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이 세명있었다.
우리는 "사인방"이라며 우리의 무리들을
정의내리곤 했다(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그땐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냥 어딜가던 우리 네명은 절대 빠지지 않았고
항상 함께 있었다.
우리 네명이 모이면 가끔은 생길 수도 있는
침묵의 시간이라는 게 없었다.
아무래도 내 인생중에서 하루하루를
웃음으로 산 날들은 그때뿐이었으리....
우린 길을 걸으면서도
방안에서 모여 앉아 얘기를 하면서도
얼굴이 빨개지고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곤 했다.
웃다간 서로의 얼굴을 보고 또 다시 "까르르~~~"
웃었다. 푸힛^^;;;
우리는 중학교 삼년동안
모둠일기라는 걸 썼다.
지금도 집에 가면 내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일기장이다.
지금은 먹고대학생이라지만
단 하루도 일기를 쓰기 힘든데
시험기간에도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는지 거르지 않았다.
우리가 느끼던 중학시절의 고민이 정말이지
고스란히 남아있다.
물론 애정이야기도.....상당부분.....
그들은 만날 수 있게 해준
운명에 나는 항상 감사하며 살았다*^^*
그때 내가 내리던 친구라는 존재의 정의는
"친구가 나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친구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이므로..."
우리도 중3이 되면서
고입이라는 문턱에 다가서게 됐다.
내가 살던 목포는 비평준화지역이라
고3못지 않게 공부를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우린 서로가 바라는 또 예상하는 미래의 길이
네 명 모두 달랐다.
나와 가장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가족외에 단 한 사람인 나의 소꼽친구가
갑자기 미술을 한다고 광주예고를 꿈꾸면서
우리는 더욱.....
그때 내게 들었던 생각들이....
이들과 다시는 같은 학교에서
공부도 할 수 없고 수업을 들을 수 없다는 것..
나는 시간이라느 게 무얼까
내가 그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미미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어쩌면 삶과 철학을 이때 깨우친게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에 많이 울곤 했다.(그땐 눈물이 많았다우...)
그래서 내가 제안한 두가지...
문정아 내가 너에게 이벤트를 많이
생각해 낸다고 말하곤 했잖아..
그때 내가 항상 너 같은 존재였어...푸힛^^;;;
하루하루 특별한 경험을 하기 위해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우린 머리를 굴리곤 했지
항상 멋있는 멘트를 얘기하며
즐거워 했던 게 우리들...그리고 나였어...
그래서 우린 다시 만나면
함께 나눌 추억들이 많아*^^*
"그때~~~" 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우리 넷만이 아는........
내가 제안한 것 중에 하나만
얘기할께....
우린 십년 뒤에 만날 것을 약속하면서
십년 뒤 자신과 서로에게 쓰는 편지, 그리고
가장 소중한 물건을 묻었어......
[타임캡슐]
위에서 언급했던 소꼽친구와
유치원 시절에 한번 해본
경험(실패:장소를 까먹음...알고보니 홍수에 떠밀려감)이 있어서
용의주도하게 장소를 물색했지..
그렇게 묻고 우린 십년 뒤에 그 자리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어
그땐 '설마 우리가 그때 연락을 끊고 지낼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나는 이렇게 그들과 연락을 소홀히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난 자신있다.
친구들과 시간이 지난 뒤
만나더라도 마치 주말에 하루 집에서
쉬고 월요일에 등교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