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길의 아버지는 이런 분,
그런데 이런 분의 아들 김한길은?
김철 (1926∼1994)
前 통일사회당 당수
함경북도 경흥 출생. 본관은 金海. 1945년 경성(鏡城)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49년 일본 동경대학 역사철학과에서 연구생으로 수학하였다.
1949년 재일거류민단 기관지 「민주신문」 편집국장, 1950년 일본 「요미우리 」서울특파원, 1961년 혁신계의 「민족일보」 논설위원을 지냈고, 1955년에는 재일 거류민단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1957년 민주혁신당 대변인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1960년 한국사회당 대변인, 1961년 통일사회당 국제국장, 1970년 동당 부위원장을 거쳐, 1971년 통일사회당, 1981년 사회당, 1985년 사회민주당 위원장에 각각 선출되었다. 1971년에는 통일사회당 후보로 제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였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우리나라의 진보정당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는 한편, 우리나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는 데에도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1969년 통일사회당을 우리나라 최초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 정회원으로 가입시켰고, 1970년에는 아시아태평양 사회당기구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4년 영국의 윌슨수상이 주재하는 세계 사회당기구 지도자회의, 1977년 동경에서 개최된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지도자 회의, 1980년 마드리드에서 열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 등 국제대회에 참석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민주화를 역설하였다.
그는 군사정권하에서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에도 기여한 바가 컸다. 1969년 삼선개헌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활약하였고,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을 주도하였으며, 동년 咸錫憲, 金泳三 등과 함께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 대표위원을 역임하였다. 그 과정에서 1971년 「반공법」위반으로, 1975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되었다.
저서로는 「민족학생 운동의 이념」·「떳떳한 민족으로 살자」·「일본 민주화의 좌절」·「새 역사의 구상」등이 있다.
아버지는 민중혁명을 꿈꾸던, 그러나 꿈을 마저 이루지 못한 위대한 혁명가이셨는데 아들은 아버지가 힘을 다해 싸우고 척결하려던 그 세력의 정점에 서 있던, 결국은 민중을 짓밟으려는 사악함에 반기를 든 측근의 손에 의해 척살 당한 자의 딸, 오로지 아버지의 한을 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아버지보다 더 독한 그런 딸에게 맞서기는 커녕 '짬짜미'나 기대하는 졸장부로 전락하였구려.
한길아 김한길아.
그대의 아버지께서 그대의 이름을 한길이라 지어 주신 연유를 나도 짐작하겠소이다.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을 오로지 '한 길'로만 가서 이루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셨겠소?
그런데 그대는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 거요? 올 곧게 한 길을 가기는 커녕 두 갈래 세 갈래 가닥을 나눠 오락가락하고, 그대의 아버지께서 육성하고자 하셨던 진보세력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적극 나서고 있잖소?
혁명가 '김철'의 육신의 자식은 김한길일지언정 그 분의 정신을 이어 받은 자식은 오히려 이정희, 이석기 등이라 할 수 있는 지경이니 그대 부친의 기일에 과연 누가 제사상을 차려야 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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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한살 많습니다 문재인 김한길 53년생
이정희.. 이석기는 오버다.
글을 쓰다보면 수사법 차원으로다 과장법을 쓰기도 허쥬.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마셔유. ㅋㅋㅋ
드라마에서 보면 보두 아들들이 모두 낮더만 현실은 안그런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