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桓檀古記 -14
『환단고기』 각종 술어의 사용 예.
세계 : 지구상의 모든 나라 혹은 인류사회 전체를 의미. 원래 불교 용어. 上下와 四方을 뜻하는 宇. 古往今來를 뜻
하는 宙가 결합된 宇宙와 같은 뜻. 우주=세계. 世는 시간을 가리키고, 界는 공간을 가리킨다.
중국 唐나라 때 한문으로 번역된 능엄경은 세계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何名爲衆生世界? 世爲遷流 界爲方位(무엇을 중생세계라 하는가? 세는 옮겨 흐르는 것(시간, 과거, 현재, 미래),
계는 방위이다.(동서남북, 상하)
國家 : 오늘날 국민, 영토, 주권의 삼요소를 필요로 하는 국가(nation)는 고문헌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됐었다.
고대에는 제후의 封地를 國, 大夫의 봉지를 家라 했다. 國家라는 말로 國을 가리키기도 했다.
『周易』「繫辭」下편에 “君子安而不忘危 存而不忘亡 治而不忘亂 是以身安而國家可保也.”(군자는 편안할 때
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립해 있을 때도 멸망을 잊지 않으며, 잘 다스려질 때에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몸을 보전할 수 있고 나라와 집안을 보관할 수 있다.)
또『孟子』⌜離婁⌟下편에 “人有恒言 皆曰‘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사람들이 늘 하는
말로 모두 ‘천하국가’라 하는데, 천하의 근본은 나라에 있고, 나라의 근본은 집안에 있으며, 집안의 근본은 자기
자신에 있다.)라는 말이 있다.
고전 번역서를 보면, 보통 家를 가정이나 집안으로 번역하지만, 사실은 대부의 나라를 뜻한다.
적당한 우리말을 찾을 수가 없어서 편의상 그렇게 번역한 것이다.
따라서 家도 나라의 단위로 중국은 國에 속하는 것이다.(국가 의미는 전체를 일컫는 말)
産業 : 오늘날은 생산하는 사업을 지칭. 영어의 industry를 일본이 근대어로 옮긴 것.
사실은 2000 수백 년 전 중국의 전국시대 때에 이미 사용. 전국시대『韓非子』「解老」에는 산업을 개인의 재산,
즉 전답 가옥 작업장 등을 의미했다. 또 생산하는 사업이나 생업을 뜻하기도 했다.
憲法 : 헌법이란 말은 戰國시대 이전부터 사용. 그 의미는 지금과 달리 법 혹은 법전의 의미.
開化 : 일반적으로 文明開化라는 말은 보통 19세기 말에 사용된 용어로 알고 있으나, 中國 南北朝시대에 이미
쓰였다. 南朝의 宋나라 사람 顧願이 쓴 「定名論」이라는 글에 ‘建極開化’라는 말이 나온다.
법을 세우고 교화를 펼친다는 뜻. 따라서『桓檀古記』에서의 개화는 나라를 얻어 교화한다는 뜻이다.
文化 : 오늘날의 文化는 19세기 말 영어의 culture를 (日本이) 번역한 것. 文化 =文으로써 가르쳐 변화시킨다는
뜻(以文敎化). 武力征服에 대응해서 사용된 것.
합쳐서 文治武功.『周易』「비」卦에는 ‘觀乎人文 以化成天下’(인문을 관찰, 교화로써 천하 사람을 다스린다)는
말이 나온다.
平等 : 오늘날 권리, 의무, 자격 등이 차별 없이 고르고 한결 같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평등은 원래 불교용어로서
산스크리트어 upeksa의 의역인데 捨(사)로도 번역한다. 차별이 없다는 뜻이다.
일체의 현상은 차별이 없음을 가리킨다. 중국 魏晋南北朝 때 印度 승려 구마라습(鳩滅什.344-413)이 한문으로
번역한『金剛經』「淨心行善分」편에 ‘是法平等 無有高下’ 라는 말이 나온다.
또 魏晋南北朝 때 인도 승려 구나브리티(求那毘地)가 492년에 한문으로 번역한 『百喩經』「二子分財喩」편에
‘敎汝分物使得平等 現所有物破作二分’(너희에게 똑같게 물건을 나누는 일을 가르쳐주리니 지금 갖고 있는 모든
물건을 부수어 2등분 하라)는 말이 있다.
文明 : 오늘날 文明은 영어 civilization을 19세기 말 日本이 번역한 것. 그러나 이보다 앞서 유교경전에 쓰였다.
고대에 대체로 文彩光明(문채가 있어서 환하다)이나 文治敎化(文으로 다스려 변화시키다)를 의미.
고대 중국어의 文化라는 말과 의미 유사. 문헌상 文明이란 말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周易』「乾」괘에 ‘見龍在田
天下文明’(밭에 큰 용이 나타난다 함은 천하에 文明이 날 것이다는 말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原始 : ①처음을 고찰한다.(原에 고찰하다. 살피다는 동사의미가 있다.)
②최초. 『주역』「계사」上편에 ‘原始返本 故知死生之說’
(끝을 연구하기에 처음을 고찰하고 죽음과 삶의 이치를 안다.)
桓國과 12分國의 위치:
①『환단고기』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파내류 山 아래에 桓因씨의 나라가 있으니 천해의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國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는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이니 통틀어 桓國이라 했다.
(『삼성기』下) ② 파내류 山 아래에 桓因씨의 나라가 있다. 천해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國이라 부르는데 그 땅
의 넓이가 남북으로 5만리, 동서로 2만리다. 이 땅을 모두 합해 부르면 환국이요, 나누어 말하면 열두(12분국)
나라이다.(『태백일사』「환국본기」)
蚩尤天上(치우천왕) = 배달국 14세 자오지환웅(慈烏支桓雄. 배달국은 18대 환웅, 1,565년간).
치우는 뇌우가 크게 일어 山河가 바뀐다는 뜻(『삼성기』下).
太皞伏羲(태호복희) … 환웅천황 → 5세 太虞儀桓雄의 子 12명 중 막내가 태호복희. 복희는 倍達國 神市에서 出生.
雨師의 직책을 세습. 후에 청구, 낙랑을 지나 진 땅에 이주, 燧人, 유소와 함께 서쪽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
복희씨 陵이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 남쪽에 있다.(『태백일사』「신시본기」)
桓易 : 환역은 관원인 우사(雨師)에서 나왔다. 복희가 우사가 되어 육축을 기르셨다. 이때 신룡이 태양을 따라 하루
에 열두 번 色이 변하는 것을 보고 환역을 지으셨다. 桓은 羲(희)와 같은 뜻이요, 易은 옛적에 쓰인 龍자의 原 글자
이다.
환역은 體圓用方, 즉 둥근 하늘을 창조의 본체로 하고, 땅을 변화의 작용으로 하여 모습이 없는 것에서 우주의
실상을 아는 것이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이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虛空한 것에서 宇宙의 이치를 아는 것이 하늘의 이치이다.
단군의 고조선이 도읍한 곳은 阿斯達(지금의 송화강 하얼빈)
天山東方 桓國 (9환족 12분국 7代 桓因 3,301년) ⟶ 백두산 신시. 18대 환웅 1,565년⟶ 朝鮮(47대 단군 2,096년.
①제1왕조 … 三韓 1048년.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②제2왕조 …三朝鮮 860년. 백악산 아사달(장춘)
③제3왕조 … 大夫餘(국호 바꿈. 188년. 장당경 아사달(개원)) ∥
환국 3,301년+배달국 1,65년+ 조선 2,096 = 6,962년
『天符經』: 환인천제의 환국 때부터 구전되어 온 글이다. 환웅 대성존께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내려오신 뒤에
神誌赫德에게 命하여 이를 鹿圖文으로 기록케 했는데 孤雲 崔致遠이 神誌의 篆古碑(전고비)를 보고 帖(첩)으로
만들어 세상에 전했다.(『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
한글의 기원: 고조선의 3대 단군 嘉勒이 乙普勒으로 하여금 加臨土 문자를 짓게 했다.(『단군세기』) 이것이
한글의 기원이다.
