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반된 것으로 입체화하기
☺ 화룡점정(畵龍點睛)이란 말이 있듯이, 시쓰기보다는 입체화가 더 …
현대는 매달 수천 명의 시인들이 수천 편의 작품을 쏟아냅니다. 그로 인해 어지간한 작품은 읽어도 기억되지가 않습니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애써 시집을 펴내고, 우편으로 보내줘도 첫머리만 읽다가 덮어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독자들의 기억 속에 자기 작품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선명하게 부각시킬 수 있느냐구요? 저도 정확하게는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만, 나름대로의 비법을 이야기하라면 상반된 요소들을 대비시켜 입체화하는 방법을 써 보라고 권유하고 싶습니다. 왜 있잖습니까? 여자들 속에서 또 다른 여자는 별다른 의미가 없고, 흰색 속에서도 또 다른 흰색은 전체에 흡수되어 표가 안 난지만, 검은 점 하나를 찍으면 전체가 대조되면서 입체화되는 방식 말입니다.
그림으로 그려 볼까요?
< A > < B > < C > < D > (흰 네모 속 흰 네모) (흰 네모 속 검은 네모) (흰 네모 속 큰 검은 네모) (검은 네모 속 검은 네모)
어떻습니까? <A>나 <D>보다는 <B>나 <C>가 눈에 더 띠지요? 또 다 같은 평면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입체처럼 보이고요?
이와 같이 대비를 시킴으로써 입체화시키려면, 첫째로 그 작품의 주제가 상반된 욕망을 품고 있는가 살펴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선(善)을 권장하기 위한 테마라고 해도 악의 욕망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반된 욕망은 갈등을 불러 일으키면서 서로 대비되어 작품을 입체화시키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독자들을 공감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상반된 욕망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지스트들의 작품을 검토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이미지화는 누구나 갖춰야할 기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지 10년을 못 넘겨 현대시의 주역 자리를 주지주의자들에게 넘겨준 것은 이상과 욕망을 포기하고 풍경화만 그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좀 이해하기 쉽게 김동인의 '감자'를 가지고 살펴보기로 할까요? 이 작품은 환경에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소시민들의 삶을 주제로 삼은 것으로서, 형상화하기에 따라 아주 심각한 작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삼인칭 시점을 택하면서 복녀가 아무런 고민과 갈등을 느끼지 않은 채 타락하는 과정만 그렸기 때문에 밍밍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저 같으면 몸 판 돈으로 마련한 저녁 밥상에 식구들이 머리를 쑤셔 박으며 허겁지겁 먹는 모습과, 오래간만에 허기를 달랜 남편이 당신은 재주도 좋다면서 잠자리에서 끌어안으려고 하자 '이 인간아, 이 인간아!'하고 울면서 몸을 맡기는 장면과, 그 징글징글한 왕서방이 장가를 간다고 하자 시원섭섭하면서도 이제는 어찌 사나 걱정하면서 몇 푼이라도 받아내려고 낫을 들고 나서는 장면을 삽입하여 대조시켰을 겁니다.
또, 남편의 시점으로 써도 마찬가지입니다. 복녀가 바람난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가지고 온 감자로 허기를 채울 때는 정말 비참했을 겁니다. 그리고 왕서방이 경찰과 의사와 짠 것을 알고, 힘센 놈들과 싸우기보다 몇 푼이라도 더 받아 어린 자식들이랑 겨울을 나는 게 현명하다며 억지로 웃음을 짓는 장면을 그렸더라면 이 작품의 주제는 더욱 처절하게 강화되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사소한 일에도 갈등을 느낍니다. 지하도 계단의 거지에게 천 원짜리 한 장을 던져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을 제거하고 <줘야 한다>고 쓰면 독자들은 낡은 작품으로 치부하고, <줘서는 안 된다>고 쓰면 몰인정하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을 택하지 말고 갈등하는 그 순간의 상반된 심리를 대조시키면서 입체화해야 합니다.
둘째로, 그런 테마를 이야기하는 화법(話法)과 빈도(頻度) 역시 대조하여 입체화해야 합니다. 은유적으로 말하는 곳은 의미가 숨는 대신에 표현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먼저 이야기하거나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강조되고, 뒤에 이야기하거나 다른 이야기 속에 포함시킨 것은 묻히어 약화됩니다.
