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행복-인생의 손익계산
사업의 손익을 회계적 절차에 따라 계산하여 확정하는 일을 두고 ‘손익계산’(損益計算)이라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익계산을 하면서 산다.
어떤 손실이 있었고, 어떤 이익이 있었는지 계산을 해봐야, 자신이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 손익계산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손실을 줄일 것인가, 또 어떻게 하면 이익을 더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경영의 방법도 연구해서 더 합리적인 쪽으로 개선해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고, 국가가 발전하게 되는 것은, 손익계산의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런 손익계산 없이 함부로 돈을 쓰게 되면, 개인이든 사회든 국가든 망할 수밖에 없다.
꼭 돈을 버는 경제적 주체만이 손익계산을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얻어 쓰는 경제적 객체도 나름의 손익계산을 한다.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그 역시 작은 경제적 주체이기 때문이다.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서울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의 대표법무사이기도 한 나는, 사업적 측면에서나 개인적 측면에서도 손익계산을 해볼 수밖에 없는 경제적 주체의 위치에 있다.
그래서 날이면 날마다 그 하루의 손익계산을 빠뜨리지 않는다.
소위 ‘손익계산서’라고 해서 회계적 절차를 거친 장부에 의해 따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대충 주먹구구식의 손익계산은 꼭 해본다.
2016년 8월 12일 금요일인 어제도 그랬다.
등기 신청서류 4건을 들고, 맨 먼저 경기 용인등기소를 들른 것을 시작으로 해서, 계속해서 경기 광명등기소를 들렀고, 서울 마포구청을 들러 서울서부지방법원 등기과와 은평등기소를 들렀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동부지방법원 등기과를 들렀다.
차를 몰아 달린 거리가 근 500여리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이 줄잡아 150만원정도 됐다.
내 이렇게 말하면, 내 주위 대부분은 이렇게 말하기 십상이다.
‘하루에 150만원이나 벌었다고? 많이 벌었네. 부자야.’
어떤 사람은 ‘부자야’라는 말에 더 보태서 이 말까지도 한다.
‘재벌이네.’
어불성설이다.
그렇게 말할 때, 내 마음에 짚이는 그 사람의 속셈은 곧 이렇다.
‘돈 좀 써! 임마!’
돈을 쓴다 하더라도, 그런 사람에게는 내 절대 안 쓴다.
기본적으로 헐뜯는 심보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인 평해(平海) 황원현 같은 친구는, 늘 이렇게 배려의 말로 나를 도리어 위로하고는 했다.
‘애썼네. 그런데 그리 벌어봤자 뭐하나. 어디 남는 게 얼마 되야지 말일세. 직원들 월급 줘야지, 보너스에 밥도 사줘야지, 사무실 임대료에 관리비까지 내야지, 게다가 은행에서 빌린 자금에 대한 이자까지 내고 나면, 몇 푼 안 남을 거야, 아마.’
내 마음속에 쏙 들어와 있는 듯, 정확하게 손익계산을 해준다.
사업을 해본 친구이기에, 가능한 논리 구성이다.
평해 그 친구의 논리대로 손실계산을 해봤다.
아홉 명 직원의 한 달치 월급 1,500만원의 하루치 150만원에,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 250만원의 하루치 25만원만 해도, 합해서 175만원이 되어서, 그것만으로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커서, 내 손에 쥐는 돈은 한 푼도 없다.
아파트를 담보로 해서 제 1금융권에서 빌린 5억원을 웃도는 대출 원금에 대한 매월 200만원 상당의 이자 그 하루치인 20만원은 아예 계산에 넣지 않았음에도 그렇다.
그렇듯, 딱 내 그 하루의 일상에서 버는 것만으로는 손실을 면할 수 없는 손익계산이 나온다.
그래도 버텨 가는 것은, 소위 ‘집단등기’라고 해서 어느 아파트단지 한 곳의 등기를 몽땅 수임하는 큰돈 벌이가 간혹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해를 통 털어 손익계산을 맞추어가는 것이, 우리 사무소의 현재 운영상황이다.
그런데 그 손익계산에서 빠진 것이 둘 있다.
그 빠진 것, 어쩌면 그것이 회계적 손익계산이 어떠하든 불문에 붙이고, 내가 우리 사무소를 끌고 가는 그 핵심적 이유랄 수 있다.
하나는 ‘인생의 손익계산’, 바로 그것이다.
내게 일터가 있을 때, 내 존재의 의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 하나의 존재만 생각한 것이 아니다.
아내의 존재, 그 의미도 챙겨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내에게도 뭔가 일을 할 수 있는 터전이 있을 때, 그 존재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생동감 있는 삶을 즐기게 될 것이라고, 내 나름으로 생각을 했었다.
다들 세상사를 두고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 힘든 세상사를 즐긴다.
감당해낸 그 극복 뒤에, 찬란한 미래의 삶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덤의 사연’이다.
내 하루의 일상에 끼어드는 갖가지 덤의 사연들이, 나로 하여금 세상사는 맛을 나게 하는 요소들이다.
시원한 한강 그 강변을 달리면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들도 덤의 사연이고, 롯데가의 높다란 빌딩을 쳐다보면서 그 형제의 다툼을 따져보는 것도 덤의 사연이고, 여기저기서 얻어 듣는 덕담들 또한 덤의 사연이다.
어제 하루 일상의 두 번째 목적지인 광명등기소에서의 일이었다.
급해진 소변을 해결하느라 화장실을 들렀다.
내가 선 자리 그 앞에 한 마디 명언이 걸려 있었다.
영국 격언이라고 했다.
곧 이랬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좋은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옆 사람 자리에도 있었다.
로마제국 격언이라고 했는데, 곧 이랬다.
‘누구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돈을 벌고 못 벌고 하는 그 손익계산은, 일흔 나이에 접어드는 내게는 이제 큰 의미가 없다.
‘인생의 손익계산’과 ‘덤의 사연’, 바로 그 둘만으로도 늘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 내 지금 삶이다.
첫댓글 우짯던동 더 많이 버시게.
기도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