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우연
강 혜 빈
오래된 커피숍에는 빛과 먼지가 많다 죽은 꽃나무도 있고 꽃나무의 영혼도 있다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아 우연의 왼쪽 귀를 본다 셔츠 깃처럼 가지런히 접혀 있다 우리는 이번 생이 지루해진 시간 여행자이거나 연인일지도 모른다 우연은 땀을 흘리지 않는다 우연은 벤야민을 읽는다 시시한 농담을 던지고는 혼자 웃는다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웃었던 사람처럼v 꿈속에서 염소가 된 일 아니 될 사람을 좋아한 일 이틀 내내 죽은 듯이 잠든 일v 가끔 손등 냄새 맡으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일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도 웃어본다 세상에 혼자인 것 같은 어떤 날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실례지만 같이 앉아도 될까요 물은 적 있는데 모르는 사람은 눈빛으로 대답하며 옆을 내주었다 모르는 사람의 팔꿈치가 나의 팔꿈치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웃고 있다 우리만 너무 그만 집에 가자고 할까 속으로 생각한다 가능한 침묵에서는 향기가 난다 우연의 눈을 보면 흔들리는 촛불처럼 영원히 순해질 수 있다 우연은 찻잔을 비우고 풀썩 일어선다 나는 따라 일어선다 주변을 둘러보니 서 있다 우리만 너무 언젠가 같은 장면에서 헤어진 적 있던가 그때는 레몬차를 쏟았던가 그러나 우연은 돌아왔다 우리는 아무튼 함께 있다
- 시집〈미래는 허밍을 한다〉문학과지성사 -
미래는 허밍을 한다 - 예스24
“상상할 수 있다면 모두 가능한 이야기”뉴 노멀New Normal이 될 서머-핑크의 미래‘밤팔러’들이여, ‘허밍이’들의 행렬로 오라죽음에서 건너온 사랑의 얼굴 ‘폴짝’ 미래로 향하는 강혜빈
www.yes24.com
강혜빈 시집 〈미래는 허밍을 한다〉 문학과지성사 /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