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같은 애인둔 까다로운 치과의사 역
노래보다 연기 애착…누드엔 관심없어
남자친구와 일주일에 두세번 꼭 데이트
" '결혼은 미친 짓' 이라는 대사는 애드리브예요. 입버릇처럼 말하던 건데 현장에서 즉석으로 받아치니 다 넘어가더라구요. 진짜 결혼요? 내년쯤엔 해야 될 텐데,너무 바빠서." 엄정화(33)는 결혼할 틈도없이 바쁘다. 사실상 영화 데뷔작인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와 첫앨범 '눈동자' 의 개봉, 발매 시기가 겹쳤던 1993년.10여년이 흐른 지금도 마찬가지다. 8집 '셀프컨트롤' 의 발매와 영화 '어디선가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감독 강석범ㆍ 제작 제니스엔터테인먼트)의 개봉이 며칠 차로 겹쳤다.
상큼한 봄햇살이 흩날리는 아침 나절,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엄정화는 전날 잠을 설쳤는지 만나자마자 얼굴이 부었다며 엄살이다. 살 많이 뺐는데 얼굴이 부어 사진 잘 안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좋은 기분은 숨길 수 없다. 영화와 앨범 모두 '볼만 해' '들을만 해' 란 입소문이 솔솔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상태가 어려서부터 꿈꿨던 모습그대로예요. 무대에서는 노래 부르고, 스크린에서 배우하고…. 허황된 꿈이라 생각했는데 다 이뤄졌어요." #여자가 말하는 '여자의 꿈' , 엄정화영화 '홍반장' 에서 까다로운 치과 의사로 분한 엄정화는 "넌 결혼 안해?" 라는 친구의 질문에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데" 라며 예전 출연작을 불러온다.
유하 감독의 '결혼은, 미친 짓이다' 에서 엄정화는 남편도 있고 애인도 있는 여인이다.
그 다음 작품인 '싱글즈' 에서는 씩씩하고 당찬 여성 '동미' 였다. 우연한 하룻밤동침으로 친구일 뿐인 남자의 아이를 갖는다. 같이 살자는 그 남자의 제안을 뿌리친 엄정화의 선택은 '싱글맘' 이었다.
'홍반장' 에서는 오지랖 넓은 변두리 동네반장 김주혁과 사랑을 이룬다. 엄정화는 깔끔하기 이를 데 없고, 뻣뻣하기 한이없는 고소득 전문직 여성이지만 속은 여리다. 새침하고 여성스럽다.
SOS만 치면 만사 제치고 찾아오는 만능해결사 김주혁에게 차츰 호감을 갖는다. 김주혁은 말하자면 '머슴형 애인' 인셈이다.
이로써 스크린 속의 엄정화는 현대 여성의 내밀하고 욕망과 팬터지를 모두 실현하는 '행복한 여자' 가 된다.
한 손엔 성실한 남편과 다른 한 손엔 다정다감하고 섹시한 애인을 쥐고 있거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 ), 줏대 있고 똑부러지며 독립적인 여성이거나( '싱글즈' ),돈도 많고 직업도 번듯한 데다 머슴형 애인까지 둔 여인이다( '홍반장' ). "어차피 영화 속 캐릭터는 모든 사람의팬터지이자 동경의 대상이 아닐까요." #사랑에 빠진 그녀동성의 친구끼리 있을 때 엄정화는 '싱글즈' 의 '동미' 에 가깝다. 씩씩하고 화통하며 '와일드' 하다.
연애할 때는 '홍반장' 의 '혜진' 과 비슷하다. 여성스럽고 애교도 많단다. 스크린속에선 '특별한 여자' 지만 남자 앞에서엄정화는 그냥 '사랑에 빠진 여자' 일 뿐이다.
"남자한테 의존한다기보다는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더 중요하죠. 일 때문에 바쁘지만 지금도 1주일에 두세 번은 남자친구와 꼭 만나요. 주말에도 웬만하면 보려고하죠." 결혼은 미친 짓일 텐데? "아니오. 행복이에요. 더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하는 거죠. 그런데 아직도 저에겐결혼은 추상적이에요. 실감나지 않아요.먼 얘기 같아요. 내가 너무 나이를 잊고사는 건가?" 팬들에게 역시 엄정화는 가수고 배우지만 여자이기도 하다. 팬들은 엄정화가섹시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늘 섹시하길 바란다.
"섹시한 이미지를 굳이 거부할 필요는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여성 연예인에겐좋은 거죠. 다만, 배우로서는 이미지가 고정돼 역할이 제한될 수 있는 점은 나빠요." 혹시 누드는? "누드 제의를 받았느냐는 질문은 많이받았죠. 하지만 정작 누드를 찍자는 제의는 안 들어오던데요. 하하. 아무튼 누드에는 관심 없어요." # '진짜' 가 되고 싶은 배우엄정화는 가수로는 방송 3사의 10대가수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다 받아 봤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상복이 없었다.
2003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 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게 가장 큰 상이다. 다른 트로피는 몰라도 이 상의 트로피만큼은 매일 정성 들여 닦는다는 말로 영화에 대한 애착을 표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멋있어지고 연륜이 느껴지는 배우가 됐으면 해요. 무슨연기를 해도 그때까지의 삶이 고스란히녹아들어 캐릭터 그 자체가 돼 버리는 배우 말이에요." 그녀는 '진짜 센 영화' 도 해 보고 싶단다. 공포 영화의 원혼이나 귀신이 되는 것도 좋단다.
상대 역을 해 보고 싶은 남자 배우로는한참을 생각하더니 외마디 지르듯 "설경구!" 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연기할 수 있지 싶더군요. 실제로 보면 귀엽기도 하고,어딘가 결핍되고 불안한 것 같은 느낌도있어요. 하지만 연기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쳐요. 얄미울 정도로 완벽하고…." '싱글즈' 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김주혁에 대해서는 "영화 속 홍반장과딱 똑같다" 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남다를뿐더러 엉뚱하며 장난기가 넘치는 사람"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