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모르고 있는 완도지역의 전설들을 모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설들을 추적하다보면
새로운 시각으로 그지역을 다시한번 살펴볼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오늘은 화흥리 최경주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 전부인의 고장이기도 하며 차관훈 전완도군수도
이곳 출신 이곳은 상황봉이 있어 완도의 산마을로 유명 그리고 예전에는 구렁이가 집으로 들어와 사람을 잡아
갔다는 설도 있으며 또깨비도 잘나타나 사람들을 혼비백산하게 했다고 함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이마을은
황그미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마을에 황금같은 보물이 숨겨져있어서 그리 불렀다고 하며 특히 화흥리 처녀들이
구계등 마을 선바축(사정리)으로 대거 시집을 와 살고 있어 구계등 마을과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는곳입니다
도깨비섬의 전설
완도읍 화흥리를 위치한 서부지역에 전해지는 전설로서 화흥리에서 남서쪽으로 바라보면 망망대해로
확트인 수평선이 복개그릇을
엎어놓은 듯 작은 무인도가 가물가물 보이는데 이섬은 보길면에 속한 가덕 도라는 섬이다.
옛날옛날 화흥리의 한 노처녀가 늙은 홀어머니를 외로이 남겨두고 시집갈 수가 없어서 처녀자신이
해초와 조개 등을 팡아서
노모를 봉양하며 겨우 연명해가고 있는 효녀였다.
하루는 여는 때와 같이 조개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때는 5월의 농번기라
아무도 바다에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이 음력 17일로 여덟물때여서 바닷물이 멀리 빠져 나가니 처녀는 노모와의 생계를
위해 많은 조개를 잡으려는 생각으로 물따라 멀리 물아래서 뻘속을 헤집어 조개를 많이 잡았다.
그런데 석양때가 되자 갑자기 서천에서 암운과 돌풍이 몰아쳐 비바람으로 휘몰아쳤다. 처녀는 "큰일났구나"생각하고 빨리
뭍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개펄은 무릎까지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고 바닷물은 밀물로 되돌아 쫓는 듯 가까워지니 처녀는
있는 힘을 다해 뭍으로 나오다가 무거운 조개바구니에 뻘길 걸음이라 지칠대로 치쳐 쓰러넘어졌다.
늙은 어머니 생각이 나니
간장이 찢어질 듯 비통한 처녀는 "어머니!어머니!"하고 소리쳤으나
무심한 하늘과 바다는 처녀를 바다속으로 휘말아 들어갔다.
한편 비바람은 그치지 않고 날이 저무었는데 개펄에 나갔던 딸을 기다리던 노모는 이웃사람들에게 호소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등불과 횃불을 들고 소리소리 지르며 바닷가로 뛰어갔건만 바닷물은 만조가 되어있고 처녀는
보이지 않으니 필연코
사고가 생긴 것으로 생각한 끝에 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려 하는데 갑자기 신기한 일이 생긴 것이다.
미친 듯 불어대던 비바람이
뚝 그치고서 바다 위에 환한 빛이 떠오르더니 아득한 바다끝 외딴 섬까지 신작로처럼 빛이 환히 뻗치고 홀연히 그 처녀가
나타나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 빛을 따라 외딴섬 쪽으로 가버렸던 것이다. 그 빛은 한참동안 수평선 위에 머물러 있다가
사라지더니 또다시 비바람이 휘몰아치면서 거친 광란의 바다가 되버렸다.
이 신기한 장면을 조용히 지켜보았던 동네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마을로 되돌아왔다. 동네사람들은 다음날 아침 어젯밤의
그 신기한 빛이 뻗쳤던 쪽을 바라보니 전에 없던 섬 하나가 수평선 위에 솟아났고,
그 후로부터 비가 올려고
하면 그 섬이
가마로 변해보이고 혹은 시집가는 신부의 울음소리로 들리기도 했으며 또는 큰 배로
변하기도 하여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기도 햇다는데 지금도 이곳 화흥리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그 섬을 바라보아 그날의 일기를 점친다하여
그 섬을 변신술이 있는 섬이라 하여「도깨비 섬」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성겸이 재의 전설
완도읍 화흥리 뒷 산등을 가리키는 곳이다. 옛날에는 매나 독수리를 길들여 애완용으로 키우면서
꿩사냥을 하였는데 이 마을의
「성겸이」,「심겸이」두 형제가 바로 그런 재주가 있었다.
그들이 어느 날 뒷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허우적거리고 있는 독수리 새끼 한쌍을 주워다가 정성드려
키웠는데 길이 잘
들여진 독수리를 그들은 항상 어깨위에 올려 재롱을 즐기는가 하면 의사소통까지
하는 듯 독수리를 잘 다루었다.
그들은
본래 글재주는 없고 게을렀으나 꿩사냥을 즐겨 밥만 먹으면 그 산의 재에 올라 양쪽 봉우리에 한사람씩 서서 독수리를
날려 꿩을 잡았는데 하루에 몇 십마리까지 잡곤 하여 평생을 다른 일을 하지 않고도 꿩사냥을 즐기면서 편히 살았었다.
그래서 두 형제가 매일같이 다니면서 독수리의 덕을 본 재라는 뜻으로 악덕재라고 불렀고 또 위쪽 재는 성겸이 재,
아래쪽 재느 심겸이 재라고 불렀다고 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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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울친구의 별명이 또 깨비 인데 ........... 화흥리에 아직도 살아 ... 배재천 이라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