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이번 리뷰에서는 분당 700발의 스포일러가 난사 중이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하여 신속히 은폐-엄폐 하시길 바랍니다
평소같으면 인수하면 터미널로 와서 하루면 배송이 되던데 추석 시즌이라 그런지, 옥천에서 시공의 포풍으로 빠져버렸던 모양이라 이틀이나 더 걸려서 27일에나 받았습니다. 30일까지 써야 하는데, 뭐 책이 생각보다 술술 가볍게 읽히는 책이라 어제 새벽, 로마 토탈워 하면서 켈트뽕을 치사량까지 맞고 헤롱거리다가(...) 이탈리아에 상륙하고선 현자타임이 와서 잡았는데 그대로 새벽 4시까지 완전히 다 읽어버렸네요.
(사진 출처는 알라딘)
제목 보면 뭐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다 알만한 그거죠.
전방을 향하여 경례! 충!성! 태극기를 향하여 경례! 추!...
제목에 깨알 같이 "!"가 붙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저도 어젠 몰랐는데 방금 다시 보고서야 알았네요.
그리고 요즘 라노벨의 대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것도 전혀 Light 하지 않은 400쪽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옛날엔 라노벨이 그냥 손에 들고 볼 만한 수준이었는데, 400쪽 씩 되다보면 무게도 상당한지라 그냥 들고 보면 손목 저리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조만간 Heavy Novel로 바꿔야 할 기세.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뽑는 라노벨은 일본에서 뽑는 라노벨보다 활자 자체가 1.5배 가량은 더 크긴 합니다. 일본 것은 뭐 갱지 같은 거에다가 글씨도 점만하게 써놓음)
알라딘의 책 소개를 한번 보시죠
"특별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정적으로 군생활을 마친 ‘나’. 하지만 민간인이 되니 평범한 전역자에 불과했다. 애니메이션 '판티아' 속 주인공은 군인이면서도 특별한 삶을 사는데 말이다. 똑같이 차려입으면 비슷한 느낌일까 싶어 '판티아'의 군복을 입고 코스프레 행사에 나가 보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에 의식을 잃는다. 눈을 떠보니 괴물들에게 소총을 겨누며 나를 향해 ‘신병’이라 소리치는 군복 차림의 금발 엘프가 있었는데…."
뭐야?
"특별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열정적으로 군생활을 마친 ‘나’ ...(중략)... 나를 향해 ‘신병’이라 소리치는 군복 차림의 금발 엘프가 있었는데…."
모든 남성이 꿈에서도 몸서리 쳐진다는 그 재.입.대
군인 코스프레 같은 거 하지 말란 교훈을 주는 소설이라 카더라
쓸데 없는 소리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이런 용자들을 에보카티라고 불렀습니다. 재입대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실천하는 분들이 역사를 뒤져보면 꽤 많았다는 증거(...)
(사진은 로마2 : 토탈워)
하필 이런 소재를 고른 라노벨인지라 심히 푸른거탑스러운 걸 기대하고 보신다면 아마 실망하실 겁니다(...) 이런 군대물이면 말년병장의 꼬장이나 실세의 갈굼 같은 요소가 주요 개그 포인트인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더군요.
뭐 도입부 스토리는 단순합니다. 주인공이 인천 코믹월드 145회(물건너 코믹마켓도 이제 92회인데...)에 와서, 국산 애니메이션 "판티아"에서 나오는 군인 코스프레를 했다가, 황금패턴 트럭에 치여서 죽는 줄 알았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애니 속 세상이네?
그리고 그 금발 엘프가.
"얼른 총 들고 쏘란 말이야!"
갑자기 이분 생각나는 건 왜지
"얼른 그 총을 들고 쏘란 말이야"
이 소설은 인트로-오프닝-정규챕터(8개)-엔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딱 전형적인 라노벨식 단권 완결식 구조죠. 물론 진짜로 이 한권 내에서 모든 떡밥이 다 회수되고 그러는 건 아니고, 라노벨 식으로 한권 내에서 스토리가 기승전결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작중의 애니메이션 속 세상 "판티아"는 뭐 굳이 제가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궁금하시면 군대 다녀와보시면 알아요.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다 알아요. 어떻게 된 판타지 월드가 그냥 현실이랑 똑같이 되어 있어서, K2 비스무리한 총(표지에 나와 있는 대로)도 쓰고, 내무반에서 4명이 살면서(!!) 침대에서 살고, 텔레비전도 있고 심지어 채널 돌리면 애니메이션 채널까지도 나오는, 작가가 군 복무하면서 겪었던 그대로 박아 넣은 듯한 느낌의 군대입니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한가하게 밭에 돌이나 깨고 있는다는 게 좀 이해가 안 되긴 하고, 작중에서 야전삽으로 파고 공사장에서 쓰는 삽은 달랑 한개 뿐이니 뭐니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제가 있던 부대에서는 창고만 가면 망치부터 시작해서 도끼, 각삽, 전기톱, 드릴 등등 온갖 공구가 다 그득하게 쌓여 있어서 야전삽 따위 써본 적이 없었는데...
