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꺼내보는 명품시조 15.
수난이대, 삼팔선
석야 신웅순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징용에 끌려가 한 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6.25 전쟁으로 한쪽 다리를 잃었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아버지는 아들을 업고 아들의 한쪽 다리가 되어주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먹이려고 산 고등어를 손에 들고 아버지의 한쪽 팔이 되어주어 외나무다리를 건넌다.
하근찬 소설의「수난이대」일부를 요약한 것이다. 이대에 걸쳐 수난 당한 부자의 수난이대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살아온 역사의 산 증언이다. 아버지는 한쪽 팔을 잃었고 아들은 한쪽 다리를 잃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한쪽 팔이 되어주었고 아버지는 아들의 한쪽 다리가 되어주었다. 운명이란 부끄러운 비극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일제의 징용에서 육이오 전쟁으로, 삼팔선에서 휴전선으로 민족의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글픈
삼팔선을
밤새워 넘어가네
새벽 달 지새는 데
깊은 산골 접어들어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몰래 갈 줄 뉘 아리
- 정소파의 「삼팔선」
삼팔선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 점령한 군사분계선이다.
휴전선은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이 휴전됨으로써 한반도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설정된 남과 북의 정치적 군사분계선이다.
이 두 경계선은 순전히 타의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책정된 것이며, 한국 민족에게는 헤아릴 수 없는 민족적 비극과 고통을 안겨 준 한 많은 경계선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부모 형제간의 생이별을 강요했고 이산 가족들에게는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었다.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왜 몰래 가야만 하는지 기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글픈 삼팔선을 밤새워 넘어가야하는 길을 지금은 휴전선의 철책선에 막혀 그나마도 갈 수 없는 길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는가.
민족의 아픔을 지나칠 수 없었나, 시인도 단시조 하나를 삼팔선에 표석으로 세웠다. 민족의 한이 어디「수난이대」,「삼팔선」뿐이겠는가.
2021.12.1.(수)주간한국문학신문
첫댓글 부끄러운 비극이라 읽으며
가슴으로 와닫지 않는 세대
그러나 50년대 도 부끄럽게 부족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비라도 오는날 이면 4형제가 서로먼저 우산을 차지 하려 난리가 난 기억들이 떠오릅니다.
결국 우산이 부족해 비를 헤치며 학교를 통학할 때가 부지기수 …
그러니 모든부모님들 께서 는 얼마나 마음이 슬펐을까 그뿐인가 무엇하나 풍족하지 못했던 그시절
고통과 불편함에 도 忍耐와 持久力 으로
이만큼 지킴으로 ..
무엇을 어떻게 써내려 가야할 지 우왕좌왕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글이 아님에
지난날 학창시절 슬펐던 추억 메시지
드려 봤습니다 ^^
티브이 화면으로 부모형제 자매 를 찾는
이산가족 상봉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시청하는 시대도 있었던 시간들…
교수님 생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애들아빠 TV 시청중 퇴근후…
공감한다는 것은 서로의 행복입니다.
수난 이대 다음 세대인 우리들입니다.
지금도 휴전선이 있어 이산가족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세월은 흘러갑니다.
오고 갈 수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못 만남이 휴전선 또한 그 이상의 비극입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수난이대.
고등학생으로 돌아가
국어시간에 앉아 있는 듯 합니다.
그때도 참 마음이 아렸는데 변함이 없습니다.
내 나라
내 땅
내 길을
몰래 갈 줄 뉘 아리.
이 한 줄은 삼팔선에 대해 최상의 표현을 한 명문입니다.
처음 접하는 훌륭한 시들을 소개해 주셔서
많은 공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
정소파의 시조를 찾았습니다.
그럴듯할 것 같아 수난이대와 비교해보았습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죠.
왜 우리 민족이 이래야 하는지를요.
서건으로 따진다면야 충분히 부끄러운 노벨상 감은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