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평양과 원산, 금강산 지역을 방문한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이 촬영한 명사십리 해수욕장.
원산 갈마반도(葛麻半島)의 남동쪽 바다기슭에는 모래사장이 10리이상이나 길게 늘어서있고,
은빛 모래에 부서지는 파도의 울림소리가 10리까지 들린다고 하여 명사십리(鳴沙十里)라 이름한다.
한많은 명사십리 1963 손인호 🎥 영화 주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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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1963 한(恨)많은 명사십리(鳴沙十里),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 가사 ]
한많은 명사십리 다시못올 옛사랑아
해당화에 속삭이던 그시절 못잊어
서산넘어 지는해야 날아들던 갈매기야
백사장에 맺은사랑 부질없드냐
한많은 명사십리 찾지못할 옛사랑아
모래위에 그린고 온 옛추억 못잊어
출렁대는 흰파도야 헤매도는 갈매기야
사랑이란 이다지도 꿈이였더냐
명사십리(鳴沙十里)
북한(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강원도 원산시 갈마반도(葛麻半島) 명사십리(鳴沙十里)
명사십리는 북쪽의 송도원해수욕장(松濤園海水浴場)과 더불어 수심이 얕은 해수욕장.
사빈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고, 그 길이가 두남산 기슭으로부터는 4㎞이고, 안변남대천 아래로부터는 6㎞이다.
원산시 남동쪽 용천리 남대천하구에서부터 길게 뻗은 갈마반도(葛麻半島) 끝에서 남쪽으로 끝없이 펼쳐 있는 하얀 백사장과 10여 리에 걸쳐 만발하여 있는 해당화의 군락, 그 뒤에 둘러져 있는 푸른 소나무와 푸른 바다가 어울려 명승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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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인호 孫仁鎬 (본명: 손효찬孫孝贊)
흔치 않은 미성(美聲)으로 10여 년간 노래를 시중에 발표하면서도 일체 방송무대에 서지 않아 ‘얼굴없는 가수’로 불렸다. 심지어는 결혼한 부인조차도 1년이 다 되도록 남편이 노래 부르는 가수인지를 모르고 지냈다ㄴ다.
손인호 孫仁鎬 (본명: 손효찬 (孫孝贊) , 1926년 5월 6일 ~ 2016년 7월 16일)는 평안북도 창성군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로, 종교는 개신교(장로회)이다.
영화녹음기사로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 한양녹음실에서 대표기사로 활동했다.
1946년 관서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였고, 월남하여 KPK 악단에서 가수 생활을 했고, 한국 전쟁 체제를 전후해 녹음기사로 전업하였다. 그러다가 1954년 작곡가 박시춘에게 <나는 울었네>, <숨쉬는 거리> 두 곡을 받아 취입, 크게 히트시켰다.
이후 그는 "신세기 레코드"를 거쳐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비 내리는 호남선>을 발표하였고, 계속 <울어라 키타줄>, <사랑찾아 칠백리>, <하룻밤 풋사랑>, <이별의 성당고개> 등을 히트시켰다. 1957년 말에 도미도레코드로 이전, <한많은 대동강>, <짝사랑>, <물새야 왜 우느냐>, <이별의 부산항>, <청춘등대>, <향수의 블루스>, <동백 꽃일기>, <남원땅에 잠들었네> 등의 히트곡을 쏟아내었고, 빅토리레코드에서 <해운대 엘레지>를 발표하여 크게 히트시켰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돌아가자 남해 고향>, <한 많은 명사십리> 등을 취입하여 히트시켰다.
손인호는 1950년대부터 영화 녹음기사와 가수활동을 병행 하였으나 단 한차례도 가수로서 무대에 서거나 방송이나 매체에 출연한 바 없이 오로지 음반 취입만으로 가수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얼굴 없는 가수로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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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에서
한나절이면 다녀올 곳인데...
생각날 때
다녀오세요.
@멍게2
원산 갈마반도 명사십리...
명사심리 유익한정보를 잘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 좋은날 되소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