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11]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④
을사늑약 후 일본은 대한제국의 안녕과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국정을 서서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고종은 미국 입장이 전적으로 일본 우선주의임을 알고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단을 파견해서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대한제국의 독립을 호소하고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보냈는데, 러시아를 경유할 때 러시아 황제 리콜라이 2세에게 도움을 요청하도록 친서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특사단을 만나주지 않았는데, 이미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대한제국 특사단에 협조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낸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헐버트는 대한제국 특사단을 돕고 고종황제의 뜻에 따라 세계 만국에 당시 상황을 알리고 국제사회에 협조를 구할 임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대한제국 내각에서는 이완용과 송병준이 중심이 되어 고종의 폐위를 추진하고 나라를 일본에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반면에 헐버트는 세계 여러 나라에 대한제국의 암울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만국평화회의장소에 모여든 언론인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특히 영국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William Stead)는 헐버트에 협조적이었고, 고종의 특사단이 언론인과 각국 고위직 인사들의 모임에서 연설을 할 수 있도록 기회도 마련해주었습니다. 비록 강대국들의 방해로 특사단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회의장 밖에서는 헐버트가 중심이 되어 국제사회에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도움을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각국 기자단을 중심으로 모인 청중 앞에서 “한국을 위한 호소”(A Plea for Korea)로 공감을 얻었고 한국을 동정하는 만장일치 결의안을 이끌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