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본(가족애)
완도, 청산도 기행
매일 얼굴을 대하는 가족이지만 목적 없이 한자리에 모여 대화를 해 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저마다의 일로 바빠서 가족끼리도 때로는 며칠씩 못보고 지내기도 하고 간혹 대화를 하더라도 용무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하물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거의 드물 뿐 아니라 모인다 해도 식사나 하고 나면 진솔한 대화 한번 못해보고 또 저마다의 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곤 하는 것이다. 하여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여행이 계획되었다. 모두의 공통된 시간을 위해 금요일 밤에 출발하여 일요일 저녁에 돌아오는 것으로 시간표가 짜여지고, 가족 중에 셋이나 운전이 가능한 장점이 있으니 서로 돕고 화합하는 면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밤 시간대의 긴 여행이지만 번갈아 운전을 하며 땅 끝 마을까지 가보자는 취지의 장거리로 계획되었다.
금요일 저녁에야 퇴근하는 아들과 딸 대신, 며칠 전부터 작성해온 메모지를 보며 꼼꼼히 짐을 챙겼다. 내가 코펠이며 버너에서부터 낚시도구 등을 챙기는 동안 아내는 옷가지며 비상약, 양념 등 가족의 건강에 필요한 물건들을 꼼꼼히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는 함께 마트에서 부족한 것을 구입하는 것으로 여행준비는 완료되었다. 여행이 불가능하게 연로하신 어머니를 누님 댁으로 모신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실은 어머님 때문에 가족끼리 여행을 해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누님이 적극 권장하여 이 일이 성사된 것이다. 드디어 아들과 딸이 도착하고 부지런히 챙겨놓은 짐들을 차에 싣고 출발했다. 9월 5일 10시15분, 출발과 동시 내비게이션에 완도 여객터미널을 찍으니 420KM 예상소요시간이 7시간이다. 우선 성격이 급한 편인 아들이 운전대를 잡았다. 곤지암 인터체인지를 통해 고속도로에 올라 중부고속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로 또다시 호남고속도로로 그리고 또 일반도로로 달려가며 운전대는 아들에게서 딸에게로 또다시 내게로 넘어와 완도에 도착하니 날이 부옇게 밝아온다. 9월 6일 새벽 4시다. 김밥 집에 불이 켜있어 김밥 몇 줄을 사긴 했는데 모두 지치고 잠이 몰려와 여객터미널 앞에 차를 세우고 차내에서 곯아 떨어졌다.
새벽 6시에 아들과 나는 잠을 깼으나 아내와 딸은 비몽사몽이다. 좀더 편한 잠자리를 위해 차에서 쫓겨난 아들과 나는 터미널 주위를 산책하며 시간을 보냈다. 야자수 나무며 평소 보지 못하던 나무들이 완도에만 내려와도 이국적인 풍경으로 비쳐졌다. 7시, 터미널 화장실에서 간단히 세면하고 사발면 두개 사서 터미널 의자에 앉아 김밥과 함께 식사를 했다. 옛말에 ‘입맛 없으면 울타리 밑에 가서 먹어라.’더니 터미널 의자에서 먹는 김밥과 사발면 맛은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청산고속카페리2호에 올랐다. 뱃고동소리와 함께 완도항을 출발한 배는 청산도를 향해 속력을 높인다.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하고 날이 흐려 몰랐는데 돌아올 때 보니 50분을 가는 청산도가 엎어지면 코 닿을 듯 빤히 보이는 곳이다.