花郞의 유래와 國子郞: 고조선 13대 단군 屹達 재위 20년 무술년에 소도를 많이 설치하고 天指花를 많이 심었다.
미혼 자제들에게 독서,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들을 국자랑이라 불렀다. 국자랑이 밖에서는 머리에 꽃을 꽃았
기에 天指花郞이라 불렀다.
古朝鮮의 八條禁法: 22대 단군 索弗婁 때 만든 법.
1조 :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
2조 : 상해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보상한다.
3조 : 도둑질한 자 중에서 남자는 재산을 몰수, 그 집의 노예로 삼고 여자는 비로 삼는다.
4조 : 소도 훼손 자는 금고형에 처한다.
5조 : 예의를 잃는 자는 軍에 복역시킨다.
6조 : 게으른 자는 부역에 동원한다.
7조 : 음란자는 笞刑으로 다스린다.
8조 : 남을 속인 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參佺戒의 유래: 을파소가 國相(고구려)이 되어 나이 어린 영재를 뽑아 仙人徒郞으로 삼았다.
교화를 주관하는 자를 參佺이라 하는데, 무리 중에 계율을 잘 지키는 자를 선발, 三神을 위한 일을 맡겼다.
(『태백일사』「고구려국본기」)
桓檀古記 -15
Ⅱ.『桓檀古記』가 밝혀 주는 한국사의 국통 맥.
1. 환국에서 발원한 인류 문명
1) 현생 인류의 어버이 나반과 아만
인류가 지구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약 400만 년 전. 남쪽(australo)의 원숭이(pithecus)가 생존한 연대가 400만
년 전이기 때문.
australopithecus 얼굴 모습은 실제로 類人猿과 비슷하고 두뇌 용적은 현생인류의 어린아이 정도.
그런데도 이 영장류를 사람 科로 분류하는 것은 두발로 서서 걸었고 齒列이 현생 인류와 비슷했기 때문.
400만 년 전 상존 | Australopithecus (남쪽의 원숭이) | 얼굴모습이 유인원과 비슷. 두뇌 용적은 현생인류 이전 아이 정도. 두발로 서서 걸었고 齒列은 현생인류 비슷. |
200만 년 전 상존 | Homo habilis (손재주 있는 사람) | 돌 도구 만듦. |
50만 년- 60만 년 전 | Homo erectus (베이징人, 쟈바人, 하이텔베르크人) | 불, 도구사용, 사냥, 집단생활(생존연대 150만 년 전까지로 올려 잡고 있음. |
20만 년 전 | Homo sapiens (슬기 인간) | 화석이 독일의 네안델탈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기에 네안델탈人이라고도 부른다. 두뇌용적 = 현생인류 비슷, 언어사용. 통나무베어 배 제조, 바다 건넜다. |
5만 년 전 | homo sapiens sapiens (슬기 슬기 인간) | 크로마뇽 동굴에서 발견된 인골(남성3, 여성1, 태아1)이 현 인류와 흡사. 두뇌 용적은 현인류와 비슷. 1500-1600cc. 남성인골 평균 신장은 180cm. 비슷한 시대 인골 화석,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 여러 곳에서 발견. |
인류 출현 과정
※충적(沖積)=토사가 흘러 내려 쌓임.
충막무짐(沖漠無朕)=공허하고 광막하여 아무 조짐도 없음.
1) 현생 인류의 어버이 那般(나반)과 阿曼(아만)
동양의 순환 시간관인 우주 1년에 의하면, 우주 1년 4계절이 주기적으로 순환하는 가운데 인간은 출현하고 소멸
한다. 우주 1년은 약 13만년을 주기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크로마뇽인 이전의 인간은 지나간 우주 1년의 인간이고, 크로마뇽인부터 시작된 현생인류는 약 5만 년
전의 이번 우주 년의 봄이 시작되던 봄 개벽(先天開闢)때 생겨난 것이다.
우주 1년은 4계절의 시간마디로 순환한다. 봄 개벽으로 우주의 봄이 열리면, 萬有生命과 인간이 탄생하여 여름철
까지 무성하게 번창하며 살게 된다.
우주 년의 봄 개벽을 선천개벽이라 하고 선천개벽으로 열린 우주는 약 5만 년 동안 지속한다.
우주의 가을이 열리면 가을 개벽이 시작된다. 가을 개벽을 後天開闢이라 한다.
후천개벽 역시 약 5만년 동안 지속된다. 지금 인류는 우주의 여름철 말기에서 가을철로 넘어가는 夏秋交易期(가을
개벽기)를 살고 있다. 우주 1년의 겨울철은 현대과학에서 말하는 氷河期이다.
『桓檀古記』는 那般(나반)과 阿曼(아만)이라는 어버이의 탄생으로 현생 인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두 분은 北極水(北極水는 天道의 변화운동이 시작되는 북극에서 생겨난 생명창조의 물이다.
이 북극수는 실제로 인류탄생의 바다-바이칼湖를 가리킨다.
바이칼호는 360여 개의 물줄기가 흘러 들어와서 된 것. 母의 羊水. 바이칼은 인간을 탄생시킨 지구의 자궁이다.
실제로 알타이 산맥의 바이칼호 주변에서 25,000-45,000년 전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들은 나반과 아만의 후손? Baikal의 Bai는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shaman(무당,靈매체)을 뜻하고, kal은 넓은
계곡지와 호수를 의미한다. 나반과 아만은 북극수의 조화로 생겨났다는 것.
나반과 아만은 이번 宇宙年의 선천개벽 후에 생겨난 인류의 어버이인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나반과 아만을 아버지와 어머니란 말의 어원으로 간주한다.
이 두 말이 各地로 전해져 abba와 ama(sumer語), 아바와 이마(Hebrew語), father와 mother(英語) 등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
2) 10,000년 전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東北아시아
구석기시대 = 400만 년 전(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작. Australo남쪽의+pithecus원숭이)로부터 수백 년 동안이
모두 구석기시대(구석기 시대는 획득경제 시대)
신석기시대 = 50,000년 전 현생 인류가 출현한 이후(신석기 시대는 생산경제 시대)
※약 11,000년 전에 얼음 층이 북쪽으로 완전히 물러가고 따뜻한 기후가 찾아왔다.
온화한 기후가 형성되자 homo sapiens sapiens가 지구 곳곳에서 번성하기 시작.
구석기시대는 이곳저곳 떠돌며 먹이를 찾아다니던 획득경제시대
신석기시대는 한 곳에 정착, 농사와 목축을 하는 생산경제시대(주거생활도 동굴→평지에 움집, 촌락이루고 공동작업).
인류의 농경생활 시작.
1990년대 후반에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고대 볍씨 出土. BC12,670-BC10,550년으로 土炭層 추정.
한반도에서 신석기가 막 시작되던 BC10,000년경부터 야생 벼 중 短粒벼를 선택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고,
전기 신석기(BC10,000-BC6,000)에 이미 농경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흔히 농경문화는 BC7,000년경 서남아시아의 Orient지역,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발생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소로리 볍씨 발견으로 신석기시대를 연 농경문화의 발원지로 동북아시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10,000년 전에 농경문화를 가장 먼저 일군 동북아시아인은 누구일까?
그 答은『桓檀古記』에 있다.
3) 吾桓 建國이 最高
신석기시대(先史時代) : 농경문화 시작. 文字 이전 시대. 未開 原始시대. 그러나『환단고기』에 따르면, 9,200년
전에 동북아에 이미 文明집단이 있었는데 그 집단은 한민족과 인류의 뿌리인 桓族이 세운 桓國이었다.
桓族은 50,000년 전에 化生한 인류의 어버이인 那般과 阿曼의 후손으로 모두 9종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桓國은
九桓族 12分國 7代桓因 3301년간 지속).
환족은 중앙아시아의 天山(一名 파내류山.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부강 市에 있으며 우루무치 시 에서 110km.
