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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을 붙인 명시 ②] 동천(冬天)/ 서정주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은 눈썹을 즈문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 서정주,「冬天」전문, 제5시집『동천(冬天)』(1968년)의 표제 시
미당의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전략) 상도 타고 했지만 표현이 말이야, 아직 시험적으로 표현 미달된 거 같은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좀 더 정밀하고 또 표현의 매력도 나대로 만들어서 해야겠다, 그래서 착수한 게 동천의 시편들인데 그거 약 8년, 그러니까 『신라초』1960년에 내고, 1968년에『동천』을 냈거든. 8년 동안 노력한 거야. 그러니까 제일 정수적인 것을 다 집중한 건『동천』이야. 『동천』은 참 오래 걸려 표현 노력을 한 것일세. 그리고 그기다가 불교사상을 주로 해서 정신을 지표로 삼고, 그렇게 해서 표현한 것이『동천』이야. 내 시집 낸 것이 열댓 개가 되는데 지금 역시 제일 보람 있는 것이『동천』이야. (후락)”<月刊文學, 2015년 10월호>라고 토로했듯이, 물론 여기에서는 그의 시집『동천』을 말하고 있지만 시집의 표제 시로 내세울 만큼 시 <동천>은 미당 시를 대표할 만하다. * 미당에 대해서는 ▶ <http://blog.daum.net/seonomusa/84> 참조.
단연으로 된 5행 62자의 단시(短詩)인 <동천>은 상징적이고 불교적인 은유 표현으로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심을 노래하고 있다. <동천>은 “미당시가 이룰 수 있는 완성된 형태의 최상의 언어미학을 창출해내고 있는 작품”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동천」은 총 62자(字)로 된 자유시지만 간결하고 고도로 축약된, 겨울 하늘에 펼쳐 논 놀라운 여백미가 압권이다. “한시 형태의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3장 4음보 45자로 구성된 우리 정형시조의 틀을 파격한 외적 율조와 7․5조 3음보 민요 가락을 현대시에 버무려 오롯이 살렸다.“(김동원)
하늘 위에 초승달 하나가 걸려있다. 마치 우리 님의 고운 눈썹과 같다. 밤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을 향해 매서운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날아가다 그 새는 문득 초승달의 위엄에 눌려 달을 비껴간다. 이처럼 날아가는 매서운 새마저 비껴가는 절대적 존재에 대한 동경심이 이 시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감상해보자.
압축된 시어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팽팽한 긴장을 빚어내는 이 시의 핵심 이미지는 ‘눈썹’과 ‘새’이다. 이 시의 ‘눈썹’(원관념은 ‘초승달’)은 “시인의 젊은 어느 날 만난 신비의 대상인 어떤 여성에 그 근원을 두고 있지만, 미당의 초기 시에서부터 후기 시까지 등장하는 이 눈썹은 영원히 다가서지 못하는 그리하여 동경의 대상으로만 있는 이상적인 어떤 대상을 상징한다.”(송하선)
‘눈썹’은 여인의 관능적 아름다움을 표상하는 동시에 그믐달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라는 표현은 단순히 아름다운 여인이 모습을 씻는다는 뜻이 아니라 서정적 자아의 관능적인 욕망을 씻어 낸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눈썹'은 단순한 여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육체적인 욕망의 대상을 의미한다. 그것을 수많은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 옮겨 심어 놓았다는 표현은, 밤하늘에 떠 있는 그믐달이 정신적인 가치를 지닌 것임을 연상시킨다.
‘매서운 새’는 ‘동지 섣달’이라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려는 열정을 지닌 존재로 풀이된다. 이는 좁게는 작가 자신을, 넓게는 예술가 전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매서운 새’가 ‘시늉하며 비끼어 가는’모습으로 그려진 것은, ‘새’가 ‘눈썹’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를 단순히 해석하면, 인간은 물론 새까지도 그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알아차리고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외경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달을 향해 매섭게 날아가는 새는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의미한다. 겨울 하늘(冬天)과 같은 불모의 시대를 구도적 자세로 살아가는 시인 자신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여기서의 ‘눈썹’은 절대적 가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 절대적인 가치는 ‘하늘에다 옮기어 심음’으로써 절대적인 경지로 승화된다. 또한 ‘매서운 새’는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말로,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간’다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 절대적 가치에 대한 외경감(畏敬感)에 비켜 간다는 뜻이다. 즉 이 시는 절대적 가치에 대한 옹호와 외경심(畏敬心)을 고도의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다. 따라서 ‘고운 눈썹’과 ‘매서운 새’는 인간의 ‘이상과 현실’, ‘동경과 세속’, ‘영원과 순간’ 등의 의미를 함축한 대립어라 볼 수 있다. <이상 직접 인용(글쓴이 표시)하였거나 편집한 글로서 편자의 주관은 개재되어 있지 않음> |
첫댓글 시집 내고 8년동안 노력한것이 고작 이렇게 밖에 못썼어?라고 겸손의 고백을 하는 것 같아 서정주님을 우러러 보게 됩니다.
선생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듯이, 8년이란 오랜 기간에 걸쳐 표현 노력을 하였고 제일 정수적인 것을 다 집중한
것이라니 시집 <동천>에 실린 작품 하나하나 다 봤으면 싶군요. 뭐 널리 알려진 작품도 많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