9시 청산도에 도착하여 민박집부터 잡고 민박집 앞 방파제에서 낚시를 했다. 간간이 내리던 빗방울이 거세져 낚시를 할 수 없게 되어 철수하고 대충 밥을 지어 점심을 먹고 나니 비는 점점 더 내리고 밤새 운전한 피로도 몰려와 모두 낮잠에 빠졌다. 비가 그친 5시, 승용차로 청산도 일주에 들어갔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청산도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계단식으로 이어진 다랑이 논에서는 벼들이 익어가고 포구에는 낙조가 수줍은 듯 펼쳐져 있다. 산과 물과 하늘이 서로 뽐내지 않고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청산도 일주를 마치고 모녀와 부자는 팀을 나누었다. 모녀는 방에서 정담을 나누고 부자는 다시 낚시에 빠졌다. 9시에 합류한 가족은 포구의 밤을 구경하기 위해 선착장근처로 나왔다. 항구의 모습처럼 제법 번화한 포구의 불빛이 일렁이는 파도에 유성처럼 아름답게 늘어진다. 조그만 포구에 다방이 몇 개쯤 있는, 나름대로 흥청 이는 포구의 모습에 문득 가수(최백호)가 부른 [낭만에 대하여]노래가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낭만에 취한 우리가족은 회센터에서 자연산 광어를 회 뜨고 소주 몇 병사서 돌아왔다. 얼큰 취해 집 앞에서 바닷바람을 맞는데 옆방에 민박한 낚시꾼 두 분이 밤낚시를 나간다. 아들과 나는 냉큼 따라나섰다. 새벽3시까지 낚시를 하고 둘째 날을 마쳤다.
9월7일 아침6시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물이 빠진 돌 틈에서 소라를 잡았다. 돌 틈에는 소라와 달팽이, 게 등 또 다른 자연이 숨쉬고 있었다. 그동안 잡은 고기들과 게 그리고 어제 회 뜨고 남은 광어뼈 등으로 매운탕을 끓였다. 양념도 별반 없이 끓였지만, 오순도순 이야기 하며 잡은 고기들로 끓인 매운탕은 그 정만큼이나 맛있다. 아침을 먹고 난 우리는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민박집을 나섰다. 이제 1시 배를 타기 전까지 청산도를 다시 한 번 일주했다. [서편제] 촬영지와 [봄의왈츠] 촬영장을 찾아 사진도 찍었다. [해신] 촬영지인 화랑포는 찾다가 돌아왔다. 청산도는 천혜의 관광지였다. 비가 오고 흐렸던 어제와 달리 햇빛이 내려쬐는 날의 바다 물빛이 너무도 아름답다. 왜 청해 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간다. 푸른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른 코발트빛 바다, 그리고 그림처럼 물에 잠긴 포구, 바다저편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일상에 찌들었던 마음을 한번에 씻어주는 듯했다. 1시 배를 타고 떠나오는 환상의 섬 청산도와 푸른빛 바다는 완도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시, 완도에 도착하여 동태 찜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또 다시 번갈아 운전을 하며 완도에서 해남으로, 해남에서 나주로, 나주에서 광주로, 대전으로 오며 주위의 경치와 더불어 즐거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집에 도착한 것은 8시 40분이었다.
재미를 본 낚시도 없었고 조개를 신나게 캐보지도 못하고 특별히 재미있을 무엇도 없는 여행이었지만 그렇기에 한 가지에 몰두하지 않고 가족끼리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보람 있는 여행이었다. 일상의 찌꺼기를 모두 비워낸 가슴엔 아직도 푸른 하늘과 바다가 꿈결처럼 일렁인다.
다랑이 논들
낙조속에 잠드는 포구
불빛에 일렁이는 포구
서편제 촬영장
봄의왈츠 촬영장
진산해수욕장
비췻빛 지리해수욕장
그림같은 국화리 포구
아직도 마음은 저곳에
첫댓글 누구시다냐? ㅎㅎㅎㅎ 반갑습니다.()()()
무공 스님도 즐거운 추석 되세요
명절을 앞두고 훈훈하면서도 풋풋한 이야기입니다. 사모님 모습 오랫만에 뵙네요. 안부 전해주시고요. 단란해보이는 가족들 모습...부럽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 충만한 가정되십시요.
와~~~우 떠나고 싶어지네요 푸른빛을 발~하는 바닷가 나빌레라님~~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세요
고맙습니다 해미님 하얀엄마님 즐겁고 행복한 한가위 되세요