뭐 쓸데 없는 얘기는 그만 하고, 작중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는 분명 군대 배경인데 주인공 빼고 대부분 여자입니다. 뭐 라노벨이니까 그런 데서 신경 쓰지 맙시다(...) 라노벨에서 칙칙한 아저씨들만 나오면 현실감은 살겠지만, 그건 라노벨이 아니라 서부전선 이상없다가 되어버리잖아요.
일단 전반부의 스토리는 별로 썩 좋게 봐주기 힘듭니다. (작가님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일단 문장이 덜 다듬어진 상태입니다. 이거야 작가인 "말랑슬라임"님이 처음으로 출판한 작품인 듯 하니 어쩔 수 없으니 이건 안 꼬집는 게 낫겠죠. 중요한 건 전개가 기존의 이세계 진입물에서 보이는 클리셰 덩어리라고나 할까요? 작중의 주인공은 애니메이션 "판티아"의 엑스트라 캐릭터(주인공의 고향친구라는 설정) "클레이"에게 빙의된 상태입니다. 애니 본편에서는 그냥 지나가는 엑스트라 A일 뿐인 별 의미 없는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작중에서 얘는 입대한지 2달 된(훈련소 기간 빼면야 자대배치 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겠죠?) 신삥신병인데 현실 세계에서 트럭에 치여 죽자마자 클레이에게 빙의해서는 또 시작하자마자 미노타우르스랑 싸우다가 죽을 뻔하다가 도망치다가 죽을 뻔 하고 미노타우르스를 사살하고 분대장도 어떻게 구해서 뭐 대충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분대가 4명인데, 평범한 사람은 주인공(클레이) 밖에 없고, 분대장 세리나는 엘프, 상병 소유는 요정, 일병 샤루는 수인입니다. (작중에서도 일반 보병부대가 아니라 특수부대라고 언급이 되긴 합니다. 여기에 배치된 클레이도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겁니다.)
근데 제가 아쉬웠던 건 이 세명의 캐릭터들이 전형적으로, "금발의 빈약한 츤데레, 괴짜인 로리, 섹시한 여우귀 누님" 조합이라는 것이고, 기존에 만들어진 클리셰에서 그리 벗어나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클리셰를 따르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좀 신선함이 부족하달까요. 그래도 설정 자체는 일본의 라노벨에선 나오기 힘든(거긴 애당초 군대를 안 가니까) 것이라 좀 독특한 전개를 바랐지만 초반부 전개는 단지 무대가 일본의 학교나 도시에서 한국의 전방지역에 있을 법한 군부대로 바뀌었을 뿐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정말 극단적으로 압축을 해보죠.
시작하자마자 괴물들에게 쫓기다가, 분대장은 무서워하는 슬라임한테 걸려버려서 기절해버렸는데 주인공이 보정으로 어떻게든 괴물을 무찌른다. 근데 분대장은 츤데레고 주인공을 겁내 갈군다. 부분대장은 분대장이랑 맞먹으면서 주인공한텐 또 이상한 걸 먹이는 요정 출신이고, 맞고참은 전형적인 섹시누님. 근데 주인공은 껍데기는 "판티아"의 엑스트라 캐릭터 클레이인데 속은 이세계 군대에서 만기제대한 야비군 아저씨라 이등병 딱지 붙이고 능글능글 잘 해결해서 오히려 츤데레 분대장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데, 또 훈련을 나가는데 하필이면 슬라임이 득시글거리는 곳을 돌파해야해서 사실상 주인공이 다 하고, 주인공이 이후 전개에 필요한 아티팩트를 얻었지만 분대장은 오히려 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제가 좀 과장한 부분도 있고 축소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대충 보시면 기존에 있었던 라노벨들에서 "자존감 높은 고압적인 츤데레 여주인공이 주인공이 의외로 뛰어난 부분에 놀라고 그에 오히려 부담을 느끼는"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죠. 다시 말하지만 전형적인 스토리 전개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어쨌든 이 부분까지가 챕터 4까지의 내용입니다. 내용 전개상 여기까지를 자의적으로 1부, 챕터 5부터 엔딩까지의 내용을 2부라 하겠습니다.