고대에는 白山 또는 雪山. 흉노족이 天山, 唐나라 때는 羅慢山. 파내류山은 우리말의 하늘山을 漢字로 표기한 것.
하늘=波乃留, 땅=須大具)를 중심으로 인류 최초의 국가인 桓國을 세웠다.
현 인류가 化生한 곳은 50,000년 전의 Baikal湖 이지만, 10,000년 전에 따뜻해진 기후 덕으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문명을 일구기 시작한 곳은 그 보다 아래쪽인 중앙아시아 지역이었다.
天山에서 출발한 桓國은 東으로 뻗어나가 그 영토가 동서 20,000여 리, 남북 50,000여 리에 달했다 한다.
왜 桓國?.......『太白逸事』「桓國本記」에는 “환국은 온전한 하나 됨(全一)이며 光明이다.
온전한 하나 됨이란 三神의 지혜와 권능이고, 光明은 三神이 지닌 참된 덕성이니 곧 宇宙萬物보다 앞선다.”
桓은 밝을 桓자로 광명을 상징한다. 특히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하게 빛나는 光明, 즉 天光明을 상징한다.
光明은 三神의 德性이니, 桓國은 곧 三神의 덕성이 發現된 나라요, 天上三神上帝님의 나라가 인간 세상에 이식된
첫 나라라는 것.
桓國人들은 太陽을 光明이 모이고 三神이 머무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침에는 東山에 올라 해를 向해 절을
했다.(『太白逸史』「桓國本記」)
桓은 단지 國名에 그치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하늘의 광명과 하나 된 자신을 桓이라 불렀다.
그리고 天地光明의 心法을 전수받은 모든 桓의 존재들을 다스리는 사람을 仁이라 불렀고, 桓國의 통치자를 桓仁
이라 하였다.
그 이유는 桓仁이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다스릴 때 반드시 어진 마음으로 行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유교의 仁 사상의 발원지를 가늠할 수 있다.
桓仁은 五加의 부족장 중에서 백성의 추대를 받아 선출되었다.
桓仁 선출 목적은 九桓族과 12分國이 대동단결하여 한마을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桓仁은 정성과 믿음(誠信不僞), 공경과 근면(敬勤不怠), 효도와 순종(孝順不違), 청렴과 의리(廉義不淫),
겸손과 화평(謙和不鬪)라는 桓國 五訓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桓國의 초대 통치자는 安巴堅 桓仁天帝였다. 안파견 뜻은 “하늘을 받들어 아버지의 道를 확립시킨다(繼天立父之
名也)는 것(『太白逸事』「桓國本記」).
안파견은 언어학적으로 오늘의 아버지라는 의미. 安巴=아빠=아버지= 존경하는 太陽 같은 者.
7代 桓仁, 3,301년간(BC7,197-BC3,897)
1.安巴堅 桓仁(居發桓) 2.赫胥환인 3.古是利환인 4.朱于襄환인 5.釋提壬환인 6.邱乙利환인 7.智爲利
桓檀古記 -16
4) 환국시대는 무병장수 시대
인류의 시원국가인 환국은 三聖祖시대의 첫 머리로 造化神의 신성이 구현된 때이다.
다시 말해, 인간이 대자연과 한마음이 되어 天地의 造化神聖 속에 살며 宇宙光明의 心法을 체득한 시대였다.
환국은 자연과 인간이 극치의 조화를 이룬 桓(하늘의 광명과 하나 된 자신)의 인간시대였다.
환국은 또 3,301년의 역사를 7세에 걸친 桓因天帝가 이끌었던 무병장수의 문화시대였다.
환국의 神敎의 三神사상(造化, 敎化, 治化)이 인간 역사로 실현된 三聖祖 시대는 桓國, 倍達, 古朝鮮이다.
桓國 = 造化神의 시대
倍達 = 敎化神의 시대
古朝鮮 =治化神의 시대
환국을 7代에 걸친 王朝史로 보는 것은 태고시대 造化神聖文明에 대한 無知의 所致다.
“오래도록 사시며(長生久視), 항상 즐거움을 누리셨다.(恒得快樂)”(『三聖紀』上)
“道를 깨쳐 장생하니(得道長生) 온몸에는 병이 없었다.(擧身無病)”(『三聖紀』下) 등의 기록에서도 환인의 평균
在位기간 470년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동양 의학서의 고전인『黃帝內經』제1장 (黃帝와 岐白의 대화)처럼 “옛날 사람들은 어찌하여 10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살았는가?(황제) 그들은 天地의 법칙을 지키고 살았기 때문입니다.(기백)“
Sumer 문명의 원형을 보여주는『구약전서』「창세기」에 나오는 Adam의 자손들도 노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백을 살았고, 유대족의 믿음의 父로 추앙을 받는 Abraham도 175세를 살았다.
우리나라의 神仙의 系譜를 적은『청학집』에서 동방선의 최고 조상으로 桓仁을 지목한 것에서도 桓國은 인간이
신의 경지에서 살았던 조화의 시대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서양의 고대문명 연구가들은 인류 역사의 초기를 黃金時代(the golden age)라고 부른다.
원시 shamanism을 연구한 H. Kalweit(독일)에 의하면, 먼 옛날은 인간이 행복과 평화 속에 살면서 초자연적인
힘을 쓰던 황금시대로, 그 때 사람들은 별 어려움 없이 神과 소통할 수 있었고, 죽음을 모르고 질병과 고통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에서 살았다. (Kalweit,『Shamans, Healers, and Medicine Men』, P.8)
세계의 巨石文化를 연구하는 Peter Marshall 또한 거석 유적지가 요새로 쓰인 흔적이 없고,
주변에서 무기가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고대인들은 平和롭고 창조적인 문명의 황금시대를 누렸다고 했다.
Steven Taylor에 의하면, BC4,000년을 경계로 그 이전 시대는 황금시대였고, 원초적 낙원이었다.
그 때는 완전한 미덕을 갖춘 사람들이 살던 시대로, 어떤 집단도 다른 집단, 영토를 침략하거나 정복하려 들지
않았으며, 소유물을 훔치려 하지도 않았다.
여성과 남성의 지위도 평등했고, 어떤 계급, 계층도 차별이 없었다.
인간과 자연간의 조화, 인간 사이의 조화가 지구전체에 충만했다.
Taylor는 인류의 황금시대가 끝난 것이 BC4,000년경부터 시작된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발생한 극적인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한다.
초원지대였던 이 지역이 건조화, 사막화하면서 사람들이 대거 타지로 탈출했고, 자연환경의 악화로 사회 자체도
성격이 변모되었다.
자연, 神, 집단과 合一되어 살던 인류에게 個人性에 대한 자각이 나타나게 되었고, 이를 Taylor는 자아폭발이라고
불렀다.
이때부터 남성선호, 전쟁, 사회적 억압, 유일신 관념 등이 나타났다고 한다.(S. Taylor,『자아폭발』pp.10-11)
Taylor의 연구는 BC4,000년경(환국말기)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에 고도의 문명집단이 있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 문명은 桓國과 무관치 않다.
巨石이란 서유럽에 있는 5,000여 개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고인돌, 環狀列石 등을 총칭하는 말.(전
세계에는 7만개의 고인돌이 있다. 이중 절반이 한반도에 있다. 양평(양수리) 고인돌만 해도 BC2,325년경에 만들
어진 것이다.)
P. Marshall은 유럽의 거석이 BC5,000년경에 나타났으며, 한국, 일본의 거석무덤은 BC1,000년경에 세운 것이
라고 오판했다.
고대인들은 靈性文化만 갈구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못지않은 과학문명도 발달시켰다.
BC5,000년경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유럽의 거석문명, BC3,500년경의 지중해의 Creta섬에서 시작된 Minos문명
등, 고대 유럽문명을 연구한 서양학자들은 고대인들이 지구가 1년 동안 자전하는 횟수가 365회인지 366회인지를
놓고 논쟁을 할 정도로 세밀한 관측기술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Minos인들은 원의 각도를 360도가 아니라 366도로 생각했다. 영국의 거석문화에서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구가 1년 동안 366번 조금 넘게 자전을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년의 길이는 365와 1/4이지만, 실제로 지구가 그 시간동안 자전하는 횟수는 366번이 조금 넘는다.