다음 작품은 이런 화법과 빈도로 입체화하고 있습니다.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驛)은 동해안에 있습니다. 눈 내리는 겨울 바다― 거기 하나의 암호처럼 서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당신이 거기에 닿을 때, 그 역은 총을 맞아 경련합니다. 경련 오오 존재. 돌이 파묻힐 때, 물들은 몸부림칩니다. 물들의 연소 속에서 당신도 당신의 몸부림을 봅니다. 존재는 끝끝내 몸부림 속에 있습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습니다. 푸른 파편처럼, 바람 부는 밤에 환상이라는 이름의 역이 보입니다. - 이승훈(李昇薰), 「암호」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동해안 어느 역의 풍경입니다. 그런데 그 역의 이름을 ‘환상’이라고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은 ‘암호’ 같으며, 아무도 가본 사람이 없고, '당신'이 거기에 닿으면 ‘총을 맞아 경련’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은유한 것은 ‘동해안에는 신비로운 역이 있습니다’라고 설명할 경우 독자들이 무심코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역의 이름을 ‘환상’이라고 바꾸어 의미차를 만들고, 그를 통해 전경화(前景化)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 역에 대한 모습을 되풀이하여 말한 것은 상상 속의 역을 현실의 존재처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셋째로, 문장의 층위를 입체화해야 합니다. 이 층위에서는 문형(文型), 문장의 길이, 문체(文體), 보격(步格) 등이 만들어내는 독서의 속도와, 그로 인해 드러나는 화자의 정서 상태입입니다.
문장의 속성에 따른 독서 속도를 살펴보면, <주어-(목적어/보어)-서술어>의 순으로 짜여지는 정치법(正置法) 은 원활하게 읽히고, 도치법(倒置法)은 행위를 나타내는 서술어가 앞으로 나오기 때문에 빨리 읽힙니다. 그리고 뒤틀린 문장은 정치법으로 바로잡아 받아들이기 때문에 느리게 읽힙니다.
문장의 길이 역시 독서 속도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긴 문장은 속도가 떨어지고, 짧은 문장은 빨라집니다. 문장을 호흡률 단위로 조직하면 리듬화되고, 이에서 벗어나면 산문화됩니다.
화자의 심리는 이들을 이용하여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정상적일 때는 정치법과 간결한 문장으로, 주체를 강조할 때는 관형구로 수식하고, 행동을 강조할 때는 도치법을 구사하거나 부사어나 서술어구를 반복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장중하거나 우울한 기분을 나타내려고 할 때는 긴 문장으로, 다급할 때는 어순을 바꾸거나 도치법(倒置法)을 사용하고, 혼란스러울 때는 뒤틀린 어순이나 비문을 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넷째로, 어휘론적 층위를 입체화해야 합니다. 이때, 대비되는 자질은 지칭하는 대상에 따라 <추상 : 구상>, 성격에 따라 <동질 : 이질>, 탄생된 배경에 따라 <인공 : 자연>, <동양 : 서양>, <고전 : 현대>, 사용하는 계층에 따라 <상류 : 하류>, <여성 : 남성>, <성인 : 아동> 등입니다. 이런 자질을 대조시킬 경우 역시 입체화됩니다.
또, 음운적 층위에서 대비되는 자질은, 음운이 의미를 환기시키는 정도에 따라 <환기시키는 것 : 무관한 것>, 지배적인 음운의 성질에 따라 <양성모음 : 음성모음>, <강자음(격음․경음) : 유성 자음>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서정주의 「화사」도 이런 요소들을 대비시켜 입체화하고 있습니다.
사향 박하의 뒤안길입니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우선 의미적 국면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뱀을 징그러운 동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수식한 것은 낯설게 만들어 독자들로 하여금 뱀이 슬픈 욕망의 상징임을 생각해보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문장과 연과 행의 층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에서 제1행은 정치법으로, 2행은 명사를 종지형으로, 3행은 아주 긴 문장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1행을 정치법으로 조직한 것은 화자의 정서 상태가 정상적임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2행을 짧게, '베암'을 종지형으로 만든 것은 독자들의 시선을 뱀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이고, 3행을 길게 조직한 것은 뱀에 대한 아름다우면서도 징그럽다는 이중적 감정과 혼란스럽고 우울한 정서를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 음운적 층위도 <뱀→베암>, <얼마나→을마나>, <징그러운→징그라운>, <몸뚱어리→몸둥아리>로 입체화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사투리를 구사한 걸 ‘향토적 리리시즘’을 위한 배려하고 설명하고 있지만, <뱀→베암>으로 바꾼 것은 단모음을 장모음으로 만들어 길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얼마나→을마나>로 바꾼 것은 개구도(開口度)를 좁혀 음색을 어둡게 만듦으로서 슬픔의 크기를 강조하기 위해서이고, <징그러운→징그라운>과 <몸뚱어리→몸둥아리>로 개구도(開口度)를 넓힌 것은 이 어휘의 의미와 뉘앙스를 주목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음운이나 어형을 바꿀 때는 그 어휘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미를 나타내는 어간(語幹)은 그대로 두고,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형식소(形式素)나 개구도(開口度)와 조음점(調音點)을 조절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합니다.
이런 요소들을 어느 정도의 비율과 간격으로 배치해야 하느냐구요? 화제에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너무 자주 대비시키면 보석을 뿌려놓은 것처럼 톡톡 튀어 개개의 표현을 주목하게 되나, 하나로 통합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적게 대비시키면 평범한 작품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독자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할 단계에 낯선 것들을 삽입하여 대조시켜야 합니다.
【 우리가 할 일 】 ○ 구조 다듬기 과정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 이제까지 자기가 쓴 작품의 구조를 점검하고 입체화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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