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부고'를 접했다.
아침에 '동물농장'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후배는 경황이 없다면서 "동물농장은 형님께만 연락하면 되죠?"라고 했다.
나는 다양한 모임을 갖고 있다.
대부분 회장을 맡고 있는데 '애경사' 발생 시엔 대개 이런 식이었다.
수많은 길들이 로마로 통하듯,
지난 숱한 세월동안 각종 모임을 내가 주도적으로 챙겼다.
또한 원근을 마다치 않고 빈소를 찾아갔다.
응당 내가 해야할 역할을 중단 없이 해온 것뿐이었다.
인생의 핵심은 '재물'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이자 '헌신'이라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그대로 행동하며 살고자 노력했다.
먼저 '밴드'에 부고를 알렸다.
그리고 조화부터 보냈다.
그런 다음 선배, 후배들에게 일대일로 문자를 보냈다.
평상시에 문자소통이 어렵거나 안 보는 사람들에겐 직접 전화를 걸었다.
'동물농장'은 '군산출신' 경희대 선후배 모임이다.
여러 고교 출신들이 있지만 '군산고'가 거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졸업 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끈끈하고 탄탄하다.
81학번부터 90학번까지 중년 세대가 주축이다.
어젯밤 10시가 지난 시간에 빗속을 뚫고 군산에 도착했다.
조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음을 담아 후배를 위로하고 돌아왔다.
요즘은 참 좋은 시대다.
카톡 한 방이면 한국이든, 해외든 실시간으로 연결된다.
여느 때처럼 내 계좌에 조의금이 모여들었다.
외국에서도, 지방에서도 꽤 많은 금액이 답지했다.
모임마다 다르지만 최소 50만 원에서 많게는 3백만 원 정도가 금방 쌓였다.
돈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작금의 세태를 말하고자 글을 쓴다.
날이 갈수록 '조의금'만 보내고 '조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돈은 나에게 보내고, 상주에겐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자신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실제로 바빠서 빈소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를 난들 읽지 못하겠는가?
모두가 피곤하고 힘든 세상이다.
심야 장거리 운전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무겁다.
또한 심야운전으로 심장에 무리가 가는 사람도 적지 않으리라.
조문 후 새벽 1-2시에 상경하고 다시 아침에 출근할 생각을 하면 이미 파김치가 된 육신에 무거운 기왓장을 몇 개나 더 얹는 느낌일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그럴 터였다.
인생에서 '인간관계'는 핏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인간관계'란 것이 일견 돈독해 보여도 쉽게 금이 가거나 깨질 수 있는 것이다.
'관념 속의 관계'나 'SNS 속의 친밀도'는 바람 불면 금방 쓰러진다.
'사상누각'과 같다.
행위로 누적된 '구체성'과 '경험치'가 아니면 관계는 빠르게 희석되고 종국엔 멀어지기 마련이다.
우후죽순처럼 잡초들이 자라면 오솔길은 금세 덮이고 끝내 길이 사라지고 만다.
자명한 인생의 이치다.
꼭 '조문'에 국한하여 얘기하는 게 아니다.
평소의 삶을 얘기하는 것이다.
먼저 '배려'하고 '헌신'하는 삶인지 아닌지는 각자가 잘 알 것이다.
'아전인수'인지 '동행'인지도 자신이 잘 알 것이다.
그러므로 무수한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될 수밖에 없다.
그게 인생이니까.
진정한 유산은 '재물'이 아니다.
내가 '조부모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인생철학'과 '삶의 방식'을 물려받았듯이 나도 내 자식이나 손주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런 생각과 행동으로 나의 삶을 엮어가고 있다.
한 장의 일기나 한 줄의 글을 쓸 때에도 '가문의 역사성'과 '핏줄의 계승'이란 관점을 잊지 않으려 힘쓴다.
오늘은 '말복'이다.
어제부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새벽녘엔 다소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다.
'말복'을 맞이하여 영양식을 맛있게 드시고 더욱 힘내시기 바란다.
'천고마비'의 깃발을 휘날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세월은 총알보다 빠르니까 말이다.
오늘도 파이팅이다.
2017년 8월 11일, 금요일.
새벽에 큐티 마치고, 말복날 아침에 몇 자 쓰다.
바쁘고 힘들어도 애사엔 조문하러 가는 게 맞다.
인생을 살아보니 힘든 일, 어려운 일이 대개 '양약'이었다.
'양약은 고구하나 이어병'이요 '충언은 역이이나 이어행'이라고 했다.
진리다.
첫댓글 과거엔 각 모임에서 경조사가 생기면 대부분 내가 '축의금'과 '조의금'을 받아서 '혼주'나 '상주'에게 전달했다.
30년 가까이 그런 역할을 했었다.
그런데 2020년 연초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세상이 급변했다.
펜데믹 이후로 경조사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다.
'청첩'과 '부고'에 '혼주'나 '상주'의 계좌번호가 바로 인쇄되어 날아갔다.
그 전엔 민망하고 얼굴 부끄러워 청첩이나 부고에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지 않았다.
적을 수 없었다.
염치를 중요시 했다.
우리의 전통이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은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누군가가 대신 전달해 주는 시대가 아니다.
온,오프라인 페이지에 당사자의 계좌가 모두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을 조금이라도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5-6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했고 우리의 적응력은 놀라웠다.
작금, 세계는 혁신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의 10년은 최소 타국의 30-40년, 최대 50년 간의 변혁과 맞먹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디지털 트렌드'가 한국과 만났다.
시너지가 핵폭발 중이다.
과거의 글을 다시 읽다 보니 감회가 새로워 몇 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