한참 바라본다
그 바닥에 귀를 기울이면 그 바닥에서 일어나 더 깊은 바닥을 부르는
어떤 낮은 바닥의 웅성거림이 삼촌의 이야기처럼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손바닥을 가져가 그곳을 어루만지고 있으면
더 낮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입김을 한 줌 받는다
더 낮은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따라서 굴러간다
더 낮은 바닥을 위로하는 더 낮은 바닥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낀다
저 저 한없이 낮은 바닥에서 더 낮은 바닥을 향해 뿌리를 내리는 꽃!
바닥에서 이제 막 올라온 꽃 한 송이를 올려다본다
그 바닥에서 흔들리는, 꽃그늘 속에서 내민 손을 붙잡기 위하여
오랫동안 서성이던 무릎을 굽힌다
작은 돌멩이 하나를 저 어두운 빈곤의 바닥으로 굴려 떨어뜨려본다
퉁퉁퉁
바닥에서 바닥으로 굴러가며 바닥을 깨우는, 바닥을 스쳐가는 인기척
거기서 아직 살아 있다고 하는 이의 기침이
오늘 아침에도 검은 바닥에서 스러진 그의 가족을 데리고 환하게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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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멍의 소장자
빨랫줄에 널어놓은 젖은 치마에서 또록또록 흘러나오는
누런 정액의 혐의를 뒤집어쓴 물방울
정액, 물방울, 정액, 물방울, 정액도 물방울도 사이좋게 말라가는 시간
빨래를 마친 소녀가 허기로 끓이는 라면 냄새가 가스레인지 뒤쪽 열린 문틈으로 새어나가 앞집 검은 개 콧구멍 속으로 들어간다
먹고 싶냐 개야, 너도 짖어봐라 개야, 신(新)라면 발 한 줄 줄게 개야,
후룩후룩 라면 발이 앞집 개를 친다, 컹컹,
차례차례 정액 한 방울 물방울 한 방울 사정되어진 곳에
나 한쪽 눈을 맞았어, 눈이 따끔거려, 푸른 멍이 마당 콘크리트를 깨며 주저앉는다
집의 가장자리와 가장자리를 묶어 놓은 빨랫줄을 따라서 소녀의 젖은 팬티가 흔들흔들 논다
녹슨 못으로 붉어진 벽까지 물방울 하나가 쭉 흘러가서 꽈당, 부딪힌다
이 희미한 멍은 어디서 얻었니, 언니야
눈부신 오후의 햇살은 젖은 바닥에서 올라와 소녀 치마 속 무릎을 보고 그 위로 훤히 통과한다
온몸을 던져 웅덩이를 파헤친 물방울은 움찔 둥글게 둥글게 몸을 말고
저 높은 곳에서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는다
젖은 옷가지를 말리기 위해 온 선선(善善)한 바람은 더운 방문을 두드린다
누가 왔어, 언니 말고 넌 누구야, 검은 개, 검은 소, 검은 고양이 꼬리를 닮은 스타킹 한 짝이
까만 밤의 껍질로 벗겨져 콘크리트 마당에 떨어져 있다
아 푸른 멍이구나, 이끼들만도 못한 것이 아픈 콘크리트 구멍 옆에서 소녀를 데리고 열심히 산다
—시집『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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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가지 ㅡ이기인
토요일 오후 아이의 엄마는 옷장정리를 했다
어떤 영혼은 풍선껌을 씹으면서 좁은 창틀의 집을 건너다보았다
아이가 물려받은 옷이 너무 조용해서 그 집의 골목이 두렵다
아이가 물려받은 옷이 크게 입을 벌렸다
아이가 물려받은 옷의 올이 갑자기 자기 가슴을 다 풀어낼 것 같아서 무섭다
팔을 늘이고 다리를 늘이고 기린처럼 목을 길게 빼내고
가난의 무늬를 늘여서 어떤 영혼의 옷을 아이가 하나씩 입어보기 시작했다
여러 겹 팔다리를 접어서 입어보는 옷의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들었다
어떤 영혼은 흰 상장을 단 초승달이 나오기 전에 골목에서 사라졌다
엄마와 아이는 옷에서 달아난 단추를 찾듯이 창문 밖을 본다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 하늘의 빛이 내려오고 있다
—《현대시》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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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영화 ㅡ이기인
핏물과 핏물 사이를 솜으로 편집하였다
돼지의 춤은 한 양동이의 슬픈 언어로 채워졌다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돼지는 파트너를 남겨두고서 떠나갔다
