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역사를 바꾸다
돼지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가축이지만, 중국 민큼은 아니다.
우선 한자 글자만 봐도, 집을 뜻하는 가(家)도 지붕 아래 돼지(豕;돼지 시)가 있는 것이 대표적인 상징일 것이다.
그리고 돼지라는 한자어도, 돼지 시(豕), 돼지 해(亥), 돼지 돈(豚), 돼지 저(猪; 멧돼지- 저팔계의 猪, 저돌적(猪突的)),
돼지 견(猏) 등이다.
우리말에는 돼지, 맷돼지 정도이고, 영어로드 pig나 swine 정도인걸 비교하면, 돼지라는 글짜가 한자에서는 참으로 다양하게 쓰이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그들 생활에 오랜 동안 깊숙이 침투해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했지만, 지금도 중국의 농촌에 가면, 집집마다 돼지 몇 마리는 기르는 것이 보통이고, 이를 각 가정에서 도살하여 길거리에서 팔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마치 우리 농촌에서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장에 내다 팔 듯.
돼지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하여, 중국 북부 지방, 동북 3성의 조선족들은 된장 단지에 고깃덩어리를 보관하기도 하고, 더운 남쪽 지방에서는 부엌 연기가 나가는 굴뚝에 매달어서 자연스럽게 훈제를 하여 보관한다.
이렇게 하면 1년 이상은 충분히 보관할 수 있으니, 죽순과 함께 썰어서 웍에 볶아서 간단히 요리할 수 있다. 담백하고 맛이 참 좋다. 우선 습기가 적으니까 맛이 더 좋아진다.
스페인 같은 곳에서는 돼지고기를 뒷다리(하몽)나 등심(라몬)을 소금물에 절였다가 장기간 숙성시켜서 얇게 빚어서 생으로 먹는다. 안주로도 좋고 빵과 함께 먹기도 한다.
지금 이 하몽류는 제주도에서 젊은이들이 흑돼지 고기를 숙성시켜서 만드는데, 스페인의 하몽 보다 훨씬 맛있고 품질도 좋다. 아주 위생적이고.
돼지고기는 구워먹는 가장 널리 이용되는 방법이지만, 드물게는 바비큐를 하여 파는 곳도 있다.
그중에서도 제천의 돼지 바비큐가 가장 유명하니, 교실만한 터널식 화덕에서 단계 마다 온도를 달리하여 12시간을 구워내는데, 하루에 십여 마리씩 구워내지만, 예약을 하지 않고는 먹어볼 수가 없다. 돼지 냄새라곤 전혀 없고 아주 연하고 맛있다. 대전에도 멕시칸 바비큐가 있는데, 불 피우는 재료를 달리하여 훈제의 불향이 다양하도록 요리한다.
역시 예약은 필수다.
그밖에 돼지고기를 수육으로 삶아내는 방법이 있는데, 이 방법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 노하우가 필요하다.
충북 단양 구경시장 끄트머리에는 흑마늘을 소스로 얹은 수육을 파는데, 흑마늘 소스와 잘 익힌 수육이 조화를 이루어 꼭 권할 만하다. 경남 남해에서 오랫동안 밥집을 해온 시어머니의 반찬 솜씨도 곁들여져서 소주 한병은 같잖게 해치우게 된다. 장소가 협소해서 늘 붐비는 게 흠이다.
나는 집에서 샤워를 하는 것을 빼고 목욕을 갈 때는 거의 설악산의 척산 온천장의 가족탕을 이용한다.
접수처의 미녀 최여사는 내 목소리만 들어도 예, 예, 하면서, 좋은 방을 잡아준다. 오전 열시쯤 도착하면 열 두시 어름에 나오게 되는데, 이때는 몸은 나른하고 배는 시장기로 허기가 진다. 하여, 거기서 십 분쯤 차를 타고 가면 양양에 있는 실로암 메밀국수집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때 배고픔은 절정에 달한다.
실로암 메밀국수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서, 넓은 주차장과 마당, 두 개의 큰 홀이 있어도, 자리는 늘 장날처럼 붐빈다.
오랜 단골이라 열 명이 넘는 직원이 있어도 대부분이 나를 잘 안다.