지구가 공전방향으로 자전을 하기 때문에 생긴 이 차이를 이미 수천 년 전에 고대인들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고대인들은 또 달과 태양의 크기도 측정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도량형도 만들었다.
그들이 사용한 관측단위는 지금과는 다르지만, 그들이 잰 수치는 현대 천문학의 관측결과와 거의 일치하게 나온다.
(溫故知新 이유). 수단(means) instrument, media, platform)은 달랐으나 내용(contents는 동일했다.
세계에서 가장 有名한 거석 유적지인 영국의 Stonehenge 거석들은 달과 태양이 지나가는 12곳의 주요 위치에
맞추어 정렬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고대인들의 놀라운 천문기술을 눈으로 확인시켜준다.
태고시대 인류는 神의 계시를 받아 하늘과 직접 소통하며 천지광명 속에서 무병장수하는 삶을 추구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탐구를 바탕으로 놀라운 수준의 과학문명에 도달했던 것이다.
5) 환국의 12나라
환국은 9족속(九桓)으로 나뉘었고, 九桓族은 12나라를 이루고 살았다.
※斑指(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Kings.판타지 영화)저자 Ronald Tolkien은 “인간들의 9종족에게는 9개의
반지가 주어졌다.”는 해설이 나온다.
그는 신화와 고대 언어 연구학자였다.
379는 신교문화에서 만물창조의 근원적 섭리를 나타내는 三神과 七星, 환국의 九桓族과 整合하는 숫자이다.
9는 1이 최대로 분열한 수로 구환족은 인류가 최대로 분화될 수 있는 변화의 수이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始原이라 할 수 있는 환국이 12 나라로 이루어진 배경에는 심오한 우주적 원리가 있다.
동양의 天地(음양)론에 의하면, 하늘의 질서는 10수(10干)로 펼쳐지고, 땅의 시간질서는 12수(12支)로 펼쳐지므로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는 12수를 한 주기로 하여 일어난다.
(하루의 시간은 12시간, 1년은 12달이다. 서양 천문학은 태양이 1년 동안 지나는 길인 黃道에는 12개의 별자리가
있다.) 그래서 天上의 三神上帝님 나라가 땅에 이식된 첫 나라인 환국도 12나라로써 그 역사를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2수는 동서양의 여러 고대 신화에 나오는 神의 숫자와 일치한다.
Greece 神話에서 Zeus(olympus 山 主神)를 비롯한 올림푸스 신전의 神들은 언제나 12였다.
India 고대 경전인 『veda』에 나오는 중요한 神도 12名이다.(인도 신화와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아내,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같다.(상호복사판)
Greece인과 Indian이 갈려나간 근원으로 추정되는 소아시아 지역의 시리아와 Hittite族도 12신을 모셨다.
Egypt도 위대한 神들은 12名으로 구성되어 있다.
최고의 神 Ra(창조자)가 12명으로 이루어진 神의 會合을 주관한다. (소아시아는 Anatolia라고도 한다.
터키어로는 아나돌루. 어원은 그리스어 anatole-태양이 떠오르는 곳 혹은 동방의 땅을 의미. 터키 영토의 97%.
동, 남으로 아르메니아, 그루지아, 이란, 이락, 시리아와 접경. 북쪽 흑해 연안에는 Pontus 산맥, 남쪽 지중해
연안인 토루스 산맥이 東西로 뻗어있다.
그 사이에 평균 해발고도 800m인 Anatolia 고원이 내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桓檀古記 -17
6) 동방에서 넘어간 Sumer
Sumer 文明 → 메소포타미아 文明(Mesopotamia란 두 江 사이 땅이란 뜻) → 그리스 로마 文明
Sumer 뜻은?
Zecharia Sitchin(제카리아 시친)은 注視者의 땅이라 부르고, 김상일은 송호수의 연구결과를 소개하면서
Sumer人을 神聖水를 찾아 Tigris, Euphrates 江岸으로 내려간 종족으로 정의했다.
Sumer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Sumer라 부르지 않았다. Sumer란 말은 아카드語이고, Sumer인들은 그들의
땅을 Kiengir(키엔기르)라고 불렀다. (ki=땅, en=통치자, gir=고귀한, 文明化된. 따라서 Kiengir는 고귀한
대사제의 땅. 문명화된 통치자의 땅 등을 의미한다.)
Sumer라는 말 뜻(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풀이가 있으나, 이곳이『구약전서』에서 말하는 ‘쉬나르’(쉬날)라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동의. 성서에는 Sumer지역을 쉬나르(쉬날) 땅이라고 불렀다.
서양학자들은 Sumer文明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아주 갑작스럽게, 앞선 文明이 전혀 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한 것’
이라고 말한다.
H. Frankfort는 Sumer 文明을 놀랍다고 표현했으며,
P. Amiet(아미에)는 비범하다고 했고,
A. Parrot는 아주 갑자기 나타난 불꽃이라고 했으며
J. Campbell(캠벨)은 "Sumer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高等文明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Mesopotamia(두 강 사이의 땅)는 크게 두 지방으로 나뉜다. 이라크 수도 Bagdhad 부근을 경계로 북쪽은
‘아수르의 땅’을 뜻하는 앗시리아, 남쪽은 ‘바빌론의 땅’을 뜻하는 바빌로니아라 불렸다.
두 江(Tigris, Euphrates)이 실어온 흙이 쌓여 생긴 땅이 Babylonia이며 북쪽을 아카드, 남쪽을 수메르라 했다.
※Mesopotamia(강 사이 땅). 옛 그리스인들이 그렇게 불렀다.
日本 여류 고고학자 고바야시 도시코는 “Sumer인들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민족계통 미상의 사람들”이라
고 했다.
Kenneth Davis(미국 교양서 저자)도 BC3,500년 이전 어느 때, 어디서 왔는지 모를 집단이 이주 정착했다고 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Sumer인들이 동쪽에서 왔다고 추정한다.
Mesopotamia일대에서 발굴되는 토기의 연대를 비교한 결과, 초기 Sumer인은 Iran 북쪽의 산악지대에 살았고,
나중에 아래로 이주하여 Mesopotamia의 최남단 평야지대에서 文明의 꽃을 피운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최종적으로 정착한 지역을 Mesopotamia의 다른 지역과 구별하여 오늘날도 Sumer라 부르고 있다.
※Akkad
메소포타미아 중북 지역의 도시와 그 근방을 이르는 말. 고대 제국인 아카드 제국의 수도.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도시 中 하나. 바그다드 南西 50km 지점 추정. 王 통치 이후 BC2400-BC2200경 가장
융성. Sargon은 Akkad와 Sumer를 통합한 통치자.
Sumer인은 어디서 왔을까?
수메르의 창세 신화엔 Sumer인을 후두부가 평평하고 머리카락이 검은 인종(black headed people)이라고 했다.
이는 전형적인 Asian의 모습이다. Sumer의 점토판 기록에 따르면, Sumer인은 Anshan(안샨)으로부터 넘어왔
다고 한다.
Sumer 말(언어)로 An= 하늘, Shan= 山을 의미한다.
그들이 넘어간 Anshan 은 곧 桓國 문명의 中心地였던 天山과 동일한 말이다. 안은 또한 神이란 뜻으로 dingir(
딩기르) 라고 읽는다.
딩기르는 퉁구스인들의 神 Tengri와 같은 말이다.
몽골인들의 神 Tengri도 문자적으로 ‘하늘’을 뜻하며 최고신이다.
(이은봉, ‘단군신앙의 역사와 의미’,『단군 그 이해와 자료』,pp.315-316.)
