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는 또 다른 환상을 봅니다. 이번에는 네 병거(마차)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각각의 마차를 다른 색의 말들이 끌고 있습니다. 첫번째 마차에는 붉은 말들이, 두번째 마차에는 검은 말들이, 셋째 마차에는 흰 말들이, 넷째 마차에는 얼룩무늬가 있는 건강한 말들이 끌고 있습니다(1-3). 스가랴는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슨 뜻인지 물어봅니다. 천사는 이 마차들은 하늘의 네 바람이라고 합니다. 바람은 영이나 호흡 또는 능력으로 번역 할 수 있는 ‘루아흐’입니다. 그리고 네 마차는 온 땅에 두루 다니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특히 북쪽으로 간 마차에 대해서만 집중합니다. 스가랴는 한 목소리를 듣는데,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리라”라고 말합니다(4-8). 북쪽에 초점을 두는 이유는 북쪽에 바벨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바벨론에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황폐하게 된 약속의 땅으로 가야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이방의 땅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차를 보내셔서 그곳에서 당신의 백성을 데리고 오시려고 합니다.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자들, 곧 북방에서 하나님의 영의 활동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자들에게 가서 금과 은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씌우라고 합니다. 면류관은 왕권을 상징하는데, 여호수아에게 씌우는 것은 아주 특이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을 씌울 때 여호수아가 할 일이 아니라 ‘싹’이라 이름하는 자가 성전을 지을 것을 말함으로 “싹”에 강조점을 둡니다. 그리고 그 면류관은 대관식이 있은 후에 다시 여호와의 전에 보관됩니다. 그것은 여호수아는 대제장이자 왕으로서 오실 메시야를 상징합니다. 대관식은 ‘싹이라 이름하는 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예언한 이사야서 11장 1절 말씀을 연상케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메시야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성전을 다시 세우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으로서 지금도 당신의 백성을 세계 곳곳에서 모으십니다. 우리를 사탄의 땅을 상징하는 바벨론에서 불러 내셔서 당신의 새 백성으로 불러 주십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머물러 있고 싶어하는 우리의 마름을 돌려 바람(루아흐, 성령)마차로 태워 돌로 된 성전이 아니라 참된 성전이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모으십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자 왕으로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죽으셨고,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싸우시는 분입니다. 스룹바벨은 성전 공사의 임무를 마치지 못했지만, 그리스도는 완전히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당신의 백성을 당신의 성전으로 모으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입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곧 새 성전으로 공동체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참된 의의 제사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고, 당신의 새 백성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주일 예배에 나아가고 새로운 백성으로서 즐거워하며 오늘 하루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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