수육은 꼭 반접시만 시킨다. 수육으로 배를 채우면 국수의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는 수입산으로, 이베리아 산을 쓴다,
비계가 많고 삼겹살 같은 강한 맛이 나는 건 사용하지 않는다. 이걸 제철 채소에 싸서먹는데, 채소로는 잎이 가급적 적은 상추가 일반적이지만, 겨울에는 봄동, 봄에는 쇠미역 등이 나오기도 한다.
여기에 세 가지 소스가 나오는데, 자잘한 세파(실파) 무친 것, 너무 마르지 않은 무말랭이 무친 것, 그리고 어간장에
고춧가루(말린 고추를 불려서 찧은 것)과 마늘양념.
쌈 채소에 고기 두저름, 그리고 세가지 양념을 고루넣어서 한 쌈을 싸면, 그러잖아도 고프던 배가 환장을 한다.
여기서 잠깐!
그 집은 소주는 팔지 않기 때문에 난 안동소주 한 병을 물병에 따루어서 갖고 간다!
이 고기 쌈에 함께 마시는 술맛이란!!
이집 수육은 누구에게도 일품이다.
그 집 국수 얘기는 일전에도 잠시 한 적이 있어서 생략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낮잠 한잠 자면 꿈 같은 하루가 간다.
이렇게 맛있고 친숙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족속이 있으니, 그게 바로 이슬람교도와 유태교도, 그리고 구약을 믿는 일부 신교(대표적으로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흔히 안식교)들이다.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 발꿉이 갈라진 동물이나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들은 먹지 말라했다나?
암튼 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불교도나 힌두교도 들은 고기 자체를 먹지 않고 채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남이 고기를 먹는 건 탓하지 않는다.
보통 기독교가 예수가 죽고 유럽 전역에 막 퍼져나간 걸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틀린 생각이다.
예수가 죽고 3,4백년 동안은 로마 교황의 세력에 닿는 적은 면적 속에서만 포교 되어왔고, 서유럽 일대에 퍼지는데는 무려 천 여 년의 역사가 필요했다. 다시 그것이 동유럽 일대로 퍼지는데는 또 3,4백년이 필요했고, 그만큼 교황청이 세력을 넓히는데는 오랜 세월이 걸렸음을 뜻한다.
러시아에는 아예 교황청의 세력이 닿지를 않아서 독자적인 종교를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러시아 정교라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이런 독자적인 종교를 만들어낸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14세기)
그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되, 교황청에 가서 허리를 굽히긴 싫었다. 교황에 끌려다니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가 뭐라고 내 황권(짜르)에 간섭해? 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종교, 즉 이슬람교는 추운 지방 사람들에게 술과 돼지고기를 금하니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러시아 정교다.
옛 당나라 수도인 시안(西安;엣이름은 長安)은 실크로드의 시발점이다. 거기서 인도와 이어지고, 다시 아랍권과 유럽도 이어졌다. 불교도 이 길로 들어왔다.
이들에게도 아랍의 이슬람이 침투하려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시안의 서족에 가면 호떡 같은 모자를 쓰고 양고기를 파는 아랍인들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슬람교가 중국에 침투하는 데는 완벽히 실패했다. 어떤 탄압이나 저항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술과 돼지고기였다.
쭝국의 거의 모는 詩에는 술이 등장하고, 복어의 맛에 반하여 복어를 하돈(河豚; 물에 사는 돼지)라 부르는 중국인에게 술과 돼지고기를 금하는 종교는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이렇게 돼지고기가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던 것이다.
甲辰 秋分 後
풍강
첫댓글 전북 장수 출신 이규태..
한국인의 의식구조
한국인의 생활구조..
뽐내고 싶은 한국인 등
그의 필력은 막힘이 없으며 어느 문장 어느 페이지 허술히 넘길수 없게
이웃끼리 이야기 나누듯 우리나라 의.식.주에 대하여 큰 공부되게 쉽게 풀어 엮어놓았다
이규태 저서는 내 책장에 보관된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저서와 지금도 여전한 나의 필독서다
위 원문 글이 이규태님을 연상시킨다
풍강님은 미식가십니다.
단양 사는 우리도 모르는 곳의 수육의 맛을 즐기시고
제천의 돼지 바베큐
우리는 돼지고기를 사 먹으러 간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이북 사람인 우리 아부지가 돼지고기를 좋아 하셨는데
저는 간장 게장을 좋아하고 차돌박이 샤브샤브를 즐겨 먹습니다,
식도락을 즐기면서 사시는 풍강님 일상이 풍요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