김상일은 최남선의『不咸文化論』을 바탕으로 고대의 Sumer인과 한민족은 불함문화라고 하는 공통문화권 속에
살다가 갈라졌다고 주장. 불함문화권이란 중앙Asia에서 몽골에 이르기까지 산악 이름 중 상당수가 공통적으로
박(밝, 白) 자를 쓰는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최남선은 동북아의 文化를 불함문화(불함은 박의 漢字 轉音)라 불렀다.
몽골계 안에 있는 산악에는 (이름에 있어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山 이름들이 거의 박(白)자로 구성되어 있다.
Pamir를 中心으로 東北쪽으로 퍼져나간 모든 지역엔 하늘과 조상을 배합하는 山神이 있어서 그것을 박(白) 山이
라 했다. 이들 박 산으로 연결되어지는 아시아 북계의 文化를 한자로 不咸文化라 불렀다.
불함문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文化일 뿐만 아니라, 그 발달 계통으로 볼 때에 가장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있던
文化이다.
이 불함문화권이 곧 桓國이다.
즉, Sumer 文明은 구환족 중 한 族이 환국의 天山을 넘어 남쪽으로 가 일으킨 文明인 것이다.
※不咸이란 光明, 하늘, 하느님(하늘神)을 뜻하는 古語. 崔南善은 조선민족의 기원을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단군
의 나라에 두고, 그 상고시대의 특징을 天神사상에 둔 불함문화로 명명.
※최남선은 중앙Asia의 Pamir 高原 지역을 동북아 종족들의 시원지로 보고,
①히말라야 쪽으로 나간 것은 Indonesia, Malaysian 등 남북 종족 이루고
②崑崙山쪽으로 나간 것은 중국인의 근간을 이루고
③북방 天山쪽으로 나간 것은 동북아시아의 몽골족을 이루었다고 본다.
Sumer인들의 독특한 역사 서사시인 ‘엔키와 닌후르상’ 신화를 보면, 그들은 이상향인 ‘딜문이 동쪽에 있다’고
믿었다. 이는 Sumer인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시사해 준다.
딜문은 정결하고 光明이 넘치는 땅으로 병들거나 죽는 고통, 전쟁 없는 신들의 낙원이다.
Eden=딜문?
『구약전서』의 Eden 동산은 바로 이 딜문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상향의 모습을 光明이 넘치는 무병장수의 동쪽
땅으로 묘사한 것은 환국의 光明사상 그대로이다.
Sumer 文明에서 39가지 최초 사건을 찾아낼 만큼 Sumer 연구의 대가인 크레이머에 따르면(S.N.Kramer,『The
Sumerians : Their History, Culture, and Character』,pp.292-296.),
Sumer인은 자신들을 ‘지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인 선민(選民)이라 믿었다.
놀라운 것은 그것이 물질적 부나 권세가 아니라, 神들과의 연관 때문에(권세보다는 정신) 그렇게 믿었다는 점이다.
Sumer=桓國?
그들(수메르인)은 神의 뜻을 실현하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자각이 있었다.
이것은 三神上帝님의 뜻과 가르침을 깨치고 실현하여 인류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환족의 사상이 그대로 전해진
것이다.
Kramer는 결정적으로 Sumer인들이 동방에서 왔다고 했다. 그가 말한 동방의 정체는 바로『환단고기』의 환국
文明에서 찾을 수 있다.
환국의 서남쪽에 위치한 虞(우)婁(루)國과 須密爾國(수밀이국) 사람들이 이란의 산악지대를 거쳐 Mesopotamia
지역으로 南下하여 개척한 文明이 바로 Sumer이다. 다시 말해서 Sumer인들의 原고향은 桓國인 것이다.
桓檀古記 -18
7) Sumer 文明 특징
Sumer文明의 실상은 19세기에 Mesopotamia 지역에서 설형문자로 쓴 점토판, 돌과 청동으로 만든 여러 가지
조각상, 원형통 인장 등이 발굴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1870년대에 France 탐사대가 라가시 지역의 유적을 발굴했고, 1880년대부터는 미국의 고고학자들이 니푸르
에서 수만 점의 점토판을 발굴했다. 이로써 오랫동안 암흑 속에 있던 Sumer 文明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Abraham의 고향인 갈데아우르에 나온 우르는 환국(9환국 12분국 중 하나)의 虞婁(우루)가 변해서 생긴 것이고,
Sumer란 말은 須密爾國(수밀이국)이 변한 것이다. 수메르 지역의 도시국가 중 우르는 Sumer語로 소(牛)를 뜻한다.
스므러 Sumer란 소머리이고 우루國이란 소(牛) 나라란 말. 수메르語 로 우르가 소를 뜻함은 online영어사전 ‘바빌
론닷컴’(www.babylon.com)에서도 확인된다.
“우르는 고대 유럽에 많았던 매우 크고 힘이 세며 사나운 소(牛)科의 짐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송화강 阿斯達은 단군조선 이전부터 동방문화의 원초적인 발상지로 환웅의 배달 건국 이래 한 겨레의 젖줄이
었다. 송화강을 이두식으로 표기하면 속말리(粟末里-소마리-소머리(牛首)가 된다.
이를 다시 한문식으로 표기할 때 우수(牛首)또는 牛頭의 두 가지 유형이 된다.
이상의 說을 종합하면, 수메르와 환인의 12국 중 수밀이는 같은 어원의 말이라는 것이고, 수메르와 우르의 어원은
송화강 아사달(고조선 제1왕조 시대 수도)과도 연관 지어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약 6,000년 전 중앙아시아 일대에 엄청난 기후변동이 일어났다. 초원, 호수가 사막이 되었다.
기근, 가뭄이 왔다. 동물, 인간 대거 이동.(Steve Taylon, 『자아폭발』)
환국 말기의 중앙아시아에는 상태환경에 큰 변화 있었다. (미국 기후학자 James De Meo)
※Toynbee는『역사의 연구』에서 세계의 文明사회 29곳을 거론하며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文明을 창조한 것은 Sumer와 Egypt 둘뿐이라고 했다.(실은 Egypt 文明의 출원지가 Sumer였음.)
※많은 Sumer 연구가들은 共히 ‘Sumer 文明은 처음부터 거의 완성된 상태로 역사에 등장했기에 역사에서 사라질
때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고 했다.
(도시국가 Sumer)
Sumer문명은 BC5,000년경에 시작되었고 BC3,500년경에는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성숙한 고대문명이 되었다.
Sumer人들은 Tigris와 Euphrates강 사이의 땅에 20개에 가까운 도시를 세웠다.
두 강 下流는 잦은 홍수 때문에 그 대책 마련과 관개를 위해 농경민을 집단으로 조직한 것이 도시 국가의 성립
배경이다.
도시마다 저마다의 수호神을 모셨다. 도시 중앙에 신전, 그 둘레에 주거지를 만들었다, 대표적인 도시국 국가는
우르, 우르크, 니푸르, 라가시, 아카드, 바빌론 등이었다.
우르는『구약전서』에 나오는 유대족의 믿음의 조상인 Abraham의 고향으로 추정되는 곳이고, 우르크는 곧
『구약전서』의 에레크이다.
도시들은 물 사용권 놓고 물 전쟁 벌였고, 강한 도시들이 약한 도시들을 병합하였다. Sumer 도시들이 남긴 뛰어난
文明의 발자취는 점토판 기록을 통해 그 전모가 지금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多神信仰)
Sumer人들은 자신들이 창조된 것은 神에게 봉사하기 위해서라고 믿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었다.
그들은 神이 대기, 태양, 바람 등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았다.
BC18세기경 고대 Babylonia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7개 점토판에 새겨진 Sumer ‘神 목록’에서는 神들의 총
수효가 3,600이라고 말한다.
(19세기 말 Pennsylvania대학 발굴단이 발견한 점토판엔 BC1,500년경의 니푸르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놀랍게도 이 지도는 실제 발굴 작업에 이용됐을 만큼 내용이 정확했다.)
神들의 계급 구조 최상부엔 An이 있었다. An은 신들의 왕으로서 다른 모든 神을 낳은 우주 최고의 神이었다.
