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의 따뜻한 시선과 맞춤 정책 필요
J씨는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앓고 있다. 그가 처음 증상을 보인 건 유아 시기로, 항상 사물을 뚫어져라 보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은 뒷전이 됐다. 어쩌다 친구와 놀 때면 J씨는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본 부모는 정신건강의학과에 J씨를 데려갔고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J씨는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지만 교우관계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친구들과 놀기보다는 교무실을 들락거렸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teacher’s pet’(선생님의 애완견)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이후 J씨는 평소 좋아하는 별을 보기 위해 천체물리학과에 진학했지만 취직은 못했다. 사회성이 낮아 별다른 대인 관계도 없고, 그저 천체물리학 관련 홈페이지에 방문하거나 별을 관측하면서 생활할 뿐이다.
J씨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이하 자폐) 중에서도 양호한 편인 ‘아스퍼거증후군’으로 보인다. 아스퍼거증후군은 공식 진단명은 아니지만 임상에서는 널리 쓰이는 용어로, 학업을 수행할 지능은 있지만 사회성이 부족한 자폐 유형을 말한다.
이 사례에서 자폐의 대표 특성인 ‘사회성 부족’을 확인할 수 있다.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은 정신의 상대적 폐쇄 체계에 대해 말하면서 자폐를 ‘외부 체계와의 상호작용을 영속적으로 차단한 상태’라고 했다. 우리의 정신은 지속해 외부 자극과 상호작용하는데, 자폐의 경우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자기 내부 세계에 몰입한다. 그 때문에 외부 자극을 불필요하게 느끼고,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것이다.
융은 자폐에 대해 명상을 계속하는 상태로 표현하기도 했다. 자폐 환자들은 명상에 빠진 사람처럼 자신의 정신만으로 완벽한 정신 상태를 이룬다. 주변 사람과의 교류는 불필요하게 느낄 뿐이다. 그래서 자폐 환자는 마치 하루 종일 명상을 하는 사람처럼 외부 자극에 무감각하다.
[자폐인에 친절한 사회 여건 필요해]
자폐의 치료법은 이런 특성에서 찾는다.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면, 자폐는 애초에 그렇게 태어난 선천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이렇게 비유를 해보자. 만약 명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를 이태원 클럽에서 일하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명상에 조용한환경이 필수인 것처럼 자폐도 마찬가지다.
자폐인을 사회화시키려고 억지로 사람이 많고 사회와 접점이 많은 환경에 노출한다면, 자폐인은 그저 고통만 느낄 뿐이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온습도를 적절하게 맞춰주는 것과 같다. 자폐의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사회성을 지닌 자폐인도있으므로 사회와의 노출도를 적절하게 결정해야 한다. 자폐 환자를 직접 챙기는 가족이나 사회의 인식 변화도필요하다. 자폐를 질병으로 보기보다는 혼자 있어야 행복한 사람의 특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물론 자폐는 사회적 능력 결여와 이에 따른 경제 능력 상실이 수반된다. 따라서 사회 능력 부재에 맞는 복지 체계를 갖추는 등 주변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폐인을 도울 수 있을까? 자폐아를 돌보는 일부 부모는 자폐아의 사회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때론 의사가 보기에도 심할 정도로 사회화를 강요하곤 한다. 친구들 사이에 아이를 계속 끼워넣고, 싫다는 아이를 공동체에 소속시킨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외부 환경에 대한 노출은 자폐인에게 우울과 불안 증상을 심는다. 이는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져 심한 경우 자살로까지 갈 수 있다. 물론 자폐인의 사회화는 필요하다. 단, 개인의 증상을 살피고 사회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에 자폐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폐 여부를 어릴 때 파악하고, 그 증상에 맞춰 점진적 사회화를 꾀하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자폐 환자 중 공격성을 나타내거나 우울·불안 증상을 보이는 경우다. 이는 자폐에 다른 정신질환이 겹치는 사례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지나친 사회화를 하거나, 아니면 주변 사람이 죽거나 하는 급격한 변화가 있을 때 주로 나타난다. 이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약물 치료와 행동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폐를 환자와 그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자폐인들은 겉보기엔 명상에 빠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 힘듦을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그 주변 사람들이 힘들 뿐이다. 그런 시름에 빠진 가정을 돕기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 개선과 복지정책 마련이 시급하다.
[혹시 나도? 자폐스펙트럼장애 체크리스트]
□ 사회적·감정적 상호작용이 잘되지 않는다
□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거나, 동료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을 어려워한다
□ 반복적인 행동을 좋아한다
□ 또래들과 다른 방법으로 장난감을 갖고 논다
□ 반향어(타인의 말을 따라 하기)나 타인이 알아듣지 못하는 특이한 언어를 사용한다
□ 매일 같은 길로 다니려고 하는 등 변화에 민감하다
□ 특이한 물건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거나, 흥미를 보이는 대상이 극도로 적다
□ 빛에 언료되는 등 특정 감각에 과도하게 반응한다
□ 통증이나 온도 등 특정 감각에 과소하게 반응한다
* 2~3가지만 해당해도 자폐스펙트럼장애 의심. 모든 증상은 반드시 유아의 초기 발달기부터 나타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