찢어지지 않은 귀의 표정을 찾아다니는 애인이 생겼다
깊은 시장의 냄새를 수첩에 기록하였다
필름처럼 뽑아진 혀가 끝까지 외운 대사를 따라 외웠다
십자가에 박힌 못을 뽑아낼 딱딱한 발을 찾았다
미래의 청사진을 간직한 머리통에서 웃는 눈빛을 쬐었다
지루하지 않은 세 겹의 뱃살과 목살의 지층을 살폈다
뼈와 뼈 사이에 붙은 붉은 따옴표의 살을 뜯어먹었다
공통의 삶을 사는 이들이 돼지 영화를 유통시켰다
비명이 솟구쳐 올라왔다 놓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하얀 솜을 꽁꽁 말아서 자막에 튄 핏물을 닦았다
—《문예중앙》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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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정물 ㅡ이기인
참을성 있는 생명이 빨간색 모자를 썼다
사과는 캔버스에서 나오지 못한 독방의 주인이었다
수감된 방에서 사과의 불멸을 훼손하고 싶었다
정숙한 가운데 캔버스를 정면으로 걸어놓았다
잔인한 형벌을 겪었으므로 사과의 죄목을 떠올렸다
비공개적으로 사귄 칼날을 버리고 세밀한 붓을 만들었다
위협을 감춘 날에는 빨간색 수인번호를 붓끝에 올려놓았다
형벌의 틀을 갈아 끼우는 마당에서 혼자 사과를 그렸다
실수로 사과를 흙에 그렸을 때 사과에 흙이 묻었다
흙을 씨앗처럼 갖고 싶어 사과에 햇빛을 덧칠했다
환한 두 눈을 뜨고서 저지른 잘못을 후회하였다
캔버스에서 쾅 떨어진 사과의 운명을 믿었다
머리를 숙였을 때 비로소 코와 귀가 빨개졌다
충고의 방으로 굴러온 사과는 두 시선을 채웠다
광인의 눈으로 공포를 웃으며 공개처형을 기다렸다
붉은 붓칠로 완성한 사과는 불안을 한 입 깨물었다
— 《애지》201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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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자판기ㅡ이기인
저울에 올려놓을 수 없는 표정
재난을 입은 구름이 버리지 못한
잘 사용하지 않는 명함 뒷면
내내 쇠약한 논쟁을 닮아가는 대중버스
뜨거운 배기통 더러운 성격 매연 막스 베버
차가운 입술을 데우는 커피와 물 프림
이웃사촌끼리 질문할 수 없고
순결을 복수해버리는 이해 불가능한 근친
커피 프림 설탕 서정 설탕 프림 커피
친한 물질 사이에 떨어지는 설탕
오래된 메뉴의 가려운 서체
모두의 혼합물이 동시에 사정하는 자판기
참고할 만한 고전 입문서
녹슨 표지 붉은 가루
가로세로 크기가 비슷한 사어 시집 상자
글자들을 구입하고 남은 바지 속 동전은 홀수
잃어버린 먼 사치의 날씨
어쩌다 태어난 말줄임표 감정
권태로운 벽을 짊어진 늘어나는 벽
벼랑 끝의 조화 뿌리 굵은 철사
좀처럼 살이 빠지지 않는 시의 조연들
자판기 소수 언어의 이미지 편집
회복할 수 없는 수상한 자아검열
환청만 살아 있는 자판기 속 두꺼운 장막
소모되는 시인의 큰 손에 떨어진 동전
구겨지지 않은 종이컵 원고지
아직 얇은 종이와 컵의 가벼운 관계
—《현대시》2013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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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업은 소녀* ㅡ이기인
아기 업은 소녀를 서서 말하는 나무
저녁 쪽으로 때가 묻는 하얀 포대기
분홍치마로 걸어가고 싶은 어두운 고무신
자라는 표정을 간단하게 묶어 놓은 손바닥 빛
얼굴 부위에서 자라지 않는 동그란 머리카락
검고 붉은 공중을 떨어뜨린 후에 번지는
쇳가루 지우개 일기장 날씨 녹슬어 가는 글씨
잠에 쌓이는 잃어버린 동요
땅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흙장난
아무래도 보이지 않는 꼬부랑길 부서진 구름
부서진 강냉이 냄새를 따라다니는 아기바람
자꾸만 빗소리 이름을 불러 보는 매듭
이지러지게 새겨 놓은 이파리 작은 어스름
구겼다가 펴놓은 아기와 소녀와 깊은 주름
* 박수근, 「아기 업은 소녀」.
—《세계의 문학》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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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인,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흰 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