An은 Sumer의 초기 왕조시대에는 우르크의 수호신이었지만, 그 후 인간 세상을 직접 다스리지 않고 하늘 세계
에만 존재하는 神으로 바뀌었다.
지상에 사는 神들의 우두머리는 An의 큰 아들인 Enlil(엔릴)이었다.
(En= 主의 뜻, lil= 바람, 대기의 뜻) An과 Enlil의 관계는 그리스 神話의 크로노스와 제우스의 관계와 같다.
※하늘을 뜻하는 An은 최고신이면서 우르크의 수호신이었다. 하지만 An 부인인 안나가 우르크에 소개되면서
An은 하늘로 올라갔다. An을 가장 높은 神으로 확립한 Sumer人들의 역사관이 후대까지 내려와 히브리 성서의
‘하늘에 계신 야훼 하느님’이나 신약성서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와 같은 神觀으로 연결되었다.
※Sumer의 多神崇拜 전통은 Sumer가 망한 이후에도 Babylonia와 아시리아 같은 후대 Mesopotamia에 전승
되었고, 이것이 후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근간이 되었다.
(최초의 양원제)
그리스인이 민주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내기 오래 전인 BC3,000년경에 이미 Sumer의 한 도시에서 최초의 양원제
가 운영되었다.
양원제란 연장자들의 회합인 上院 + 전투에 임할 수 있는 남자 시민의 회합인 下院을 말한다.
서양의 민주주의(정치) 바탕인 의회제도는 Sumer에서 출발했다.
(함무라비 法典보다 앞서는 Sumer 法典)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법전은 BC1,750년 Sem족의 왕인 함무라비에 의해 공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오래된 Mesopotamia 법전이 3가지나 발굴 되었다.
① 함무라비시대와 가장 가까운 때에 Babylon 근처의 도시국가에 에쉬눈나의 지도자가 정한 법
② 함무라비보다 150년 앞선 도시국가 이신의 王 리피트이시타르가 공포한 법전
③ 함무라비보다 500년 앞서 우르의 왕 우르남무가 지은 법
1984년 이라크 박물관 curator가 바그다드 언덕에서 점토판 2개를 발굴. 판독 결과, BC2,350년경에 우르를 다스
리던 우르남무 왕이 제정한 법령으로 밝혀졌다. 함무라비 법전보다 500년 전에 Sumer는 이미 문명사회의 특징인
법질서와 체계를 확립했던 것.
桓檀古記 -19
그리스, 로마 신화의 뿌리는 Sumer이다.
Hammurabi(BC1,810-BC1,750)는 Sumer의 마지막 왕조를 타도하고 Babylon 제1왕조를 세웠다.
Babylon은 그들의 문자를 가지지 못했기에 Sumer 문자를 빌려 법전을 새겼다.
BC300년경에 엘람 왕이 바빌론을 점령, 이 법전을 빼앗아 엘람의 首都 수사에 옮겨 놓았다.
수메르 법전 내용은 물과 관련된 재판에 대한 것, 노예 처리에 관한 것, 남 신체를 상했을 때 지불해야 하는
벌금 액수 등을 기록해 놓았다.
Sumer법전에서 유래된 많은 법문은 후대의 Hebrew 법조문 속에 여실히 나타난다.
정통 유대인들은 그들이 이혼에 관해 말할 때, Sumer 법 용어를 사용했다.
고대 법률제도 연구 권위자인 E.P. 스파이저는 성전 안에서 유대인들이 Tora를 읽을 때 경전의 끝에 손을 대는
풍습이 옛날 Sumer의 풍습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금도 실행하고 있다고 했다.
(알파벳 낳은 Sumer)
Sumer인들은 BC3,200년경에 이미 文字를 사용하였다. 초기의 문자는 그림문자(상형문자)였으나, 서서히 진화
하여 BC3,100년경 기호와 부호가 音價를 지닌 문자가 되었다.
→ 그 문자(表意文字 ⟶ 表音文字)가 바로 수메르의 설형(楔形文字. 쐐기문자)문자이다.
그 지역에서 많이 나던 갈대의 뾰족한 끝으로 젖은 점토판에 쐐기 모양의 자국을 내어 다양한 글자를 만들었다.
딱딱하게 굳은 설형문자 점토판은 역사상 최초의 공식 기록문서가 되었다.
수메르의 문자는 처음 500년 동안은 곡물의 양, 가축의 수를 계산하는데 주로 사용되었다.(단순)
그러다가 명사수식 동사, 형용사까지 갖춘 서술적 글쓰기가 가능할 정도로 섬세화 → 600여 개의 설형문자 기호
가 만들어졌다.
수메르 문자를 택한 아카드語(아카드는 수메르의 주요 도시국가 중 하나 = 우르, 우르크, 라르사, 에리두, 바빌론,
니푸르, 움바, 라저시, 에쉬눈나, 아카드 등)는 고대세계의 國際語가 되었다.
반면에 보기엔 더 아름답지만 필기가 성가신 그림문자를 사용한 이집트어는 끝내 國際語가 되지 못했다.
Sumer문자 → 아카드어(고대 세계 국제어) →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으로 확산 → 페니키아문자
→ 그리스문자 → Alphabet으로 발전.
설형문자로 기록을 남긴 수메르人 말은 우리말과 똑같이 주어나 목적어 같은 體言 다음에 조사(토씨)가 붙는 언어,
즉 교착어이다.
지구 언어 중 膠着語(한국어, 일어, 터키어 등 - 附着語, 添加語)는 한국어와 한국어 영향을 받은 일본어, 알타이
어뿐이다.
수메르어를 연구하는 한국 학자들에 따르면, 수메르 말 語順이 우리말과 거의 같고, 단어 자체가 같은 것이 100
가지나 된다고 한다. 수메르어와 한국어의 두드러진 유사성은 두 집단의 공통된 뿌리를 암시한다.
유사 한국어(Sumer語)
아버지(아빠)
칼(카르)
한(안)
엄마(엄마)
밝음(바르)
우리(겨레)(우르)
사람(사람)
나락(볍씨)(나락:곡식의 신)
단군(몽골어로는 텡그리) (딩기르)
아우(아우)
북(북)
어디서(...쉐)
어디로(...어라어디)
부터(...타)
※정연종,『한글은 檀君이 만들었다』, 히스토리채널, ‘한글, 그 비밀의 문’, 2003.10.9 방영.
(서양 최초의 학교)
Samuel Kramer에 따르면, 수메르에서는 BC3,000년경에 학교제도가 확립되어 있었고, BC2,500년경에는
점토판으로 만든 교과서가 사용되었다.(S. K. Kramer,『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p.23.)
Sumer 학교에서는 Sumer의 elite라 할 수 있는 서기를 양성했다. 王이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王에게 봉사하는 서기는 글을 모르면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서기교육은 아주 엄격했다.(고바야시 도시코,『500년 전의 일상』,P.33.)
Sumer의 점토판에는 수메르인들의 강한 교육열을 보여주는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지각 잘하고 복장도 단정하지 않으며 글씨 쓰기도 서툴러서 선생님의 꾸중을 듣는 학생이 아버지께 말해 선생님
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자고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했고 선물을 주었다. 푸짐한 접대를 받은 선생님은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형제들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낼 것이고 친구들 중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학교 활동을 잘 해왔으므로 이제 지식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Kramer,『역사는 Sumer에서 시작되었다.』,pp.
33-34.; 고바야시 도시코, 같은 책, p.68.) 이것은 인류 최초의 역사적 촌지사건? 이었다.
Sumer = 도시국가의 연합(Sumer란 단어의 의미)
Sumer의 학교 제도에서 특이한 점은 학교 선생님을 ‘학교 아버지’(school father)라고, 학생을 ‘학교 아들’
(school son)이라 불렀다. 스승을 아버지, 학생을 아들이라 한 것은 임금(君)과 스승(師)과 아버지(父)를 君師父로
동일시하는 동양의 君師父一體 사상과 상통한다.
