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달파 센터를 찾아오시는 분들의 성격 분석을 해 보면,
의외로,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세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면,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의 세계가 더 반짝반짝 빛나야 마땅하겠지만,
안타깝게도, 이타적이고 마음이 여릴수록 손해 볼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기적이고 냉혹할수록 무조건 승승장구하는 것도 아니죠.
사회적 빌런들은 나쁜 평판들이 쌓여 나가면서 결국 매장당하기 쉬운 운명이니까요.
결국, 관건은 밸런스라는 겁니다.
너무 이타적이지도 않고, 너무 이기적이지도 않은.
과연 얼마큼 친절해야 스마트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과유불급(過猶不及)
내가 얼마나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인가?를 알아보고 싶다면,
BIG 5 성격유형에서 우호성 부분을 체크해 보면 됩니다.
우호성 점수가 높으면 높을수록,
굉장히 착하고 나이스하며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성숙하고 시민 의식이 높은 살기 좋은 사회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높은 우호성은 이렇듯 사회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그 개인의 이득이나 성취 측면에서는 딱히 좋다고 말하기가 힘들어요.
왜냐?
우호성이 높은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나눠주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성격이거든요.
내가 가진 자원이 나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만 분산되다 보니,
앞만 보며 치달리는 다른 경쟁자들보다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높은 우호성의 핵심 특질은 우월한 공감 능력에 있습니다.
저 사람의 지금 심정이 너무나도 잘 느껴지기 때문에,
자꾸만 저 사람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저 사람은 지금 분명 도움이 필요한데,
내가 지금 이걸 무시하면 내 과제를 더 빨리 더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어.
하지만 저 사람을 개의치 않는 게 내 마음속으로 도저히 용납이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불편해서라도 저 사람을 도와주면서 마음의 평안을 찾게 되는 것이죠.
즉, 공감력이 높은 사람들의 이타적 행동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위한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반면, 우호성이 낮은 사람들은 공감력이 굉장히 떨어지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타인의 마음을 읽을 능력이 없는 게 아닙니다.
타인의 마음이 느껴지진 않더라도, (empathy)
타인이 어떤 처지에 놓여있고 어떤 기분일 지 예상할 수는 있어요. (mind reading)
다만, 읽어낸 타인의 마음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 것"일 뿐.
※ 공감과 마음 읽기는 다르다.
비유하자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과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의 차이랄까?
가령, 영화 <아이 엠 샘>의 주인공처럼 자폐가 있는 사람들은 공감은 할 수 있지만 마음 읽기는 하기 힘들다.
그래도 공감 능력이 있기에 아이와의 정서적 유대감을 통해 충분히 부모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 등과 같이 극단적으로 우호성이 떨어지는 케이스는
마음 읽기는 할 수 있지만 반대로 공감이 힘들다.
하지만 대다수의 경우, 읽어낸 상대방의 마음에 개의치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기 때문에,
마음 읽기가 가능해도 마음 읽기를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간혹, 이들 중에 읽어낸 마음을 무시하려는 충동을 이겨내고 사회적 평판을 잘 쌓기 위한 노력을 하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런 케이스가 바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들"이 된다.
타인의 곤란을 너무 신경쓰면 나에게 집중하지 못 할 겁니다.
반대로, 타인의 곤란을 너무 신경쓰지 않는다면 내 사회적 평판이 나빠지겠죠.
사회적으로 성공한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들은
타인의 곤란을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그러한 충동을 억누르고" 사회적 평판을 위해 이미지 관리를 합니다.
속으로는 갖은 욕을 해 대면서, 겉으로는 친절한 척 사람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데,
이처럼 기질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노력이 동반돼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나를 향해 모든 자원과 노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충동을 억누르려는 노력을 통해 사회적 평판까지 챙겨버리니
공감 능력 없음이라는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의 위치까지 올라설 수 있는 거겠죠.
마찬가지입니다.
태생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한 고 우호성인들도,
때로는 남의 처지를 개의치 않고 우선적으로 날 위해 행동하려는 노력을 해야지만,
나중에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며 현타에 빠지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됩니다.
고 우호성인들이 가장 못하는 것임과 동시에 가장 키워야 할 내적 자질은,
타인이 아닌, 나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면서 느껴지는 불편감을 최대한 감내할 수 있는 저항력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친절한 사람으로만 살아왔는데, 날 위한 행동을 하다가 평판이 나빠지면 어떡하죠?"
이것 또한 고 우호성인들만의 독특한 생각입니다.
상식적인 세상에서는,
어떠한 요청에 대하여 NO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리한 요청을 계속 하는 사람들 또는 무리한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문제 삼죠.
원래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사람이 어느날 내 요청이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한다면,
'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괜히 사정도 있는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미안하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입니다.
부탁을 거절하는 데서 느껴지는 미안한 마음, 빚진 마음은
우호성이 발달한 사람들에게서 주로 발현되는 "성격적 특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즉, 모두의 기준이나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나만의 생각에 빠져 과도하게 평판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기분 나쁜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이기적인 성격을 지닌 그들의 문제이므로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면 그만입니다.
즉, 친절한 사람들이 그어 놓는 경계선은 피해야 할 인물들을 걸러낼 수 있는 리트머스 종이의 역할까지 겸할 수 있는 것이죠.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저희 부모님 얘기네요 ㅠㅠ 어머니는 극단의 이타주의자, 아버지는 나르시스트 끝판왕.. 두 분이 아니라 중간에 있는 제가 가장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무명자님 글을 읽고 단박에 이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