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외 1편
박설희
바닷물이 밀려왔다 물러간다
잠시 후 리트리버 한 마리가
귀를 젖히고 꼬리를 흔들며 해변을 달린다
혼자이기도 하고
사람과 함께일 때도 있다
화면 귀퉁이에 있는 자막, DOG TV
불안을 잠재우고 명상과 안식이 있는 곳
오늘도 몇 번을 으르렁거렸나
물어뜯고 싶은 걸 참았나
단조로운 배경 음악, 하늘과 바다와 풀밭이 보이고
개들이 즐겁게 뛰어논다
가끔씩 사람들이 조연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시선이 오래 머무는 곳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마음이 평온해진다, 자연 속에서
가슴을 재다
브래지어 사러 왔는데 치수를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눈대중으로 얼추 비슷한 치수의 것을 들고 성큼 일어선다
양팔을 들게 하고 브래지어로 내 가슴 치수를 잰다 나도 모르는 내 가슴의 치수를 잰다 줄었다 늘었다 어떨 땐 콩알만 했다 어떨 땐 듣도 보도 못한 공간으로 휙 날아가 버리는 내 가슴을 잰다 내 가슴 크기를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양해보지만 막무가내, 평생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느라 살가죽에 가까워진 젖가슴으로 당당히 서서 내 가슴 크기를 잰다 당신 가슴은 얼마라고 숫자를 댄다
황송히 그 숫자를 받아들고 아, 내 가슴이 이만하구나 그런데 큰 건지 작은 건지 기준치를 몰라 쩔쩔매다가 생각해보니 가슴 크기의 평균이 뭐가 중요하랴
내게 딱 맞는다며 자신 있게 내미는 브래지어를 웃음으로 받아들고 돌아서려는데 주변 노점에서 지켜보고 있던 수원 남문시장의 가슴들이 다들 깔깔 웃는다 빈 가슴으로 웃는다 비워서 충만해져서 웃는다
박설희
1964년 강원도 속초 출생. 한신대 문예창작대학원 졸업.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은 바퀴다, 가슴을 재다 외,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외.
생명과문학 작가상 수상. 현 (사)경기민예총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