(노아의 방주 원형. 방주를 만든 사람은 Utnaphishtim)
Sumer 文明이 인류에게 남긴 유산 中 하나는 수백 편에 달하는 문학작품이다. 인간 탄생 이야기, 神이야기,
전설적 영웅 이야기 담은 敍事詩들이 전해진다.
Enuma Elish → 천지창조 설화 담았다
길가메시 서사시 → 永生을 추구하며 모험에 나선 영웅 이야기.(오디세이와 비교)
두 작품은 Mesopotamia 일대에서 시대를 달리하며 여러 언어로 옮겨져 아카드인, 아시리아인, 갈데아인, 바빌론
인의 문학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Enuma Elish는 아시리아 시대와 바빌론 시대를 거쳐 유대인의 창세설화인 창세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BC2,700년 경 우르크의 5대 왕이었던 갈가메시를 主人公으로 한 작품. 쾌락, 壓政을 일삼던
그가 자신의 방탕을 뉘우치고 영생의 비밀을 찾아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것.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우트나피쉬팀이 길가메시에게 들려주는 대홍수 이야기이다.
인간의 타락에 진노한 神이 홍수를 일으켜 인류를 전멸시키는데 방주를 만든 우트나피쉬팀 가족만 살아남아 홍수
후에 등장한 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
대홍수 이야기는『구약전서』「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와 흡사한데, 대홍수 이야기(설화)는 BC2,000-
BC1,000년 사이에 Mesopotamia에 등장한 여타 민족의 기록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대홍수 전문 연구 학자들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의 대홍수 이야기가 옛날부터 전래.
그리스인들은 神話에서 데우깔리온을 홍수에서 살아남은 인류조상으로 묘사.
Enuma Elish, 길가메시 서사시와 같은 Sumer의 문학작품이 여러 나라 말로 필사되어 널리 읽혀진 것에서 Sumer
문명이 모든 Oriental 문명의 원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 :
mose 5經 중 첫 번째 책. 50장으로 구성. 천지창조의 시작, 죄의 기원, 낙원 상실, 이스라엘 족장들 생애 등 기록.
아시리아 : 기원전 강성國. Hittite를 쳐서 세운 나라. 북북 메소포타미아 전체 → 이집트 → 아나톨리까지 지배-
大帝國. 수도 = 니네베
(상투를 튼 Sumer 왕)
수메르의 철학과 사상은 동북아와 많이 닮아 있다.
Sumer인들은 우주를 Anki(안키)라 불렀다. 우주는 둥근 하늘 An(안) + 평평한 땅 Ki(키)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사상)은 동양의 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사상과 다를 바 없다.
Sumer인들은 동양의 제국문화에서 나타나는 天命思想을 갖고 있다.(왕권은 하늘이 내린다는 것.) Sumer인들은
오늘날 시간을 時, 分, 秒로 나누는데 사용하고 있는 60진법을 사용했다. 이는 동양의 60甲子와 그 사상적 배경이
同一하다.
Sumer와 한국의 동질성은 의식주 문화와 생활풍습에서도 나타난다. Sumer인들은 상투를 틀었다.
상투는 동방 한민족의 독특한 머리형. Sumer인들은 또 씨름, 殉葬, 결혼 전에 신부가 될 여자 집에 함을 지고
가는 것, 여인들이 물건을 이고 다니는 것(오늘날 이스라엘 婦女들도 동일)
(Sumer왕조의 시작과 끝)
BC5,000년경 ‘두 江사이의 땅’(Mesopotamia)에서 보리를 재배하면서 싹튼 Sumer 문명은 BC3,100년경에는
전역에 도시국가 체재가 확산될 영토로 성장. 도시생활은 모든 사람이 농업에 종사했던 촌락사회와는 사뭇 달랐다.
수만 명이 사는 도시에 잉여 생산물이 늘자, 식량생산에 종사치 않는 자가 많아졌다.
왕이 생겨났으며 지배조직도 정비되었다.
BC2,900년경에는 수메르의 우르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강력한 도시국가들이 교역로와 영토문제로 전쟁을
되풀이 하는 초기 왕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같은 혼란기를 끝내고 Mesopotamia 전역을 통일한 사람은 Sargon왕(BC2,334-BC2,279)이었다.
Sargon 王은 셈족 중 하나인 Akkad 出身이었기에 그가 새운 Mesopotamia 최초의 통일 제국은 아카드제국이라
불렀다.
아카드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땅을 100여 년 정도 지배하다가 5세 王에 이르러 북쪽의 구티인에 의해 멸망(BC2,193).
이 후 80년이 지나 Sumer 출신의 우르남무가 이민족을 축출하고 다시 통일왕조를 세웠다.
(우르 제3왕조 시대. BC2,112-BC2,004).
약 100년에 걸친 우르 제3왕조는 Sumer의 전성기이자 마지막 통일 왕조였다.
이 왕조는 동쪽에 자리한 엘람족 침략으로 BC2,004년 멸망. Sumer인은 역사 무대에서 퇴장.
이 후 Mesopotamia 땅에서는 Babylonia와 Assyria가 주도하는 Oriental 문명이 전개되었고 Sumer 文化유산은
Oriental 文化 속으로 스며들어 계승되었다.
(수메르에서 시작된 서양 역사상 최초 39가지.『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1. 최초 학교 | 21. 최초의 ‘부활’ |
2. 최초 ‘촌지’ | 22. 최초의 ‘성 조지’ |
3. 최초의 ‘청소년 문제’ | 23. 최초의 문학적 인용 |
4. 최초의 ‘新經典’ | 24. 인류 최초의 영웅시대 |
5. 최초의 양원제 | 25. 최초의 사랑노래 |
6. 최초의 역사가 | 26. 최초의 도서목록 |
7. 최초의 세금감면 | 27. 인류최초의 황금시대 |
8. 최초의 ‘모세’ | 28. 최초의 ‘병든 사회’ |
9. 최초의 판례 | 29. 최초의 종교적 애도가 |
10. 최초의 의학서 | 30. 최초의 메시아 |
11. 최초의 농업서 | 31. 최초의 마라톤 우승자 |
12. 최초의 나무 그늘 원예술 | 32. 최초의 문학적 상상력 |
13. 인류 최초의 창조론과 우주론 | 33. 최초의 성적 상징성 |
14. 최초의 도덕적 사고 | 34. 최초의 슬픔에 잠긴 성모 |
15. 최초의 ‘욥’ | 35. 최초의 문학적 초상 |
16. 최초의 속담과 격언 | 36. 최초의 자장가 |
17. 최초의 동물설화 | 37. 최초의 만가 |
18. 최초의 문학 논쟁 | 38. 최초의 노동자 승리 |
19. 최초의 성서 | 39. 최초의 수족관 |
20. 최초의 ‘노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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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뮤엘 노아 크레이머. 박성식 역,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 가람기획, 2000.)
桓檀古記 -20
8) Sumer에서 뻗어 나간 서양文明과 인도文明
(Sumer 문명의 전파)
이집트 문명은 Sumer보다 약 500년 후에 번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Egypt의 건축, 기술, 문자 등은 모두 Sumer
에서 유래한 것이다. Egypt의 문자는 Sumer의 설형문자를 변형한 또 다른 설형문자였다.
Sumer 문명 → Egypt → Crete섬(이 섬에서 유럽의 최초 문명인 Minoa문명. BC2,700-BC1,420 탄생) →그리스
문명으로 계승. 그래서 Sumer 문명을 서양 문명의 모체, 서양 문명의 창시자라 함.
※그리스 황금시기 = BC500년경.
沖積土로 이루어진 Sumer 지역에는 청동의 원료인 구리, 주석이 나지 않기 때문에 Sumer인은 두 금속을 모두
무역을 통해 조달했다. Sumer인들은 일찍이 BC4,000년경부터 청동을 제조. 청동제품은 고가로 판매.
Sumer인들은 일찍부터 은화를 사용했다.