제가 위에서 설명을 안 드렸는데, 이 작품은 작중의 현실세계에서 실존하는 애니메이션 "판티아"의 세계속으로 들어갔다는 설정입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그 "판티아"의 전개를 다 알고 있기에 그냥 이세계 진입물이나 빙의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루프물의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뭐 그렇다면 대충 어떻게 전개되실 지 이런 쪽을 좀 많이 보신 분들은 감이 올 겁니다.
2부에서부터 캐릭터가 또 한명 등장합니다. 계급은 일병, 보직은 PX병인 안경 생머리인 아이리입니다. 생긴대로 논다고, 안경 낀 긴 생머리의 소녀는 유약하고 내성적인 건 이 바닥의 약속 같은 거죠.
아이리는 원래 원작 판티아에서는 7초 출연하고 끔살 당하는 엑스트라 캐릭터입니다. 원래 전쟁을 다루는 작품에선 그나마 사망플래그도 못 세우고 죽어나가는 사람들 수두룩하잖습니까? 딱 그런 캐릭터인데 그 엑스트라에게도 삶이란 있다고 누가 그랬던가요. 어쨌든 원래대로라면 죽어야 할 이 처자도 주인공이 판티아의 세계에 개입하게 되면서 운명이 바뀌게 됩니다.
제가 2부의 스토리 전개를 고평가 하고 싶은 건 루프물이 가지는 "가변성의 역사"로 인해 원래는 죽어야 할 사람을 살려내는 스토리를 잘 풀어냈기 때문입니다. 이미 결말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그 과정을 바꿀 수 있나? 그렇다면 얼마나 바꿀 수 있나? 이러한 점을 잘 살렸더군요.
이런 식의 전개는 이미 1부에서도 주인공이 테레비 채널을 돌릴 때라든가, (애니메이션 판티아의) 주인공에게 전화를 할 때라던가 등등 여러 상황에서 복선이 조금씩 뿌려집니다. 분명 주인공은 원래 클레이와는 다른 인물이고 작중 세계의 결말을 알고 있으므로 바꿀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뭔가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틀어집니다. 이건 나중에 아이리가 결국 그 자리를 지키는 상황을 만들게 됨으로서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주인공이 미래에 닥칠 상황을 예견하고 무슨 일을 하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반동을 일으켜서 원래대로 전개가 됩니다. 뭐 원래 상황과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기야 하겠다만 그것이 정해진 결말을 바꿀 정도로 결정적이진 못하다는 것이죠.
어쨌든 저는 이러한 타임 패러독스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불가변-가변 역사에 대한 건 어느 시대에나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죠. 작중의 상황은 미래에서 과거로 간 건 아니지만요. 여기서 주인공과 그 일행이 역사를 바뀌어서 원래는 죽어야 할 아이리가 살아남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은 좀 애매하게 처리되죠. 얘네가 원래 살아남았을 캐릭터인지 혹은 죽어야 했는데 살아남은 것인지.
작중에선 결국 주인공이 미리 주워둔 인챈트 덕에 위기를 모면하고 사건이 해결됩니다만 아직 이러한 불가변-가변 역사의 상황은 딱히 변하지 않았죠. 엄밀히 말하면 이 소설을 관통하는 복선은 여전히 남은 셈입니다. 그 때문에 한권 완결을 목표로 하는 라노벨임에도 결말을 향한 원동력이 충분히 남아 있는 상태죠. 과연 엑스트라들이 살아남음으로서 역사는 바뀌었는지, 혹은 단지 약간의 흐름이 바뀌었을 뿐 아직도 그들에겐 죽음의 운명이 드리운 상태인지. 혹은 그들의 생존여부는 아무런 상관 없을 정도로 하찮은 것일 뿐이었는지(작품 자체에 깔린 사상을 보면 이건 아니겠지만요)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한권이 끝났는데도 꽤나 흥미진진하게 기대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의 한컷 요약.jpg
(출처 : 프리즈마 이리야)
ps.
뭐든지 다 해치우는 PX병 코스프레 하는 최강군인을 기대했거늘 그냥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배신을 안 하는 아이리쨩.
ps2.
다음 왜 이럽니까. 사진 첨부가 안 되어서 네이버에서 따로 쓴 다음에 복붙하고 있습니다. 왜 이럼(...)
첫댓글 엑박이 출몰합니다......
PC로 보면 괜찮은데 맛폰으로 보면 다 엑박뜨더군요. 다음에서 이미지 업로드도 안 되고, 저도 해결방법을 못 찾겠네요
@곽달호대위 pc동엑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