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의 두 암자를 찾아
십이월 중순 주중이다. 동지를 열흘 앞둔 이번 주는 수요일만 빼고 비가 예보되었다. 엊그제는 겨울치고 제법 되는 강수량을 기록했고 내일모레 강수는 그렇게 많지 않을 듯하다. 주변에선 툭하면 웬만한 날씨를 두고 이변이라고 호들갑을 뜨는데 기상은 원래 항상성이 있는 게 아닌지라 불규칙적이어야 하고 고르지 않아야 정상이다. 우리네 인생이 무상하듯 자연 현상도 무상하다.
주중 수요일은 문우들과 트레킹을 나서기로 한 날이다. 주로 창원 근교를 맴돌거나 경전선 열차로 어디쯤 내려 강가를 걷는 경우였는데 이번은 차량으로 청도로 올라가 암자 가는 길을 걷기로 했다. 처음엔 청도읍 유호리 대운암으로 오르기로 했는데 차로 이동하면 동선이 짧은 듯해 운문사 북대암을 먼저 다녀와 오후에 대운암에 오를 일정을 정해 팔룡동에서 넷이 모여 길을 나섰다.
넷 가운데 민첩성에서나 교통 법규 준수로나 가장 앞서는 한 문우가 운전대를 잡아 나머지 일행은 마음이 놓였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동읍 일대는 아침 안개가 끼었다가 걷히는 즈음이었다. 다른 직장인들은 출근이 거의 끝난 시간이라 25호 국도는 그리 혼잡하지 않았다. 가술에서 수산을 지나 밀양에 들어 운전자가 내비게이션으로 입력한 정보는 내가 그려둔 노선과 달리 달렸다.
승용차의 자동 입력 운행 정보는 긴늪 송림에서 상동 유천 방면이 아닌 24호 국도인 언양으로 내달렸다. 덕분에 산내면 얼음골로 가는 창밖 겨울 풍경을 잘 감상했다. 가지산터널을 빠져나간 회전 교차로에서 청도와 경주 방면 산비탈로 올라 Y자 갈림길에서 운문사 가는 길로 들었다. 전에는 가지산 쌀바위로 가려는 산등선에서 고개를 넘었으나 최근 삼계로 가는 터널이 뚫렸다.
영남 알프스로 통하는 가지산과 신불산 일대는 고봉 준령인지라 낙엽 활엽수가 우거진 산림지대였다. 여름철은 더위를 식히는 이들이 많이 찾았을 계곡이었으나 겨울 골짜기는 적막했다. 삼계에서 운문사 사하촌까지는 지척이었다. 올해 들어 불교 종단과 당국이 조율을 잘 마쳐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지 않아 운문사 산문에서는 주차비만 내고 절집 경내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운문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한 문우가 텃밭에서 캐 삶아온 고구마를 나눠 먹었다. 일행은 사천왕문을 지나 매년 봄날에 곡차를 양껏 받아먹는 천연기념물 처진 소나무 앞에서 사진을 남겼다. 한 문우가 법당으로 들어 부처님을 뵙고 나오는 사이 경내의 고목 감나무에 달린 홍시를 치올려 바라봤다. 까치밥으로 삼기는 개수가 많았는데 아른아른 홍시가 되어 얼음으로 바뀌어 갔다.
운문사 경내에서 빤히 쳐다보인 북대암이 우리가 목표한 1차 답사지였다. 기도발을 잘 받는다는 사리암은 모두 가 보았으나 북대암은 나는 가보질 않았고 한 명만 가 봤다고 했다. 승용차로 비탈을 얼마큼 올라가 차를 세워두고 나머지 구간은 걸어 오르니 북대암이 나왔다. 운문사 창건 내력은 바위 밑 북대암 기도처로부터 비롯했다. 암자 앞으로 펼쳐진 전경은 기가 막힐 경지였다.
암자에서는 우리가 찾아간 날 음력 동짓달 초하루 법회가 열려 스님 법문도 엿들을 수 있었다. 공양간에서는 보살이 점심을 차리면서 홍시를 주어 맛있게 먹었다. 신심이 깊은 불자들의 경건한 법회가 마치자 내실에서는 멀리서 찾아간 중생에게도 맛깔스러운 점심 공양이 나와 황송했다. 북대암에서 내려와 운문호를 돌아 동곡과 매전을 지나 동창천을 따라 유호리 대운암으로 향했다.
용각산 남향 조선 후기 한 선사가 범이 살던 굴에서 수도 정진하면서 암자가 세워진 내력이 전해 왔다. 대운암 가는 자동찻길로 오르는 차창 밖 풍경은 앞서 다녀온 북대암보다 전망이 나았다. 암자 주차장에는 순둥이 백구가 영접 나와 안내를 잘 받았다. 바위 벼랑 아래 관음전 앞에서 바라본 동창천과 청도천이 밀양강에 합류되어 S자로 휘감아 돌아 산을 비켜 골을 빠져나갔다. 23.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