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쉬 하샤나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전하는 짧은 메세지
유대교의 본질적 통찰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유대교의 천재성은 영원한 진리를 시간 속에, 곧 살아있는 경험 속에 번역해낸 데 있습니다. 인류 창조의 기념일인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는 우리로 하여금 인간 조건을 생생히 살아내고 느끼도록 초대합니다.
첫째, 인생은 짧습니다.
아무리 평균 수명이 늘었다 해도, 한 평생 동안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우네타네 토케프(ונתנה תקף, Unetaneh Tokef )’는 인간의 유한성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인간은 흙에서 세워져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는 빵을 얻기 위해 영혼을 쏟아붓는다. 그는 깨어진 조각 같고, 말라버린 풀 같고, 시든 꽃 같으며, 덧없는 그림자와 같고, 흘러가는 구름 같으며, 한 줄기 바람 같고, 흩날리는 먼지 같고, 사라져가는 꿈과 같다.”
이 삶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비록 과업을 완성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는 그것을 외면할 자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진리입니다.
※ 우네타네 토케프(ונתנה תקף, Untaneh Tokef): "오늘의 경이로운 힘을 선포합시다"라는 뜻으로, 로쉬 하샤나와 욤 키푸르의 주요 명절 에 등장하는 피유트(전례시)로, 다가오는 한 해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이롭고 두려운 힘을 묘사합니다.
둘째, 삶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명을 기뻐하시는 왕이시여, 우리를 생명으로 기억하시고 생명의 책에 기록하소서 – 생명의 하나님이신 주를 위하여.” (지크로노트-זִכְרוֹנוֹת : Rosh HaShanah의 무사프 기도에서 축복 중 하나)
삶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시한다면 삶을 축하하지 못합니다. 마이모니데스( Maimonides)는 하나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 삶 그 자체라고 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많은 종교가 하나님을 하늘이나 사후세계, 아득한 과거나 먼 미래에서 찾았지만, 유대교는 끊임없이 지금, 이 땅 위의 삶에서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내세를 믿지만, 진정한 인간의 위대함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기 전의 삶 속에서 발견됩니다.
셋째,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유대교는 자유의 하나님께 자유롭게 응답하는 자유로운 인간의 종교입니다.
우리는 죄의 굴레에 매여 있지 않으며, 경제적 조건이나 심리적 충동, 유전적 본능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존재가 아닙니다.
테슈바(תְּשׁוּבָה 회개)가 가능하다는 사실, 곧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살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자유를 증명합니다.
넷째,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존재하게 된 물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주와 생명과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존재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두려움을 아시고,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는 것보다 더 우리를 믿으시고, 넘어질 때 용서하시며, 절망 속에서도 일어설 힘을 주십니다.
역사가 폴 존슨(Paul Johnso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유대인들만큼 역사가 목적을 가지고 있고 인류가 운명을 가진다고 강하게 주장한 민족은 없다.”
그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따라서 유대인은 인간의 삶에 목적이라는 존엄을 부여하려는 영원한 시도의 한가운데 서 있다.” 이것 또한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가 전하는 진리입니다.
다섯째, 삶은 쉽지 않습니다.
유대교는 세상을 장밋빛 시각으로 보지 않습니다. 조상들의 고난이 우리의 기도 속에 여전히 울려 퍼집니다. 세상은 아직 있어야 할 모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메시아의 시대가 이미 왔다고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삶은 어렵지만 여전히 달콤할 수 있습니다.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꿀에 찍어 먹는 빵과 사과처럼 말입니다. 유대인은 부나 권력이 없어도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삶의 기쁨은 단순한 것들 속에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 부모와 자녀의 신성한 유대, 서로 돕는 공동체.
주고받는 사랑(쩨다카-צְדָקָה)과 인애의 행위(게밀루트 하사딤-גְּמִילוּת חֲסָדִים)-배우고 기도하며 감사하는 삶, 끝없이 성장하는 삶 – 그 안에 기쁨의 비밀이 있습니다.
일곱째, 우리의 삶은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입니다.
랍비 조지프 솔로베이치크(Joseph Soloveitchik)는 인간의 본질을 창조라 했습니다.
테슈바(תְּשׁוּבָה)는 곧 자기 자신을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는 화가가 그림에서 한 발 물러서 전체를 바라보듯, 우리 삶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여덟째, 우리는 유대 조상들의 유산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고립된 입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 속에 기록된 글자입니다. 글자가 혼자서는 의미가 없듯, 우리도 조상들의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얻습니다.
이 작은 유대민족은 가장 위대한 제국들을 초월해 살아남았습니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그리스, 로마, 중세의 제국들, 심지어 나치 독일과 소비에트까지, 그들은 사라졌지만, 유대인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아홉째, 우리는 토라의 위대한 요구를 계승합니다.
토라는 높은 이상과 수많은 계명으로 우리를 부릅니다.
그 요구가 크기에 우리도 위대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분의 증인이고, 땅 위의 대사입니다.
열번째, 마침내 우리는 쇼파르(shofar)의 소리를 듣습니다.
말 없는 외침과 숨결로 만들어낸 소리 – 그것은 생명 자체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졌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있습니다.
쇼파르(shofar)의 외침 속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담겨 있습니다. 그분의 선물인 삶을 거룩하게 살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으로 죽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가치를 따라 사는 것으로 죽음을 이깁니다.
기도한다는 히브리어 레히트파렐(להתפלל, lehitpalel)은 곧 자기 자신을 심판하다(to judge oneself)라는 뜻입니다.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에 우리는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웁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최악을 알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최선을 보십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 때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될 힘을 얻습니다.
로쉬 하샤나(Rosh Hashanah)의 정신을 깊이 받아들인 사람은 새해를 충만하고(charged) 활력이 넘치며(energized), 집중(focused)과 갱신(enewed)의 힘으로 맞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삶을 거룩히 하고, 이웃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 바로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By Rabbi Lord Jonathan Sa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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