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대 미국 인디아나 주에 교회 음악에 헌신한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게이더와 글로리아였습니다.
본격적으로 사역에 나서고자 했지만 그러나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쟁 중이어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했고 남편 게이더의 건강도 최악이었습니다. 그러니 음악을 만드는 일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답답한 분위기 속에서 1970년 봄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게이더와 글로리아 부부는 아버지를 모시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주차를 하고 있었습니다. 주차장 한 구석엔 아스팔트를 뚫고 생명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중얼거리셨습니다.
“저기 좀 봐, 풀잎 좀 봐.”
그렇습니다.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게이더와 글로리아에게 아기가 태어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글로리아가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음속에 빛이 비추이는 것 같더니 주님이 곁에 계심이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그 모든 두려움과 걱정 대신에 한량없는 기쁨이 그녀의 마음을 채우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 감격과 감탄을 종이에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원문을 직역하면 더 실감나는 가사입니다.
“그 분이 살아계시니 미래를 직면할 수 있네. 그 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모든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 분이 미래를 붙들고 계심을 알기에 우리의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네. 그 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인류 역사상 최고, 최대의 소망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교회도 시작될 리가 없습니다. 주의 부활이 없었다면 주일날 예배하러 모이는 일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 부활의 최고의 증거는 교회와 주일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은 주께서 부활하심을 믿은 걸까요? 믿어진 걸까요?
성경은 계속해서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도 의심했다고 기록합니다. 보고도 완전히 믿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게바에게 보이시고 12제자에게, 500여 형제에게, 야고보에게, 그리고 바울에게 보이셨다고 설명합니다. 도마에게는 직접 손을 내밀어 만져 보라고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활사건은 제자들이 믿은 게 아닙니다. 이건 주님이 보여 주시고 믿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2천 년전 부활사건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도 여전히 성령께서 감동하심으로 믿어지는 것이지요.
조지 모르시오라는 신학자는 부활사건을 문장 부호로 설명했습니다.
첫 째, 주님의 부활은 마침표다. 율법의 완성이고 인류의 구원의 마침표다.
둘 째, 주님의 부활은 쉼표다. 죄에서, 사망으로부터 쉼을 얻게 하는 능력이다.
셋 째, 주님의 부활은 느낌표다. 감탄이고 감격이다. 놀라고 놀라운 사건이다.
넷 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활은 물음표다. 신비로 가득하다. 다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주님의 부활 안에 우리가 거한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엔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인물인 백인천 선수가 세례 받았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한때 아줌마 부대들을 몰고 다녔던 이승기 씨도 군대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끈을 놓지 않았더니 부활의 능력이 그분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다 믿어지지 않더라도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주께 나아옴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성령께서 감동하셔서 믿어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던 대로 부활하신 주님은 이제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부활신앙과 재림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