크테타인들은 BC2,000년경 이전부터 무역활동을 통해 이집트를 포함, 지중해 연안을 자주 왕래하였다.
그 과정에서 Mesopotamia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문자, 신화, 건축술, 천문학, 수학 등을 수용하였다
→ 다시 지중해 서부지역으로 전파(文明의 西進).
Arian = 고귀한 사람
Hebrews(히브리인) = 강(유프라테스)을 건너온 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스라엘인이라 불렀으나 다른 민족들은 그들을 히브리인(유대인)이라 불렀다.
히브리인이란 말은 BC6세기 말부터 그들을 가리키는 공식 용어가 되었으며 그리스, 로마 문화권에서는 항상
히브리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히브리(Hebrew)는 나아간다, 넘어간다는 뜻을 가진 동사 이브로에서 나온 것으로 강을 건너온 사람을 뜻한다.
(다카비사 마사오, 한영철 역,『성서원형의 신비』, pp.41-42.)
※Abraham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 → 하란 → 가나안(지금의 Palestine과 시리아 남부 지역)으로 이주했는
데, 이 때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야 했다.
이 때문에 그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Hebrews(히브리인), 즉 강을 건너 온 자라고 불린다.
Sumer 王들은 건물 관리, 길 수리, 여행자를 위한 여관 설치 등 일상적 → 정치적 분쟁, 국제적 거래 등 모든
문제를 문서화하고 관련된 계약문서를 작성해 두었다. 이것이 서양의 초기 황실제도에 계승되어 서류 정리하는
법, 회계장부 쓰는 법 등으로 정착.
또한 Sumer 문명은 동쪽으로 인도까지 전파되었다. 현 이란 북쪽 국경 너머 카프카스산맥에 살면서 인도-유럽語
쓰던 한 종족이 BC2,000년경에 남쪽으로 대규모 이동(Sumer 왕조 말기) → 마침내 인더스 강 유역에 도착한
그들을 당시 인더스人들은 Arian(고귀한 사람들 뜻)이라 불렀다.
Arian족은 BC1,500년경에『베다』(브라만교와 힌두교의 경전) 이야기를 인도에 구전으로 전함.
Hebrew(유대) 문명은 Sumer 문명과 직간접으로 연관되어 있다. 유대인 역사가 기록된『구약전서』 「창세기」
에 의하면, 그들의 조상 Abraham은 BC2,000여 년 전 갈데아 우르(이라크 남부)에 살았다.
(Abraham은 Sumer의 거대 도시국가에서 살던 전형적인 Sumer인 이었다. 갈데아 우르는 Hebrew 성서에 우르
카시팀으로 기록되어 있다.)
Abraham이 살던 당시 Sumer의 우르는 있었지만, 갈데아의 우르는 없었다. 갈데아의 우르는 BC900년대 초에
갈데아인이 남서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는『구약전서』 「창세기」가 기록
되던 시기로 옛 아브라함이 살던 곳이 당시엔 갈데아인의 영역이였기에 성서 기록자들이 갈데아 우르라고 표기
한 것.
口傳 전승의「創世記」가 成文化되기 시작한 것은 BC9세기로 추측된다.「창세기」전체는 BC5세기가 되어서야
통합되어 오늘날의 형태로 정착된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저. 박웅희 역,『아시모프의 바이블 구약, pp.35-36.)
Ziggurat =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이나 구워 만든 벽돌로 만든 메소포타미아의 Elan도시의 主神에 바쳐진 聖塔.
원형은 Ubaid期 基壇을 가진 神殿.
Babel탑 = 新바빌로니아 시대의 聖塔(기층 기단을 가진 마르두크神의 聖塔)
Hebrew인은 BC1,700-BC1,300년 사이의 설형문자 기록(당시는 古바빌로니아 시대)에 Habiru란 종족이름으로
끊임없이 나타난다. 이들은 BC1,500년대 초기가 될 때까지 유목생활을 하며 Mesopotamia 땅의 힘센 부족들
사이에서 傭兵으로 팔려 다녔다.
아브라함 종족이 가나안으로 이주한지 500년 세월이 지난 BC1500년대에 비로소 Palestine을 정복하고 그 곳에
정착하였다. Abraham 종족, 즉 히브리인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계속 수메르의 영향 속에서 살았다.
그들이 접촉한 가나안 민족이 수메르 문화와 똑같이 설형문자를 쓰고 수메르의 교과과정을 그대로 따르는 등
수메르 문화에 깊이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히브리인은 BC6세기 바빌론 포로 시절에 수메르 문화에 더욱 밀착 되었다.
바빌론 포로로 살던 당시, 수메르를 계승한 바빌론의 문자와 학문은 히브리인의 마음, 사상 속에 깊이 침투.
나중에 히브리인이 바빌론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수메르 예배의식, 교육, 법조문 등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구약전서』에는 고대 중동의 종족들이 많이 나오지만, 수메르인은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이집트인, 가나안인, Hittite(헷)인, 아시리아(앗수르)인, 바빌로니아인 등 숱한 종족이 거명되지만, 수메르인이라
불린 종족은『구약전서』에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수메르인이 바로 히브리인 자신들의 조상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Sumer 文明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그리스 문명, 유대 문명, Islam 문명의 근원이
되었고 인도의 인더스 문명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Sumer인은 바퀴, 수레를 발명 → 로마 군인은 이를 이용, 유럽 정복(평정). 서양 천문학도 수메르에서 유래.
(춘분, 추분 따지고, 달의 운행법칙 발견. 황소자리, 사자자리 등 별자리 명명).
점성술도 수메르에서 발원. 서양의 건축, 음악도 그 원형이 수메르에서 나왔다.
BC5,000년경에 혜성처럼 갑자기 나타난 Sumer 문명을 서양에서는 인류 최고의 문명으로 칭송.
그렇다면 수메르 문명의 근원인 동방의 桓國 문명이야 말로 진정한 인류 최고의 문명이 아닌가?
※逾月節(過越節) = 유대인들이 Egypt 왕국의 노예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광복독립기념일.
유대력으로 1월14일 저녁(레위기 23:5)
(Sumer와 기독교)
수메르는 서양문명 중에서도 유대교와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그들의 경전에서 말하는 ‘하느님이 흙으로 인간을 빚어 生命을 불어넣음으로써 인간이 탄생했다‘는 이야기
의 근원은 수메르이다.
‘인간은 하느님을 섬기도록 만들어졌으며, 하느님의 창조적 힘은 그의 말씀 안에 있다.’는 내용도 수메르에 근원
을 두고 있다. ‘마지막 날에 하느님의 심판이 악한 자에 임하고, 고난과 고통이 따를 것’이란 내용도 마찬가지다.
특히,「창세기」에서의 에덴동산, 대홍수나 노아의 방주, 카인과 아벨의 싸움, 바벨탑 등 얘기는 수메르의 문학
작품에서 기원한다.
하느님을 찬양하는 詩로 채워진「시편」은 수메르의 예배의식 때 썼던 儀禮文이고 유대인이 유월절 명절 때
낭송한「아가서」는 수메르의 마지막 왕조가 망할 때 읊었던 바로 그것이다.
「잠언」에 실린 속담, 금언은 수메르의 교훈, 속담, 전설을 편집한 것이다. 기독교의『신약전서』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행적도 거의 수메르에서 나온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처녀잉태」, 아기 예수에게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의 나타남, 아기 예수가 이집트로 피난한
일, 3일만의 부활 같은 것이 모두 수메르의 영향이다.(김상일,『한사상』, p.48.)
경전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배의식도 수메르 문명에서 전해진 것이 많다. 유대교의 예배의식은 오늘날
까지도 바빌론에게서 빌려온 것이 많다.
유대인들이 속죄일 전야의 예배 때 읊는 기도문인 콜니드레(Kolnidrei, 유대교의 옛 성가, 모든 서약들)는 수메르
의 新年 禮式文과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유대교와 기독교는 바로 수메르의 종교와 사상을 모체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