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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고구려 토론방 고구려가 북위의 상국??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大高句麗帝國 추천 0 조회 430 07.03.01 16:18 댓글 2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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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3.01 17:40

    첫댓글 대고구려제국님, 반박할 것이 전혀 없네요;;

  • 07.03.01 17:39

    고구려는 북위의 국력을 능가했습니다. 북위가 고구려에게 조공을 바쳤고 써 놓으신 1,2,3,4 그대로 사실입니다.

  • 07.03.01 23:23

    나병석님 북위에 대해 나온 책을 읽어보셨나요? 북위는 실질 국력은 고구려의 실질 국력을 크게 능가했습니다. 그런 북위의 불운은 사방의 적을 두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고구려는 이런 북위의 불리한 점을 잘 이용한 것이구요. 간단히 말해서 고구려가 북위에게 상대적인 면에서는 우위에 있었겠지만 절대적으로 북위를 능가한 것은 아닙니다.

  • 07.03.02 17:48

    자드님 고구려는 동쪽에 혼자 있었습니까. 백제와 신라가 그냥 있는 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백제의 북위격파의 그런 백제는 고구려에게 솜털같은 존재였던가요?. 그리고 이후 고구려계가 북위사를 좌지하면서 고구려의 입김은 더욱 강해졌을것이며, 사실 북위와 고구려의 혼인 관계를 봐도 북위가 고구려에 도리어 절절매는 등 여러상황에서 단순히 고구려가 외교적 수완만이 능숙했다고 말하기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 07.03.02 17:53

    그리고 이당시 외교적 수환이 좋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그만큼 역사적으로 깊고 강대한 왕조로서 주변에서 상국으로 인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변 중소세력이 신생 북위보다는 고구려의 요구에 따랐다는 점을 무시할수 없지요. 요서 유목쪽이 대륙과 고구려 왕조에서 어느 강한 국가에 붙거나 이라크가 강해서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나 영국등 다국적 국가가 외교전선을 펴는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북위의 국력이 현 이라크 수준은 아니지만.

  • 07.03.02 17:56

    그리고 대륙의 낙양을 차지한 왕조가 힘이 약했을 경우 북방지역의 세력은 그 왕조를 동조하기 보다 따로 논 기록들이 많습니다.

  • 07.03.02 18:21

    역사님께서 다 말씀해주셨네요. 역사적 소양이 많이 부족해서 짧은 글로 댓글을 달려고 했더니 ㅋㅋ.

  • 07.03.03 10:19

    역사님//처음에는 댓글로 달았습니다만 쓸게 많아서 리플로 달았습니다 ..

  • 07.03.01 17:44

    나머지는 제가 아는 것이 없어서 설명을 못드리겠습니다만 1번 같은 경우 북위나 고구려 모두 서로 건드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고구려는 북연을 영토적으로 차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북연이 위치한 곳 같은 경우 유연이나 북위에게 노출되어 있어 방어가 취약한 곳입니다. 고구려로써는 괜히 북연 땅을 집어삼켜서 북위와 쓸모없는 충돌을 일으킬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되네요

  • 07.03.01 17:52

    여기서 더 추가하자면, 장수왕 때에 북연은 더이상 완충지대로서 역할은 무실해졌기 때문에 고구려에서 접수했습니다.

  • 07.03.01 21:58

    제 생각입니다만 ... 영향력만 끼쳤을 뿐 접수했다고는 보기 힘들지 않을까요? 북위와 고구려의 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말입니다.

  • 07.03.02 18:18

    음, 자드님 말씀대로 세력이 교차하는 지역이면 아마도 영향력 반, 접수가 반이지 않을까생각되네요.

  • 07.03.01 17:46

    그리고 북위도 그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알맹이는 고구려가 먹었지만 그 알맹이 되찾겠다고 고구려와 싸운다면 북위에게는 매우 불리해지는 상황입니다. 북위의 북쪽에는 북위가 화북통일 전쟁에서 만난 잔챙이국가들보다 몇 배는 강력한 유목제국 '유연'이 버티고 있었고 남쪽에는 한인(漢人)의 남조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다는 것은 북위로써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컸습니다.

  • 07.03.01 23:25

    4번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북위로써도 백제의 협공에 좋은 반응을 보였을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역시나 유연, 남조 등 남북쪽에 강력한 적을 둔 상황에서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북위측으로써도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한다하더라도 백제가 선전해줄지 의문인데다가 (아니면 위덕왕 때처럼 수의 고구려 원정을 팔짱 끼고 구경한 것처럼 그랬을 지도) .. 백제와는 국교가 설사 악화되더라도 당장은 북위측에게는 손해가 없었기에 고구려에게 국서를 돌려준 것 같습니다

  • 07.03.01 17:50

    북위가 고구려보다 인구와 영토면에서 훨씬 강대국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는 외교적인 측면으로 북위와의 전쟁 가능성을 막고 오히려 동방 질서를 움직이는 하나의 축으로 움직인 거죠..

  • 07.03.01 23:29

    그리고 고구려가 435년에 북위의 계보를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북위가 당시 화북통일 전쟁에 전념하고 있었던 상황을 보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 화북은 사실상 북위가 제패하다시피 했지만 아직 완전한 통일을 이룩한 것은 아닌데다가 화북 지역이 안정된 상황도 아니었고 남북에는 적들이 북위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고구려는 이런 북위의 상황을 간파하고 북위에게 계보를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 같습니다. 물론 당시 북위의 황제이자 화북으로 들어온 유목민 군주들 중 전진의 부견과 함께 최고의 정복군주인 태무제는 필시 분노했겠지만 아직 화북을 완전히 제패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구려와 불화를 일으키기는

  • 07.03.01 23:30

    힘들었기에 그냥 고구려의 요구를 묵살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단지 계보 요구만을 했다고 해서 고구려가 무조건 북위의 상국이었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계보 요구 사건은 고구려가 북중국의 왕조들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제국'이었다고 봐야된다고 생각됩니다.

  • 07.03.01 23:32

    마지막으로 3번 역시 북위 내에서 고구려의 영향력이 상당했다는 것을 말해줄 뿐 고구려가 무조건(?) 북위의 상국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 작성자 07.03.02 14:44

    제가 고구려가 북위의 상국이라고 생각한것은 아닙니다. 네이버에 어떤 분이 이런 논리만 가지고 북위와 대등한 위치라면 모를까 북위의 상국이라고 하여 적은것입니다

  • 07.03.02 18:22

    북위가 고구려에게 조공을 했으니 고구려가 상국('조공을 받는 나라')이 맞지요.

  • 07.03.02 21:39

    조공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 서적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07.03.03 16:32

    자드님 죄송합니다.ㅠ

  • 07.03.03 04:49

    북위가 고구려에 조공을 바쳤다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나병석님. 어떤 학자가 그에 대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게 몇년 전의 일이지만 그 학자분께서는 아직까지 그 증거자료를 발표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조공책봉에 대한 개념을 근대의 종주국 종속국 개념으로만 생각하고 계신데 그건 근대의 눈으로 고대를 바라보는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조공책봉은 현대 주권국가간 종주, 종속관계와 다릅니다.

  • 07.03.03 16:31

    아, 그렇군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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